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83)
금수저 투자백서 283화(283/283)
283. 중요한 시기에 정말 귀찮은 것들이 붙어 버렸군.
좌우로 농지들이 펼쳐진 넓게 펼쳐진 들판 한가운데 나 있는 한적한 국도를 달리던 벤츠 고급 세단이 천천히 속력을 줄이더니 갓길에 멈춰 섰다.
조수석에서 내린 한지성이 얼른 뒷좌석 차 문을 열어주자 레이밴 선글라스를 낀 석원이 밖으로 나왔다.
갓길 끝으로 걸어가서 서자 한지성이 한쪽 팔을 들어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아 텅 비어 있는 농지 건너편에 있는 대규모 물류 창고를 가리켰다.
“저깁니다.”
석원은 선글라스를 벗고 주변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부지 면적이 만평이 넘는다고 했었죠?”
“예.”
한지성이 곧바로 대답하며 추가로 설명을 덧붙였다.
“모두 다 해서 4만 2,975㎡로 약 1만 3천 평 규모입니다.”
“보기에는 그 정도까지 안 되어 보이네요.”
“아시다시피 주변 일대가 전부 남단녹지로 지정돼 십수 년 넘게 개발제한 구역에 준하는 수준의 규제가 적용됐지 않습니까.”
분당과 판교 일대가 오랫동안 녹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건 박장우 전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
현장 시찰을 마치고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던 중에 이 지역을 지나가면서 “앞으로 요긴하게 쓸 땅이니 개발하지 말라”는 지시를 하면서 남단 녹지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된 거였다.
“그 때문에 소유한 부지를 전부 활용하지 못하고 절반 정도만 임시 허가를 받아 물류 창고로 사용 중이라고 합니다.”
“분당 신도시가 만들어지면서 규제는 전부 해제된 상태죠?”
“그렇습니다. 한동안 분당에 이어 여기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될 거라는 기대감이 컸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잠잠한 상태입니다.”
“서울 인근에 거의 찾아보기 힘든 평지에 있는 녹지니까 반대가 클 수밖에 없겠죠.”
“맞습니다.”
이러다 보니 석원이 현금 대신 요구했을 때도 서초동 부지에 대해서만 발끈했지 판교 물류 창고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서초동 부지는 눈 가림용이고 진짜로 노린 곳이 바로 여기였다는 걸 우용갑 회장이나 동해그룹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할 거야.’
지금은 기약이 없어 보이는 판교 개발이 불과 몇 년 뒤에 정권이 바뀌면 급진전될 뿐만 아니라 여기에 국내 최고의 IT기업들이 몰려들어 세계적인 글로벌 융복합 R&D 허브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터였다.
‘그러면 지금은 별거 없어 보이는 이 땅이 한순간에 황금 덩어리로 변하게 되는 거지.’
판교 일대가 개발예정용지로 지정되고 개발 논의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 헐값에 땅을 넘긴 우용갑 회장은 속이 엄청나게 쓰릴 것이 분명했다.
‘그때쯤이면 IMF 직격탄을 맞아 그룹이 부도난 이후일 테니까 더 아까운 마음이 들 거야.’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인데 그게 원래 자신의 거였다면 얼마나 아깝고 화가 날지 굳이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감정액이 평당 100만 원이라고 했었죠.”
“예. 그래서 서초동 본사 부지하고 합쳐도 채권 상환액을 다 맞출 수가 없어. 추가로 동해그룹 소유의 부동산 3곳을 더 가져오게 됐습니다.”
고작 130억에 판교 중심지역에 있는 평지 1만 3천 평을 가져오다니 정말 거저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가 추가로 얻은 부동산들 역시 앞으로 땅값이 엄청나게 뛸 곳들이었기에 더욱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판교 물류센터 말고도 동해그룹이 가지고 있는 부동산들 가운데 알짜가 이렇게 많았을 줄은 미처 몰랐단 말이야.’
석원은 흐뭇하게 웃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전 하기 전 국군체육부대 근처에 위치한 연수원만 해도 몇 년 뒤면 판교처럼 대규모 신도시가 조성돼 금싸라기 땅이 될 곳이었다.
이 정도면 적대적 M&A를 방어하느라 신경을 쓴 수고비를 나쁘지 않게 챙긴 셈이었다.
바라만 봐도 배가 부를 것 같은 얼굴로 이제 자신의 소유가 된 물류센터를 한참 동안 감상한 석원은 이내 선글라스를 다시 끼며 돌아섰다.
“그만 돌아가죠.”
* * *
일본 도쿄도 주오구 스미모토 상사 본사.
60대 후반의 나이였지만 군살 없는 체격에 일본인 치고는 큰 키를 가진 이토 마사나오 사장이 마호가니 원목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다가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투피스 유니폼을 입은 여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와 손님이 온 것을 알렸다.
“구보리 재무이사님이 오셨습니다.”
이토 사장은 보고 있던 서류철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들어오라고 해.”
“예.”
여비서가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회색 정장을 입은 구보리 히데야키 재무이사가 들어와서는 꾸벅 머리를 숙였다가 바로 했다.
그걸 본 이토 사장은 턱짓으로 앞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다.
“거기 앉게.”
“네.”
구보리 재무이사가 오른쪽 소파에 앉자 이토 사장도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차는 뭘로 마시겠나?”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이토 사장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비서를 보며 말했다.
“커피 두 잔 가져다주게.”
“알겠습니다.”
여비서가 문을 닫고 나가자 이토 사장은 몸을 뒤로 기댄 채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구보리 재무이사에게 물었다.
“확인해 보라고 한 건 알아봤나?”
“예.”
시선을 받은 구보리 재무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겁도 없이 우리 회사에 공매도를 친 놈이 누구야?”
그러자 구보리 재무이사가 약간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엘도라도 펀드였습니다.”
이토 사장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엘도라도라면? 지난번에 녹인-녹아웃 옵션으로 한바탕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곳 아닌가.”
“맞습니다. 그 전에 조지 해밀턴의 퀀텀 펀드와 함께 엔화를 공격해 일본 은행을 큰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었지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상당한 거물이 달라붙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토 사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시해 버려도 될 상대는 아니구만.”
그러자 구보리 재무이사가 몸을 당겨 앉으며 진지하게 조언했다.
“헤지펀드계의 전설인 조지 해밀턴이 직접 인정했을 만큼 최근 월가에서 가장 핫한 펀드일 뿐만 아니라 자금 동원력도 상당한 걸로 알려져 있으니 경계를 절대 늦춰서는 안 됩니다.”
그때 여비서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커피잔을 두 사람 앞에 하나씩 내려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히자 구보리 재무이사는 잠시 끊겼던 대화를 다시 이어나갔다.
“닛산과 도시바, 일본 제철 같은 저희 일본을 대표하는 굵직한 대기업들이 놈들이 쳐놓은 덫에 걸려 상당한 곤욕을 치러야 했던 걸 사장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문제 해결을 위해 내각까지 나섰을 정도로 일본에서 큰 화제가 됐던 사건이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 골프를 자주 치러 다닐 정도로 친분이 깊은 구로다 닛산 자동차 사장이 옵션 손실로 인해 이사회로부터 사장 재선임을 받는데 큰 어려움을 겪는 걸 지켜봤기에 더욱 잘 알았다.
“쯧.”
이토 사장은 인상을 찌푸린 채 혀를 찼다.
“놈들이 뭘 노리고 이러는 것 같나?”
“그것까진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공매도 물량을 쏟아내는 걸로 볼 때 그냥 툭 찔러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작정하고 공격해 들어오는 거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공매도를 한 액수가 얼마나 되지?”
“어림짐작해서 천억 엔이 넘습니다.”
이토 사장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며칠 전에 600억엔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구보리 재무이사가 굳은 낯빛으로 말을 받았다.
“그 사이 막대한 물량을 사정없이 팔아치웠습니다.”
“으음.”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에 이토 사장이 침음성을 흘렸다.
그런 이토 사장을 보며 구보리 재무이사가 더욱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문제는 천억이 넘는 물량을 내다 팔고도 엘도라도 펀드의 기세가 전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한 걸로도 부족해서 더 팔거라는 건가?”
“오늘 장에서도 수십억 엔을 매도한 걸로 볼 때 한동안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엘도라도 펀드의 공매도 폭탄에 4월 중순까지만 해도 주당 1,250엔대를 유지하던 스미모토 상사 주가는 크게 내려 어느새 1,000엔 아래로 주저앉아 있었다.
천억 엔이 넘는 공매도가 쏟아졌으니 주가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토 사장은 오너가 아니라 전문 경영인이었기에 대주주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구로다 닛산 자동차 사장처럼 이토 역시 내년에 임기가 끝나더라도 다시 3연임을 해서 계속 회사를 이끌어 가려는 욕심이 있었기에 더욱 현재 주가 하락이 불편했다.
“계속된 하락에 처음에는 공매도 물량을 받아주던 투자자들도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에 불안감이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이토 사장이 이맛살을 찡그리며 구보리 재무이사를 봤다.
“그 말은 주가 하락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건가?”
시선을 받은 구보리 재무이사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엘도라도 펀드의 공매도가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상황에서 하단을 받쳐주던 저가 매수세가 사라진다면…….일시적으로 900엔이 깨질 수도 있습니다.”
말을 듣자마자 이토 사장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지금 900엔이라고 했나!”
이토 사장이 언성을 높이자 구보리 재무이사가 얼른 변명하듯 덧붙였다.
“다른 악재 없이 공매도로 인한 하락이니 매도세가 줄어든다면 금방 다시 하락을 멈추고 올라올 겁니다.”
하지만 이토 사장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은 채 닦달하듯 몰아붙였다.
“방금 자네가 엘도라도 펀드가 공매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만 상대의 자금력이 무한한 건 아니니 곧 매도를 그만둘 겁니다.”
구보리 재무이사가 안심하라며 달랬지만 이토 사장은 그를 매섭게 쳐다봤다.
“엘도라도 펀드가 가진 총알이 예상보다 많다면 어쩔 건가! 그리고 주식은 심리라는 걸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거야. 계속된 하락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손절에 나서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질 거야. 엘도라도 펀드가 공매도를 하면서 노리는 것도 바로 그런 패닉이 발생하길 원하는 거고 말이야!”
이토 사장이 신경질을 내며 버럭 소리쳤다.
개인 투자자들은 흔들리겠지만 지분 상당수를 가진 기관 투자자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잔뜩 경직되어 있는 이토 사장의 얼굴을 보자 차마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이토 사장이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지 구보리 재무이사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토 사장은 상체를 꼿꼿하게 세우며 물었다.
“당장 쓸 수 있는 잉여 현금이 얼마나 있지?”
그러자 바로 이토 사장의 의도를 알아차린 구보리 재무이사가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자사주를 사들여 주가 방어를 하시려는 겁니까.”
“주가가 이렇게 하락해 주주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회사에서 당연히 나서야 되지 않겠나.”
‘주주가 아니라 임기 연장을 위한 주가 부양이겠지.’
구보리 재무이사는 속으로 빈정거리는 말을 삼켰다.
하지만 이토 사장이 3연임에 성공하면 같은 계파인 그에게도 좋은 일인 데다가 매년 2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내는 흑자 기업인 스미모토 상사였기에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쓴다고 해도 큰 부담이 되진 않았다.
머릿속으로 얼른 계산기를 두드린 구보리 재무이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200억엔 정도는 바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러자 이토 사장이 눈썹을 찌푸렸다.
“상대는 천억 엔을 넘게 쓰고 있는데 고작 200억엔 가지고 간에 기별이나 가겠나. 500억 엔까지 늘려서 당장 자사주 매입을 시작하도록 해.”
구보리 재무이사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500억 엔이나 말씀이십니까?”
“그래. 그러면서 악의적인 공매도 세력의 공격에 맞서 주주들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고 공시를 낸다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과 함께 주주들의 지지도 같이 얻어 낼 수 있겠지.”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려 공매도 공격을 자신의 3연임을 굳히는 계기로 써먹으려는 이토 사장의 노림수에 구보리 재무이사가 내심 감탄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 뒤로 한참 더 이야기를 나눈 구보리 재무이사가 인사를 하고 나가자 이토 사장은 탁자 위에 놓인 원목 상자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흰 담배 연기를 내뱉은 이토 사장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필이면 중요한 시기에 정말 귀찮은 것들이 붙어 버렸군.”
그러다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이토 사장이 미간을 찡그렸다.
“설마 최근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는 구리 가격 때문에 공매도를 하는 건 아니겠지.”
천장을 바라보며 인상을 쓰던 이토 사장은 이내 머리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우리 회사가 구리 시장에서 포지션이 큰 건 사실이지만 가격이 조금 떨어졌다고 해봤자 영업 이익이 약간 줄어드는 것뿐인데. 겨우 그걸 가지고 이럴 리는 없지.”
이토 사장은 헛웃음을 지으며 순간 떠오른 가능성을 깔끔하게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