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b the Regressor by the Collar and Debut! RAW novel - Chapter (295)
회귀자 멱살 잡고 데뷔합니다-295화(295/296)
295.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3)
“그러니까 네 도움이 필요해.”
[제 도움이요?]“응.”
[…좋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흔쾌한 십삼이의 대답에, 하진이 차갑던 손을 주무르는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지금까지 동료로 영입한 사람들의 지나간 시간선을 전부 확인해 보고 싶어.”
[전부요? 그럼 너무 많을 텐데요.]“간략하게라도 좋아. 돌자는 분명 그 시간선들을 가지고 장난질을 칠 거야.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정도는 미리 알아두고 싶어.”
[네, 알겠습니다. 빠른 요약과 정확한 정보 전달은 시스템의 기본 소양이죠.] [(ゝω´・)b⌒☆]“그리고….”
하진이 잠시 말을 흐리며, 손가락으로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과 계산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걸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동료로 영입해 두고 싶어. 이 동료 시스템이 정확히 어떤 건지도 알고 싶고.”
[동료 시스템은 말 그대로 고정 회귀자님의 퀘스트 진행을 돕기 위한 시스템으로, 일시적으로 그들을 고정 회귀자님의 관리 아래로 영입할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내가 걔네의 시간선을 관리할 수 있다는 말이야?”
[음, 쉽게 말해 편법이죠. 인간인 강하진 님이 함부로 타인의 시간선에 간섭할 수는 없으니, ‘동료’ 시스템을 사용해 그들을 강하진 님의 시간 관리자 권한 아래로 슬쩍 들여놓는 겁니다.]“영입 기준은? 지금까지 멤버 중에 동료 영입 알림이 뜨지 않은 건 정시우, 이유건, 단하루, 이렇게 셋이잖아.”
단하루는 그렇다 쳐도, 정시우랑 이유건은 뜰 만도 하지 않나?
재차 묻는 하진의 말에, 십삼이가 차분히 대답했다.
[동료 영입에 필요한 두 가지 조건은 아래와 같습니다.]<1. 시간선의 변동 2. 관리자와의 교감>
[첫째. 시간선의 변동은 말 그대로, 강하진 님으로 인해 그의 시간선이 영향을 받았고 그로 인해 지나 시간선과 완전히 다른 흐름으로 이어질 경우입니다.] [서태현 님, 김원호 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두 번째는?”
[두 번째, 관리자와의 교감은 쉽게 말해 강하진 님이 그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느냐, 또는 받아들였느냐를 말합니다.] [퀘스트 진행의 첫 조력자로 선택한 지수호 님과, 음악적 동료로 인정한 이도하 님이 여기에 해당하죠.] [참고로 주은찬 님은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합니다. 시간선도 바뀌었고, 강하진 님도 주은찬 님을 진심으로 가깝게 여겼으니까요.]그러니까 자신과 지독하게 얽히고 싶어질 때 동료 영입 퀘스트가 뜨는 것 같다는 하진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었다.
상대가 나에게 지독하게 얽히고 싶어지는 게 아니라, 주로 본인이 상대에게 지독하게 얽혔을 때를 말하는 거였다니.
하진은 머릿속으로 동료 영입의 순간이 떴던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유건이랑 정시우는? 단하루야 그렇다 쳐도, 두 사람은 무한 회귀 때나 외양간 사건 때 충분히 뜰 만하지 않았나?”
[동료 영입 시스템은 철저히 강하진 님의 시간선과 무의식에 기반해 이루어지는 시스템입니다.] [두 분에 대해 동료 영입 시스템이 뜨지 않았다면, 그건 두 분이 저 두 조건 중 어떤 것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강하진 님이 무의식적으로 그들의 시간선에 간섭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든지, 혹은 서로의 시간선이 전혀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든지 하는 이유로요.]그 말에 하진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비록 위에 언급했던 두 사건으로 인해 두 사람과 이전보다 가까운 사이가 된 것은 맞으나, 그럼에도 여전히 멤버들 중 가장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을 꼽으라면 그 두 사람인 것도 사실이었다.
시우나 유건이나, 그 불우한 가정사에 대해서도 아직은 더 깊게 파고들 자신이 없다는 것 또한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결국 전부 내 문제였다는 소리네.’
작게 한숨을 내쉬던 하진이 곧 뭔가 생각났다는 듯 십삼이에게 물었다.
“아, 야. 그럼 그거는? 맨날 빨간 불 떠서 사람 불편하게 하는 그거. 서태현의 지금 기분이 되게 나쁨 어쩌고, 하는 그거. 그건 왜 맨날 서태현만 뜨냐? 어쩌다 한 번 이도하 뜨고?”
[간단합니다. 강하진 님이 그 동료의 감정을 신경 쓰니까 뜨는 거예요.]“내가?”
[강하진 님의 무의식 속에서 서태현 님을 섬세하고 예민한 기질이라고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서태현 님의 감정 상태는 바로바로 업데이트 되고, 반대로 상대적으로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주은찬 님의 상태는 알림이 뜨지 않는 거죠.] [동료 시스템의 이해, 참 쉽죠~? ☆~(ゝ。∂)]“…참 쉽죠,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러니까 그동안의 그 빨간불 지옥이 전부 스불재였다는 거 아냐.
정답을 알고 나니 전부 이해가 되는 그동안의 상황들에, 하진이 다시 한번 한숨을 깊게 내쉬며 소파 위로 길게 늘어졌다.
“이놈의 오지랖 진짜….”
[문의 사항은 여기서 끝이실까요?] [그럼 저는 이만 지나간 시간선 요약 정리본을 만들러….]“아냐, 아냐, 스톱. 야, 스톱! 하나 더 있어.”
[진짜 오자마자 업무 강도가…. -3- (무엇이든 말씀하세요!)]스르륵 사라지려던 십삼이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다시 반짝하며 등장했다.
이젠 딱히 말풍선이 바뀐 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십삼이에, 하진이 황당하다는 듯 웃으며 눈썹을 까닥였다.
“야, 너 이제 인간화 할 수 있는 거 다 알거든? 너 인간체로 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꿀밤 100대야.”
[아닌데요? 저 인간화 멈췄는데요? 다시 시간관리자 시스템으로 리셋 잘 했는데요?]“뻥치시네. 내가 본사 새끼한테 분명히 말했거든? 쓸 데가 있으니까 네 몸 그대로 놔두라고.”
[하, 진짜 강하진 님 싫어요. 이거 시간관리자 학대예요.]“근무태만으로 내가 먼저 신고하기 전에 일 똑바로 해라. 저게 소멸 될 뻔한 거 구해주니까, 아주.”
[-3-]“어쭈?”
끝까지 툴툴대는 십삼이의 배부른 행태에 하진이 기가 차다는 듯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자 빠르게 태세를 전환한 십삼이 온갖 반짝대는 효과를 다 뿌려대며 친절하게 메세지를 띄웠다.
[뭐요! 뭔데요! 뭐하려고요!]“이게 시스템창만 예쁘게 꾸미면 다 예쁜 말인 줄 알아….”
[얼른 말하세요. 이렇게 오래 여기 머물면 강하진 님한테도 안 좋단 말이예요. 부작용 면역 아직 못 받았잖아요.]투덜대면서도 은근히 제 걱정을 하는 십삼이를 보며, 하진이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 두 손을 모았다. 당장 내일 새벽에 일어나서 여행길에 올라야하는데 새벽부터 피를 토하다가 멤버들에게 걸리는 건 제 쪽에서도 사양이었다.
하진이 가만히 시선을 돌려, 자신이 예쁘게도 꾸며놓은 넓디 넓은 무의식의 공간을 돌아봤다.
무궁무진한 공간.
꿈이라는 걸 자각하지만 않는다면, 현실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실제감.
“여기 리모델링 좀 하자. 예쁘게.”
하진은 이 무한하고도 실체 없는 공간을, 제대로 이용해 볼 생각이었다.
* * *
“얘들아, 필요한 거 다 챙겼지? 뭐 빠트린 거 없지?”
카이로스의 첫 공식 휴가가 시작되는 첫날 새벽.
매니저 권욱이 차 트렁크에 짐을 싣는 것을 지켜보며, 지수호가 멤버들에게 물었다.
여러 상황상 이른 새벽에 빠르게 출발하기로 한 터라, 몇몇 멤버들은 아직 제대로 눈도 못 뜬 채로 서로에게 기대고 있는 게 보였다.
땅에 박힌 것처럼 꼿꼿하게 서서 졸고 있는 도하의 어깨에 고개를 박고 있던 유건이 휘청거리며 넘어지려던 순간, 뒤에서 불쑥 나온 손이 타이밍 좋게 유건을 잡았다.
권욱과 함께 짐을 싣던 하진이었다. 그는 유건을 깨워 차에 타라고 보낸 뒤, 뒤로 돌아 지수호를 보며 답했다.
“어디 해외 이민 가는 것도 아니고. 없으면 가서 사죠, 뭐.”
“어이구? 정산 받았다고 이제 돈 좀 있다 이거야?”
“아뇨, 은석이 형님이 카드 주셨는데요.”
하진이 휴대폰 뒤에서 카드 하나를 뽑아, 간지나게 손가락 사이에 끼우며 눈썹을 까닥댔다.
“어제 은찬이 데리러 왔을 때 주던데요? 여행 경비로 쓰라고. 덕분에 알차게 놀고 먹을 예정입니다.”
“넌 참…. 이런 거에 주저함이 없어, 보면.”
“원래 어른이 주는 거 거절하는 거 아니랬어요.”
능청맞은 하진의 대답에도 수호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요즘의 하진은 확실히 집 앞 편의점에서 처음 대화를 나눴던 그 때에 비하면 훨씬 가시가 빠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험상 하진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경계를 해야 하는 상황일수록 더욱 스스로를 무방비하게 둔다는 사실을 알기에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짐을 다 싣고 멤버들까지 차에 태운 권욱이 수호와 하진이 있는 쪽으로 다가와 상황을 보고 했다.
“본부장님, 짐 다 실었고요. 은찬이는 내일 형님 되시는 분이 직접 데려다 주신다고 하셨고, 태현이는 제가 애들 먼저 내려주고, 다시 서울 와서 픽업하기로 했습니다. 태현이까지 바래다주고 다시 회사 복귀하면 밤일 것 같네요.”
“아냐, 어차피 너도 휴가인데 뭐하러 다시 복귀를 해. 그냥 태현이까지만 챙겨주고, 차 가지고 바로 퇴근해. 혹시 무슨 일 생기면 그때 연락할게.”
“넵. 감사합니다.”
원래는 멤버 7명끼리 운전부터 장보기까지 모든 걸 끝낼 생각이었으나, 최근 인지도와 인기가 급떡상한 카이로스인 만큼 그럴 수는 없다는 것이 회사의 생각이었다.
결국 매니저인 권욱이 멤버들을 별장까지 태워다주고, 멤버들의 휴가가 끝나는 날 다시 별장으로 가서 멤버들을 태워오는 것이 회사와 멤버들 간의 최종 협의점이었다.
지수호가 영 불안하다는 얼굴로 하진을 쳐다봤다.
“진짜…. 너네 믿고 보내는 거다. 제발 이상한 사고 같은 거에 휘말리지 말고.”
“거기가 관리인에 경비까지 있는 은찬이네 사유지래요, 사유지. 사생들이 들어오고 싶어도 못 들어올걸요?”
너스레를 떨던 하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게 변한 것은, 권욱이 운전석으로 향하고 차 밖에 자신과 수호 둘만 남았을 때였다.
이번 생일 선물로 들어온 검은색과 초록색 배색의 트레이닝 셋업을 입고 바지 주머니에 편하게 손을 걸친 하진이 수호를 돌아보며 무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형.”
“…뭐야, 무섭게?”
“저 믿죠?”
그렇게 말하는 하진의 두 눈에는, 전과 같은 확신 대신 약간의 긴장과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처음 보는 그 눈빛에, 수호가 하진의 팔을 붙들었다.
“뭐야. 너 사람 불안하게 왜 이래?”
“빨리 말해요. 저 믿어요, 안 믿어요?”
“…믿어, 인마. 안 믿으면 이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니들끼리 여행을 보내겠어?”
하진은 그 대답을 듣고 나서야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더욱 불안해진 수호가 하진의 팔을 붙든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뭔데. 말을 해야 도와줄 거 아냐. 너….”
“몰라요, 저도.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감을 못 잡겠네.”
“…….”
“아무튼 무슨 일이 일어나긴 일어날 것 같거든요? 이번엔 전처럼 저만 알고, 저만 느끼고 이런 게 아닐수도 있어요.”
“…뭐?”
“무슨 일 생기면 바로바로 연락할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저 믿고 좀만 기다리고 버티시라고요.”
제 팔을 붙잡은 수호의 손을 가볍게 떼어낸 하진이, 마지못해 웃는 얼굴로 수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곤 아주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한참을 머뭇거리다 입을 뗐다.
“…그리고 운전 조심하시고요.”
“너 대체 자꾸 무슨 얘길 하는 거야, 진짜.”
“웬만하면 형이 직접 운전하지 말고, 남 시켜요. 택시 타든지. 아니, 그냥 회사에 있어요. 본부장이나 되는 사람이 뭘 귀찮게 자꾸 현장에 나오고 그래요?”
“야, 강하진…!”
“저 가요. 우리 3일 뒤에 봅시다.”
수호가 뭔가를 되묻기도 전에, 하진은 이미 길다란 다리를 이용해 빠르게 차에 올라탔다.
곧이어 출발하는 차 창문 너머로 멤버들이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것을 멍청하게 지켜보면서도, 수호는 차마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왜….”
왜 애들 빛이 검은색이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색깔에, 수호가 있는 힘껏 주먹을 움켜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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