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b the Regressor by the Collar and Debut! RAW novel - Chapter (296)
회귀자 멱살 잡고 데뷔합니다-296화(296/296)
296. 행복의 필요충분조건 (4)
“바다다―!”
“하루야, 천천히 가.”
“그냥 놔두세요. 저러다 엎어져서 눈물 좀 나봐야 정신 차려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미친 듯이 바다를 향해 돌진하는 단하루를 말리려던 정시우는, 세상 다 산 할아버지처럼 말하며 기지개를 켜는 이유건의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하루를 뒤쫓으려던 발걸음은 늦췄는데, 그건 시우가 유건의 출중한 육아 경험을 나름 신뢰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들어가자. 관리인 분한테 전화 왔는데 아직 별장 정리가 덜 끝났다네.”
“형도 그냥 저희랑 같이 놀다 가시지. 안 피곤하시겠어요?”
“우리가 같이 있으면 그게 노는 거냐? 일하는 거지.”
“새벽부터 운전하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잠깐 쉬세요. 애들 저희가 볼게요.”
“그래, 그럼. 나 잠깐 눈 좀 붙이고 있을게. 이따 태현이도 데리러 가야 해서….”
매니저인 권욱은 하품을 하며 다시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우는 이젠 조금 ‘믿을 만한 사람’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권욱이 편히 쉴 수 있도록, 조수석에 넣어뒀던 본인의 목베개를 빌려주기까지 했다.
그사이 알아서 엎어지도록 놔두라던 유건은 하루를 따라잡아,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천천히 그 뒤를 따라 걷고 있었다.
‘저건 아마…. 뼈에 새겨진 육아 본능 같은 걸까?’
적당히 따뜻한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이도하가 오늘도 순수한 학구열을 불태웠다.
아무도 유건에게 저런 보호자 역할을 일임한 적이 없는데도, 언제나 이런 일에서는 유건이 자연스럽게 동생들을 챙기는 그 행동 원리가 궁금했달까.
3월의 바다는 그다지 포근한 편은 아니었다.
오전의 햇빛에 모래밭은 데워져 있었지만, 도하의 콧등에 이는 바람은 여전히 쌀쌀 맞았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며 몸을 아끼던 버릇이 남아 있던 도하가 본능적으로 마스크를 올려 썼다. 옆에서는 시우가 선크림을 찾아 얼굴이며 손에 꼼꼼하게 바르는 모습이 보였다.
‘평화롭네.’
살면서 바다를 이렇게 여유롭게 구경한 일이 많지 않기도 했지만, 남해 쪽은 더더군다나 내려와 본 일이 없었다. 살면서 처음 와본 남쪽의 해변은 생각보다도 조용하고, 깨끗하고, 한적하고, 사람이 없었다.
“와악! 유건이 형! 도망가요!”
“이럴 줄 알았다, 내가….”
“아! 신발 하나밖에 안 가져왔는데!”
갑자기 커다란 파도가 밀려 들어왔는지, 젖은 모래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대던 하루와 유건이 바닷물을 피해 시끄럽게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선크림을 꼼꼼하게도 바르던 시우는 정작 선크림을 다 바른 후에는 그늘이 진 파라솔 아래에 앉아 숙소에서 가져온 책을 읽고 있었다. ‘저럴 거면 선크림은 왜 그렇게 열심히 바른 걸까?’ 싶었지만, 시우라면 왠지 납득이 가는 것도 같아 도하는 혼자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다 문득, 아직까지 제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한 사람에 대해 떠올렸다.
“……?”
하진이는 어디 갔지?
제 유일한 동갑 친구의 존재를 떠올린 도하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끔 행사 내려갈 때 휴게소 같은 곳에 들렀다가 멤버 수 잘못 세서 한 명을 놓고 출발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으니까.
“……아.”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서 제 친구를 발견한 도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진이라면 휴게소에 휴대폰 없이 낙오가 되어도,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히치하이킹이라도 시도해 숙소까지 돌아올 것 같긴 했지만….
그런 생각과 무관하게, 하진은 얼마 전 구매한 캠코더를 들고 하루와 유건이 있는 곳을 찍고 있었다. 하진은 일부를 제외한 첫 정산금을 전부 예금과 적금으로 묶어두었는데, 저 캠코더가 그 얼마 안 되는 ‘일부’에 해당하는 지출이었다.
더 좋은 카메라를 살 수도 있었는데 왜 하필 핸디캠이냐는 도하의 질문에, 하진은 그저 웃으며 답했다.
-그냥. 초심 좀 되찾아볼까 해서. …이게 내 첫 카메라거든.
어딘가 묘하게 핀트가 맞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도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진은 언제나 그렇게 한 번씩 영문 모를 소리들을 하곤 했으니까.
‘남들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되물었을 텐데.’
이도하는 자신이 하진에게는 특별히 무르게 군다는 것을 스스로도 인정했다.
언제나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던 도하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들도, 하진이 하면 대체로 인정이 됐다.
딱히 하진을 특별 취급 하는 것은 아니고, 굳이 정의를 하자면 그건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믿음이었다. 모두가 춤 구멍으로 여기던 자신에게, 무려 댄스 브레이크를 턱턱 맡길 때부터 시작되었던 신뢰.
도하는 하진을 만난 이후로 단 한 번도 그의 행보를 명확히 이해한 적이 없었지만, 그가 만들어낸 결과는 언제나 만족스러웠으니까.
“이도.”
“……?”
생각에 잠긴 사이, 저 멀리서 영상을 찍고 있던 하진이 어느새 성큼 곁에 다가와 있었다. 해를 등지고 섰는지 눈이 부셔서 하진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호쾌한 목소리만큼은 선명하게 들려왔다.
“잠깐 둘이서 얘기 좀 할래?”
“…….”
“…너한테 부탁할 게 있어.”
“뭔데?”
어렵지 않게 되물은 질문에, 하진은 어렵다는 듯 입을 다물며 답지 않게 머뭇거렸다.
“좀 이상한 얘기야. 듣고 나서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할 만큼.”
하진이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망설이며 얘기했던 적이 있던가?
하진을 알게 된 지 이제 고작 1년이 되어가는 시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하진은 굉장히 낯선 모습이기는 했다.
도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답을 내렸다.
“꼭 해야 하는 일이야?”
“…응.”
“불법적인 일인가?”
“아니.”
“그래, 그럼.”
“…….”
“말해. 들어줄게.”
어차피 자신은 한 번도 하진의 선택을 이해한 적이 없었다.
그저 그가 만들어 낼 결과를 믿었을 뿐.
명쾌하게 고개를 끄덕인 도하에게서는 그 어떤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 * *
단하루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를 만큼 열심히 놀았는지, 눈을 뜨자마자 온몸이 물에 잠겼다 꺼내진 것처럼 무겁고 축축 늘어졌다.
‘언제 잠들었지…?’
그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바닷가에 신이 나서 열심히 뛰어다니고, 유건과 함께 모래사장에 손으로 글씨도 쓰고, 종래에는 양말과 신발을 다 벗어두고 바닷물에 발목을 적셨던 것도 같았다.
그리고 또….
이 예쁜 풍경을 데스티한테 보여주겠다고 라이브를 틀려다가, 혹시라도 사생들이 위치를 보고 찾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결국 라이브 방송은 못 켜고 사진만 줄창 찍었다.
데스티 대신 아직 일정을 보내고 있을 은찬과 태현에게 각각 영상 통화를 걸어서 빨리 오라고 재촉도 한번 해주고, 형들이랑 근처 마트에서 장도 보고,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랑 어묵도 2만원어치나 사먹고….
‘뭘 되게 많이 했넹.’
알차게 휴일을 보낸 뒤, 은찬의 별장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깜박 잠이 든 모양이었다.
느리게 눈을 깜박이자, 손 아래로 푹신푹신한 소파의 쿠션감이 느껴졌다. 아마 잠든 저를 형들이 별장 안으로 옮겨준 것 같았다.
‘형이 있다는 건 편한 거구나.’
형에게 구박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전세계의 수많은 남자 형제들에게 질타를 받을 만한 생각을 할 때쯤, 누군가 인기척을 내며 다가왔다.
“하루, 깼어?”
양손에 하얀색 머그컵 두 잔을 든 하진이었다.
“형….”
“응. 이것 좀 마셔. 목마르지.”
“네. 다른 형들은요?”
“…자. 다들 피곤했나 봐.”
그렇게 말하는 하진의 두 눈동자에도 피곤함이 가득 드리워 있어서, 하루는 약간의 걱정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별장의 모습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 탁 트인 창과 그 밖으로 보이는 해안가가 지독하게도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멋있어요.”
“응. 멋있지. 너 온다고 형이 특별히 신경 좀 썼어.”
특유의 그 거들먹거리는 하진의 말투에 하루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컵에 담긴 따뜻한 티를 한 모금 입에 문 하루가 몸을 일으켜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노을이 지는 해변의 모습이 이렇게나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하루야.”
“넹?”
“너 할머니 계신 곳도 여기 근처라고 하지 않았어? 전에.”
“아. 으음, 네. 근데 차로 한 시간은 더 가야 나와요. 저희 할머니 집도 진짜 좋은데. 덕구 보고 싶다. 덕구도 귀여워요.”
하루가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을 떠올리며, 눈빛 가득 그리움과 따스함을 품었다. 테이블 위로 컵을 내려놓은 하진 역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천천히 일어나 하루와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표정을 알 수 없는 하진이, 여전히 다정한 말투로 하루에게 물었다.
꼭 그 언젠가, 미로의 복도에서 하루가 낯가릴 새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줄줄 불게 만들었던 그 때처럼.
“할머니가 강아지 키우신다고 했나?”
“네에. 진돗개요. 진짜 귀엽고, 진짜 커요.”
“근데 원래 이름이 렉스였나? 그런 거 아니었어? 저번엔 그렇게 들었던 것 같은데.”
“렉스요? 어…. 아닌데. 덕구 맞아요.”
“그래? 그럼 내가 잘못 알았나. …할머니는 무슨 일 하셔? 지금은 쉬고 계신가?”
“그쵸. 예전엔 무슨 어린이집 같은 거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그런가?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컸는데, 별로 힘든 거 없이 자랐던 것 같아요.”
“그렇구나.”
파도가 부서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단하루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파도가…. 계속 똑같이 치고 있는 것 같은데?’
무언가 이상한 이질감이 느껴졌지만, 그걸 파고드는 것보다 하진의 목소리가 먼저였다.
“그런 설정인가 보구나, 이번 시간선에선.”
“…네?”
하루가 뒤를 돌았다. 그러자 여전히 제 앞에 버티고 선 하진과, 그 뒤로 보이는 또 하나의 통유리 창이 보였다.
그 유리창 밖으로도 절경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이라면 그곳에선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새하얀 눈송이가 마치 깃털처럼 퍼내리고 있었다.
3월의 눈이라는 그 기묘한 풍경을 배경으로, 하진이 천천히 하루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근데 하루야. 어린이집이 아니고 보육원 아니야?”
“……네?”
“할머니가 하시던 거. 어린이집 아니고, 보육원 아니었냐고. 네가 지냈던 곳.”
“…무섭게 왜 그래요, 형. 어우, 장난하지 마세요.”
“부모님은 어디 계셔? 뭐 하시는 분들인지 기억나?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는 분들이시길래, 애가 한국에서 모르는 형들이랑 아이돌 그룹 생활을 한다는데 전화 한 통을 안 하셔?”
“왜, 왜 그래요, 형. 진짜아…?”
“하루야. 다시 잘 봐봐.”
꿈? 꿈인가?
겁에 질린 단하루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차가운 유리창이 그를 막아섰다.
막다른 길목에 다다른 토끼를 붙잡은 앨리스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하진이 그런 하루의 어깨를 붙잡아 다시 몸을 돌려 창밖을 보도록 만들었다.
그러곤 소름 돋게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말했다.
“익숙한 바다잖아.”
“혀, 형. 왜 이러세요, 진짜. 저 무섭다니까요…?”
“네가 네 손으로 할머니 묻어드린 곳이잖아.”
하진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던 하루의 움직임이 일순간 멎었다.
하진은 그런 하루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의 어깨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울면서 할머니 보내드렸던 그 바다잖아, 여기.”
“…….”
“똑바로 보라고, 단하루.”
그 순간, 잠시 고개를 숙였던 단하루가 빠르게 뒤를 돌며 하진의 멱살을 낚아챘다.
하진은 순순히 하루에게 제 멱살을 내어주며, 온기 하나 없는 냉정한 눈동자로 하루의 시선을 마주보았다.
“야.”
하루의 입에서, 그간 들을 수 없었던 으르렁거리는 낮은 목소리와 다소 예의 없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하진과 마주한 두 눈동자에는 전에 있던 생기 대신 탁한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하진의 멱살을 꽉 쥔 두 손에서 느껴지는 떨림을 말릴 새도 없이, ‘하루’가 하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 미친 새끼야!”
그 거친 목소리에도 여전히 태연한 얼굴을 한 하진이, 이번엔 반대로 제 멱살을 잡고 있던 하루의 두 손을 가볍게 떼어낸 채 그를 제압하며 유리창으로 밀어붙였다.
거친 몸싸움과 기싸움이 팽팽하게 이어지며, 하진의 입에서도 분노에 찬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너야말로 지금까지 단하루 데리고 뭐한 거야, 이 개새끼야.”
드디어 잡았다, 이 선귀자 새끼.
이를 으득 가는 하진의 목소리에서는 더없는 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