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f a penny from the Golden Tiger RAW novel - Chapter 57
무림맹 (4)
그날 밤, 무림맹 접객당에서 마련해준 숙소에 있다가 생각을 정리할 겸 연못 주위에 마련된 길을 따라 걸었다.
‘용천회.’
그들과 싸울 시기가 가까워지는 만큼 앞으로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예상해야 했다.
저번 삶의 기억으로 용천회가 이 시기에 어떤 일을 벌였는지 떠올려봤으나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저번 삶에서 봤던 그들의 잔혹함과 비열함, 그로 인해 고통받은 많은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오로지 나에게만 향하는 화살이라면 막을 수 있겠으나 그것이 내 주변을 향하는 화살이라면 사전에 부러트려야 했다.
“무슨 고민을 그리 골똘히 하느냐.”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던 중,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오랜만이구나.”
나에게 말을 건 사람, 그는 금호장의 장주, 송우태였다.
“… 네, 장주님.”
금호장을 떠나고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우리는 다시 마주했다.
*
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산책로를 걸었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일 장거리에서 호위무사들이 따라왔다.
“이렇게 보는 것도 반년만이구나.”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네요.”
“강호에 나가서 활약이 대단하더구나. 도저히 내가 아는 삼현이가 아니었다.”
“…. 감사합니다.”
“너의 활약에 금호장의 사람들도 다들 기뻐하더구나. 특히 너와 청월각에서 같이 지냈던 애들이 말이다.”
“다들 잘 지냅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송우태는 금호장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줬다.
“강호행을 하면서 돈도 마음껏 썼더구나.”
금호장의 분타에서 빼 쓴 돈은 어마어마했다.
“필요한 일에 썼습니다.”
“잘 안다. 너의 활약을 들으면서 돈을 잘못 썼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
“네가 쓴 돈을 합쳐도 금호장에 타격을 일 푼도 주지도 않으니 됐다.”
금호장 분타에서 돈을 마음대로 쓰라고 했을 때, 송우태가 내 행적을 알려고 한 거라고 알고 있었다.
“형님들은 언제 오십니까?”
“일을 맡겨놨으니 그것만 처리하고 올 것이다.”
“그렇군요.”
“… 아직 둘째는 너에게 감정이 좋지 않다. 정화부인을 죽인 것이 너라고 생각하니까 둘째를 만나면 되도록 피하거라.”
“둘째 형님이 그러시는 건 이해합니다. 제가 밉겠지요.”
정화부인은 둘째 송이현의 친모이자 송이현이 제일 잘 따르던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아 자라는 바람에 그녀가 죽을 때, 나를 몇 번 죽이려고 달려들기도 했었다.
“장하구나. 그런 것도 이해하고.”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니, 보는 눈도 넓어지더군요.”
“그래, 그것이 강호행을 하는 이유다. 명심하거라.”
“… 감사합니다.”
그다지 길게 할 이야기는 없었다.
“금호장으로는 돌아오지 않을 거지?”
송우태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돌아갈 생각은 없습니다. 강호를 돌아다니며 제가 지낼 곳은 제가 마련하겠습니다.”
송우태는 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금호장이라면 천하제일을 다투는 장원이나 한 사람을 품기에는 작은 곳이구나.”
“….”
“내가 너에게 저지른 죄는 평생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아무리 사이가 멀어졌다고 하더라도 천륜을 끊을 사이는 아니지 않으냐.”
“그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한동안 산책로를 걸으며 대화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에 송우태가 바닥에 삐죽 튀어나온 잡초를 보며 말했다.
“네가 품은 고민이 무슨 고민인 줄 모르겠으나, 아비로서 한 가지 조언을 해줘도 되겠느냐?”
“예.”
“고민은 이 바닥에 난 잡초와도 같다.”
“….”
“뽑지 않으면 곡식들이 자랄 때, 해가 되지만, 일찍이 뽑아버리면 거름이 되는 것이지. 바닥에 잡초가 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으나 이것을 뽑아버릴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으냐.”
송우태의 말에 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니 고민이 무성해질 때까지 두지 말고 네가 뽑을 힘이 있다면 가차 없이 뽑거라.”
… 그래, 그 말이 맞았다.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그것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니 뽑을 수 있을 때, 뽑아야 했다.
*
무림맹 접객당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다음 날을 맞이했다.
“백의검룡 대협을 뵈러 왔습니다! 저는 주구에서 온 한부하라고 합니다!”
“저도 왔다고 고해주십시오!”
“저도요!”
“백의검룡 대협께서는 아직 기침하지 않으신 겁니까?”
이른 아침부터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내가 묵는 숙소 앞에는 많은 이들이 모여 있었다.
“… 이게 무슨.”
그때 접객부당주 황진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협 기침하셨습니까?”
“예.”
황진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지금 밖에서 대협을 뵙고 싶다고 찾아오신 분들이 많아서요.”
“저를요?”
“우선 그들은 돌려보낼 참입니다. 대협께서는 조금 더 쉬시고 내려오시지요.”
“그리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황진후는 나에게 포권을 올린 뒤에 방에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거짓말처럼 밖에서 떠들던 이들이 흩어졌고 문을 통해 누군가가 들어왔다.
접객당원인 줄 알았으나 다른 사람이었다.
‘天’
푸른 복장에 하얀 머리띠에 문양을 새긴 이는 제갈귀호가 이끄는 천인부의 대원이었다.
“총 군사께서 대협께 드리라는 서찰입니다.”
“고맙소.”
그는 다시 신형을 날려 사라졌고 난 서찰을 펼쳤다.
어제 얘기했던 맹주 구창룡과의 만남, 그것이 오늘 사시로 정해진 거였다.
*
하루를 보낸 뒤에 접객당의 숙소에서 쉬고 있자 사시에 맞춰 신형 하나가 창문을 통해 나타났다.
“나오시지요. 모시겠습니다.”
문이 아닌 창문으로 나타난 걸 보니 비밀스럽게 만나는 거구나.
그렇게 그를 따라간 곳은 맹주의 처소가 있는 ‘용호각’이 아닌 여러 진법이 있는 정원이었다.
“이곳부터는 혼자서 들어오시라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네,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를 데려다준 천인부는 신형을 날리며 사라졌고 난 정원으로 들어갔다.
이 정원 안에는 여러 진법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진법이 발동되지는 않았다.
“왔느냐.”
그곳에는 제갈귀호와 맹주 구창룡이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다. 우리도 이제 막 왔으니 이리 와서 앉거라.”
무림맹의 두 축을 보며 자리에 앉자 중압감이라는 밀려왔다.
제갈귀호는 나를 흐뭇하게 바라봤고 구창룡이 입을 열었다.
“너구나, 총 군사가 그리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아이가.”
저번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사람이라 그리운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오랜만입니다. 맹주.’
구창룡은 전쟁 때, 제일 앞장서서 정도 무림을 이끈 사람이었다.
다른 이들이 도망칠 때도 제일 먼저 적진에 들어가고 제일 마지막에 나왔던 사람, 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었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렇게 맹주님을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
맹주는 만나고 싶다고 누구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금호장의 장주도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바로 맹주였다.
“다 늙은 늙은이를 만난 게 무슨 영광이더냐. 난 이리 패기 넘치게 강호행을 하는 후기지수를 오랜만에 봐서 참으로 기쁘다.”
“그리 말해주시니 소생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강호행을 하면서 녹안도귀와 화령신조를 죽이고 흑해도문을 멸문시켰다고?”
“그렇습니다.”
“녹안도귀와 화령신조는 그렇다고 쳐도 흑해도문을 없애는 것이 가능할 줄이야···. 그 바닷길은 어떻게 통과했지?”
“흑해도문으로 통하는 부두가 있었습니다.”
“부두? 그 정보는 어디서 얻었느냐.”
“강호를 돌아다니다 보니 귀가 많이 좋아지더군요.”
흐뭇하게 보는 제갈귀호의 시선을 받으며 구창룡과 대화를 나눴고 여러 이야기를 나눴으나 중요한 요점은 크게 없었다.
주로 내가 강호행을 한 것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가서 이야기해볼까?”
“예, 알겠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정원의 뒤쪽에 있는 도원림으로 걸어갔다.
‘도원림이라.’
도원림은 갖은 술식들이 있는 곳이었다.
섣부르게 들어오면 길을 잃어 갇히는 곳이라 맹주의 허락이 없는 한 절대 들어와선 안 되는 비밀스러운 곳이었다.
“총 군사.”
“예, 맹주.”
우리가 도원림으로 들어오자 제갈귀호는 진법을 가동했다.
그리곤 구창룡이 나를 보며 말했다.
“내가 너의 경지를 살펴볼 수 있을까?”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는구나.
“예.”
*
스르르르륵.
말이 끝나자 구창룡의 따뜻한 내공이 송삼현의 몸을 휘감았다.
화경의 끝자락에 이른 인물.
그의 내공은 포근했고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그리고 내공이 걷히자 구창룡이 말했다.
“화경은 화경이나 환골탈태를 하지 않아 반쪽이구나.”
“그렇습니다.”
“어찌 환골탈태에 이르지 않았느냐? 내공량도 상당하고 환골탈태를 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터인데.”
“몸이 여물지 않아 약관이 지나면 할 생각이옵니다.”
“그래, 너에게도 생각이 있는 것이지. 깨달음이 깊으면 굳이 환골탈태를 하지 않아도 화경에 들 수 있으니까.”
구창룡은 송삼현에게 굳이 무언가를 가르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동수(同數)구나.’
같은 경지에 오른 자이기에 하수가 아니라 동수로 봐야 했다.
“너의 검은 금호장의 유운검법이냐?”
“예, 그리고 강호를 돌아다니며 얻은 여러 검법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스윽.
구창룡이 잠깐 거리를 벌리더니 송삼현을 보며 섰다.
“나와 검을 나눠보겠느냐?”
현재 천하 삼 대 고수이자 검으로는 필두를 다투는 구창룡의 검을 견식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예!”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저번 삶에서도 몇 번 비무를 했었지만, 열 번 중 송삼현이 이긴 적은 네 번 정도였다.
그러니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번 삶에서는 구창룡과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스르르르륵.
거리는 오 장.
구창룡의 주위에 스멀스멀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찌릿.
피부까지 찌를 만큼 강대한 기운.
내공량은 송삼현이 더 위에 있었으나 숱한 경험을 거친 내공의 밀도는 구창룡 쪽이 더욱 짙었다.
탓.
구창룡의 허리춤에서 검이 나오는 게 보였다.
구창룡이 구사하는 뇌우신검은 번개처럼 빠른 초식들이 주를 이뤘다.
‘빠르다.’
콰아아아앙!
검막을 둘러막았으나 뒤로 이 장 정도 밀렸다.
“허어, 이걸 막아?”
아무리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내공을 회수했다고 하더라도 상당한 위력이었다.
후기지수들 가운데 이것을 막을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을 만큼.
“이번에는 제 차례입니다.”
푸른 검강을 두르며 검을 휘둘렀다. 송삼현의 검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검사가 구창룡의 몸을 휘감았고 구창룡은 검사에 손을 대 더니 깜짝 놀랐다.
“이리 견고하고 얇은 검강이라니···.”
송삼현이 한 초식은 ‘운룡회천(雲龍廻天)’이었다.
생사가 달린 것도 아니고 비무라 오 할의 내공만 실려 있었다.
콰아아아앙!
검사들이 하늘로 솟구치며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고 구창룡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어린 나이에 이리 높은 경지에 오르다니! 너는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혹, 하늘에서 내려왔느냐?”
구창룡의 말에 송삼현은 포권을 올렸다.
“아닙니다. 맹주께서 이리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검을 나누는 것은 단 한 합이면 충분했다.
구창룡은 검을 검집에 넣고 송삼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참으로 탐나는 인재구나. 전력을 쏟아붓지 않았는데도 이러한 공격이라니···.”
그리고 송삼현의 앞에 선 구창룡의 입에서 나온 말에 제갈귀호는 놀랐다.
“천하 십 대, 너의 검은 천하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내가 인정하마.”
천하 삼 검으로 명성이 자자한 구창룡이 인정한 젊은 검수.
그 검수의 검이 천하 십 대의 반열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강호를 독보강호를 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하늘에 오를 자격을 갖췄다는 의미였으니까.
“어떠냐. 무림맹의 검이 되어 정도 무림을 위해 힘을 써주지 않겠느냐.”
송삼현의 검은 현 무림의 최고의 검객에게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