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60)
루이즈의 소망
현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루이즈의 질문은 그야말로 상상의 영역에 불과하던 것.
이러한 생각을 떠올려낸 것은 아마도 그녀가 다른 NPC들과는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영혼이 세계를 건너뛰는 방법…?”
“유저들은 캡슐이란 것으로 이쪽 세상에 들어온다고 들었다. 그러면 비슷한 방법으로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으음….”
현은 자신이 지닌 상상력을 동원해 봤다.
가정용 관리로봇이 보급된 지도 어연 30년.
어쩌면 루이즈의 상상은 단순히 망상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인류의 기술 수준으로 인간과 똑같은 존재를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생체 디바이스에 기계적 요소가 결합된 ‘인간 형태의 로봇’을 만들어 내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복잡하게 얽힌 데이터의 결합을 ‘영혼’이라 부를 수 있다면, 아스리안의 NPC를 현실로 옮기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뭐야, 재밌어 보이는 얘기 하고 있네.”
그때 갑자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둘은 살짝 입꼬리를 올린 아인의 미소를 마주할 수 있었다.
“헉!”
“아인…?”
현과 루이즈의 어깨가 들썩였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움찔거리게 되는 이유는 왜일까?
언제부터 듣고 있던 건지, 아인은 현의 옆쪽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루이즈를 빤히 바라보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흐응, 현실로 넘어오고 싶은 이유가 뭘까~?”
“그건….”
“게다가 현실로 오면 어디서 살려고?”
아인의 추궁에 식은땀을 흘리는 루이즈.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작게 달싹였고.
“이 몸은… 두 번째라도 상관없다….”
“…?”
현이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가운데, 루이즈의 말이 한 번 더 이어졌다.
“현, 그대가 허락한다면 첩으로….”
“이거 봐, 그럴 것 같았다니깐?!”
“아, 아니 방금 건 실수였다… 그래! 일단은 그대의 저택에 하녀로 받아줄 순 없겠는가?”
“첩… 하녀… 역할극도 아니고 현실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게다가….”
순간 그렇게 말하던 아인의 시선이 현에게 닿았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이윽고 아인이 질끈 눈을 감고 소리쳤다.
“나도 아직 그런 거 못 해봤단 말이야!”
‘음….’
아인과 루이즈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현은 식은땀이 흘렀다.
갈수록 대화의 방향이 어긋나고 있어.
이런 둘의 이야기에 휩쓸려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익히 경험한 현은, 기회를 봐서 슬쩍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소란이 끝나길 기다리는 편이 좋겠지.
‘현실이라니….“
현은 다시 한 번 루이즈의 부탁을 떠올렸다.
NPC의 영혼을 현실로 옮긴다는 것.
이론상으론 실현가능할지 몰라도, 현실적으론 너무나 막막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한 사건을 두고 혼자서 고민해 봤자 아무런 해답도 나오지 않으리라.
***
현도 비슷한 상상을 해본 적이 없진 않았다.
루이즈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경계의 도시.
도시의 상점이나 거리들엔 아스리안의 마도구들을 현대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것들이 가득했다.
그렇게 신기한 물건들을 보며 눈을 빛내는 루이즈를 볼 때마다 현의 마음 한 편엔 이러한 생각이 떠올랐었다.
한 번쯤 루이즈에게 진짜 현실을 구경시켜 줄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관에도 가보고, 쇼핑도 해 보고, 경계의 도시에 없는 군것질거리를 사 주는 것도 좋아할 것 같은데.
「NPC를 현실로 이동시키는 방법이 있나요?」
생각난 김에 현은 로버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허황된 이야기이긴 했지만, 이런 말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스리안의 개발진들밖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무슨 뜻이지요?」
약 5분 뒤에 답장이 왔다.
로버트 역시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역시,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는 없어서, 현은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NPC의 영혼을 꺼낸다니, 재미있는 발상이군요.」
상황을 파악한 로버트는 제법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듯했다.
「그 발상이 현실로 이루어지긴 힘들 겁니다. 아직은 2세대 인공지능과 동기화할 수 있는 로봇이 없으니까요. 기술적인 문제 외에도, 유일하게 아스리안에 접근 권한을 가진 회장님께서 번거로운 일을 맡아 줄 것 같지도 않고요.」
「그렇군요….」
「혹시 꼭 필요한 일인가요?」
「아뇨, 그냥 호기심이죠 뭐.」
로버트와의 대화는 그렇게 짧게 마무리되었다.
‘역시 어려운가 보네.’
현은 쓸데없는 생각을 관두기로 했다.
루이즈도 이후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그 화제는 머릿속에서 잊혀져갔다.
이후 평소처럼 사냥을 하고, 조화의 주신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가끔은 길드를 관리하는 일상.
이전처럼 급하게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천천히 걸어가도 뒤따라올 수 있는 유저는 없었으니, 현은 느긋하게 게임을 플레이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아스리안에도 무수한 사건들이 지나갔다.
전쟁이 발발한지 6년째.
유저의 입장에선 1년 만에 제국 황제의 선언이 세상에 퍼져나갔다.
제국은 원하던 대로 성왕국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었다.
기나긴 전쟁의 종식엔 NPC들뿐만 아니라 유저들까지 환호를 보냈다.
전쟁 퀘스트가 성장 효율이 좋다곤 하지만, 예전의 평화로운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다시 이용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컸다.
환상적인 여러 장소들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아스리안 플레이의 묘미였으니까.
-요즘 라티스 부활했다며?
-조화 퀘스트가 대단하긴 한가 봐. 고위 신도 되자마자 미친 듯이 레벨업 하는 거 보면.
-라티스 진짜 미친 듯… 레벨업 속도가 예전 아스라 시절 현보다 훨씬 빠름. 상식적으로 메이데이랑 계속해서 차이를 벌리는 게 가능하냐?
커뮤니티의 관심사는 언제나 그렇듯 최상위 랭커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라티스의 눈부신 활약은 요 몇 달간 유저들의 가장 큰 화젯거리였다.
물론 그 활약은 현이 조화의 주신관으로서 라티스에게 준 퀘스트 덕분이었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는 유저들은 아무도 없었다.
조화의 대신전에 주신관이란 직위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으니 유저들이 정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한 커뮤니티의 반응을 지켜볼 때마다 현은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곤 했다.
그 시간동안 현실에서도 아스리안 만큼이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SHA컴퍼니가 순식간에 세계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
그저 한 기업의 주식 상장이었을 뿐인데 세계 시장이 요동쳤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될 정도였다.
아스리안의 본질을 꿰뚫고 분석하던 현의 그 감각은 게임 한정이 아니었던 것인지, SHA컴퍼니의 성장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다.
최적의 답을 찾아내는 능력과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무력을 함께 갖추고 있었으니, 길드의 앞길은 보장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현은 VIP제도를 적극 활용했다.
기존의 쉐이드 퀘스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포인트’를 얻을 방법을 마련한 것.
그렇게 VIP 4, 5단계를 달성한 충신들에게 길드의 요직을 제안하자 다양한 재능을 갖춘 유저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전투와는 전혀 관계없는, 아스리안의 게임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도 능력만 있다면 상위 단계의 VIP를 획득할 수 있는 구조였다.
그들이 받는 연봉은 같은 직종의 2~3배!
누군가는 현이 기회주의를 조장한다고, 아직 어려서 생각이 얕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주된 의견은 아니었다.
능력이 안 되면 가차 없이 쫓겨나는 자리이기도 했으니까.
게다가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기 시작한 SHA컴퍼니는 벌써 몇몇 언론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으니 쓸데없는 목소리를 잠잠하게 만들 수단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건들로 하루하루가 지나가던 어느 날.
“응?”
VIP 5단계만 이용할 수 있다는 쉐이드 길드의 레전더리 상점.
“어디 갔지?”
진열대의 목록을 살펴보던 아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갱신될 때마다 구입하던 그 물건의 재고가 다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없어.”
“뭐가?”
“식사권… 누가 산걸까?”
VIP제도의 상한선이 여유로워지자 순식간에 가장 높은 포인트를 기록한 것은 다름 아닌 아인이었다.
어차피 포인트를 쓸 데도 없는 아인은 갱신되는 날짜에 맞춰 상점에서 식사권을 구입하곤 했던 것이다.
매일 함께 밥을 먹는데 대체 식사권이 왜 필요한 건지, 현은 아직도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건 왜 만들어서….”
아인의 의도는 그저 현과 조금 특별한 날을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식사권은 제3자가 현에게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와도 같았다.
대외적인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현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식사권을 구입하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어떤 소문에 의하면 그 식사권은 어딘가에서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고도 한다.
“이번에도 김갑철 회장님 아니야? 너 지난번에도 한 발 늦었잖아.”
“그런가…? 미안, 현을 귀찮게 해 버려서….”
“아냐 됐어. 어차피 한 번쯤 만나야 했으니.”
띠링!
현의 귓가에 알람 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 순간이었다.
「현, 제 목소리 기억하시나요?」
‘응…?’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
잠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현의 눈동자가 커졌다.
「설마, 로버트씨 인가요?」
「맞습니다! 굉장히 오랜만이죠?」
개발진인 그가 무슨 일로 연락했을까?
추측을 이어가던 도중 다시 그의 말이 들려왔다.
「지난번 제게 부탁하신 거, 드디어 해결되었거든요.」
「부탁이요…? 어떤 부탁을…」
「물론 NPC를 현실로 옮기는 방법이죠.」
「아…!」
거의 1년이 지난 기억이 현의 머릿속에서 재차 솟아올랐다.
「회장님께서 식사 한번 괜찮은지 전하라 하셨는데. 언제 시간 가능하신가요?」
「네? 잠깐만요, 회장님이라면 설마…!」
「아스리안에 회장님이 또 있나요. 물론 권대호 회장님이죠.」
순간 현은 숨을 삼켰다.
권대호 박사. 아니, 권대호 회장은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위인이다.
예전엔 잘 몰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에 대해 더 알아갈수록 그의 대단함을 새삼 실감하는 현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요즘 아스리안에서 잘 나간다지만, 권대호 회장 앞에서는 아직 하룻강아지일 것이다.
아스리안의 창조자인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손짓 한 번에 현의 캐릭터를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왜 직접 자신을 만나기 위해 연락을 보냈다는 말인가?
「자, 잠깐만요! 저랑 식사를 하시겠다고요?」
「후후, 바쁘다고 거절하실 순 없을 겁니다. 회장님께선 식사권을 사용하셨거든요.」
‘…!’
너무 예상 밖의 일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어.
「거절이라니요. 전 언제든 괜찮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6시 가능하신가요?」
「물론이죠!」
현은 정신이 없는 가운데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끝났음에도 가슴의 두근거림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
***
“지금 나가게?”
오랜만의 외출.
아인은 언제나처럼 서현을 따라나섰다.
“벌써 다섯시니까. 조금 일찍 준비해야지.”
사전에 로버트에게 양해를 구한 서현은, 아인을 함께 데려와도 된다는 답을 받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혼자는 조금 부담스럽던 상황.
아인이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서현이었다.
당연히 권대호 회장의 앞에서 말실수는 하지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아인에게 절대 먼저 입을 열지 말라는 다짐을 받아 두었다.
“가자.”
“응!”
주차장 근처로 내려가니 자가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서현과 아인은 웬만해선 집에서 나가진 않지만, 밖을 돌아다녀야 할 때는 꼭 경호원을 대동하고 있었다.
예전에 벌인 사건들 때문에 화를 당하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게임 속 일로 무슨 원한이냐 싶겠지만, 아스리안은 이제 게임으로는 한정지을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하나의 세계.
가능성은 희박하다지만… 막말로 그 녀석들이 원한에 칼이라도 들고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여긴가?’
약 40분의 주행 끝에 도착한 서울의 외곽의 한 건물.
서현과 아인은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만났고, 이어서 도착한 로버트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별다를 거 없는 평범한 방에서 권대호를 마주할 수 있었다.
권대호가 사람좋은 웃음을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 어서 오게나. 기다리고 있었다네.”
“처음 뵙겠습니다.”
“소문은 많이 들었네. 최근에 자네에 관한 뉴스들로 세상이 떠들썩하더군.”
“하하… 별 거 없죠.”
권대호의 표정은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뉴스에서 보았을 때의 딱딱한 분위기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앉게나, 차라도 한 잔 하겠나?”
“아, 감사합니다.”
“난 주스로. 웃…!”
갑작스런 아인의 중얼거림.
서현은 아인의 손을 꽉 쥐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동행을 허락하는 대신 쓸데없는 말을 꺼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벌써 까먹은 모양이었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하며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을 상기했다.
권대호 회장은 루이즈를 현실로 옮길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지.
과연 어떤 방법일지, 서현이 나름대로 추측해 보던 때.
“차 두 잔과 오랜지 주스입니다.”
“고맙네 리체.”
비서로 보이는 리체라는 이름의 여자가 테이블에 찻잔 세 개를 올렸다.
서현이 위화감을 느낀 것은 그 순간이었다.
‘음…?’
찻잔을 놓는 여자의 손놀림이 너무도 깔끔했다.
손끝의 움직임에 군더더기 하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굉장히 뜨거워 보이는 찻잔의 아랫부분을 맨손으로 잡고 있었다.
이어서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서현은 문득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치 금속 재질의 보석처럼.
‘잠깐, 설마….’
하나의 예감이 서현의 뇌리를 스쳤다.
내가 지금 생각한 게 맞나? 정말로…?
그의 표정변화를 눈치챈 권대호가 옅은 웃음을 지으며 차를 홀짝였다.
“발견한 모양이군.”
“…!”
“뭐, 비밀도 아니니까. 자네가 느낀 점을 그대로 말해 보게나.”
서현은 권대호와 리체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안드로이드 인가요?”
“으음, 그건 아니야… 안드로이드는 인간과 완전히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어야만 하지. 리체는 금속과 유기물의 혼합이니 ‘사이보그’라고 말해야겠지.”
‘사이보그!’
“후후후, 어때, 세상에 공개되면 아마 난리가 나겠지?”
“예… 분명히.”
서현은 안드로이드와 사이보그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 잘 모른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눈앞의 여자가 진짜 인간이 아니라는 점.
이쯤에서 서현은 루이즈의 영혼을 어떻게 옮기는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권대호 회장의 방법은 아마도 예전에 자신이 떠올렸던 것과 비슷한 것!
하지만 벌써 이만한 퀄리티의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서현은 놀라운 한편 절로 권대호의 능력이 존경스러워졌다.
바로 그 때, 권대호의 말이 이어졌다.
“아쉽게도 자네가 생각하는 2세대는 아니야. 리체는 1.5세대의 인공지능이라네.”
“1.5세대요?”
“그렇다네. 2세대 인공지능을 담을 수 있는 사이보그를 만드는 건 현대기술로도 불가능한 일이니까.”
“아….”
서현은 얕은 탄식을 흘렸다.
권대호의 말은 결국 루이즈를 세상 밖으로 데려올 수 없다는 뜻이었기에.
“지금 기술로는 불가능하지만….”
“…?”
“몇 년 뒤의 미래에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 관련 연구는 거의 다 끝나 가는 상황이거든.”
“아, 그러면…!”
“허나.”
잠시 쉬고.
서현의 시선을 슬쩍 살피던 권대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자네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지. 2세대 인공지능 하나를 구성하기 위해선 최신형 양자컴퓨터가 3대쯤 필요한데, 본체를 만드는 건 그보다 더 어렵거든. 아마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모될 거야.”
“…?”
서현은 살짝 눈을 가늘였다.
자꾸만 말을 바꾸는 상대의 의도를 좀처럼 종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는 도중.
흐흣, 권대호가 작은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재미있었나?”
“네…?”
“농담이었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만 할 거면 자네를 부를 필요도 없었지.”
“아, 네….”
서현은 애써 혼란을 잠재웠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던가?
권대호는 첫 만남부터 강렬한 괴짜라는 인상을 남겨 주었다.
***
권대호는 서현과 아인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가 예약한 레스토랑은 서현도 알고 있는 곳이었다.
식사를 하는 내내 권대호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중얼거리며 혼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인은 음식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 그의 말에 맞장구치는 것은 오로지 서현의 몫이었다.
“그래서 직접 인공지능을 써 보니까 웬만한 부하 직원들보다 일을 잘 하더란 말이지. 단가만 좀 더 저렴했다면 로버트랑 마리 이 녀석들을 당장 해고해 버리는 건데 말이야.”
“으음, 그러게요.”
서현은 다른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시답잖은 농담만 오갈 뿐 원하던 화제는 좀처럼 튀어나오지 않았다.
권대호는 계속해서 서현이 관심없는 잡다한 이야기를 꺼낼 뿐이었다.
“그래, 이 이야기를 안 했군. 자네 아스라 온라인의 유저였지.”
“맞습니다.”
“내가 왜 아스라 온라인이란 게임을 시뮬레이터의 베이스로 선택했는지 알고 있나?”
갑작스레 날아온 질문.
서현은 침착하게 답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나 칼럼 등에서 권대호와 관련된 정보들을 여러 번 읽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권대호가 아스라 온라인을 택한 이유는 아마도….
“게임으로 만드는 편이 사람들의 ‘접근성’을 늘리기 쉽기 때문이 지요.”
“음? 그런가?”
“회장님께서 직접 그리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아아… 맞아.”
권대호는 허공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서현은 약간의 자신감을 얻어 나머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무수한 게임들 중 ‘아스라 온라인’이 선택받았던 이유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가장 매력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이셨죠.”
“후후, 그렇지…. 그랬었지.”
순간, 서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방금 말은 권대호가 중대발표에서 직접 내뱉은 것인데, 왠지 본인은 그 말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럴 경우는 분명 두 경우 중 하나다.
늙어서 치매가 왔거나.
혹은 본인이 내뱉은 말을 스스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거나.
“그 말도 일리는 있어. 대중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그 편이 훨씬 쉽겠지.”
“…!”
서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고개를 주억거리는 권대호의 진중한 표정은 결코 치매가 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기에.
이어서 권대호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고.
“자네, 물리 잘 하나?”
“네? 일단은… 이공계이긴 합니다.”
“그럼 어느 정도 이해하겠군.”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선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하지. 세상엔 다음과 같은 네 종류의 힘이 존재하지. 약력, 강력, 중력, 전자기력.”
“…….”
“하지만 아스리안엔 거기에 ‘마력’이란 종류의 힘 더해져 다섯 개가 존재하지. 시뮬레이터의 목적을 위해선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게 유리한데 왜 쓸데없어 보이는 힘을 더했는지, 자네는 맞춰볼 수 있겠나?”
“으으음….”
서현은 머리를 짚고 깊게 고민했다.
벌써부터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이게 ‘기초’라고 말하니 어떻게든 이해한 기색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현실이 곧 비슷하게 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일세.”
“…?”
서현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연기하는 가운데, 권대호의 말이 좀 더 이어졌다.
그 내용은 이전의 것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주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죠.”
“거기서 문제가 발생한다네.”
권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마치 아주 중요한 비밀을 말할 것처럼.
“나는 공간밀도가 특정 값 이하로 떨어지면 소립자 내부의 상수값이 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네. 432년 뒤의 지구에 닥쳐올 일이지. 제 5의 힘이 출현하게 되며 기존의 물리법칙들이 전부 폐기될 거야.”
“…!”
“한 마디로, 지구가 완전히 다른 환경으로 변해버리는 거지. 나는 그 때가 인류의 가장 큰 위기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네.”
“그런…!”
권대호의 입에선 숨을 멈춘 듯 계속해서 새로운 말이 튀어나왔다.
“아스리안은 그 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시뮬레이터야. 지금 마력 공학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알고 있겠지?”
“네, 당연히 알죠!”
오랜만에 아는 내용이 나오자 서현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현실의 물건들을 아스리안으로 옮기는 사람들이잖아요.”
“맞아, 바꿔 말하면, 4차원의 것들을 5차원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는 연구자들이지.”
“….”
“나는 인류에게 재앙을 대비하기 위한 연습을 시켜주고 싶은 거야. 어느 날 갑자기 물리법칙이 변하더라도, 한 번 겪어본 일이니 좀 더 수월하게 대응하지 않겠나.”
“그렇죠.”
“내가 아스리안에 간섭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네. 개발자가 좌지우지하는 세상이었다면 이 많은 기업들이 투자하려 했을까? 당연이 아니겠지.”
후우, 권대호의 설명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개운한 표정을 지은 것은 한참 만이었다.
“뭐, 재난을 대비하는 건 이후 세대의 일이니, 지금의 자네들이 이런 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음….”
“오히려 안정화가 중요한 시기니까 평범하게 게임을 즐겨주는 편이 좋아. 그런 점에서 자네에겐 감사하고 있다네.”
“네…?”
“아스리안이 안정화되는데 최소 10년은 걸릴 거라고 예상했는데, 자네는 벌써 그 과정의 막바지에 도달해 있지 않은가.”
그리고 권대호가 본론을 꺼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재미있는 표현을 썼더군. 2세대 인공지능의 영혼을 현실로 옮기고 싶다고?”
“네…?”
“자네 부탁이라면 못 들어줄 것도 없지.”
“…!”
“다만. 자네가 세상을 완전히 안정화시킨다는 조건 하에.”
서현은 잠시 숨을 멈추었고, 권대호는 빙긋 웃었다.
“안정화라는 게…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건가요?”
“흐음, 게임 내적인 내용은 나보다 자네가 잘 알 것 같은데… 적어도 황제쯤은 넘어서야 하지 않겠나.”
서현과 권대호는 한동안 시선을 주고받았다.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권대호 회장은 유저인 자신이 이 세상을 지배하라고 말한다.
본인이 세상에 개입하는 것은 수많은 연구자나 기업들의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퀘스트.
목표는 아스리안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고 그 보상은… 아마도 2세대 인공지능의 현실화.
그래, 이런 이야기를 메시지나 전화로 하긴 힘들겠지.
서현은 어째서 그가 자신을 직접 불러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아참, 힌트 하나 줄까?”
“네…?”
“지금 막힌 퀘스트 하나 있지 않나?”
다 끝난 줄 알았던 권대호 회장의 입이 다시 열린 것은 식사가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혼돈의 마지막 조각을 찾는 방법 말일세.”
권대호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를 들은 현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인데 말이야. 황천, 영생계, 나머지 한 곳이 어디인지 아직도 눈치 못 챈 건가…?”
서현이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던 것.
권대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고.
“아스리안의 유저는 유전정보로 로그인을 하지. 그리고 아마, 마지막 조각은 자네의 아주 근처에 있다지?”
그는 현과 아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네들 둘이 만든 아이가 아스리안에 접속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네…?”
“으응?!”
순간 정적이 일었다.
식사에만 몰두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인마저 고개를 획 들 정도였다.
정적은 얼마 가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은 권대호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었네.”
“…?”
서현과 아인이 서로를 마주보는 가운데 권대호 회장은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둘은 마지막까지 그의 말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