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82
열일하는 과금 기사 181화
“돼.”
대기가 없는 공간에서 녀석이 듣지도 못할 말을 하며.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콰득.
라이프 배슬이 박살 나고 아이템이 인벤토리로 들어온다.
희귀급 악세사리, 악몽의 귀걸이다.
“아, 드랍 진짜 개똥망…….”
욕이 절로 나오지만 리벤지의 드랍률은 원래 이게 정상이다. 아무리 신화급이어도 무슨 레이드 보스도 아닌데 한두 마리 잡은 거 가지고 득템을 할 수는 없었다.
“하기야 엘리트급 정도로는 어렵긴 하지. 보스급 정도는 잡아 줘야…….”
들려오는 영언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하…… 싫은 녀석이 왔네. 너 말고 피빨이 녀석이 와 주면 안 될까?”
대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위성에서 당연하다는 듯 내 말에 대꾸하는 이는 온몸을 붕대로 감고 있다.
붕대 위로 드러나는 육감적인 굴곡이 그녀의 성별을 알려 줄 뿐 그 외의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
[섭섭하군. 둘이 만나고 싶어서 바쁘게 달려왔는데.]“그러니까 난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이잖아.”
태연하게 답하면서도 내심 짜증이 난다.
‘왜 하필 이놈이야…….’
신화급 몬스터라지만 신화급 일반 몬스터는 초월자라고 볼 수 없다. 신화적인 요소를 품고 있을 뿐 그에 합당한 역량이 없기 때문이다.
녀석들을 굳이 레벨로 표현하자면 19.5레벨의 괴물.
‘뭐, 그 위 단계만 가도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엘리트 몬스터에 들어가면 이제 초월자라 불러 줄 만하다. 궁극 마법을 다루는 리치나 검강을 다루는 데스나이트 등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도 턱걸이지.’
그렇다. 엘리트급이라고 해 봐야 턱걸이 초월자에 불과하다. 초월자는 초월자지만 그야말로 최하위의 격을 가진, 스스로 그 위치에 올랐다기보다 [외부의] 힘으로 만들어진 존재.
그리고 그런 면에서…….
“또 죽고 싶다 이거지?”
보스급 신화 몬스터부터가 진짜 초월자라 할 수 있었다.
[죽고 싶다…… 그래. 여의 기억이 날아간 건 역시 너 때문이었군! 그래! 그래서 내가 얼른 만나고 싶었지!]깔깔 웃는 미라의 붕대 사이사이에서 증기가 뿜어진다. 당연히 물리적인 수분이 아니라 수천수만 명의 영혼으로 이루어진 죽음의 연무!
“아, 정말…… 짜증 나는군. 히페리온! 알아서 싸워.”
[아, 요새 너무 많이 싸우는 거 아냐? 게다가 왜 맨날 상대가 초월자야. 나 좀 쉬자…….]히페리온의 답변에 어이가 없어서 검 손잡이를 잡고 탈탈 털었다.
“하루에 4시간밖에 안 싸우는데 뭔 헛소리야? 옛날에는 왜 안 싸우냐고 징징거리더니.”
“아, 빨리!”
[아, 이거 중독이야. 중독…… ]힘없는 답변과 함께 어둠의 거인이 몸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며 나는 정면의 붕대 괴물을 바라보았다.
리벤지에서 유일하게 정복되지 않은 천원에는 스페셜 보스 망령룡 레플리를 따르는 4명의 보스 몬스터가 존재한다.
그랜드 데스나이트, 샤인라이트.
아크 리치, 밝은 눈.
엘더 뱀파이어, 드라클리아.
그리고 언데드 파라오, 하트셉트.
흔히 4천왕이라 불리는 녀석들은 완전히 초월지경에 들어선 초월자들로 완숙한 20레벨, 아니 어쩌면 21레벨일지도 모를 강자들이다.
단 하나가 상대라도……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강자.
나는 사방에 깔리는 영기를 느끼곤 히페리온을 등에 찼다. 계수 증폭의 힘이 아쉽지만, 안타깝게도 언데드 파라오(Undead Pharaoh)는 무기보다 육신으로 상대해야 하는 적이다.
오오오오—!
[전군–! 전진! 산 자의 배를 찢고 내장을 발라내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반투명한 수만의 군세가 쏟아져 내린다. 근접 플레이어 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유령 군대!
쩌저적! 쾅!
돌진해 막아서는 유령의 군대를 어깨치기 한 방으로 와해시킨다.
그러나 언데드 파라오는 영체계 신화급 몬스터.
육체적 능력에 치중된 내 전투 방식에 썩 좋은 상대는 아니다.
‘엘더 뱀파이어가 좋은데.’
녀석의 능력인 혈류 제어와 정신 간섭은 내게 거의 먹히지 않아 초월자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만만한 상대다. 농담이 아니라 농락하다 죽이는 게 가능할 정도!
똑같은 초월자인데 이 정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게 우습지만, 원래 상성이라는 건 경지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펑! 펑! 쿠구궁!
언데드 파라오와 나와의 전투 양상은 단순했다. 나는 마치 포탄처럼 녀석을 향해 달려들고 녀석은 유령 군대를 일으켜 나를 막아서며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는 흐름.
나는 손을 뻗어 달려드는 영체를 잡아 찢었다. 간단하지만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다. 이 순간에도 언데드 파라오 녀석이 유령 군대를 쏟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화급 일반 몬스터는 드랍 아이템이라도 있지, 이 망할 유령 군대를 잡는 건 문자 그대로 시간 낭비다.
[하하하! 미련한 놈! 여의 앞에서 영원히 춤춰 보아라!]언데드 파라오가 나를 비웃으며 끝없이 저주와 군대를 쏟아 낸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묵묵히 받아 내며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우웅.
운기 한다. 온몸에 내공이 휘돌고 정해진 철학과 이치에 따라 현실을 초월했다.
파직.
신경을 따라 번개가 달린다.
화륵!
근육이 가열되며 낼 수 있는 힘, 속도 등 모든 출력이 폭발적으로 증폭된다. 생명체를 초월한 엄청난 힘이 육신에 깃들었다.
치이익–!
혈관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수천 도가 넘는 육신을 식히느라 비명을 지른다. 빙(氷) 속성을 넘어 수(水)까지 전투에 쓸 수 있게 된 것은 이미 옛날 옛적의 일이다.
‘오로지, 빠르게.’
생체력의 육신은 강력하지만 그래 봐야 너무나 단순해 간파당하기 쉽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식(式)이 존재한다.
강대한 육신을 더 잘 다루기 위한 기술이나 강대한 [개성]을 얻기 위한 특유의 진화.
그러나 그 어떤 진화도…… 나만큼 이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는 없으리라.
보법(步法).
무공도 결국에는 이능이고 개중에는 술법에 반쯤 걸친 녀석들이 종종 존재한다.
일곱 걸음으로 대상의 존재를 물질 세계에서 감추는 칠성둔보(七星遁步).
오직 걷는 것만으로 육체를 한순간 벼락으로 만드는 뇌신보(雷神步).
물리 법칙을 초월해 초인의 반사 신경에도 잡히지 않게 가속하는 이형환위(移形換位)의 보법들.
나는 그 모든 지식들을 조합하고, 덜어내고, 때로는 변형하며 나에게 맞는 무학을 만들어 냈다. 아직 완성형이라고는 할 수 없다. 너무나 많은 단점을 가진 무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기에는 명확한 장점이 있다.
궁극의.
속도.
대기만성(大器晩成).
아광(亞光).
쿵!
세상 모든 것이 압축된다. 찰나의 순간 나는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목적지에 도달해 있었다.
언데드 파라오가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은 팔을 멍하니 내려다본다. 녀석은 영체이지만 차원조차 만질 수 있는 육신을 통과시킬 수는 없다.
[미, 친. 말도 안…….]퍼엉!
붕대가 산산이 찢겨져 나간다. 나는 입을 벌렸다.
쿨럭.
죽은피가 주르륵 쏟아진다. 피는 땅에 닿기도 전에 피부를 통해 재흡수되었지만, 이미 죽은피에서 회수할 수 있는 생명력은 일부에 불과하다.
‘아, 피해는 어쩔 수가 없네.’
나는 기존의 무학을 수정해 있을 수 없는 수준으로 성능을 올려 두었다. 절대로 빼서는 안 되는 부분. 즉, 육신 자체를 영체화(靈體化) 구결을 생략해 가능한 일이었다.
‘영체화 물리 법칙을 간단히 뛰어넘게 만들어 주지만…… 약점도 너무 커진다.’
육신은 영혼의 성벽.
육신을 버리면 물리 법칙에서도 벗어나지만, 대신 간단한 주문. 마나 방벽에도 손쉽게 가로막히게 된다.
이제 약점은 사라지고 대신에 강대한 위력이 붙었지만, 당연히 패널티가 생겼다.
광속에 준하는 이 미친 속도를 오로지 육신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체중이…….’
눈을 감고 체중을 확인한다. 5킬로그램이나 줄어 있다. 그나마 인자를 만들어 낼 때처럼 쌩으로 근육과 뼈가 날아가진 않지만, 이걸 복구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식사가 필요하리다.
[이건, 정말 놀랍군.]그때 반갑지 않은 영언이 머리를 울린다. 고래를 돌리니 저 멀리에 서 있는 흑갑의 기사가 보인다.
그랜드 데스 나이트, 샤인라이트.
[아니, 하트셉트 이 병신년 벌써 죽었어? 그걸 못 버티다니 꺄하하하!]엘더 뱀파이어. 드라클리아.
“하. 제길.”
살기등등하게 다가오는 두 보스급 몬스터를 보며 한숨 쉰다.
‘이대로는…… 안 돼.’
결국 그런 결론이다. 초월지경에 이르러 경지에 도달했다 하더라도 천원의 몬스터를 학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천원의 몬스터들 역시 신화의 영역에 발 디딘 존재.
망령룡 레플리와 일대일을 해도 이길지 말지 확신이 안 서는 판에 그 아래 무수한 부하가 있으니 도저히 답이 없다.
그 탓에 10년 동안 망령룡 레플리는커녕 4천왕도 고작 7번을 잡았을 뿐이 아닌가?
“다음에…… 다음에 다시 보자.”
[어딜 도망–]팟!
귀환 스크롤을 찢어 빛의 성으로 되돌아온다.
“폐하.”
“화, 황제 폐하다.”
“세상에…….”
내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술렁거리지만 소란을 일으키거나 하지는 않는다. 내가 귀환 주문서를 쓰는 일은 꽤 자주 있는 편이고 날 발견한 제국민들이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고개를 숙여 예를 취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벤토리에서 몇 개의 음식을 꺼내 먹었다.
팟!
장비 변경으로 옷을 바꾸는 건 당연한 과정. 나는 어느 정도 사람 몰골로 돌아온 뒤 훈련장으로 향했다.
“충성!”
훈련장을 지키고 있던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훈련장으로 들어간다. 기가스 체험관에 달린 훈련장이었기에 규모와 시설이 현대의 그것에 버금가는 곳이다.
들어가 보니 훈련장 한가운데에서 헐떡이는 헤이즈와 에드워드의 모습이 보인다.
“하아…… 하아…… 내가 이겼지?”
“네? 뭔 소리예요? 머리로 가야 할 영양분이 가슴으로 간 거 아니에요?”
“뭐 인마? 요요 싸가지 없…… 어? 재연아!”
나를 발견한 헤이즈가 후다닥 달려와 안긴다. 육중한 중량감에 피식 웃는다.
“실력이 꽤 늘었네.”
“뭐, 내공 빨이지. 훈련도 그걸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고.”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헤이즈는 전혀 늙지 않았다. 아니, 늙지 않은 정도를 넘어 더 생생해 보일 정도.
그녀의 복부에 자리 잡은 대기와 그 안에 담긴 웅혼한 내력은 이러다 반로환동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의 활기를 그녀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때 훈련장 한쪽에 있던 플라워가 다가와 젖은 수건으로 내 몸을 닦아 주며 헤이즈를 향해 눈을 흘겼다.
“헤이즈, 밖입니다.”
“아이참. 플라워, 딱딱하다니까.”
플라워와 헤이즈가 웃으며 대화를 나눈다.
어색한 관계였던 둘은 많이 친해진 상태다. 하기야 10년 동안 계속 마주쳤는데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다녀오셨습니까! 폐하!”
“그래, 에드워드. 태극검이 꽤 늘었던데.”
“감사합니다! 날마다 정진하고 있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소리치는 에드워드는 10년 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훤칠한 키, 반짝이는 금발, 하얀 피부에는 잡티 하나 없고, 부드러운 이목구비는 장인이 깎아 만들기라도 한 듯 아름답다.
‘그야말로 그린 듯한 미남이로구만.’
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무력에 눈부신 미모, 황제의 제자라는 배경 덕에 녀석의 이름이 대륙 전체를 울리고 있다. 그의 누나인 하모니에 이끌려 [방송]에 나온 적도 많으니 녀석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여인이 한둘이 아니겠지.
“……체중이 줄어 드셨습니다.”
“아, 4천왕 녀석들하고 만나서.”
내 안색이 안 좋아졌다는 걸 파악한 플라워의 말에 여상하게 대꾸하자 에드워드가 주먹을 불끈 쥔다.
“저,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함께 싸우게 해 주십시오!”
“마음은 고맙지만 이대로 따라가면 죽는다.”
인류제국 세 손가락에 드는 강자라지만 에드워드의 전투력은 아직 모자라다. 엘더 스켈레톤 하나 감당하기 힘든 무력으로는 짐밖에 되지 않으리라.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태극혜검을 익힌다면 가능할까요?”
에드워드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는다.
“익히던 거나 잘 익혀. 태극혜검은 무슨.”
장삼봉이 만들었다는 태극검은 이제 와서는 원본이 의미 없을 정도로 수많은 방식으로 분화했다.
그중 에드워드에게 가르친 버전은 당연히 가장 단순하고 암기가 쉬운 종류.
‘태극삼검.’
식이 고작 3개밖에 안 되는 간략판인데 이조차도 아직 마스터하지 못한 녀석이 태극혜검은 무슨 태극혜검이란 말인가?
‘뭐 그래도 언젠가 신화에 오르긴 하겠지?’
스페셜 보스, 신화 클래스의 원형인 에드워드는 신화 확정 가챠.
언젠가 정말 신화급에 이르러 내 전투를 도와줄지도 모른다.
“폐하.”
그때 훈련장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 머리의 훤칠한 키를 가진 녀석은 그 덩치에 맞지 않는 어려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
스스로의 생각에 어이가 없어 웃었다.
왜냐하면, 그는 어려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어리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냥 어린 것도 아니라 엄청나게 어리다.
그렇다. 저 훤칠한 사내놈은.
10살짜리 꼬맹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