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the Sacheon Dang's Swordsmaster-Rank Young Lord RAW novel - Chapter (149)
< 149화
‘정천맹이라니!’
소득 없이 무당으로 되돌아가면서, 청윤이 생각했다. 당가 소가주의 야망이 대단하다고. 쇠락한 가문을 단숨에 일으켜 세운 것으로도 모자라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작정인 것 같았다. 사천 땅을 새로운 정도 세력의 집결지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옛 호북 무한의 무림맹을 본떠 새로운 단체를 결성할 것이라 했다. 마도의 하늘을 넓힌다― 는 뜻을 가진 마광천(産魔廣天)을 의식한 것인지 정천맹(正天盟)이라는 명칭을 언급했다. 나쁘지 않은 작명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말도 있지 않나. 무림맹이라는 이름을 고집할 필요는 없어보였다.
당연명의 생각대로 사천 땅에 정천맹이 생겨난다면 당가는 그 무엇과도 비할 바 없는 방벽을 얻게 될 것이다. 이전에 호북이 그랬던 것처럼, 정도 무림의 성지가 될 테니까. 그리고 당연명은 필요할 때만 힘이 모였던 호북 무림맹과 달리 정천맹에 집결된 정도 세력의 힘을 영속적으로 유지시킬 계획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정천맹이 단순히 정도 세력의 집합체가 아닌, 기반을 가지고 성장하며 독립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별개의 조직이 되어야 했다.
마광천이 준동하는 이때,
정천맹 결성에 대한 건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호북을 비롯한 정도 무림 곳곳에는 마광천의 세가 뻗쳐 있다. 그뿐 아니라 얼마 남지 않은 사파의 무리도 필사적으로 영역을 확보하려 여기저기서 난동을 부려대니, 정도 무림의 힘을 한데로 결집시킬 만한 고요한 땅은 사천뿐이었다.
그리고 구파가 육파가 된 이후 정도 세력을 대표하는 산속 대방파들은 당연명의 말처럼 자파의 안위를 우선시하긴 했지만, 각 방파가 힘을 모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마도의 세가 시시각각 커져가는 것은 분명 피부로 와 닿을 정도의 위협이었으니까.
다만 서로간의 입장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곤륜과 공동은 지리적 위치상 마광천보다 천마신교를 더욱 위협적으로 여겼고, 불안 요소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력을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사천의 흑사련도 건재할 때였고,
나머지 네 개 방파들끼리도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마광천이 자리 잡은 호북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무당은 당연히 호북에 정파의 힘을 모으기를 원했고, 섬서의 화산과 종남은 각자의 영역에서 마도 세력을 소탕하자는 입장이었다. 당대 화산과 종남의 장문은 어릴 적 후기지수였던 시절부터 서로 비교되며 자랐기에 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악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은 화산과 종남의 친선 비무 때마다 서로가 상대 사형제들의 뼈를 부러뜨리고 일부러 내상까지 입히곤 했었는데, 그때 당한 이들이 또 지금 각파의 장로가 되어있었던 것. 힘을 합친다는 발상 자체를 마뜩찮게 여겼다. 하남의 소림은 늘 그랬듯 무력을 행사하거나 인명을 살상하는 일에 소극적이었고,
육파끼리도 중지(衆智)를 모으지 못하는데, 남궁세가나 하북평가에 말을 꺼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정도 세력이 단결하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었는데, 드디어 마광천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유길준의 죽음과 흑사련의 멸망이 영향을 끼친 것이리라. 사천에 자리 잡고 있던 거대한 사도 세력의 존재는 정도뿐만 아니라 마도에게도 경계의 대상이었던 모양.
가장 다급한 것은 역시 마광천과 함께 호북에 위치한 무당이었다. 게다가 검존 송청은 제갈가 멸문 당시 마광천주 연중혁과 조우하기까지 했으니. 십여 년 전에도 연중혁은 천하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검왕 남궁장천과 무려 동수를 이룰 정도였으니까. 당시 연중혁의 나이가 이립(30세)이 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 되지 않는 성취였다. 심법의 효율이 어느 정도이기에 남궁장천이 수십 년 세월 동안 부지런히 쌓았을 내공량에 밀리지 않은 것일까. 또한 십여 년이 더 흐른 지금, 연중혁의 성취는 어디까지 닿아 있을까 그러한 염려 때문에 무당은 다시금 각파에 조력을 구하려 사람을 보낸 것이었다. 청윤은 당가에 보내진 것이고,
‘오히려 잘된 것일 지도!’
청윤은 걸음을 바삐 옮기며 생각했다. 육파와 별다른 관계가 없고, 흑사련을 무너뜨릴 정도의 저력을 보여준 당가가 나서서 정천맹 결성을 제의한다면 다른 방파들에서도 큰 반대는 없을 터였다. 특히 소가주인 당연명이 말하길, 먼저 마교를 칠 것이라 했다. 곤륜과 공동을 도와 먼저 연합의 형태로 정천맹을 결성하고, 그 후에 본격적으로 정도 세력의 힘을 결집시킬 것이라고 만약 마교를 멸하고 곤륜과 공동, 그리고 장차 무당까지 정천맹에 합세한다면 다른 방파에서도 손을 보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천에 모인 정도 세력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겠지만, 사마의 무리를 척결한다는 정도의 기치를 누구보다 뚜렷하게 행한 단체가 될 테니까.
그리고 이건 명분에 불과하다.
실리는 또 어떠한가 청윤은 당가를 오가는 길이 평탄했음을 자각했다. 그토록 융성했던 사도 방파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민초들은 더 이상 무림 세력의 횡포에 시달리지 않는 듯했고, 황실과 관의 위엄이 제대로 살아있음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당가는 흑사련을 무너뜨린 직후에 사천에 남아있는 사도 방파를 일거에 쓸어버렸다고 했다. 살아남아 도주한 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과연 그 말이 사실인 듯했다.
그렇다면, 이 드넓은 사천 땅에 제대로 된 방파나 무가는 당가를 제외하면 하나도 없다는 얘기였다. 지금도 다른 성(省)에서는 조막만한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정(正), 사(邪), 마가 피를 튀기
며 싸우고 있는데.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사천의 상황이 알려지면 너나할 것 없이 사천으로 진출하려 할 것이다. 당장 청윤 자신도 호북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무당의 속가 문파 몇을 사천으로 옮기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만약 정천맹이 제대로 사천에 자리를 잡게 되면 막대한 이권을 누리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일단 창설부터 당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것 같았으니까.
돌이켜보면 소득이 없는 건 아니었군
사천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다른 어떤 방파보다 빠르게 당가의 의중을 접했다. 물론 당연명이 앞으로의 일을 세세히 말해준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정천맹 결성에 대한 제안을 육파에 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다른 곳보다 정천맹의 지분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그게 곧 향후 무당파의 성세를 판가름하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사실 무당의 위세는 이제 예전 같지 않았다. 무당의 자랑이던 태청검수들이, 속가출신으로 흑사련에 투신한 태을묵검파 막인후에게 쓰러졌을 때부터였을까. 쇠락에 쇠락을 거듭해왔다. 호북 전역에 달하던 영향력은 마광천의 등장 이후 빛이 바랜지 오래였고, 오직 검존만이 마지막 남은 무당의 자존심이었다.
그래서일 것이다. 사숙인 검존 송청이 마광천주 연중혁을 앞에 두고 물러난 것은 본인이 쓰러지면 무당은 끝장난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겠지 청윤은 공연히 씁쓸함을 느꼈다. 문득 당연명 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도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정도는 무엇입니까?
많은 것을 반성하게 하는 말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붉어진다. 멀리 저물어가는 태양이 핏빛을 흘려대는 까닭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친다.
수백 년간 이어져온 구파 중 셋이 사라진 마당이다. 닥쳐온 난세에 또 몇 개가 더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걷고 또 걸으면서, 청윤은 부디 앞으로도 사문이 건재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결정을 했으면 움직여야 한다.
당연명은 정천맹 창설에 대한 건을 즉시 가주인 모친과 상의했다.
“뜻대로 하렴.”
언제나 그랬듯, 독봉 당지혜는 하나뿐인 아들을 전적으로 신임했다. 짧은 세월 동안 훌쩍 커버린 것 같아 아쉬울 때도 있었지만, 그만큼 듬직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그냥 약관이 되자마자 가주를 물려줘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였다.
“해서 맹주의 자리에는 어머니를 추대하고자 합니다.”
“아니”
드물게 당지혜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왔다.
“이 어미는 그런 자리에 앉을 생각은 없단다. 부담스럽기도 하고, 네 말대로라면 예전 무림맹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정파 무력의 집합체인데, 그걸 내가 어찌 통솔하겠니. 지금처럼 가문 내부를 다스리는 것만도 벅찬데.”
“어머니. 초대 맹주를 어디에서 맡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처음에 세운 기치와 확립된 기강이 쭉 이어질 테니까요. 저는 정천맹을 통해 정도 세력의 합일을 이뤄내고 본가와 여기 사천 땅을 견고하게 방비하고자 합니다.”
모든 것은 평범한 삶을 위해서였다. 검신이었던 자신과, 모친을 비롯한 소중한 이들. 안정을 약속한 가솔들까지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도록.
그래서 재고해 주십사 청하려는데.
“그럼, 연명이 네가 하면 되지 않겠니? 정천맹주 말이다.”
“…소자의 나이가 이제 열일곱입니다.”
당연명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스스로 맹주의 위에 오르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결집된 정도 세력을 통솔하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반발도 적지 않을 테고, 정천맹의 수월한 결성을 위해서는 당가주인 모친 당지혜가 맹주의 자리를 맡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러나 당지혜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이미 차고 넘치는 능력을 갖췄는데 그깟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니. 흑사련주와 마광천주를 떠올려보렴. 그들이 거대한 세력의 수장이 되었을 때 나이가 이립이 채 되지 않았을 때잖니..”
“…저는 약관도 되지 않았는데.”
“맥락이 그렇다는 거지. 게다가 흑사련주까지 쓰러뜨린 네가 이토록 젊으니, 정도 무림의 밝은 미래를 상징하는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욱이 어미를 비롯한 젊은 처자들에게는 시커멓거나 허옇게 센 수염투성이의 사내들보단 연명이 너 같은 절세미청년이 맹주를 맡는 것이 더 기꺼울 텐데. 세간에 이야깃거리도 될 테고.”
누구 아들인지 참 잘생겼단 말이야 그렇게 중얼거리는 당지혜의 표정에 장난기가 묻어나온다.
당연명은 장난스러움 속에 숨어있는 완고함을 포착하고는 할 말을 잃었다. 모친이 생각을 바꿀 일은 없어보였다. 화경에 이른 무인들은 대체로 고집스러운 면모를 보이곤 한다. 스스로의 생각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화경에 이른 강자들의 전유물― 강기(氣)란, 결국 현실에 구현될 정도로 무서운 집념의 결정체였으니 자기 확신이 필수적이다. 고수들 중에 괴팍한 성미를 지닌 이가 많은 것은 그래서였다.
“무엇보다 연명이 네가 구상한 것이니, 그 뜻을 펼치려면 역시 네가 직접 맹주가 되는 게 나을 테지..”
“…알겠습니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누가 그랬던가.
‘여기 있는데.’
당연명은 내심 중얼거리면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다른 방파나 세가에 초대 정천맹주의 자리를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새롭게 정도의 초석을 다져야 하는 까닭이다. 결국 모친의 말대로 자신이 맹주가 되는 수밖에 없다.
‘뭐, 수틀리면 검을 뽑으면 되겠지.’
방년 십칠 세가 된 검신의 마음가짐이었다.
< 149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