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disciple of the martial god RAW novel - Chapter 550
무신의 막내제자가 되었다 550화(550/551)
애초에 아무 생각 없이 용혈을 받은 건 아니었지만, 타온의 반응을 보니 상상 이상의 결과가 나온 모양이다.
나는 지구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판테온 사장과 있었던 일 말이다.
당시 완전히 맛이 간 내 몸뚱이를 사장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고쳐 줬는데, 그 과정에서 만 번까지는 아니지만 최소 수백 번이나 되는 벼락을 몸으로 맞았다.
겨우 수백 번 맞아 놓고 왜 만 번이라 거짓말을 한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때 내가 맞은 벼락이 통상적인 번개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변명거리를 댈 것이다.
실제로 그 과정에서 나는 몇 번이나 죽을 뻔했고, 지금 다시 하라고 해도 그때처럼 해낼 자신이 없었다.
여하간 난 그 과정에서 부서졌던 단전을 회복했고, 이후론 내력에 뇌기를 띠게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용혈을 받아들였던 이유라고 볼 수 있을 터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몸에 받아들인 기운의 소화를 쉽게 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것뿐이고…….
복용한 순간 느낄 격통에 관해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다.
즉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용혈을 흡수했단 건, 내 육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기혈이나 세맥의 성질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양반, 대체 내 몸에 뭔 짓을 한 거야?’
황당함과 고마움이 절반 정도 공존하는 심정으로 사장을 떠올리고 있자니, 타온이 말을 이었다.
“음. 이건 정말로 아쉬운데.”
“뭐가요?”
“네가 염화에 관련된 무술, 혹은 연단법을 익히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가령 뇌기와 관련된 기술을 익혔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지지 않았을까? 그 체질은 타고난 거야.”
“…….”
아마 타온은 오해를 하고 있는 듯했다.
만 번의 번개를 맞았다는 말을 믿지 않고, 단순히 뇌기에 대한 적성을 타고난 걸로 여기는 것 같달까.
실은 이게 당연한 반응이긴 하다.
천둥과 번개의 주인이 나 하나를 겨냥해서, 자연적인 낙뢰보다 훨씬 강한 전류를 직통으로 수백 번 꽂았다는 진실은 내가 봐도 비현실적이긴 했으니.
내 몸을 꼼꼼히 검사하던 타온이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대로라면 감각 정도만 익혀도 곧바로 용혈을 다룰 수 있겠는데.”
“어떻게 씁니까?”
“눈을 감고 머리… 그러니까 두뇌에 집중해 봐.”
“두뇌요?”
“응.”
“…….”
보통 기운을 다스릴 때 집중하는 부위란 단전, 혹은 심장일 때가 많으니 타온의 조언은 다소 특이한 편이었다.
그래도 우선은 시키는 대로 해 봤다.
눈을 감으니, 우선 유난히 우렁차게 울리는 심장 고동이 뚜렷하게 느껴졌고. 그 심장을 중심으로 뻗어져 나가는 박동 또한 평소보다 힘찼다.
나는 그런 다음에야 머리─ 즉 상단전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 순간 타온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육체 움직임의 시작점은 심장이다. 심장에서 뻗어져 나간 혈맥이 전신으로 번져서 힘을 운반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걸 어떻게 움직일지 그 공정을 구상하는 건 머리, 즉 두뇌야. 너도 잘 알겠지만,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보다 빠르게 판단하는 게 더욱 중요해. 물론 이 두 개가 조화롭게 맞물려야 비로소 강자라 부를 수 있게 되겠지만.”
“…….”
“황룡의 용혈을 마셨다면 네 두뇌는 이제 전보다 훨씬 기민해질 거야. 사고력 향상 덤이고… 물론 곧바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고 점진적으로? 나도 얼마나 걸릴지는 잘 모르겠다.”
타온의 말을 들으니 다소 어처구니가 없어질 수밖에 없었다.
두뇌의 기민함과 사고력 향상이라니…….
일반적으로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자질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수련처럼 후천적인 노력만으론 도무지 바꿀 수 없는 기질이다.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영감과 재치, 순발력 따위가 그렇다.
값비싼 영약을 물처럼 마시더라도 이렇다 할 효과는 볼 수 없는데, 그건 전생의 내가 가장 잘 안다.
가호를 받기 전엔 그럭저럭 값비싼 영약들을 많이 처먹어 봤으니까.
그런데 용혈을 마시면 그러한 기질마저 어느 정도 향상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것은 해석하기에 따라 둔재鈍才도 천재天才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과연 절세의 영약이라고 할 만했다.
나는 문득 떠오른 말을 중얼거려 보았다.
“…가능성이란 피血에 잠재되어 있다.”
“음. 델락의 말버릇 중 하나지.”
피식 웃은 듯한 타온이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 꺼낸 격언 중에선 가장 유명한 말이기도 하고, 나도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발언이기도 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이란 그야말로 피에 잠재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과거부터 용혈의 역할은 시련이었다.”
“시련 말입니까?”
“그래. 극복하고 이겨 내면 영광과 명예를 안겨 주고, 추락하고 고꾸라진 자에겐 반대로 모든 걸 빼앗아가지.”
잠깐 나를 보던 타온의 눈동자가 돌연 황금색으로 빛났다.
[꿇어라.]“……!”
과거 이렇게 대담했을 때처럼, 이 남자가 용언을 사용한 것이었다.
나는 기도가 막히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며 손가락을 움찔거렸으나, 이상하게 저번처럼 완전히 압도되거나 몸이 강제로 움직일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타온이 목소리를 낸 순간 그 숨결과 함께 빛으로 이뤄진 단어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어?”
“이제 보이겠지? 이게 바로 용언이야.”
“진짜로 언어였네요……. 설마 용언을 다루려면 또 문자를 익혀야 하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아. 애초에 언어로 분류되긴 하지만, 이것은 타고난 권능에 훨씬 가까운 힘이니까. 넌 그냥 감각만 익히면 돼.”
“휴우.”
내가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고대 요정어보다 훨씬 낫네요.”
[하.]쿠세트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티를 냈다.
* * *
나는 타온에게 짧게 용언에 관한 조언을 받은 후, 곧장 커럽티드가 머물고 있다는 헤로스의 숙소로 향했다.
다이달로스와 아락사드의 덩치를 고려하면 아예 헤로스 본부 바깥에 숙소를 지었거나 아예 바깥에 머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렇지는 않았다.
조금 외진 곳에 있기는 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쓰기엔 꽤 커다란 건물이 보였던 것.
나는 한눈에 이 건물이 이종족을 위한 숙소 건물이란 걸 깨달았다.
‘세상 참 변했네.’
이종족이 가장 많은 남부에서, 그들이 머물렀던 곳은 대체로 마구간을 연상케 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그 이상으로 이종족을 증오하고, 차별했던 헤로스 본부에 그들만을 위한 전용 숙소가 세워질 줄은 몰랐다.
[동감한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시대로군. 이종족과 숙소라니… 이것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였단 말인가……?]쿠세트는 나와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이놈의 말은 무시한 채 커럽티드가 있는 곳을 찾았다.
숙소는 웬만한 4~5층 건물만큼이나 높았지만, 층이 나뉜 구조는 아니었다. 이종족의 덩치를 고려하면 당연한 처사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부로 입장해서 넓디넓은 내부 구조를 둘러보니, 어쩐지 북부에 있었던 미르의 고향 마을에 들른 듯한 기분도 들었다.
난쟁이를 넘어서 소인小人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쿵쿵 걸어다니는 여러 이종족 사이를 헤집다가 커럽티드가 머무는 방을 찾았다.
문을 열고 입장하니 아락사드가 나를 반겼다.
“루안. 왔군.”
“누님 상태는 어때?”
“음. 네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단 크기가 좀 더 줄어들긴 했지만, 그것도 어느 기점에서 멈췄다.”
확실히 그랬다.
숲 위로 고개가 치솟아 있던 때에 비하면 많이 작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웬만한 말보다 몇 배는 컸다.
다이달로스가 말했다.
“본부장님은? 후배 혼자 온 걸 보니, 역시 도움을 주기엔 어렵다시던가?”
“그건 아니고. 그분은 도울 만큼 도와줬어. 이제 나한테 맡겨.”
나는 루쿠루쿠에 접근한 다음, 붉은 비늘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리고 눈을 감은 채 집중하니, 루쿠루쿠의 내부에 흐르는 피의 흐름이 또렷하게 느껴졌다.
‘이상한 기분이구만.’
꼭 내 외부 신경이 바깥까지 확산한 듯한 느낌이다.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육체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타온이 말한 ‘지배’가 어떤 느낌인지 감각적으로 이해가 되는 듯한 느낌이랄까. 손바닥으로 공력을 주입하여 상대 내부를 확인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행위다.
아무리 공력 운용의 수준이 높아도, 남의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게 하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여하튼 이 상태로 루쿠루쿠의 육체 내부를 관조하니 뭐가 문제인지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심장 박동이 이상할 만큼 빨랐던 것.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
확실하지는 않지만, 덩치가 큰 생물일수록 심장 박동이 느린 걸로 알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고래 같은 경우는 심장이 1분에 두세 번 정도만 뛰어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데엔 문제가 없고…….
반면 새나 쥐처럼 작은 생물의 경우엔 최대 분당 1,000회 이상 뛰는 경우가 있다던데.
지금 루쿠루쿠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덩치에 비하면 불안정할 만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결국 루쿠루쿠의 육체에 용혈이 흐르고 있다면 심장이 빠르게 뛸수록 그 피가 전신에 빠르게 퍼질 것이고…….
그러한 작용이 육체 변이로 이어졌을 수도 있단 뜻.
원래라면 타인이 심장 박동을 조절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지금의 나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는 뇌기가 더해진 공력을 운용하여 루쿠루쿠의 심장과 접촉했다.
[……!]직후, 루쿠루쿠의 몸이 요란하게 들썩거렸다. 나는 여전히 집중한 채 외쳤다.
“선배들! 막아!”
미리 준비하고 있던 다이달로스와 아락사드, 시리아가 즉시 루쿠루쿠의 몸을 못 움직이게끔 억눌렀다.
심장에 전류가 휘감길 때마다 루쿠루쿠의 몸이 간헐적으로 떨렸으나, 고통을 느낀다기보다 그저 육체 반응으로 보였다. 실제로 루쿠루쿠는 아직도 의식이 없었다.
다만 덩치가 덩치다 보니 단순한 육체 반응도 요란했다. 바닥이 덜컹거릴 정도로 펄떡거렸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종족 숙소라 그런지 건물 바닥은 튼튼했고, 기본적으로 소란스러운 곳이라 이 난리통에도 의아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그래도 늑장 부릴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필사적으로 루쿠루쿠의 심장을 조정하였다.
[긴 호흡, 코로 쉬고, 입으로 내뱉고, 육체는 최대한 편안한 상태로…….]일부러 내뱉은 목소리는 곧 단어로서 흘러나와 루쿠루쿠의 육체에 스며들었다.
용언을 발휘한 것이다.
이 순간 루쿠루쿠의 육체는 완벽히 내 통제하에 놓이게 됐는데, 평소의 누님이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다스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전능함을 다른 사람의 육체를 지배하며 느끼게 되니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나.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니, 불쾌감 정도는 억누르는 수밖에.
용언을 다스리는 게 정교해질수록 루쿠루쿠의 호흡은 안정되어 갔다.
심장 박동은 차분해졌고, 그에 따라 육체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는 단순히 덩치만 쪼그라드는 게 아니었다.
툭 튀어나온 주둥이가 점점 들어가고, 꼬리와 날카로운 발톱 또한 말려 들어갔다.
가장 놀라운 건 붉은 비늘마저 서서히 사라지며, 부드러운 살결이 보이기 시작했단 점이었다.
‘어라?’
사실 루쿠루쿠는 용과 흡사한 모습이 되기 전에도 비늘과 꼬리를 가졌었다.
사람보단 리자드맨에 가까운 모습이었까.
내가 의아해하는 사이, 심장 박동은 이제 완만한 수준까지 접어들었고…….
“…….”
루쿠루쿠가 있었던 곳엔 붉은 머리를 가진 인간 여자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 * *
치료가 끝난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인간의 모습이 된 루쿠루쿠도 여전히 의식이 불명이었기 때문에 얘기를 나눌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눈에 띄게 안색이 좋아졌고, 호흡도 안정됐으며, 고온도 내렸으니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릴 것 같기는 했다.
내가 머무는 방은 커럽티드가 머무는 이종족 숙소가 아닌 도시에 있는 여관이었는데, 소속 클랜을 떠나 종족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참고로 헤로스 숙소에 머물려고 했지만, 지금은 빈방이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도시 여관에 방을 잡게 됐다.
[이제 어쩔 거지?]습관처럼 침대 위에서 가부좌를 튼 채 운공을 하고 있자니 쿠세트가 말을 걸었다.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며 대꾸했다.
‘…할 거야 많지. 용혈도 좀 더 다스려 봐야 할 것 같고, 용언을 쓰는 감각도 익히고, 이걸 무공이랑 어떻게 접목할지도 고심해 보고…….’
이외에도 동면에 빠졌다는 란페로의 얼굴도 한번 보고 싶고, 커럽티드의 다른 클랜원이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게다가 내가 그리는 그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지금부터 발 바쁘게 대륙 전역을 싸돌아다녀야 한다. 확보해야 할 인재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잔존 교단, 에반 헬빈에 관한 일까지 추가됐다.
그 녀석은 지금 어떤 상태가 된 걸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득 문 바깥에서 기척을 느꼈다.
“…….”
대단히 희미한 기척이었지만, 자신을 감추려는 기색은 없었다. 그 모순된 느낌에 의아해하고 있자니 곧 노크 소리까지 들렸다.
“뉘쇼.”
그러자 문 너머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안 배드니커 님 되십니까?”
이상하게 웅웅 울리는 목소리라 나이나 종족은커녕 성별도 짐작이 안 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댁은?”
“당신을 뵙고 싶어 하는 분이 있습니다만, 따라오실 수 있습니까?”
“이 한밤중에? 예의도 없구만. 누군데.”
“교주님이십니다. 아니…….”
정체불명의 존재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에겐 에반 헬빈이라는 이름을 대는 편이 적절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