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grave’s Bastard Son was The Emperor RAW novel - Chapter 950
변경백 서자는 황제였다 950화(950/951)
제950화. 베릭이라는 놈
베릭의 고개가 서서히 올라감과 동시에 그 위로 그림자가 졌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입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오죽하면 다른 격투장에서도 잠시 싸움을 멈추고 베릭 쪽을 구경할 정도였으니, 베릭의 반응은 상당히 정상적인 것이었다.
사락.
이안은 종이를 넘기며 베릭의 상대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바르사베가 상대했던 적과 마찬가지로 ‘신체 강화’가 강점인 자였다. 다만 문제는-
“사령술의 원리를 활용한 강화군요.”
“세월이 갈수록 다른 이종족이나 이능력자에 대한 차별, 편견이 완화되었다고 해도… 사령술사는 아직 이르지 않나?”
“황궁 품위 어쩌고 하면서 물먹을 게 빤하지.”
“봐봐. 저쪽, 황궁친위대 표정.”
헤르치 대장을 비롯한 황궁친위대원들이 고개를 살짝 돌려 무언가를 의논하는 듯 보였다. 선발 기준에 부합할지는 모르겠지만, 혹여나 합격한다면 어찌할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것이다.
사락.
“그래도 이력을 보면 바리엘에 도움 되는 전력인 것은 맞습니다. 북쪽 출신이고, 용병 일을 하며 지난 10년간 마물 전투에서 활약한 사실도 확인되었군요.”
“아무리 그래도 사령술사다. 정말 도움을 준 건지 아닌지는 확실치 않지.”
시체를 찾아 방랑하는 자들 아니던가.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면 필연적으로 찾아들어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이안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계속 종이를 넘겼다. 사실 이런 것들은 하등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선발 시험의 결과로만 합격이 정해지지만…….
“저자의 목적이 사익이었다 한들, 도움받은 것은 받은 것입니다.”
“뭐, 그렇긴 해.”
마법사가 고개를 살짝 빼어 이안이 들고 있는 서류를 확인했다. 까다로운 상대라지만 파훼할 방법이 아예없는 건 아니었다. 마법사가 이안을 힐끔거렸다.
“베릭에게 안 알려 줘도 되겠어?”
그러자 이안이 미쳤냐는 듯 눈썹을 까딱거리곤 마법사를 쏘아봤다.
“아이고, 무서워라.”
“장난하십니까?”
“그래. 농담이다, 농담.”
유서 깊은 제국합동모병이다. 이 공정한 시험에 사사로운 인연을 섞어서야 되겠니? 이안아, 황궁 인간들이 죄다 너만 같았으면 우리 바리엘이 가이아 통일하고도 남았겠다. 마법사가 피식 웃으며 이안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서 정면을 쳐다봤다.
“베릭 저놈, 얼타는 거 봐라.”
마법사의 말대로, 베릭은 여전히 거대한 상대를 두고서 에- 구경만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바르사베가 수건을 내던지며 소리쳤다.
“베릭, 똥멍청이야! 뭐 하냐! 어서 공격해!”
“아, 맞다.”
베릭은 코를 훌쩍이더니, 검을 다잡고 그대로 상대에게 돌진했다. 자크 백작저에서 수련한 지 고작 두어 달인 것치고는 자세가 아주 훌륭했다. 기본기에 충실하되, 본인만의 날카롭고 자유로운 느낌은 그대로 녹인 검술이다.
“헤르치 대장님, 베릭이라는 아이가 그 아이지요?”
이안이 저택에 데려온 지 일주일 만에 식자재 창고를 거덜 냈다는.
헤르치가 궐련을 꺼내 물며 희미하게 웃었다. 당시 새로운 마검사를 들였다며 싱글벙글 기뻐하던 아버지는 뭔가 이상하다며 하루가 다르게 안색이 안 좋아지셨다.
“진짜 그렇게 많이 먹습니까?”
“아버지가 인색해질 정도였다.”
“와, 그거 심한데요.”
“우리도 그 정도는 아닌데.”
인심 좋기로 소문난 자크 백작이 인색해질 정도면 얼마나 처먹는다는 거야? 저놈, 황궁에 들여도 되나? 여차하면 황궁 요리사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겠다.
“조금 유별나긴 해.”
헤르치는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베릭을 보며 중얼거렸다. 마검사는 분명히 맞는데, 그 ‘속성’이 뭔가 의문스러웠다. 조사를 따로 해 본 결과 베릭의 가족들은 모두 일반인. 이종족의 혈통 같지는 않은데, 하는 짓은 꼭 인간이 아니다.
“알아볼까요?”
“됐다. 황궁친위대에 들어오면 그때 검사를 따로 맡겨 보지.”
피 검사를 비롯하여 마법부에 의뢰하여 자체적인 검사를 진행하면 저 아이에 대한 비밀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뒷골목 출신의 제국민이니 두고 보고 있지만, 황궁의 일원이 되는 순간부터는 일말의 의문도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 시험 시작인데, 마음은 벌써 황궁친위대에 들이신 것 같습니다.”
친위대원의 농담에 헤르치는 작게 깨달았다. 그는 부하를 돌아보며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그랬나 보군.”
저택 훈련장에서 바르사베와 함께 치고받으며 훈련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 그 가능성을 확신한 게다.
헤르치는 담배 연기를 후, 뱉으며 다시금 베릭 쪽으로 시선을 집중했다.
촤아아악!
“우엑!”
베릭의 검이 베고 지나간 곳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아니, 피가 맞나? 별 이상한 액체를 뒤집어쓴 베릭이 헛구역질을 하며 수그리자, 상대는 전혀 타격 없다는 듯 새롭게 근육을 재생성해 회복했다. 모두 사령술을 이용한 능력이었다.
베릭이 벤 것은 본체가 아니라, 본체를 둘러싼 언데드 덩어리. 베릭은 웃옷으로 얼굴에 묻은 검붉은 파편들을 벅벅 닦아 냈다.
“맛 졸라 없게 생겼네.”
“미친놈아, 사람을 두고 맛을 논해? 식인종이냐?”
“너는 끝났으면 저리 꺼져!”
“이 자식이 도와주려고 해도 지랄이네.”
보호막에 딱 붙어 왁왁거리는 바르사베에게 베릭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돌아서지 않고 계속해서 베릭에게 경고성 고함을 질러 댔다.
“옆에서 온다!”
촤아아악!
상대의 첫 공격이었다. 기다란 팔 같은 것이 뻗어 나더니 베릭의 옆구리를 노렸다. 간단하게 피하나 싶었는데…….
“……!”
푸욱!
팔에서 팔이 돋고, 다시 그 팔에서 팔이 돋는 식으로 확장되어 순식간에 나무줄기와 같은 그물을 만들어 냈다.
변칙적인 공격에 베릭이 당황하여 멈칫거렸고, 상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베릭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베릭이 무릎을 꿇자, 바르사베가 이마를 탁 치며 탄성을 내질렀다. 베릭은 자신의 옆구리로 흐르는 피를 스윽 닦아 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베릭! 정신 안 차려?”
“조용히 좀 해 봐.”
“그러니까 내가 평소에 공부도 하라 했잖아. 너, 저게 뭔지는 알겠어? 사령술사야, 사령술사!”
“시발, 까막눈한테 뭘 자꾸 공부하래? 그래서 내가 너네 할배한테 눈탱이 맞은 것도 까먹었냐?”
“내가 글 알려 준다고 했잖아! 그리고 눈탱이 맞긴 누가 맞아? 누가 봐도 우리 할아버지가 손해였는데. 너 인마, 처먹는 꼬라지 미리 봤으면 그 계약서 안 썼을 거라고 할아버지가 얼마나 한탄했는지 알아?”
“친위대 들어가면 그때 한다고오오!”
“됐고, 멍청아! 잘 들어. 사령술사는-”
“어, 그만.”
잡아먹을 것처럼 떠들어 대던 베릭이 바르사베의 말을 잘랐다. 그는 대충 옆구리를 세게 쥐며 고통을 주무르더니, 검을 바로잡았다.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려니까.”
“너…….”
바르사베가 멈칫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을 뻔했다. 이 싸움은 베릭의 싸움인데, 두 번이나 자신을 이겼을 만큼 실력 하나는 그래도 봐줄 만한 녀석인데, 혹여나 져서 황궁친위대에 못 들어갈까 봐 안달이 났던 모양이다.
“딱 보고 있어라, 예쁜이.”
베릭이 놀리듯 중얼거리며 다시 달려 나가자, 심각했던 바르사베의 표정이 단숨에 역겨움으로 변했다. 그녀는 헛구역질하더니 미련 없이 수건을 집어 들고 한 발짝 물러났다.
“뒈지든 말든, 이겨서만 와라.”
“엉, 당연하지!”
“그럼 아까 그놈 혀 못 자른 대신 네 거 잘라 줄게.”
“캬하하하. 난 좆밥이랑 안 싸운당께!”
“이 새끼가!”
콰아아앙!
사령술사와 베릭이 격돌하자 굉음이 터졌다. 거대한 바람이 몰아치고 먼지가 휘날렸지만, 이안의 보호막에 가로막혀 직사각형을 그리며 소멸했다. 완전히 분리된 공간. 바르사베는 마치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신의 코앞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을 쳐다봤다.
퍼엉! 펑!
촤아아악!
끝없이 늘어나고 재생하는, 변칙적인 공격. 패턴을 읽을 수 없었다. 몸에 두른 언데드 덩어리에도 자아가 있는 걸까? 산 자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공격이다.
베릭은 상대와 공격을 주고받으며 계속 틈을 살폈다.
‘방법이 있는 것 같은데.’
바르사베가 말하려다 만 것으로 보아, 정답이 있긴 있을 것이다. 한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는 게 문제지. 솔직히 말해서 ‘언데드’가 무엇인지도 눈치로 알아들은 그였다.
‘그리고 피 냄새.’
시발, 이게 산 놈의 피일 리가 없지 않나? 여러 가지 정보를 종합해서 시체 덩어리라는 건 알겠는데…….
콰아앙!
인간이 맞나? 여기는 황궁이잖아. 아무리 강하고 우호적이라도 그렇지, 마물을 뽑겠다고 들였을 리 없다.
베릭은 서류를 들고 있는 이안을 힐끔거렸다. 이안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하지만 단호한 믿음으로 반짝이는 것 같았다.
‘사람은 맞겠지.’
주술사나, 뭐 그런 거. 근데 눈앞의 살덩어리는 아무리 봐도 인간이라 볼 수 없었다.
그럼 어디 있지? 그 ‘인간’은?
‘안에.’
저 살점 안에서 애벌레처럼 시체를 껍데기 삼아 뒤집어쓰고, 끝도 없이 공격과 재생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점.’
혹은 일종의 핵이 분명 있을 거다.
바르사베의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려서 이겼던 첫 승처럼, 어느 지점을 찾아 정확히 꽂아 넣으면 이긴다. 그리고 그건, 살덩어리 속 모습을 숨긴 ‘인간’이겠지.
“아마도?”
맞겠지? 베릭이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상대는 대답이라도 하듯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이어서, 손과 손이 꾸물꾸물 하나로 모이더니 거대한 주먹을 이루었다.
“어라.”
마차 크기만 한 거대한 주먹.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입을 떡 벌렸다.
콰아아아앙-!
베릭이 피한다고 피하였으나,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주먹이 보호막을 때리자 이안이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힘이 굉장하군.’
미세한 흔들림이 본인에게 전해질 정도였다. 베릭은 몇 번이나 굴러가며 주먹을 피했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절대적 부피를 차지하는 상대의 공격을 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쉬이익!
“아-”
그리고 결국-
콰아아앙!
거대한 주먹이 베릭의 온몸을 으깨듯 내려쳤다. 바르사베는 못 보겠다며 고개를 돌렸고, 이안은 한쪽 눈을 찡그렸다.
“베릭!”
“애 잡겠네. 치유 마법사, 준비해.”
“알겠습니다.”
바르사베의 외침과 승패를 직감한 마법사들이 치유 마법사를 대기시켰다. 다시금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주먹. 그 아래, 피투성이가 된 베릭이 정신을 반쯤 놓은 채 뭉개져 있었다.
“이봐, 괜찮아?”
시험관이 베릭 쪽으로 다가가서 물었지만,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몇 번의 물음 끝에 시험관이 호각을 불려는 순간이었다.
“아. 씨이발.”
투웅.
베릭이 그만하라며 손가락으로 보호막을 퉁, 두드렸다.
“…아직 할 수 있어.”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네가 뭘 알아. 상태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 아, 씨발. 개 아프네, 진짜.”
퉤! 베릭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검을 다시 잡으려 했다. 하지만 검은 완전히 박살 나 고철 조각들로 변해 있었다.
시험 중간에 무기 교체는 금지되어 있었기에, 이제 베릭은 맨손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대장님.”
“이안아.”
황궁친위대원과 마법사가 동시에 헤르치, 이안을 불렀다. 이제 어쩌면 좋겠냐는 듯이.
그러나 두 사람은 미동 없이 베릭을 지켜보기만 했다.
“규칙은 규칙, 이겨내지 못하면 여기까지인 거다.”
헤르치의 말.
“한계라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이안의 말.
베릭은 두 사람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오른쪽 손을 허공에 뻗었다.
지이이잉! 지잉!
“……!”
바르사베의 눈이 커졌다.
베릭의 손에서 튀어 오르는 거대한 불꽃.
“넌 잘못 걸렸어! 난 두 배로 갚아 준다고-!”
콰아아앙!
마검사의 2차 개화라 불리는 ‘검’.
베릭은 홍염과 같은 검을 강렬하게 휘두르며 다시금 뛰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