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14
천하제일 시한부 (114)
서희는 요즘 너무 바빴다.
사실 그녀는 세가에서 자신만 직책이 없는 것 같아 서운했다.
그것은 곧 오라비들이 자신을 믿지 못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했다.
“나도 잘할 수 있는데…….”
첫째 오라비랑은 아무래도 나이 차가 너무 심하게 난다.
뭐, 빨리 혼인했다면 서희보다 나이 많은 조카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나마 셋째 오라비가 제일 말이 잘 통하는데…….”
문제는 서진이 가장 바쁘다.
심지어 세가의 무력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보니까 현재로써는 혼자만 동분서주 날뛰는 느낌이 강했다.
“하아…….”
이제 후원 공사도 끝내고 서희는 할 일이 진짜로 없어졌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뒤적뒤적.
서희는 방안 구석에 놓아둔 광주리를 뒤졌다.
그곳에는 예전에 서진이 준 전표 뭉치가 있었다.
사실 그건 첫째 오라비인 상진에게 준 것이었지만, 상진은 그걸 서희에게 줬다.
현재는 세가도 차츰 수익이 나고 있어서, 금전이 딱히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전으로 치면 이천 냥이네?”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어지간한 군소방파 일 년 운영비를 충당하고도 남는 금액이다.
“이걸 불릴 방법이 없을까?”
서희는 수 날을 고민했다.
오라비가 이십 년 이상을 고생해서 번 돈인 만큼 조금 알차게 쓰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 돈을 더 불리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바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서희를 도운 것은 청운이었다.
서희는 매일같이 흑호방을 드나들며 청운과 같이 추후 사업 계획을 세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서희는 흑호방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
흑호방의 무사들은 서희를 반갑게 맞았다.
그녀가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꽤나 질서에 엄격하던 청운도 너그러워진 것이다.
아무튼 서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청운의 집무실에 앉아 차를 마셨다.
“음?”
그러다 머릿속으로 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진 공자님.”
“왜 그러시오? 주 소저.”
청운은 일을 하다 말고 서희를 향해 돌아섰다.
항상 그랬다.
청운은 무슨 바쁜 일이 있건 항상 서희가 우선이었다.
그녀를 눈앞에 두고 일하는 것이 그에게 있어선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저 말을 하지 않아도, 앞에서 찻잔을 들고 있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런 청운에게 서희가 물었다.
“차는 얼마나 드시나요?”
“음,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서. 그래도 하루에 한잔 정도는 마시는 편이오.”
“하루에 한잔…… 다른 무사들은요?”
“글쎄…… 무사들이 차를 마시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소만, 필요하오?”
청운은 당장 뛰쳐나갈 듯이 물었다.
서희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글쎄, 그러고 보니 한 달마다 찻값으로 따로 비용이 책정된 것은 있소.”
“그렇죠?”
서희의 눈이 반짝였다.
중원에서 차는 엄청난 소비량을 자랑했다.
다루도 있고, 무엇보다 객잔에서도 잘 팔린다.
기루나 심지어 주루에서도 팔리는 것이 차였다.
무의식적으로 차를 마시고, 손님이 와도 차를 마신다.
일을 할 때도, 잠을 자기 전에도.
“차 사업을 하면 어떨까요?”
서희의 물음에 청운은 깊이 생각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긴 한데, 현재 차를 주력으로 팔고 있는 상단은 너무 많은데…… 괜찮겠소?”
청운의 말처럼 차를 파는 상단은 너무 많았다.
“일단은 여러 차를 마셔 보고, 괜찮은 차가 있으면 직접 농장을 인수해서 재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흠, 확실히 장기적으로 내다보면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긴 하지.”
청운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배가 어려운 건 피하고, 일단은 키우기도 쉽고 수확량이 괜찮은 걸로 하면 망해도 어느 정도 복구가 되지 않을까요?”
“휴, 농장에 대한 건 잘 모르겠소. 한번 자세히 알아봐야 하지 않겠소?”
“한번 해 봐야겠어요. 일단은 차 주문부터 넣어 보려구요.”
서희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생긋 웃으며 청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또 괜찮은 생각 있으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럼 이만 가 볼게요!”
이내 서희는 청운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후다닥 달려 나갔다.
서희는 곧장 주씨세가로 돌아왔다.
그러고는 천하상단을 통해 여러 종류의 차를 주문했다.
찻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걸로 주문했기에 물건은 금방 도착했다.
그렇게 며칠 차를 마셔 보고 서희는 마침내 마음을 굳혔다.
“이거야. 차야.”
그녀는 세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식습관을 유심히 관찰했다.
대부분이 아침에 눈을 뜨면 차부터 마신다.
그리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훈련이 끝나도 차를 마신다.
자기 전에도 차를 마시니, 이는 엄청난 소비량이었다.
“총관님.”
서희는 그길로 초영을 찾았다.
“무슨 일인가요? 아가씨.”
초영은 오랜만에 찾은 서희의 방문이 반가웠다.
그래서 곧장 차를 내왔다.
서희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가씨께서 주문하신 차죠? 고맙게 잘 마시고 있답니다.”
“제가 며칠 보니까 다들 차를 즐겨 마시더라구요.”
서희의 말에 초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된 관습 같은 거지요.”
“그중에서 무슨 차가 제일 많이 나갔나요?”
서희는 이날을 위해 차의 수량을 똑같이 맞췄다.
“음, 글쎄요? 어디 보자…….”
초영이 장부를 뒤적였다.
재주문한 차의 종류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녹차 종류의 재주문량이 제일 많네요.”
“아하, 좋군요.”
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왜 물어보시나요?”
“차 사업을 좀 해 볼까 하구요.”
뜻밖의 말에 초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가씨께서요? 직접?”
“네. 직접.”
서희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세가 운영비로 떼어드릴 수 있긴 한데…… 차 사업은 수익을 기대하기 좀 힘들 수도 있는데.”
“운영비는 필요 없어요! 돈이 따로 있거든요. 흐흐. 아무튼 직접 농장을 인수해 볼 거예요. 녹차밭이 있는 곳 명단 좀 추려 주실 수 있나요?”
“아, 네. 숨넘어가실라. 천천히 말씀하세요. 농장 지주들 명단은 바로 드릴게요.”
초영은 기특하다는 듯 빙그레 웃으며 책장으로 걸어갔다.
이내 책 몇 권을 빼 본 초영이 몇 번 뒤적이는 가 싶더니, 그중 한 권을 서희에게 건네주었다.
“녹차밭을 가지고 있는 지주들 명단입니다. 그중 절반은 아예 차 사업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 분도 계시고요.”
“고마워요! 생각보다 많았네요.”
“강서성과 절강성 전체 정보라 그래요. 후후.”
초영이 이내 서희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서희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무래도 앞으로 세가 내 내정일은 서희 아가씨께 논의드려야겠군요.”
“네?”
“가주님이나 소가주님이나…… 아가씨께 아무런 책무를 주지 않으셔서 서운하셨죠?”
초영은 서희의 마음을 아주 잘 안다는 듯이 부드럽게 그녀를 달랬다.
초영의 말에 서희가 씩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했는데, 괜찮아요. 오라버니들 마음은 제가 잘 아니까요.”
그 모습에 총관이 말없이 웃었다.
사실 그녀로서는 이런 화목한 가정이 부러웠다.
“왜 그렇게 봐요?”
초영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서희의 목과 어깨가 같이 움츠러들었다.
“그냥 이런 동생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동생……하면 되죠!”
서희가 해맑게 외쳤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초영은 하마터면 서희를 꼭 안아 버릴 뻔했다.
“언니라고 부를게요!”
“아하하, 고마워.”
초영도 편하게 말을 놓았다.
냉정하기만 해 보이던 초영이 처음으로 사람다워 보이는 서희였다.
* * *
늦은 밤.
난 다시 지붕 위를 올랐다.
휘익! 휙!
흑련주는 매일같이 수련에 수련을 거듭하고 있었다.
애석하지만 아직 움직임은 여전했다.
걱정과는 달리 흑련주는 씩씩했다.
여느 때와 같이 매일 같은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했다.
당연히 처음에는 술렁이던 무사들도 그런 흑련주의 마음을 알았는지 처음보다 더욱 열심히 수련에 매진했다.
주씨세가의 무사들의 수준이 날이 갈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그건 봉칠과 아지도 마찬가지였다.
“흠.”
난 가만히 흑련주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꽤 추워진 날씨임에도 흑련주는 간편한 무복만 걸친 채, 뻘뻘 땀을 흘려 가며 수련에 임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 열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켜보았다.
그 순간, 흑련주가 검을 놓고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이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난 황급히 고개를 숙였으나, 이미 흑련주에게 들킨 뒤였다.
“단주, 아니 소가주님?”
흑련주의 부름에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이내 훌쩍 뛰어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흑련주가 털썩 주저앉으며 물었다.
“매일같이 지켜보시던데, 하실 말씀이라도?”
흑련주의 물음에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열심히 하길래 궁금해서.”
내 말에 흑련주가 피식 웃었다.
한참 동안 말없이 하늘을 응시하던 흑련주가 입을 열었다.
“제가 불쌍하십니까?”
“…….”
어, 그런 건 아닌데 말이 안 나온다.
“불쌍하게 생각지 마십쇼.”
흑련주가 날 돌아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제가 진짜 불쌍해지지 않습니까?”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럼…….”
흑련주가 다시 일어서 검을 주워 들었다.
“혹시 제 손이 잘린 게 본인 탓이라며 자책하고 계신가요?”
“음…….”
자책이든 불쌍하게 여기든.
뭐가 됐든 흑련주에게 짠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자책하지 마십쇼. 제가 선택한 일이었으니까.”
후웅! 훅!
검이 다시 허공을 갈랐다.
어색한 자세에 어색한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진지했다.
“필사적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저더러 불쌍하다 혹은 계속해서 그런 시선으로 본다면…….”
“…….”
“진짜 제 삶이 불쌍한 삶이 되는 것 같아요. 그 누구든지 남의 삶에 대해 어쩌고저쩌고 떠들 권리는 없잖아요?”
맞다.
그 말이 백번 옳다.
감히 누가 남의 삶에 대해 잘 살았다, 못 살았다를 논할 수 있겠는가.
본인의 삶의 가치는 본인만이 매길 수 있는 것이거늘.
땡그랑!
또다시 검이 손에서 쭈욱 미끄러져 떨어졌다.
흑련주는 다시금 그 검을 주워 들었다.
정말이지 당찬 여인이다.
난 이내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줘 봐.”
난 그녀에게서 검을 뺏어 들었다.
“좌수검.”
그리고 왼손으로 검을 쥐었다.
팔 한쪽이 없다는 것은 무인에게 있어 치명적이다.
그만큼 무게 균형도 맞지 않는 데다, 상대와의 간격을 정하는 데 있어 불리한 점을 다수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점도 있다.
“우수검을 익히고 수련해 왔으니, 좌수검에 대해선 모르는 것이 당연하지.”
하지만 반대로.
“상대도 그러하다.”
무림인 대다수가 오른손잡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공 초식도 오른손잡이 위주로 구성됐다.
좌수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상승의 경지에 오른 경우는 없었다.
“좌수검을 잡으면서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단 하나.”
휘릭!
난 빠르게 정면을 찔렀다.
좌수검을 익혔던 내 수하, 청진을 떠올리면서.
“공격로를 단순화한다. 베고 찌르고 베고 찌르고 같은 초식 자체를…… 없애라는 말이야.”
“그게 가능…….”
흑련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가능해.”
난 피식 웃으며 제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몸의 무게중심을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둔검식과 중검식 같은 건 꿈에도 꾸지 마라. 자칫 실수하면 목이 날아가는 건 너니까.”
손이 하나 없다는 것.
단지 그것 때문에 몸의 조화가 깨진다.
그로 인해, 무게를 지탱하면서 균형을 유지시켜 줘야 할 팔이 없기에.
둔검식과 중검식을 과감히 배제해야 했다.
“오로지 쾌검일식도.”
꿀꺽.
흑련주가 침을 꿀꺽 집어삼켰다.
“네 흑룡검법을 쾌검식으로 바꿔라. 그리되면…….”
난 씨익 웃었다.
흑룡검법의 정수를 이미 꿰뚫어 보았기 때문이었다.
“넌 능히 삼성, 그 이상의 경지에도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빈말이 아니었다.
이내 뭔가를 깨달은 듯, 흑련주의 움직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흑룡검의 정수는…… 찌르기에서 나온다.’
과거 삼초검귀라 불렸던 전 흑련주가 했던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