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 What's logout?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로그아웃. 접속 중인 네트워크를 종료 및 연결을 단절하는 것. 컴퓨터를 조금만 하는 사람들이라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일뿐더러, 게이머라면 하루에도 몇 번이나 마주할 단어였다.
자신도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 그것이 지금은 왜 이렇게 생경하고 위험하게 들리는지. 아인의 말에 닉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것이 호의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얼굴을 한 번 느리게 쓸더니, 미간을 좁히며 아인을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거야? 해본 적 있어? 그거 하면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몰라요. 무서워서 해 본 적도 없고 계획한 적도 없어요. 아까 생각난 거예요.”
“너는 플레이어가 아니잖아. 로그아웃을 하면 그대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PC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본래의 몸도 아니고, 다시 로그인을 하면 될 뿐이니까. 하지만 아인은 다르다. 바깥에 있는 세상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이곳의 주민.
“하지만 전 지금은 NPC가 아니라 PC의 데이터에 가깝잖아요. 카오스가 그렇게 정했어요.”
“정신 차려. 아무리 데이터상으로 그렇다고 해도, 넌 로그아웃했을 때 돌아갈 몸이 없어.”
“돌아올 곳은 있어요.”
아인은 입술을 꾹 깨물며 땅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가까스로 웃음을 지었다. 미소에 쓴 물이 가득했다. 이렇게까지 마음을 먹었는데, 더 흔들지 말라는 양.
“로그인하면 되잖아요. 용사님도 어렵지 않게 하니까 괜찮아요.”
뒤로 갈수록 그것은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건네는 암시와도 같았다. 닉은 머리를 북북 긁으며 신음을 흘리다가 카오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도 뭐라 좀 해 봐. 쟤가 지금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잖아. 구경만 하지 말고!”
“NPC가 로그아웃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알지 못하니 답도 못 할 뿐이야.”
“진짜 미치겠네. 그러면 내버려 둬? 게임에 이상이 오네 마네 그런 건 없어?”
“단순 로그아웃으로 그런 일이 생기진 않는다. 저건 어디까지나 아인의 선택이야.”
“그러면 그냥 빨리 안 된다고 말해. 조건이고 뭐고 삭제해야 한다고.”
“네가 앞서 말했다시피. 계약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그 조건을 수락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카오스의 말에 닉과 아인의 희비가 갈렸다. 닉은 제 머리채를 움켜쥐었고, 아인은 희망에 가득 찬 눈을 반짝이며 영웅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영웅은 멍한 얼굴로 아인을 마주 보다가 눈썹을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자신에게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거야? 다른 원하는 게 있기라도 해? 그런 성격은 아니잖아.”
“…그냥 이대로는 용납 못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감정적이고 멋대로네. 주변 사람들이 속 좀 많이 썩겠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네. 당신이 할 말은 아니네요.”
아인이 샐쭉한 표정을 짓자 영웅은 새어 나오는 듯한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조금씩 얼굴을 구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바뀌면 좋았을까. 인정받길 원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면.
아인은 한쪽 무릎을 꿇고 영웅을 가볍게 끌어안았다. 눈을 반쯤 감은 채 두어 번 깜빡이고.
“다시 바뀌면 돼요. 우리는 처음부터 정해진 게 없으니까.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러기엔 한쪽 길로 너무 오래 걸어온 것 같은데. 너한테 빚진 게 너무 많아.”
“잠깐 갔다 오는 거예요. 빚은 그 이후에 받을게요. 평생 동안 갚으셔야 해요.”
이후 끌어안았던 몸을 물리자, 둘을 보고 있던 카오스가 가까이 다가와 아인의 머리 위를 손으로 툭 건드렸다. 아인이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올리자, 카오스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네가 가진 능력만으로는 어려울 거다. 잠깐 도움을 주지.”
카오스의 손가락이 까딱이고, 아인은 몸속에 기묘한 것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손을 떼자, 아인은 해야 할 말을 고민하듯 눈을 굴리다가 결국 가볍게 고개를 꾸벅였다.
“…감사합니다. 설정 프로그램 개입.”
영웅과 몸을 맞댄 채 그 말을 중얼거림과 동시에 익숙한 알림창과 문구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리고 이전에는 없던 문장 하나가 아인의 눈에 들어왔다.
[현재 사용 가능한 능력: 롤백, 리셋, 설정 스크립트 변경, 데이터 삭제, 데이터 수정]데이터 수정이라는 말을 읊자,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문구들이 펼쳐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무지에 가까운 아인의 눈에도 데이터 하나하나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설정이 잠시 깨졌을 때 보였던 글자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눈앞이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아인은 닉이 주었던 데이터 자료를 꺼내 그것들을 하나하나 수정하기 시작했다. 닉은 지금 당장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얼굴로 몸을 움찔거리고, 마라는 고개를 기울이며 참견하지 말라는 듯 닉의 손을 잡고 끌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아인의 손가락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빈도도 낮아졌다. 그와 동시에 영웅은 잦은 설정 수정으로 인해 엉망이 된 자신의 몸이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것을 느꼈다.
즉, 데이터 수정이 완성되어간다는 것을 뜻했다. 이는 아인이 로그아웃을 할 시간이 다가옴을 의미하기도 했다. 똑같은 두 개의 플레이어 데이터가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
“거의 다 끝났어요! 이제 딱 한 글자만 고치고 적용이라고 말하면 돼요. 그것만 하면….”
아인은 밝은 얼굴로 웃으며 뒷말을 이으려다가 벙긋거리기만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 사이에 닉은 마라에게 이제 놓아 달라는 양 손짓하고, 마라는 생긋 웃더니 순순히 닉을 보내주었다.
닉은 데이터 수정 완료를 눈앞에 둔 아인을 빤히 바라보다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넌 무섭지도 않냐?”
“무서워서 죽을 것 같아요….”
“미치겠네 진짜. 지금이라도 못 되돌려?”
“거의 다 끝났는데도요. 그리고 전 눈앞에서 목숨 멋대로 쓰며 죽으려는 사람 두고 못 봐요.”
그 말에 닉은 아인이 처음 자신에게 호언장담했던 말을 떠올리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어떻게 해서든 생명의 중요성을 떠올리게 만들어 주겠다. 이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제대로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던 말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당시의 자신은 평범하게 RPG게임을 즐기려 했던 플레이어였고, 모든 것이 가짜고 생명의 의미라고는 없는 가상의 세상에 들어왔을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인의 안위를 걱정하는 중이었다. 결국 그 말은 이루어진 셈이었다. 닉은 아인의 머리를 꾹 누르듯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있잖아. 내가 살아있는 사람하고 사람인 척하는 기계에 대한 기준을 엄청나게 고민했거든.”
관련한 책이나 유명인사들의 격언도 몇 번이나 보았던지.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생각과는 들어맞질 않았고, 별로 공감하지도 못했다. 결국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아인의 행동을 쭉 살펴보던 닉은, 특히 최근의 모습을 보며 살아있는 사람과 그와 인접할 뿐인 데이터나 기계는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사람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행동하고.”
NPC 한 명을 치료하기 위해. 그것도 장담조차 못 하는 방법 하나를 쫓아 대륙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재앙을 물리치고, 온갖 고생을 하는 모습이라거나.
“상식적이지 않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전혀 괜찮지 않으면서, 괜찮다고 꾸역꾸역 티 나는 거짓말을 하며 소중한 사람의 기억을 잃는 것을 선택한다거나.
“이해할 수도 없어.”
자신을 버린 존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하고, 마지막까지 신뢰를 잃지 않는 모습이라거나.
“그런데도 이게 맞다면서 억지를 부리고 밀고 나가.”
누가 봐도 자신을 가리키는 말들에, 아인은 눈을 끔뻑이다가 볼을 긁적이며 애매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자신의 머리에 올려진 손을 한 손으로 잡아 내리고 눈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효율만 추구하고, 상식적으로만 행동하고, 남의 이해에 부합하기만 하겠어요. 물론 그것 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하고 목숨의 위협도 느끼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살아있는 사람이기에.
“당연한 거예요.”
아인의 말에 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금 깊은 한숨을 쉬었다.
“당연한 걸로 이렇게 고민하고 있었네.”
그와 동시에 아인과 닉의 눈앞에 알림창 하나가 떠올랐다.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각각의 퀘스트창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것. 아인은 눈을 크게 떴다가 완료 표시가 떠 있는 퀘스트창을 열었다. 동시에 오래도록 보지 않았었던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 퀘스트명 : 존재의 증명내용 : 자신이 틀린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살아있음을 인정받으시오.
제한 조건 : 오류 데이터일 것. 삭제 시 퀘스트 실패.
기간 : 지명 받은 이가 당신을 완전히 부정하기 전까지
보상 : ???
실패 시 : 데이터 삭제 ]
각각의 퀘스트창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던 것. 처음에 받았을 때보다도 데이터의 깨짐도 덜하고 문장도 수월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인은 입을 우물거렸다가 잘게 떨리는 손으로 퀘스트 완료 창을 클릭했다.
[당신은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았습니다. 더 이상 오류 데이터로서의 페널티를 받지 않습니다. 1분 후 설정 프로그램 개입 능력이 소멸됩니다.]기쁜 마음에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아인은 열 오른 숨만 한번 길게 내쉬고는 다시 영웅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글자만 남은 데이터를 어떠한 오류나 실수도 없이 수정 완료하고, 아인은 크게 소리쳤다.
“수정 완료!”
영웅의 데이터가 말끔하게 수정된다. 이로서 카오스가 그렇게도 경계하고 싫어하던, 엉망진창에 멋대로 설정을 수정하던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능력도 데이터 수정을 마침과 동시에 사라졌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아인은 환경설정 창을 열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로그아웃 버튼으로 손을 뻗으려다가, 닉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하나 여쭈어볼 게 있어요.”
“…뭔데?”
닉이 고개를 갸웃하고, 아인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용사님, 로그아웃이 뭔가요?”
이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것을 잊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번 더 확신을 받으려는 듯. 닉도 그것을 눈치챘는지 픽 웃어버리며 즉각 답했다.
“잠깐 나갔다가 돌아오는 거.”
갔다 올게요. 아인은 그 말을 하려다가 먹먹해지는 목 때문에 제대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온갖 감정과 함께 문장을 삼키고 웃는 낯으로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입 속으로 웅얼거렸다.
“로그아웃.”
[로그아웃하시겠습니까?]아주 단순한 알림창.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오래 생각할수록 미련과 두려움만 더 커질 것 같았다. 미소가 가라앉는다. 아인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