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23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239화(239/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239화
외전 10화. 새집
“정겸!”
제임스의 목소리였다.
십자선이 완성되었다는 소식.
제임스를 따라 인천 공항에 도착한 나는, 쿠퍼와 합류해 공항 활주로까지 함께 걸어 나갔다.
“완성했소······.이겁니다.”
쿠퍼가 두 팔로 커다란 십자선을 가리켰다. 얼마 전 개조하기 위한 십자선을 이곳 활주로에 놓아주고 온 터.
작업이 끝났음에도, 겉으로는 별다른 변화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바뀐 겁니까?”
“어마어마하게 바뀌었지요.”
추쿵!
위이이잉······.
쿠퍼가 리모컨을 삑 눌렀다.
그러자 옆면이 통째로 열리며 스르륵 계단이 내려왔다.
뉴스에서나 보던, 이른바 ‘귀빈용 계단’이었다.
‘뭘 이런 걸 다······.’
확실히,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던 기능이었다.
십자선은 넉넉한 짐칸이 딸린, 커다란 수송선에 불과했으니까.
계단을 향해 걸어가던 중, 쿠퍼가 동체 하부에 위치한 엔진룸을 가리켰다.
“사념 원료를 사용했소. 에너지 판 패널에 사념의 방향성을 저장하는 방식인데······ 연료통 자체는 반영구적이라고 해도 무방하지요. 분명 오래오래 쓸 수 있을 겁니다.”
모두의 합작품이었다.
브로크가 강화석으로 안정기를 달았고, 제임스가 엔진을 새로운 동력에 맞춰 새롭게 개량했으며, 쿠퍼가 선체 전체에 마력 회로를 그려 넣었다고.
기존의 십자선보다 이미 몇 배는 월등한 성능임에도, 쿠퍼의 설명은 멈출 줄을 몰랐다.
“자동 항법 장치를 탑재했소. 운전수 없이도 얼마든지 오갈 수 있지요.”
더 이상 이용수를 고생시키지 않아도 됐다.
하기야 곧 수십, 수백 대로 늘어나 여객기로 활용될 테니, 더 이상 이용수가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또요?”
이미 놀랄 만큼 놀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선체로 들어온 뒤에는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떠질 지경이었다.
‘이게 다 뭐야?’
모던한 디자인의 라운지와 칵테일 바가 눈에 들어왔다.
바 옆에 달린 저장고에는 각종 식료품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세계수를 이용한 생명 유지 장치가 달려있어 재료의 부패를 거의 완벽하게 막아낸다고 했다.
욕실과 화장실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화장실 개수만 여섯 개였고, 거대한 욕조에서는 마사지 온수가 용솟음치듯 뿜어졌다.
생존, 그리고 생활에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춰져 있는 것.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이번에는 제임스가 너스레를 떨었다.
“오우, 정겸. 살아만 있으면 뭐 해? 메인은 이제부터라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을 누리는 것.
아니나 다를까, 이후로 소개된 공간은 생존과는 멀어도 너무나 먼 시설이었다.
각종 기계가 놓여 있었다.
맥주 기계와 팝콘 기계, 거기에 와인 셀러까지. 한편에는 어두컴컴한 방에 형형색색의 네온 조명이 달려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큼지막한 모니터 다섯 대가 서로 마주 본 채 설치돼 있었다.
컴퓨터 열 대가 5 대 5 게임이 가능하도록 설치돼 있는 것.
‘완전 놀자판이잖아.’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당구장과 볼링장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 옆에는 별도로 구획된 곳이 따로 있었는데, 길쭉한 공간을 따라 푹신한 ‘ㄷ’자 소파가 일정 간격을 두고 차례로 배치돼 있었다.
그중 하나에서 누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 이게 삶의 라이프지!”
‘얜 또 언제 들어온 거야?’
어디 내놓아도 부끄러운 내 누나, 김솔이었다.
쿠션 옆에 컵라면이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줄곧 여기에 있었던 모양.
이제 보니 천장에는 빔프로젝터가 설치돼 있었는데, 소파 앞쪽으로 김솔이 실시간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었다.
쿠퍼가 부끄럽다는 듯 코를 쓰다듬었다.
“아, 이 공간만큼은 김솔 씨에게서 자문을 구했소.대표님이 엄청 엄청나게 좋아하실 거라고······ 어떻습니까, 어때요?”
저 누나 놈이 내 이름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운 것이 분명했다.
등 뒤로는 빼곡한 책꽂이가 쭉 이어졌는데, 놀랍게도 온갖 종류의 비디오 게임 소프트가 총망라돼 있었다.
‘······이런 건 대체 또 어디서 구해온 거야?’
물류센터에 있던 물건이 아니다.
분명 게임 CD도 제법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종류가 많지는 않았으니까.
그러자 다른 소파에서 또 누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부서진 게임 판매점을 발견했다더라구요.”
“용수 씨는 또 언제 오셨어요?”
“여기 조종실을 좀 보려다가 하하······.”
이용수가 앉은 소파에는 또 다른 세팅이 적용돼 있었다.
레이싱 휠부터, 기어, 고급스러운 페달, 모션 시뮬레이션 체어까지.
용도는 알겠지만, 생김새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제임스 씨가 힘 좀 썼죠.”
“흐흐, 아주 리얼리스틱하게 만들었다구.”
제임스가 껄껄거리며 웃었다.
하드웨어부터 모션 센서까지 안 만진 구석이 없다고. 아니나 다를까, 화면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레이싱 게임이 구동돼 있었다.
김솔이 건실하던 유정이 아빠를 게임 중독의 구렁텅이 자빠뜨린 것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솔은 코를 후비며 능청스럽게 자신의 업적을 칭송했다.
“여기는 방주야. 인류에게 이런 게임이 존재했다는 것을 남기는······ 숭고한 성역······.”
“······.”
완성된 십자선이다.
물류센터에서 가져온 재료가 대부분이었지만, 아닌 것도 적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만의 생각으로, 폐허 속에서 각기 다른 유산을 발굴해온 것.
지금껏 세상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자부했지만, 물류센터는 아직 더 확장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 십자선은 다름 아닌 여객기로 사용되어야 할 물건이었으니까.
“이렇게 만들어도 되는 거 맞나?”
4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을 만큼 거대한 십자선이다.
시설을 이렇게 꾸려놓아서야, 채 50명도 태우기 힘들 터.
생각해 보니 침실의 침대 개수도 고작해야 스무 개 안팎에 불과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쿠퍼가 나를 안심시켰다.
“이건 정겸 대표 전용기요. 당연히 여객기는 다른 구조로 개조했지. 물론 그것도 충분히 호화스럽긴 하지만.”
“아, 그랬구나.”
마침 여러 대를 출하해 놓고 간 참이다.
그중에서 하나를 여객기가 아닌 전용기로 개조했다는 것. 그제야 안도감이 찾아들었다.
‘뭐, 전용기면 이것저것 많이 넣어도 괜찮겠지.’
특별대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했다.
머지않아 사라지게 될 내 아공간.
이건 그에 대한 심심한 위로가 될 테니까.
***
덜컹!
덜컹!
땅땅!
곳곳에서 들리는 수레바퀴 소리, 망치 소리. 정거장 설치 공사가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지구, 레텔, 베로니카와 포탈 관리국까지, 총 네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공사다.
그중에서도 ‘슈퍼마켓’이 들어설 관리국의 시설이 가장 컸는데, 중요한 부분부터 순차적으로 완성하는 식으로 규모를 늘려가기로 했다.
철컥!
이를 관리할 인력 또한 선발했다.
기사들과 무림인들이 이를 자원했는데, 기사들이 사용하던 권총과 검, 그리고 검은 롱코트를 복제해 보급하기로 했다.
앞서 비델족들이 그랬던 것처럼, 급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긴급 지원을 나가는 역할.
총검을 차고, 롱코트를 펄럭이며 움직이는 ‘공항 경비대’의 모습이 꽤나 그럴듯했다.
그리고······.
“그럼, 들어가 볼까.”
모두가 바쁜 시점이다.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었다.
.
.
.
나는 곧장 아공간 속으로 들어왔다.
시간이 멈춘 것인지, 거울에 비친 바깥은 또다시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얼추 틀은 잡아놓긴 했는데······.”
물류센터의 설비는 모두 갖춰놓은 상태다.
시스템적인 부분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복잡한 설비일수록 뭉텅이째로 출하해놓은 터.
다행히 팍스가 관여한 것인지, 꺼내놓은 설비들이 모두 하나로 연동된 채,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남은 것은 텅 빈 매대를 채워 넣는 것이다.
물류센터 시설을 고스란히 옮겨놓았지만, 정작 내용물은 아직 채워 넣지 못했으니까.
다시 말해 ‘지옥의 상하차’ 작업이 남아 있는 것이었다.
나는 야속하다는 듯, 허공을 향해 투덜거렸다.
“네 이놈 팍스, 내가 인간 수작업의 힘을 보여주마.”
팍스에게 정이 없다며 욕했던 나다.
이제 와 녀석의 편리함을 그리워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완전히 손으로 다하는 건 아니고, <추적배송>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었다.
“출하.”
슈우우우우우!
덜커덩!
하지만 팍스가 없다 보니 그 좌표를 대충 어림짐작해서 지정해야 했다.
지금처럼 한 번에 골인시키면 다행이지만, 빗나가서 와르르 쏟아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무릎을 잡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이걸 언제 다 하냐······.”
대여섯 시간은 쉬지 않고 했을 텐데, 1퍼센트 남짓 끝났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밖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이, 바로 이 사물 속에 내재되어 있었다.
찌익.
초코바를 꺼내 씹었다.
달착지근한 바삭함에 시원한 생수를 들이켰다.
“김씨, 작업 해.”
되도 않는 혼잣말로 나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
일주일, 한 달?
대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낮과 밤 없이 그저 새하얀 배경 아래 놓인 아공간이다.
어림짐작으로나마 시간 세던 것을 포기한 지도 꽤 오래.
이제는 아예 물류센터의 완성도를 기준으로 시간을 책정하고 있었다.
“이제 한 8-90퍼센트 됐나?”
처음에는 잠자는 것이 꽤나 고역이었다.
적막으로 가득 찬, 텅 빈 곳에서 혼자 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쁘게 움직여주는 AGV 로봇 덕분에 좀 낫기는 했지만, 눈을 붙일 때마다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했으니.
비싼 경추 베개에 구스다운, 전기장판까지 깔아놓고 별짓을 다했지만 자리를 뒤척이다 부은 눈으로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것도 옛말이지.’
그래도 이제는 꽤나 익숙해졌다.
목에서 걷어낸 수건이 어느새 땀에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전기는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물이 나오질 않아서,?직접 물을 출하하고 회수하는 방식으로 샤워를 했다.
후르르릅!
라면을 끓여 먹기도 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복잡한 요리도 뚝딱 꺼낼 수 있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간단한 음식들만 먹게 됐다.
거창한 음식은 누군가 있을 때 먹는 게 낫겠다며, 외로움이 괜한 겸손을 부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으, 고되다.”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이뤄지는 무한 상하차.
그렇게 생활용품 선반에 4리터짜리 대용량 샴푸를 꽂아 넣던 어느 날이었다.
“어라?”
위이이이잉.
AGV 로봇이 거울 쪽으로 움직였다.
그러곤 선반을 기울여, 실려있던 물건 하나를 거울 바깥으로 밀어 넣었다.
한 달 가까이 처박혀 있었음에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현상.
그 의미를 모를 내가 아니었다.
“······팍스.”
녀석이 밖으로 물건을 내보냈다.
어쩌면 처음으로 외부에 자신의 ‘말’을 전달한 것.
녀석이 내보낸 것은 흔하디흔한, 초콜릿 쿠키 한 상자였다.
위이이잉.
AGV 로봇이 이번에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곤 덜컹, 소리와 함께 내게 작은 상자를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