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ly Medical Life RAW novel - Chapter (200)
제200화 – 완결
아이는 지나치게 의젓했다. 똑똑하고. 아버지 된 입장에서 가끔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이는 그런 아버지의 마음까지 알고 있는 듯, 어쩔 땐 일부러 더 어린애처럼 굴기도 했지만 전부 티가 났다.
“아이처럼 굴어도 돼.”
그게 늘 자신의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다.
동료 의사들은 종종 그에게 지나친 걱정이 아니냐고 툴툴거렸다. 하기야, 엇나가는 것에 비하면 몇 배는 나은 게 사실이었다.
“아빠는 어쩌다 의사가 되셨어요?”
그리고 아이는 의사라는 직업에 관심이 참 많았다. 은연중에 의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드러났다.
아무래도 본인이 의사다 보니 의사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한 고충을 알기에 부추기고 싶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일부러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건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었으니까.
“아빠가 어렸을 때 큰 병에 걸렸었어. 입원도 오래 하고, 수술도 받고. 그리고 그 수술을 해주신 분 성함이 정하늘이라고 해.”
그리고 아들 덕분에 과거를 다시금 회상하게 되었다.
“그땐 아니었는데, 나중엔 엄청 유명한 분이 된 거야. 아무튼 그만큼 대단하면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니까 아빠도 그렇게 되고 싶더라고.”
당시의 정하늘은 그다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몇 년 후에 티비에도 나올 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정하늘이요?”
“어. 들어본 적 있어?”
“네. 위인전에서도 봤는걸요.”
그리고 정하늘은 죽은 이후에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가 죽은 지 20년이 넘었음에도, 대한민국에서 정하늘을 모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분이었구나. 정하늘.”
그리고 아들은 무언가 확신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분이었지. 그분 아니었으면 아버지는 지금 살아있지도 못할 거야.”
“그분 아니었으면 저도 여기 못 있었겠네요.”
“그렇지.”
아직도 먼 과거인데도, 정하늘은 기억에서 생생했다. 무섭기만 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깨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친절하게 대해줬던 사람이었다.
또, 그 어떤 병원에서도 치료하기를 꺼리던 자신을 받아주었고. 보기 좋게 수술에 성공하여 목숨을 구해주기까지 했으니.
“저도 역시 의사가 되고 싶어요.”
“그래?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돼. 의사가 되려면 말이야.”
아버지는 국어나 영어, 수학을 비롯한 책들을 구해다 주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똑똑한 아이이니 혹시나 관심을 가질까 하고.
“……이런 걸 공부해야 해요?”
그런데 아이는 책을 펼쳐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처음으로 아이다운 모습에 아버지는 미소를 지었다.
“지금은 안 해도 돼. 나중에 천천히 해도 되니까 너무 걱정 마.”
하지만 그 말에도 아이는 안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속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아……. 어찌 이 많은 것들을…….’
한국의 수능은 현자에게도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정하늘이, 아니 데미안이 더욱 위대하게만 보였다.
* * *
“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알긴 아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진짜 사람이었으면 이미 죽었어. 의원이 되겠다는 놈이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자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속삭였다.
“성황 폐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폐하께서?”
남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잘 생각하고 있어. 네가 잘못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네가 가져야 하는 사명감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렇게 말하고는 수술용 장갑을 벗으며 환복하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휴우.”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열자, 성황이 이미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수직은 안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적성에 맞는 것 같네. 칼로스.”
칼로스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얼른 성황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여전히 금발의 수려한 외모였지만, 이제는 미소년이 아닌 미중년이 된 성황.
시간이 많이 흐른 만큼, 성국 내에는 많은 변화가 일었다. 그리고 특히나 격변이 일어난 분야는 의술이었다.
성국에서는 적극적으로 의원의 양성에 나섰으며, 수도에 의술 아카데미가 생겨난 지 십 년이 넘었다.
그리고 칼로스는 그 의술 아카데미에서, 성황의 명에 따라 교수직을 겸하고 있었다.
“적성에 맞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누굴 혼내는 건 항상 마음속에 불편함을 남깁니다.”
성황은 그런 칼로스의 어깨를 다독였다.
“너한테 하기 싫은 일을 시키는 것 같아서 미안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
칼로스도 알고 있었다. 체계적으로 의술이 전파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학술 및 양성 기관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그것에 제가 지목된 건 폐하께 배운 것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요.”
칼로스 역시 성황에게 많은 것을 배웠고, 의술에 대한 것들을 배울 때면 성황은 꼭 다른 사람 같았다. 평소엔 늘 온화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실수 하나에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시에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제 와서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래야 생명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의술에 대한 진정성이 커질 것이기에.
“폐하께서도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으셨던 거겠지요. 저를 혼내실 때마다.”
그러자 성황이 중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칼로스 너는 혼낸 것도 아니야. 워낙에 잘 따라왔으니까. 예전에 나한테…… 아니다.”
무언가를 회상하던 듯한 성황이 입을 닫았다.
“그건 그렇고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예? 어떤 것이 말입니까?”
“내가 살 날이.”
“그, 그게 무슨…….”
갑작스러운 성황의 말에 칼로스는 당혹을 감추지 못했지만 성황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해 보였다.
“어려서부터 써 온 성력이 있으니까 평균보다 수명이 조금 짧은 건 어쩔 수 없겠지.”
확실히 많은 성력을 쓴 사제들의 수명은 일반인보다 짧았고, 성황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터무니없이 많은 성력을 써 왔으니 불가피한 일인 듯 보였다.
그리고 아마도 의술의 정점에 올라 있는 성황이라면 스스로의 상태에 대해선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 살기 위한 방법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겠지.
“언제쯤이 될 것 같으십니까?”
칼로스는 가슴이 울컥거리는 것을 달래며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길어야 일 년쯤 되겠지.”
일 년. 칼로스에게는 성황을 보내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성황의 부재가 얼마나 클지 걱정이 앞섰다.
“한 달 안에 자리를 넘기고 여유나 좀 즐겨볼 생각이야.”
“……폐하께서 사라지셔도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성황의 특별 명령에 따라, 칼로스는 아카데미 교수직으로서 성국 내에선 대주교급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의술이 권력에 가로막혀 올바로 퍼지지 못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뿐.
성황이 사라지고 나서도 스스로가 정말로 제대로 된 의술을 전파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듯 성황이 그의 등을 두드렸다.
“네가 자격이 없으면 누구도 자격이 없는 거야.”
그렇다곤 해도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 * *
나는 내 생각에 대해 누군가에게 떠들고 다니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확신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확신이 변하는 걸 경험했었으니까.
결코 변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내 고집도, 결국엔 꺾여버렸다.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음에도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 아들까지 생겨 버렸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트루드가 마지막 순간을 앞에 둔 나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폐하와 함께여서 늘 즐거웠습니다. 기사로서, 그리고 당신의 아내로서.”
내가 트루드를 보았을 때 느꼈던 연민의 감정은, 단순한 동정심 따위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트루드 역시 주종의 관계 이상의 감정을 내게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룩하신 성국을, 결코 욕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들 역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후계 자리를 두고 발생하는 다툼.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으니, 자식은 한 명에서 더 늘리지 않았다.
“……그래.”
나는 숨이 끊어져 가는 와중에 아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울고 있는 트루드의 손을 잡아주었다.
“네가 얼마나 즐거웠더라도, 나만큼은 아닐 거야.”
두 번째 맞이하는 죽음인 탓인지 생각보다 아주 슬프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미련이 없지만은 않았다.
정말로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 했을까. 더 잘 할 순 없지 않았을까.
그러다 그런 복잡한 생각들을 치워버렸다.
잘 했다, 이 정도면.
처음으로 내게 하는 칭찬이었다.
적어도 이전의 신성 제국보다는 훨씬 나은 곳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가 꿈꾸던 국가에 가까워졌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예상했던 것을 훨씬 뛰어넘은 결과였다.
눈을 감자 트루드가 오열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는 의식이 희미해져 가며 점차 옅어졌다.
다음 생에도 전생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참 좋을 텐데.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 * *
신성 제국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세대가 교체되었다. 성황이 몇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신성 제국의 위세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만 있었다.
왕국과 제국의 갈등이 커지기도 했고, 종종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승자는 매번 신성 제국이었다. 전쟁을 선포한 쪽은 늘 반대쪽이었음에도.
“성국의 이름으로!”
신성 제국은 더 이상 신을 무분별하게 따르지도 않았다. 황족들과, 일부 선택받은 이들이 신성력을 갖고 태어나기는 했으나 그것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여기지만도 않았다.
신성력은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고 타인을 구원하는 힘이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로 말이다.
다만 성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을 분명히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었다. 사제가 될지, 아니면 평범하게 살아갈지.
그리고 아주 특별한 경우엔, 후천적으로 사제가 될 방법도 있었다. 성력을 타고난 자가 뇌사에 빠졌을 때. 그의 심장을 이식받는 것이 유일하게 후천적으로 성력을 취득하는 방법이었다.
“데미안 힐데스하임께서 진리를 깨우치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성국 내의 의술은 점점 발전했지만, 그 토대를 닦은 것은 데미안 힐데스하임이었으며. 그가 성국을 다스린 후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데미안 전 성황 폐하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를 잊게 되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이야.”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그게 성국 내에서 맞이한 가장 큰 변화였다.
[성스러운 의사생활> 완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