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1)
홈플레이트의 빌런-362화(362/363)
< 362화 I love Phillies (1) >
1
개빈이 홍빈의 뒤통수에 물통을 던지는 그 순간,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필리스 팬들은 물론 필라델피아 근교의 모든 필리스 팬들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있었다.
“필리스가 이 세상을 지배한다!”
“Nut and nuts!”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위상은 최근 2년 새 급격히 바뀌어 있었다.
2029시즌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시즌 초반에 반짝한 후 급격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쯤 홍빈이 합류했고, 그 뒤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보통은 개빈 폴체스키가 부상으로 쓰러지고 불펜의 체력이 소진되면 순위표 밑으로 추락했을 테지만, 필리스는 작년 중반부터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질주한 후 깜짝 놀랄 만한 월드시리즈 우승.
2030시즌이 시작될 때만 하더라도 디펜딩 챔피언 대우는 못 받았다.
하지만 홍빈이 역대 최고의 WAR를 기록하는 시즌을 보냈고, 작년부터 기미가 보였던 유망주들과 기대도 하지 않았던 유망주 그리고 트레이드로 데려온 유망주가 동시다발적으로 대폭발한 결과가 이거였다.
“Fucking World Series!”
건강 문제로 감독이 바뀌긴 했지만, 오히려 더 강력한 모습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승리를 따냈으며, 팀의 핵심 타자는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을 때렸고, 고작 2년 차 선발투수 둘은 리그를 휩쓸었다.
사고뭉치로 보였던, 트레이드로 데려온 유격수는 38개의 홈런을 때려 낸데다가 마지막 경기에서는 불펜에서 훌륭했던 보리스 켄달이 챔피언 팀의 새 마무리 투수에 걸맞은 피칭을 선보였다.
문제가 있겠는가.
사실 어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팀이 월드시리즈에서 우승만 하면 다 묻고 넘어갈 판에.
필리스 팬들은 우승에 열광했고, 작년의 우승이 단발성이 아니라는 데 더 열광했으며, 팀이 앞으로 더 우승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겨 더더욱 열광했다.
그들은 멀쩡히 주차된 차를 뒤집어 올라타기도 하고, 공터에 불을 지른 후 춤을 추기도 했으며, 누군가는 1883년부터 시작된 팀의 역사상 4번째 우승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허공에 총을 네 번 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경찰인 피티 맥버튼은 오늘 필리스가 우승하면 집에 못 들어갈 거라고 미리 못 박아 두고 나온 상태.
그는 오늘 집에 가긴 글렀다는 것에는 별로 불만이 없었다.
불만이 있다면, 오늘 같은 날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서 필리스가 레드삭스를 엿 먹이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뿐.
“이봐! 젠장! 하지 말라곤 안 할 테니까 총은 쏘지 마!”
“피티! 내가 쏜 거 아니야!”
“알겠으니까 쏘지 마!”
2
우리는 오랫동안 세리머니를 했고, 로커 룸에서 미리 준비된 우승 기념 티셔츠를 입고 나와서 다시 세리머니를 했다.
필리스 팬들의 목에서 사람 목소리가 아닌 쇳소리가 나올 때쯤 우승 세리머니가 끝났다.
작년에는 뉴욕에서 우승을 확정 지어서 몰랐다.
경기장 밖의 광경은…….
ㅇㅅㅇ: …….
ㅇㅅㅇ: 다음부턴 원정에서 우승을 확정 짓도록.
오버 좀 섞어서 불길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고, 어디서 났는지 불꽃놀이 폭죽도(불꽃놀이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터지고 있다.
경기장 내에서도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날리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날 덮쳤던 개빈은 날 엎어 놓고 목을 조르려다 오늘 승리투수가 된 로즐이 개빈에게 샴페인을 퍼붓고 도망가자 로즐을 잡으러 뛰어갔다.
“Fuck! 이리 와! 아니, 젠장! 저리 가!”
그리고 다른 어린 선수들-레드 하우스의 멤버들-이 몰려와서 샴페인을 퍼붓자 다시 내게로 뛰어오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녀석들과 합세해 개빈을 덮친 뒤 헹가래를 쳐 버렸다.
개빈의 응원 구호에 맞춰서.
“G-!”
“날 내려놔! 이……!”
“A-!”
“…빌어먹을 애송이들!”
“E-!”
“난 저놈을 잡아야… 흐억!”
“B-!”
“으어아아!”
“I-!”
“빈! 비이이이이인!”
“N-!”
“꼬마 놈들! 너흰 다 죽었어!”
그리고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개빈을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개빈은 바닥에 몇 번 구른 뒤 벌떡 일어나 내 뒤통수를 갈겼던 음료수 통을 들고 다시 날 쫓아왔다.
음.
저 스피드면 시즌 20도루는 우습게 하겠는데?
경기가 모두 종료되고 선수단 가족들이 경기장으로 내려왔을 때, 나는 살길을 찾아 바바라와 아리 쪽으로 뛰어갔다.
“개브!”
“오, 이런. 바바라…….”
역시 개빈을 말릴 수 있는 건 바바라뿐이다.
“자기! 축하해!”
바바라에게 개빈을 맡겨 둔 후, 세상 그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날 반겨 주는 아리에게 키스하고 부모님 앞에 섰다.
“축하한다, 아들아.”
“평생 내가 응원하는 야구 팀이 우승하는 꼴은 못 볼 줄 알았는데…….”
음. 하긴. 부산 자이언츠가 우승 못 한 지 38 년짼가.
어쨌든 바바라 실드로 막아 내니 개빈은 이제 난동을 부리진 않았다.
우리는 꽤 길게 우승 소감을 인터뷰했다.
개빈은 거기서 또 눈물을 흘렸고, 로즐은 내년엔 짐보다 잘 던지겠다고 말했다.
짐은 나와 함께라면 무엇도 필리스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으며, FA가 될 진 테프먼은 단장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호통 쳐서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에이머는 내년 목표가 78홈런이라고 말해 이상한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홀든은 소리를 지르다 목이 쉬어서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불펜 포수로 뒤에서 제 역할을 해 준 피오는 월드시리즈 로스터엔 들지 못했지만, 인터뷰장에 참석해 내년에는 팀에 더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모두 각자의 우승 소감을 말하는 가운데, 개빈은 갑자기 필리스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정말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레드 빈, 당신은 어떤가요? 이 우승이 당신에게 특별한가요?”
나는 그 질문에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올해는 정말 특별한 한 해였죠. 개빈이 말한 것처럼 저도 필리스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필리스를 사랑합니다. 이런 환상적인 팬들을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내년에도 이 도시의 야구 팬들에게 우승을 선물해 주고 싶습니다. 메이저리거 개빈 폴체스키는 이제 없지만, 제가 그의 빈자리를 메우고 싶습니다. 개빈처럼 필리스 팬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개빈만큼은 아니더라도요.”
3
“꼬마.”
“Yes, sir.”
“내가 전에 말했던가?”
“어떤 이야기인지 말씀해 주시면 기억날걸요.”
“바바라의 아버지가 내게 했던 말.”
“죽여 버린다고 했던 거요?”
“젠장. 바바라를 데려갈 정도로 배짱 있는 놈은 없다고 했던 거.”
“기억하고 있죠. 하지만 결국 있었다고 하셨죠? 개빈 폴체스키라는 사람요.”
“…….”
개빈의 눈빛에 날 죽이려는 의도가 담겨 있진 않은 것 같다.
“젠장.”
“아리를 데려갈 정도로 배짱 있는 놈도 세상에 없다고 하셨었죠.”
“…….”
“…….”
깝죽거릴 타이밍은 아니다.
난 얌전히 있었고, 개빈은 살짝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빌어먹을. 좋아.”
그리고 난 개빈이 또 다른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얌전히 듣고만 있었다.
“솔직히 처음 그 이야길 듣고는 장난인 줄 알았어.”
“그런데 바바라가 그러더군.”
“내가 널 잡으러 다니는 걸 보고 눈치챘나 봐. 우리가 왜 그러는지.”
“바바라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더라고. 아리가… 그… 제기랄. 하여튼.”
“젠장.”
“빌어먹을. 기분이 좋진 않지만, 다른 쓰레기 같은 놈을 데려오는 것보단 낫겠지.”
아무리 아리가 개빈의 딸이라지만, 아리는 개별 인격체라고 생각했기에 어느 정도는 우리 둘의 문제라고 생각한 점도 있었다.
하지만 개빈이 조금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이자,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했어야 했는데 하고.
개빈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됐어. 제기랄. 이제 그만 꺼져.”
“개빈.”
“…그리고 내일 아침이나 먹으러 와.”
“…미안해요.”
“개자식아.”
개자식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네 부모님도 모시고 와.”
“고마워요, 개빈.”
“Asshole.”
8ㅅ8: 이 똥구멍아!
…….
영어로 말할 땐 그냥 츤데레처럼 보였는데, 그걸 굳이 한국어로 번역하니 좀 기분 이상하다?
어쨌든, 모두 가족과 시간을 보내러 돌아갔다.
내일 저녁에는 선수단 가족들의 축하 파티가 있을 예정이고, 지금은 긴 시즌 동안 자리를 비웠던 가장 혹은 누군가의 아들로 돌아갈 때다.
“사실 두 분이 여기 계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못 해 드린 게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미 오신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회사 이야기는 그냥 핑계였어요. 곧 결혼하긴 할 건데, 그냥…….”
집에 돌아와 부모님과 이야기하다 보니 뭔가 말이 꼬였다.
나는 모든 게 무위로 돌아갈까 걱정하는 겁쟁이였고, 그래서 부모님과 제대로 마주 앉지 못한 얼간이였지만.
어딘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한 번 부모님을 잃었던 40대 아들이 아닌 정말 20대의 어린 아들로 돌아가 버린 것 같았다.
내 감정을 부모님께 제대로 전달해 드릴 순 없었다.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하지만 두 분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날 안아 주셨고, 나는 정말 이유 모르게 눈물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잠이 잘 올지는 모르겠지만 내 방으로 돌아왔다.
ㅇㅅㅇ: …울보 자식.
…….
-자기, 아빠가 자꾸 울어.
-따로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아리에게 개빈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소상히 털어놓았고, 아리는 내 이야기를 듣고 개빈에게 감동받은 눈치였다.
아리와 새벽까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결국 나는 아리를 보러 집을 나섰다. 왜,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그럴 때 있지 않나.
3ㅅ3: 잠 좀 자자, 잠 좀.
3ㅅ3: 지금 몇 시인지 알긴 아냐?
…….
그냥 자라.
푹 자라.
평생 자라.
쭉 자라.
4
나와 아리는 새벽에 만나 마치 아포칼립스같이 변해 버린 필라델피아를 드라이브했다.
“자기, 저기 좀 봐.”
“누가 버스 정류장 표지판을 접어 놨네?”
“그치?”
아리는 90도로 꺾여 버린 표지판을 보며 깔깔 웃었다.
사실, 저게 왜 재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리가 좋아하니 나도 웃었다.
3ㅅ3: …요정님을 자게 해 달라.
…그냥 놔두고 올걸.
새벽 3시 30분. 도시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술에 취해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말 너무 즐거워서 참을 수가 없나 봐. 사실 나도 그래!”
아리는 갑자기 차 뚜껑을 열더니 사람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고 소리쳤다.
“Nut and nuts!”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술 취한 사람들은 노래를 불러 젖혔다.
“레드 빈이 다 터뜨려 버렸지!”
“Nut and Redsox’s nuts!”
“놈들의 불알은 이제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Nut and nuts!”
“보스턴에 고자들이 득시글댄다지!”
“Nut and-nuts!”
“워후!”
아리는 ‘워후!’ 하고 외치고는 추운지 몸을 덜덜 떨면서 자리에 앉았다.
11월 새벽이면 추울 만도 하지.
“몸조심해야지. 임산부가 그래도 돼?”
“응.”
사람이 왜 이렇게 해맑아?
“임산부가 그렇게 예뻐도 돼?”
“물론이지!”
우리는 한 시간가량을 돌아다녔다. 취객들 보는 재미로.
이대로 내 집으로 함께 돌아가고 싶었지만 개빈도 그렇고 우리 부모님도 그렇고.
아리를 집에 데려다준 후,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진한 키스 후 헤어졌다.
3□3: 으아아아아아아!
얜 뭐 밤새도록 이 난리야.
3□3: 초소형 포수는 내일 아침 식사 중에 샷건을 맞으리라!
하지만 요정의 저주는 통하지 않았다.
아침 식사는 의외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고-개빈이 나와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딘가로 고개를 돌리긴 했다. 아마 샷건을 보관해 둔 장소인 것 같다-, 거기서 우리는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저, 아리랑 결혼할까 해요. 다들 아시겠지만 아리 배 속에 아이가 있어요.”
바바라는 아리가 임신한 것을 얼마 전에 눈치챘다고 한다.
아리는 바바라에게도 개빈을 위해 월드시리즈가 끝나고 말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 아리의 임신 사실과 결혼 계획을 털어놓았으니.
결국, 여기서 개빈만 몰랐던 거다.
“음. 뭐라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아리가 결혼을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지만, 축하해 주고 싶어요. 이리 와, 아리.”
바바라는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면서 울었고, 아리와 나를 차례로 안아 주었다.
개빈은 못마땅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눈에 힘을 줬다.
하지만 아리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아빠’라고 말하자 결국 진한 눈물을 터뜨리며 아리를 안아 준 후, 내게 말했다.
“아리를 힘들게 만들면 죽여 버릴 거야.”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보면서 황급하게 말했다.
“물론, 안 그러겠죠. 은유적인 표현입니다.”
아버지는… 하.
아버지…….
“제 못난 아들 놈을 가르쳐 주시고 도와주시고 이제 이렇게 거둬 주시기까지… 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들 놈이 댁의 따님을…….”
뭐.
어쩌겠어요.
아버지의 말은 수습이 안 되니 나는 개빈에게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개빈, 전 개빈이 가장 부러웠어요. 제 인생 목표는 개빈 같은 가정을 꾸리는 거예요.”
“반드시 그래야 할 거야. 안 그랬다간…….”
개빈이 툴툴대고 내가 달래 주는 건 안 통했지만, 이 미묘한 분위기는 아리가 개빈에게 말을 걸 때마다 풀려 버렸다.
ㅇㅅㅇ: 이 정도면 딸 바보가 아니라 딸 븅신…….
어허.
내 장인어른에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요정 놈.
천벌을 받을지어다.
ㅍㅅㅍ: 내 편은 어디에도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