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Plate's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2)
홈플레이트의 빌런-363화(363/363)
< 363화 I love Phillies (2) >
<1>
개빈은 내가 아리랑 결혼하려 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했다.
“제기랄. 틈만 나면 결혼 이야기를 하는데 그걸 모를 놈이 어디 있어?”
하지만 임신까지는 몰랐다고.
“빌어먹을. 나 빼고 다 알았다니.”
어쨌든 변한 것은 없다. 개빈이 내게 투덜대긴 하지만, 나와 개빈의 사이는 아마 조금 지나면 예전처럼 돌아올 것이다.
우리는 선수단 가족 파티에서 나와 아리가 결혼하기로 한 것을 밝혔고, 모두 우릴 축하해 줬다.
아직 어떻게 하겠다고 정확히 나온것은 없지만, 그거야 뭐.
그게 중요한가? 나와 아리가 결혼하기로 한 것이 중요하지.
“저놈은 뭐가 됐든 항상 앞서 나가.”
“괜찮아, 저러다 우리 중 제일 빨리 죽을걸.”
“메츠 선수가 유니폼 뒤에 총을 숨겨 올 수도 있을걸.”
“이봐, 빈. 내년부턴 방탄복을 유니폼 아래에 입고 경기에 나가!”
케이스와 에이머는 시기와 질투로 가득 차서 내게 거의 저주를 내리다시피 했다.
뭐, 다 괜찮았다.
주머는 맥주로 샤워하다시피 했고, 이제 선수가 아니니 맘대로 마셔도 된다고 소리친 개빈이 거들었다.
올해는 끝났지만, 야구는 계속된다.
아마도.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지독한 곳이다.
필리스는 역사상 가장 강한 팀이고, 앞으로 더 좋아질 팀이지만.
누군가는 여길 떠나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강제로 떠나야할지도 모른다.
여기서 뛸 수 있는 선수는 25명뿐이다.
누군가 말한 대로 켄트가 떠날 수도 있고, 진이 다른 곳과 초대형 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이 팀의 새로운 스타가 될 수도 있겠지.
괜찮은 실력임에도 불구하고 선발 자리를 따내기 힘든 로빌이나, 여러 포지션을 전전하는 폴은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뛰고 싶을지도 모르고.
코난? 시즌 내내 거의 존재감이 없었던 그는 몇 달 후면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뛸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는 그런 곳이니까.
난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이 팀엔 이상할 정도로 죽이 잘 맞는 선수들이 모여 있지만, 항상 이런 팀에서 뛸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언젠간 이 좋은 사람들과 흩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울적해지지는 않는다.
ㅇㅅㅇ: 이미 울적해질 대로 울적해져 놓고는.
ㅍㅅㅍ: 센 척하지 마라, 초감수성 포수.
…티 나냐?
오늘 낮에 필의 전화를 받았다.
그는 내게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 팀에서 뛰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곳에서 중요한 선수로 인정받는 것도 괜찮다고도.
어쩌면. 아니, 아마도.
내년 봄이 다가오면 이 멤버 중 바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테지만, 우린 모두 올해를 함께 보낸 이 구성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자, 시끌벅적하던 파티장에서 가장 말이 많던 스캇이 소리쳤다.
“헤이! 이봐요! 필리스의 슈퍼 빌런이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한마디 들어보죠!”
저 양반은 정말.
이미 술에 취해 있는 라이언이 휘파람을 불고, 개빈이 낮은 목소리로 ‘우리 모두에게 트래시 토크를 하려는 건 아니겠지.’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의 이목이 내게 쏠렸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ㅇㅅㅇ: 이 모든 것은 요정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 덕분이니…….
…닥쳐.
나는 내 옆에 앉아서 웃고 있는, 흰색 드레스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아리의 어깨를 감싸고 잔을 들어 입을 열었다.
“별다른 말이 필요하겠어요? 내년에도 우승할 건데 뭐. 음. Hell yeah.”
짧은 야유가 쏟아졌고, 나는 웃고는 선수들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일단 감사해요, 개빈.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 개빈 덕분입니다. 이제 가족이 될 테니 우린 평생 함께하겠죠. 개빈이 나중에 감독이 돼서 절 방출하지만 않는다면요.”
“젠장. 다른 팀으로 가면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갈 거다.”
개빈의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 개빈은 술 탓인지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내게 0.1초 정도 웃어 보였다.
언제 그랬냐는 듯 곧 인상을 썼지만.
“그리고 쇼, 당신은 최고였어요. 30승 투수로 만들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괜찮아. 구단의 세이버메트리션들이 승리 수는 연봉 산정에 적게 반영하거든!”
언제나 쿨한 사람. 퍽킹 명경지수중에서 유일하게 좋아하는 사람. 승리를 날려 먹어도 절대 화내거나 하지 않았지.
“진, 내년에도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제 뒤에 없으면 전 볼넷만 500개 정도 얻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당신이 아니면 에이머에게 퍽킹 애송이라고 말해 줄 사람이 없잖아요.”
“주머, 전 제 첫 경기를 잊이 못할거에요. 솔직히 처음엔 그냥 주정뱅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음. 이미 만취해 있군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주정뱅이에요. 그리고 최고의 1루수죠.”
주머는 내 말이 뭐가 웃긴지 배를 잡고 웃었다.
나는 팀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ㅍㅅㅍ: 뭐 이리 혀가 길어?
그래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내 말이 끝나길 기다려 줬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감수성이 터져 버린 것 같기는 한데.
그리고 마지막.
“에이머.”
일부러 마지막에 불렀다.
에이머는 뭔가 기대하는 눈치… 이럴 땐 또 산통을 깨 줘야지.
“넌 천재야. 뭐든지 할 수 있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겠지.”
“흠.”
에이머가 만족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지.”
“흠?”
“내가 말한 ‘뭐든지’에서 날 이기는 것은 예외야. 그건 아마 절대 불가능할걸?”
“젠장. 저 먼저 들어가 볼게요.”
“어디 가게?”
“스윙 연습 하러!”
<2>
2년 연속 월드시리즈에서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의 강자들을 상대로 우승하며 최고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필라델피아는 우승 퍼레이드 때 또 한 번 들썩였다.
선수단 대표로 나선 개빈 폴체스키는 이번엔 울지 않았지만, 그가 멋지게 소리를 치고 있을 때 앉아서 대기하던 필리스 선수들은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언제 눈물을 터뜨릴까?”
“하도 많이 울어서 이제 눈물이 안나는 거 아냐?”
“오, 그런가?”
개빈은 왼손에 낀, 커다랗고 반짝이는 우승 기념 반지를 팬들에게 보여 주며 자랑했다. 그 반지를 누구보다 원했으면서도 ‘월드시리즈 우승 정도는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는 거 아니냐’며 거들먹거리면서. 한참을 떠든 개빈은 다음 순서로 홍빈을 호명했다.
“다들 이 친구를 보러 왔을 겁니다. 100% 시즌 MVP이자 포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받을 것이며, 월드시리즈 MVP를 2년 연속 수상할 것이 분명한…….”
“Whoooooooooooo!”
“R-E-D-B-I-N-!”
“Nut and nuts!”
개빈은 악당처럼 웃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젠장. 맞아요, 그 친구. 그리고 이 꼬마는 제 fucking 예비 사위죠.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여러분의 포수를 소개합니다.”
개빈의 지명에 무대로 올라온 홍빈의 첫마디에 필리스 팬들은 열광했다.
왜, 스포츠 팬들은 별것 아닌 한마디에 흥분하고 행복해하지 않는가.
“I love you, Phillies.”
필리스를 사랑한다는 홍빈의 그 한마디는 필리스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제 고작 2년 차.
하지만 팀은 이끄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팀 최고의 선수나 최고의 포수 같은 타이틀을 붙여도 부족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팀을 사랑한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3>
2030 시즌이 모조리 끝난 후, 각종 시상식은 필리스 선수들의 독차지나 마찬가지였다.
시즌 MVP, 홍빈(PHI).
사이 영 상, 짐 플로렌스(PHI).
신인왕, 케이스 에이블(PHI).
홍빈은 챔피언십시리즈 MVP와 월드시리즈 MVP를 동시에 수상하기도 했고, 행크 애런 어워드까지 섭렵했으며, 포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도 ‘당연히’ 독차지했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의 WAR를 기록한 선수에게는 절대적으로 당연한 일이었으며, 만장일치 MVP 수상도 마찬가지였다.
주전 멤버 중 상당수가 골드글러브 혹은 실버슬러거에 선정되는 영광도 누렸다.
케이스 에이블은 신인왕과 함께 2루수 골드글러브에 선정되었고, 에이머 시나는 MVP 3위에 이어 유격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동시에 차지했다.
진 테프먼은 실버슬러거, 주머 데이비스는 골드글러브, NL 신인왕 3위로 뽑힌 홀든 레시글리아스도 골드글러브를 차지했으며, 라이언 필로우도 골드글러브 3루수가 되었다.
[2030 골드글러브ㆍ실버슬러거 수상자.]└어째서 켄트 롱이 GG를 받지 못한 거지? 장난해?
└케이스, 라이언, 홀든이 실버슬러거를 못 받은 건 음모가 아닐까.
└이건 아주 장난 같은 일이야. 데이비스를 빼먹지 마. 그는 최고의 공격력을 갖춘 좌타자라고!
물론 필리스 팬들은 그 결과가 성에 차지 않았지만 말이다.
홍빈과 아리아나의 결혼식은 카리브해의 작은 섬에서 열렸다. 가까운 사람들만 초대한 이 결혼식에 필리스 구단주는 전용기를 기꺼이 제공했으며, 필리스의 25인 로스터에 든 선수들-물론 피오 고슬랭도!-은 전원 참석 해 둘의 결혼을 축하했다.
둘은 한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달로 신혼여행을 가는 계획도 세웠지만, 임산부에게 우주여행은 위험하니까 다음으로 미루고.
<4>
구단에서는 홍빈과의 장기 계약을 원했다.
짐, 로즐, 에이머, 케이스 등 시즌중에 대활약을 펼쳤던 어린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홍빈의 에이전트 그루 T. 심슨은 자기 고객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15년 600M의 계약서를 걷어차야만 했다.
잔여 서비스 타임을 생각하자면, 그리고 15년 계약은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기 계약서인데도.
구단 측에서는 오히려 금액을 올려 줄 생각을 하고 있다가도 홍빈의 강력한 거절 의사에 부딪혀 내년을 기약하게 되었다. 앞으로 2030시즌만큼의 성적을 더 기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사람들은 홍빈의 장기 계약 거절이 좋지 못한 판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굳이 최저 연봉을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 홍빈은 열정을 잃고 싶지 않다며 대답했지만, 사실 누구도 납득시키지 못한 답변이었다. 개빈 폴체스키도 그 결정을 두고 ‘넌 정말 제대로 미친놈’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니.
[FA 자격을 얻은 O.J.레이튼, 필리스 구단 측과 접촉 정황.] [필리스, 켄트 롱 트레이드 후 O.J.레이튼 영입?]한편, 메이저리그 구단 중에서도 손꼽히는 빅마켓 중 하나인 필리스는 구단주가 아낌없이 돈을 풀었다는 소문을 뿌리고 다녔다.
켄트 롱도 좋은 타자지만 O.J.레이튼이라면 올해 MVP 투표 4위에 오른 특급 선수. 게다가 나이도 이제야 28세가 되었을 뿐이다.
기자들 사이에는 필리스가 진 테프먼을 눌러 앉히고 우익수 자리에 레이튼을 넣은 후 모든 준비를 끝낼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일각에서는 진 테프먼의 나이와 차후 젊은 선수들의 고액 계약에 대비해, 진을 내보내고 그 자리를 레이튼으로 채울 계획일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으나.
[필리스, 진 테프먼과 O.J.레이튼 FA 계약 완료!] [7년 2억 4천만 달러 계약 O.J.레이튼. ‘필리스라는 팀이 궁금했을 뿐이다. 파이레츠에서 보낸 시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33세 외야수 진 테프먼, 4년 1억 5천만 달러 계약. ‘그냥 이 팀에 남고 싶을 뿐이다. 여기서 은퇴할 예정이고, 그저 계약이 완료되어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누가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얻는것을 마다하겠는가.
O.J.레이튼의 계약은 염가 계약이라는 말도 나올 정도고 다른 팀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레이튼 본인이 필리스행을 강력하게 희망했다는 후문.
그리고 진 테프먼은 계약 직후 홍빈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다.
“메츠에서 6년 2억 5천만 달러를 준다더군.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메츠에 가서 필리스랑 만나면 빈이 나한테 fuck you라고 하겠지?”
-저런. 메츠만 아니었더라도 안 그럴 텐데, 메츠라면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겠죠.
“그래서 안 간 거야.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 법이지.”
오는 사람이 있으면 가는 사람도 있는 법.
필리스는 켄트 롱과 코난 마이어, 로빌 지오클을 내보내고 몇 명의 유망주를 수혈했다.
필리스 팬들은 켄트 롱이 떠난 것을 슬퍼했고, 로빌 지오클이 팀에서 더 큰 역할을 할 거라며 단장을 욕하기도 했고, 전문가 혹은 기자들도 조금 성급한 판단이 아니었나 하고 의문을 제기했지만.
홍빈은 달랐다.
‘다른 선수들은 그렇다 치고, 데니스 쉬버? 이 미친 단장, 혹시 회귀자 아냐?’
<5>
에이머는 절치부심했다.
겨우내 타격 메커니즘 향상을 위해 애썼고 장타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웨이트트레이닝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했다.
그의 목표는 오로지 홍빈을 뛰어넘는 것.
그리고 애인도 생겼다.
“어제 진이랑 카페에 갔는데 말이야. 딱 그런 분위기더라고. 여자들이 환장하는. 너 같은 놈은 그런 덴 못가 보겠지만.”
“뭐? 진? 진이랑 그런 관계였어?”
“제기랄. 케이스, 진 테프먼 말고 지니 앨리스 크리스티. 내 여자 친구 이야기하는 거야.”
“내가 네 여자 친구 이름까지 알아야 해? 처음부터 똑바로 말했어야지.”
에이머는 모든 면에서 홍빈을 따라가고자 했는지, 4살 연상인 모델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아이도 생겼다.
“넌 뭐든 빈보다 늦는군.”
“그리고 너보단 항상 빠르지.”
“글쎄. 난 널 따라가려고 애쓰지 않는데.”
“…….”
“빈을 열심히 따라가 봐.”
“…제기랄. 얼간이 케이스.”
“뭐? 네가 똑딱이라 잘 안 들리는 것 같아. 다시 말해 줘.”
“Asshole!”
그런 면에서는 어쩌면 로즐도 마찬가지.
로즐은 삼촌인 기욤 페르난데스에게 오프시즌 내내 지도를 받았다.
종종 문제가 되는 실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구 메커니즘을 일정하게 유지하려 노력했고, 그 과정에서 투심을 장착하기도 했다.
“이러면 짐을 이길 수 있을까요, 삼촌?”
“크흣흣흣! 조카야! 그건 네게 달린 일이지! 세계 최고의 코치가 널 가르쳐 주는데, 못하면 그게 코치 잘못이겠느냐! 흣훗훗핫하!”
그리고 여기.
필리스의 우승에 도취해 모두가 잊고 있을, 또 다른 만년 2등.
“헤이, 폴. 요새 너무 웨이트트레이닝만 하는 거 아냐?”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포수 폴 대븐포트.
2029년 신인왕 2위, 2030년 올스타전 포수 득표 2위(사상 최대 격차), 2030년 포수 실버슬러거 투표 2위, 2030시즌 포수 한정 홈런 2위, 타점 2위, 타율과 장타율 모두 2위 등.
“홈런을 늘려야 해.”
그의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대체 왜 저 아시안이 자기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홈런을 칠 수 있는지.
다른 건 몰라도 홈런에서만큼은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는 겨우내 홈런 능력 향상을 위해 애썼다.
신체 밸런스가 무너져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맞이하게 되겠지만.
<6>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필리스가 지난해처럼 엄청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가에 쏠렸다.
리드오프에 눈을 뜬 케이스 에이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다재다능하고 강력한 2번 에이머 시나, 역대 최고의 선수임을 증명한 홍빈.
팀에 잔류하며 여기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한 필리스의 원조 해결사 진 테프먼과 필라델피아로 합류한 30-30 해적 선장 O.J.레이튼 그리고 어디서나 제 몫을 다하는 주머 데이비스.
O.J.레이튼을 우익수로 밀어낼 정도로 출중한 수비력에 빠른 발과 한방을 보유한 홀든 레시글리아스와 3루의 통곡의 벽이자 장타에까지 눈을 뜬 라이언 필로우.
백업 자원에도 폴 데이먼이나 크리스 헬로웨이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고, 코난 마이어가 떠난 내야 유틸리티 자리는 작년 확장 로스터에서 가능성을 보여 준 나단 리바이가 맡게 되었다.
선발 로테이션?
“필리스는 2031시즌에 주전 야수 절반이 부상당하더라도 지구 1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짐 플로렌스, 로즐 펠리시다드, 브래들리 쇼 주니어, 맷 블러, 거프 로저스… 이 팀보다 강력한 로테이션을 구축한 팀은 없습니다. 하나 전제 조건이 있다면, 홍빈이 부상당하지 않는 거죠!”
불펜도 지난 시즌보다 더 좋아질 거란 전망이었다.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구위를 증명한 보리스 켄달이 그때의 모습을 재현할 수 있다면, 셋업맨이 된 그레이 밴델튼이 상실감을 느끼기보다는 부담감을 덜 수만 있다면.
악재가 없다면 필리스는 월드시리즈 우승 후보 0순위라는 평이 대다수였고, 시즌이 시작되자 필리스는 실제로도 여전히 강력한 모습을 선보였다.
[2031 개먹작 필라델피아 필리스, 뉴욕 메츠를 17 대 1으로 꺾으며 화력 과시! 홍빈 6타점, 짐 플로렌스 8이닝 14K!] [필리스, 개막 시리즈 2차전. 메츠를 지옥으로 밀어 넣다. O.J.레이튼 2홈런 4타점, 로즐 펠리시다드 9이닝 15K로 한층 좋아진 모습. 필리스의 14 대 0 완승.] [뉴욕 메츠, 세 경기 만에 40실점 돌파. 브래들리 쇼 주니어의 7이닝 2실점에 이어 시즌 첫 번째 선발 전원 안타. 11 대 2 승리.] [보리스 켄달, 내셔널스를 상대로 2경기 연속 세이브! 필리스, 약점없는 전력을 자랑하다!]필리스는 기세를 끝도 없이 올렸고, 순풍에 돛이라도 단 듯 숭항했다.
시즌 중반쯤 짐 플로렌스가 한 달가량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로즐 펠리시다드가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팀을 이끌었고, 선발 대체로 올라온 마이너리거가 2.1이닝 8실점으로 무너진 날 타선이 폭발해 15 대 13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홍빈은 시즌 중에 여전히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유명해지고 싶은 어린 선수’가 홍빈에게 헤드샷을 날렸다가 곤죽이 되어 실려 나가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홍빈 룰(Ⅱ)’을 적용시켜 홍빈에게 평균보다 적은 징계를 내리곤 했다.
홍빈 룰(Ⅱ)은 투수가 고의로 타자를 부상시킬 가능성이 있는 빈볼을 던졌을 때, 타자가 보복하더라도 징계 수위를 낮추는 룰이다. 배트플립과 같은 세리머니를 권장해 야구의 인기를 높이겠다는 것이 목적이고, 여전히 많은 반발이 있지만, 해당 룰 시앻 이후 배트플립 빈도가 확연히 증가하고 빈볼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참고로 홍빈 룰(Ⅰ)은 한 경기에 한 타자에게 고의 사구를 단 한 번만 허용한다는 규칙으로, 이 또한 지나치게 경기가 루즈해진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7>
개빈 폴체스키는 2031시즌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개빈은 이 팀에서 시작된 커리어를 코치로서 이어 나가는 것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고.
“오, 개빈 폴체스키! 투수가 레드 빈의 머리를 맞히자마자 가장 먼저 달려 나옵니다! 이런! 레드 빈이 마운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가 투수를 집어 던져 버리는군요!”
…굉장히 여러 가지 의미로 자신이 사랑하는 이 팀에서의 코치 생활을 즐겼다.
코치가 벤치 클리어링에 참여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그리고 코치는 출장 정지 징계를 당하더라도 훈련장에서 할 일을 하면 된다. 필리스 선수들은 누구나 개빈을 존경했고, 그는 밖에서 보기보다 훨씬 더 똑똑한 사람이기에 코치 역할을 수행하는 데도 모자람이 없었다.
게다가 개빈 폴체스키는 단 한 번도 퇴장이나 벌금 따위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다.
그의 후계자이자 사위가 된 홍빈과 마찬가지로.
<8>
아리아나는 7월 초에 딸을 출산했다.
언제나 흐트러지지 않고 밝은 모습이었던 그녀는 예정일보다 빠르게 진통이 찾아온지라 경기 시작 직전에 병원을 찾아온 남편에게 소리를 쳤다.
소식을 들은 홍빈이 병원을 찾는데에 고작 30분이 걸렸지만, 그사이에 폭풍처럼 출산을 마친 채!
“자기! 오늘은 내가 자기 대신 홈런을 쳤어! 우리 딸을 좀 봐!”
그리고 5개월 뒤, 에이머 시나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은 여자 친구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
<9>
홍빈은 괴물 같은 시즌을 보낸 이후, 확연하게 전략을 세우고 들어오는 투수들과 또 다른 승부를 벌여야만 했다.
“또 볼넷이군요. 이러다가 정말 2004년 배리 본즈의 232개를 넘어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타격 기회 자체가 지나치게 줄어 버린 탓에 지난해만큼의 홈런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
하지만 진 테프먼, O.J.레이튼, 주머 데이비스 같은 강타자가 홍빈의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지라 홍빈을 거른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타를 하나라도 더 때려 내야 하는 홍빈의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 못한 일이었지만, 기다리고 인내하면 또 다른 기회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홍빈은 참고 또 참으며 기다렸다.
결국, 홍빈이 원했던 ‘왕조’ 그 이상 수준의 팀이 건설된 이상, 메이저리그 팀들이 언젠가는 홍빈을 거르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테니까.
<10>
홍빈은 홈런과 안타 숫자에서는 지난 시즌보다 못한 기록을 보였지만, 239개로 단일 시즌 최다 볼넷 기록을 수립한 데다가 비율 스탯으로는 지난 시즌과 비슷하거나 상화하는 기록을 작성했다.
역대 최다의 볼넷을 기록한 만큼 2004년 배리 본즈의 0.609를 넘어서는 0.615의 출루율을 기록.
투수들이 어지간히도 홍빈과의 승부를 피했기에 홈런은 급감했다 한들, 56개나 기록해 내셔널리그 1위를 차지했다. 타율도 지난 시즌과 비슷한 수준의 0.384를 마크하며 올해 최고의 선수로 뽑히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필리스?
본인들의 기록을 다시 깨는 데는 실패했지만, 116승을 거두며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와일드카드 싸움에서 승리한 마이애미 말린스를 3승 0패로 꺾고 올라가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만났다.
내셔널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포수와 그다음으로 뛰어난 포수-비록 차이는 심각하지만- 간의 맞대결로 주목받은 이 시르즈에서 필리스가 4승 1패로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을 확정 짓는 동안, 홍빈은 무려 9개의 홈런을 쏘아 내며 자이언츠를 초토화시켰다.
시즌 초반 지나친 근력 운동으로 밸런스를 잃었다가 후반기에 그나마 살아나 자존심을 지킨 폴 대븐포트는, 이 시리즈에서 2홈런 5타점으로 활약했지만 홍빈과 또다시 비교당하며 ‘그래 봤자 2등’이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1>
지난 시즌 돌풍의 팀이었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더는 이변의 팀이 아니었다.
한층 성숙해진 3인방을 중심으로 시즌 내내 파괴력 넘치는 행보를 보인 애슬레틱스는 디비전시리즈에서 레드삭스에게 복수했고, 챔피언십시리즈에서 인디언스를 무너뜨리며 필리스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엄청났다.
두 팀을 끝도 없이 치고받으며 3 대 3인 상태로 7차전을 맞이했고, 그 경기에서도 5 대 5 동점으로 10회 말을 맞이했다.
그리고 개빈 폴체스키는 타석에 나가는 홍빈에게 소리쳤다.
“빌어먹을 꼬마! 여기서 끝내기 홈런을 치면 내 딸을 훔쳐간 것을 용서해 줄게!”
“아직 그 얘기에요? 애니 낳아 줘서 고맙다고 용서한댔잖아요!”
“제기랄! 그건 그거고! 가서 홈런이나 쳐!”
그리고 홍빈은 정말 끝내기 홈런을 쏘아 올렸고,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고 개빈에게 달려갔다.
“장인어른! 이제 다시는 그 이야기 하지 마요!”
“그러니까 쟈니 아론이 누구냐고!”
<12>
야.
ㅇㅅㅇ: 왜.
고맙다.
ㅇㅁㅇ: ……?
그냥 뭐, 이게 다 네 덕분이니까.
8ㅅ8: 흥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줄 알고.
아니. 정말로.
그냥 네가 없었으면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란 걸 알고 있어.
한국에서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폐인처럼 지내다가 방출된 후, 연고도 ㅇ벗이 싸늘한 방바닥에서 고독사했을 지도 모르지.
8ㅁ8ㅣ 그렇진 않았을 것이다.
8□8: 본인을 너무 평가절하하지 마라, 똥멍청 포수 놈아!
그 정돈 아니라도…….
부모님도 다시 못 만났을 것이고, 아리도 못 만났을 테고, 애니도 없을 테지.
어쨌든, 정말 고맙다. 진심으로.
네 정체가 뭔진 정말 모르겠지만, 네가 뭐든… 음. 요정이든 악마든 뭐든 간에 넌 내 가족이다. 알지?
(இ~~இ`。): 그, 그런 말 하면 누가 기뻐할 줄 알고!
음. 뭐, 기뻐하라고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내가 생각하는 그대로니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파트너.
8ㅅ8: 흥.
아니, 파트너라니까 뭔가 정 없어보이네.
고맙다, 친구야. 앞으로도 잘 부탁할게.
8□8: 잘 부탁 해보시든가 말든가!
8□8: 엣헴!!! 요정님은 이제 쉬어야겠다!!!
<숨은 그림 찾기>
감독: 개빈 폴체스키.
수석 코치: 샘 이델.
투수 코치: 브래들리 쇼 주니어.
타격 코치: 진 테프먼.
수비 코치: 라이언 필로우.
<본편 완결 후기>
안녕하세요, 이블라인입니다.
어쨌든, 본편은 이걸로 완료되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한 것은 아닌지 혹은 보여 드리지 못한게 많은 게 아닌지 걱정되지만…….
어쩌면 저 스스로도 이 이야기를 끝낼 준비가 안 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2부 격의 이야기는 개빈 폴체스키가 감독이 된 이야기로 이어서 연재할 생각입니다.
1주일만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립니다.
진정한 후기는 개빈의 이야기까지 모두 끝난 후 작성하고자 합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요.
감사합니다.
곧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