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a Part-Timer Raises a Half-Elf RAW novel - Chapter (245)
알바생이 하프 엘프를 키우는 법-245화 (완결)(245/245)
245
늘 가끔가다 한번씩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미래의 자신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 날이 만약에 찾아온다면, 과연 그 결혼식장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정말로 아주 가끔가다 문득 들었던 의문. 유년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 까지 줄곧 독신주의였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한번 씩은 상상해보곤 했었던 만약의 미래.
이한성은 단 한번도 미래의 자신이 결혼하는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결혼식이라는 것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었으니까.
집도 없고 변변찮은 직업도 없고 학력도 없는 놈과 결혼을 해줄 여성이 있을리가 없을뿐더러 살면서 결혼식에 초대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한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별로 상상력이라는 것이 풍부하지 않았던 이한성에게 있어선 더더욱 그랬다.
…라는 것은 스스로에게 했던 변명.
지인도 없고, 친구도 없고, 심지어 가족조차 없는 결혼식. 있는 거라곤 오직 본인 하나 뿐. 꽉 차있을 신부 측 하객석과는 달리, 싸늘하게 텅 비어있는 신랑 측의 하객석.
상상만 해도 스스로가 너무나 비참해지는 듯 했기에 이한성은 늘 결혼식에 대해 문득 생각을 할 때 마다 스스로에게 변명을 늘어놓으며 일부러 상상하는 것을 피해왔다. 어차피 자신과는 연이 없는 쓸데없는 가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라고 생각했던 게 바로 작년 일인데 말이지.”
잠시 옛 기억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겨있던 이한성이 거울에 비친 본인의 턱시도 차림을 바라보며 쓴웃음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누가봐도 30분 후 시작될 예정인 결혼식의 신랑. 평생동안 연이 없을거라고 생각했던 턱시도 복장을 한 채로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스스로를 보고있자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똑똑-]“들어오세요.”
바깥에서 들려온 노크 소리에 이한성은 무기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이내 신랑 측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누구 딸인지 모를 사고뭉치 트러블메이커 소녀들이 소란스럽게 들어왔다.
“아빠악~!!”
“어, 언니 기다려!”
갑작스럽게 대기실 안으로 난입했던 건 다름이 아닌 수정이와 세리였다. 서로 술래잡기라도 하고 있었던 건지 숨을 헐떡이며 들어온 장녀와 차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무슨 일이냐는 듯이 아이들을 향해 물었다.
“뭔데 그렇게 헐레벌떡 달려왔어? 아빠가 시작하기 전 까지 얌전하게 기다리라고 했었잖아.”
“헤헤.”
역시나 말을 안듣고 대기실까지 찾아온 수정이는 이한성의 물음에 배시시 웃으며 한껏 귀엽게 차려입은 드레스를 뽐냈다.
깔끔하면서도 귀여운 연두색 드레스. 그동안 항상 티셔츠에다 반바지만 주구장창 입어왔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귀여운 모습.
“아빠, 나 이쁘지?”
“…글쎄. 이쁜 건 모르겠고 귀엽기는 하네.”
“모야아~! 이쁘다구 해줘어!”
“그 말은 니 엄마한테 할거니까 억지부리지 마.”
발을 동동 굴리며 화를 내는 수정이의 모습에 이한성은 피식 웃으며 수정이의 작은 코를 살며시 꼬집었다. 그러자 수정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이한성의 손을 떨쳐내고는 선심 썼다는 듯이 생색을 내며 대답했다.
“치잇! 알았써, 오늘만 봐줄께.”
“오냐 그래. 감사하다.”
…그래도 아빠 결혼식이라고, 평소와는 다르게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억지를 부리려고 하지는 않네.
평소 같았더라면 바닥을 구르고 방 전체를 냉동고를 만들기 까지 해서라도 기어코 이쁘다는 말을 들으려고 했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피곤해지는 수정이의 억지에 오늘만큼은 수정이가 억지를 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한성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사전에 순서를 맞추기라도 한듯 세리가 끼어들며 말을 걸어왔다.
“쫌생이 아빠. 언니한테 이쁘다는 말 하나 안해줘.”
“….”
…그래. 세리 네가 왜 가만 있나 했다.
제 언니한테 이쁘다는 말 안해줬다고 불쑥 나서며 항의해온 세리의 모습에 이한성은 오늘도 여전하게 언니 바라기인 드래곤 소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곧장 대화를 시도 할 것도 없이 세리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찔렀다.
[콕-]“힉?!”
옆구리를 기습적으로 당해버린 세리는 거의 천장 높이 까지 펄쩍 뛰다시피 하며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역시 뭐니뭐니 해도 이것 만 한게 없다니까.”
“으으으…”
무슨 총이라도 쏜 것 마냥 검지 끝에다 대고 입김을 부는 이한성을 바라보며, 세리는 잔뜩 울먹이는 시선과 함께 제 아빠를 웬수 바라보듯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한가득 울음을 터뜨려버렸다.
“으아아앙!!”
“…어라?”
…쟤 갑자기 왜 운대냐?? 아니, 그렇게 세게 찌른 것도 아니고 아주 살짝 찌른건데 왜 울어??
세리가 특히나 옆구리가 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한번 찌른 것 가지고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약하진 않다. 평소에 최대 열번 까지는 연속으로 찔러야 울기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너무나도 쉽게 울음을 터뜨려버린 세리의 모습에 이한성은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였다.
그러나 그런 이한성의 의문은 금방 풀려버리고 말았다.
“한성이 너 진짜!! 또 세리를 울리면 어떡하니?!”
바로 문 밖에서 부터 화연의 목소리가 들려와 예고도 없이 이한성을 호통치며 다가왔다. 그러자 이에 본능적으로 흠칫한 이한성은 자신은 옆구리를 딱 한번 밖에 찌르지 않았다고 변명을 내뱉으려고 하였으나, 화연의 모습을 본 그는 변명을 할 생각조차 잊어버린 채 할 말을 전부 잃어버리고 말았다.
“….”
왜냐하면 문득 보게 된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순백의 웨딩드레스. 마치 금으로 수를 놓은 듯 찰랑이는 머리카락과, 장인이 한평생 동안 공을 들여 세공한 듯한 푸른 눈동자.
그동안 조금 익숙해져서 잠시 잊고 있었던 화연의 외모를 웨딩드레스 덕에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 이한성은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뇌의 사고가 멈춘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잔뜩 혼을 내고 있는 것 조차 전부 흘려들을 정도로.
“내 말 듣고 있니??”
“어… 어어? 어… 어어.”
“?”
어딘가 고장난 듯한 반응을 보이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잔소리를 하다 말고 잠시 멈칫하며 왜 그러냐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어디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아름다워서.”
“…!!”
두서없이 바로 돌직구로 솔직하게 속마음을 내뱉는 이한성의 기습공격에 화연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확 달아오르며 빨개졌다.
“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거야!”
“엌-”
너무 부끄러웠던 나머지 냅다 정강이를 차버린 화연. 불시에 반격을 당해버린 이한성은 그대로 단마디 비명과 함께 고꾸라지고는 바닥을 뒹굴고 싶은 마음을 꾹 억눌렀다.
“아… 미안. 아팠어?”
발로 차놓고 아팠냐고 걱정하는 화연의 물음에 이한성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에 화연은 잔소리를 하다 말고 미안하다는 듯이 치유마법을 간단하게 걸어주었고, 병주고 약을 받은 이한성은 아직도 고통이 가시지 않은 정강이를 붙잡은 채로 됐다는 듯이 말했다.
“…신부가 결혼식 시작하기도 전에 신랑을 만나러 와도 되는거야?”
“어… 안되나?”
“….”
그렇게 물어보셔도 저는 모릅니다만.
“뭐, 뭐어 괜찮겠지 뭐. 미리 만난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닐텐데 뭘…”
“…물론 그거야 그렇겠다만은.”
이 결혼식, 정말로 괜찮은걸까…? 왠지 불안한 기분밖에 안드는데…
결혼식을 올리는 신랑과 신부라는 작자들이 정작 결혼식에 대해 아는 것이 1도 없다. 생각해보니 참으로 가관이라고 감탄을 내뱉으며, 이한성은 불안으로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
그러자 이번에는 화연이 이한성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넋을 놓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아아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냥?”
“그… 옷,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옷을 칭찬하는 화연. 그렇게 솔직하지 못하게 잘생겼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밖에 내뱉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이한성은 그만 장난기가 발동해버리고 말았다.
“뭐야. 그럼 얼굴은 안어울린다는 소립니까?”
“….”
“이거 참 섭섭하네. 아름답다고 칭찬까지 해준 사람한테 옷만 잘 어울린다고 하다니.”
“너어는 진짜…”
능글맞게 섭섭하다는 척을 하는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은 원망어린 시선을 보내오며 이미 붉어져 있던 얼굴을 더더욱 부끄러움으로 가득 붉혔다.
“…꼭 그걸 말로 꺼내게 만들어야 적성이 풀리니?”
“어. 난 말로 안하면 모르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못됐어 정말.”
능구렁이도 이런 능구렁이가 따로 없다. 결혼하기 전 까지만 했어도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느샌가 아주 훌륭한 한마리의 능구렁이로 성장해 버린 남편에게 잔뜩 얼굴을 붉히던 화연은 결국 마지못해 그가 원하는 대로 입을 열었다.
“…자, 자, 자-”
“자? 안들리는데.”
“….”
이한성이 놀리면서 대답을 재촉했다. 그러자 화연은 그런 그의 놀림에 목구멍에 걸렸던 말을 소리치며 단숨에 뱉어냈다.
“그래 너 잘생겼어!! 됐니?!”
숨까지 헐떡일 정도로 크게 속마음을 외쳐낸 화연.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게 된 그녀였지만, 애석하게도 진정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나도 나빴다.
“어머나.”
“허허허.”
왜냐하면 대기실 문 쪽에서 그런 그녀의 부끄럼 가득한 외침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듣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머니…?”
이한성의 어머니와 송강욱 판사가 문 바로 바깥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버린 화연이가 수치심으로 가득한 얼굴로 그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 둘… 참으로 금실이 좋은 것 같아 다행이구나.”
“누님이 좋은 사랑을 하고계시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요 허허.”
“…!!!”
도망갈 쥐구멍 조차 없이 수치플레이를 당하게 된 화연의 주변으로 급기야 정전기가 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재빠르게 나서서 결혼식장 전체가 정전되어버리기 전에 그녀를 진정시켰다.
“워워워, 심호흡 해 심호흡. 머리 다 망가지겠다.”
“이, 이게 다 너 때문이잖니!”
“아 뭐 어때. 남편보고 잘생겼다고 한게 그렇게 막 부끄러울 일이야?”
“다른 사람 앞에서 하는 건 충분히 부끄러운 일이야!”
600년 쯤 살았으면 이런 걸 가지고는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을 법도 한데 아무래도 이 엘프 신부는 그럴 수가 없는 모양이다.
“누님. 이미 제 앞에서 보일 꼴 못 보일 꼴 다 보이신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러십니까?”
사이가 아주 좋아보이는 이한성과 화연을 지켜보고 있던 송강욱 판사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강욱이 네가 많이 컸구나…?”
“보시다시피 제가 많이 크기는 했지요. 이렇게 오늘 누님의 결혼식에 아버지 역할로 참석하게 됐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화연의 까칠한 경고에 송강욱 판사는 흰 머리가 듬성듬성 돋아난 머리와 주름이 진 얼굴로 그렇게 말을 받아쳤다. 그러자 아주 잠깐이지만 화연의 얼굴에는 쓸쓸함과 슬픔이 일순간 드러났고, 그걸 놓치지 않은 이한성은 재빠르게 농담조인 말로 끼어들었다.
“원래는 너가 송 판사님 결혼식에 어머니로 참석해야 되는 거 아니야?”
“….”
이한성의 말을 듣기 무섭게 화연의 얼굴에서 슬픈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싸늘해진 표정으로 뒤바뀐 얼굴로, 그녀는 이한성을 말없이 째려보았다.
“아. 엄마 화났다.”
“아빠 바보.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나이 얘기 하는 거 아니랬는데.”
수정이와 세리가 이한성을 나무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한성 딴에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일부러 농담을 한 거였지만, 그런 그의 속뜻을 이해하기에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렸다.
“이런 날에 다투면 못써. 좀 있으면 결혼식 시작하는데 다투지들 말고 있으려무나.”
이한성의 어머니가 신부와 신랑을 바라보며 그렇게 둘의 사이를 중재하였다. 그러자 그런 시어머니의 말에 화연은 조용히 시선을 거뒀고, 덕분에 이한성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웅성웅성-]“…그나저나 밖이 많이 소란스러운 것 같은데요?”
대기실까지 들려오는 식장의 웅성거림에 이한성이 의외라는 듯이 그렇게 물었다.
결혼식을 올리게 되긴 했지만 초대한 지인들은 아주 극소수다. 애초에 지인이 별로 없었던 이한성이 초대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가게에서 일하는 해영이와 한스, 그리고 윤재훈과 양예은에다가 편의점의 임사장님 뿐.
신랑측 축객석이 텅 비어버릴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아주 허전할 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던 이한성에게 있어 바깥이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은 정말로 의외였다.
“몰랐어? 사람들이 하도 많이 와가지고 자리가 꽉 찼던데.”
“…네?”
자리가 꽉 찼다는 어머니의 말에 이한성은 순간 자신이 뭘 잘못 들었나 의심하였다.
“아니, 그럴리가…”
이한성 본인이 초대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방금 전에 말했던 다섯 명이 전부. 물론 그 다섯 명 모두가 전부 혼자만 올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리가 꽉 찰 정도의 인원이 모이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불가능하다.
설령 신부 측의 축객들까지 합한다 해도 자리가 반 이상 찰지는 미지수. 물론 화연 쪽의 지인이 훨씬 많기야 하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리가 만석이 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 그거 제가 고아원 아이들까지 전부 초대해서 그럴거예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어리둥절해 하던 이한성의 모습에 화연이 살며시 손을 들어올리며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고아원 애들을 전부 초대했다고?”
“응. 전부. 그야 그 아이들, 뷔페에서 배터지도록 맛있는 거 먹고싶다고 난리였으니까.”
“….”
고아원의 아이들과 스탭들까지 합하면 전부 서른 명 이상. 그렇게 되면 자리가 전부 만석이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애들 생각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인 걸지도.”
수정이 같은 생각을 하는 애들이 더 있었다는 줄은 몰랐다고 말하듯,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지었다.
예상했던 것 과는 다르게 아주 시끌벅적한 결혼식이 된 것 같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곧 시작합니다! 우선 신랑 측 부터 빨리 준비해주세요!”
시간이 다 되었는지 결혼식장 스탭 중 한명이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바쁘게 외쳤다. 그러자 이에 대기실에 있던 모두는 조금 긴장되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인 이한성과 화연은 미소와 함께 조용히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잡았다.
“그럼 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그래. 금방 따라갈테니까 긴장하지 마.”
“긴장은 무슨… 내가 긴장한 것 처럼 보여?”
“떨면서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 없는거 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도 떨리고 있는 이한성의 손끝을 본 화연이 그렇게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이한성은 재빠르게 손을 등 뒤로 숨기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수정아, 세리야, 아빠가 많이 긴장한 것 같으니까 같이 따라가주렴.”
잔뜩 긴장하고 있는 이한성을 위해 화연은 수정이와 세리에게 자그마한 부탁을 건넸다.
“네에~!”
“엄마가 부탁한다면야…”
아빠 말은 죽어라 안들으면서도 엄마 말은 또 꼬박꼬박 잘 듣는 아이들은 아무런 불평도 없이 부탁에 수긍하며 이한성의 양쪽 다리에 들러붙었다. 그러자 그렇게 달라붙은 아이들을 내려다 본 이한성은 귀찮음으로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럼에도 굳이 떨어뜨려 놓을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조용히 인사하며 대기실을 나섰다.
“나 간다.”
“응. 기다려 줘.”
어차피 금방 또 만나게 될 텐데 긴 인사는 필요없다. 그렇게 두 남녀는 짧막한 인사를 주고받은 채 헤어졌고, 신부를 뒤로한 채 먼저 발걸음을 옮기게 된 신랑은 두 아이와 함께,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복도를 지나 식장 바로 앞까지 걸었다.
아직 시작하지 않아서인지 식장에 가까워질 수록 시끌벅적함은 점점 커져갔다. 정말로 어머니가 말씀하셨듯이 자리가 꽉 찼다는 것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던 이한성은 저도 모르게 이미 가득 차있던 긴장감이 터질려고 하는 것을 느끼며 조금 쓰려오기 시작한 위장을 쓰다듬었다.
…청심환이라도 먹고 올 걸 그랬나.
살면서 본인 스스로가 긴장을 많이 타는 체질이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막상 수많은 사람들 앞에 서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나서야 자신이 긴장을 많이 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이한성은 그런 사실을 말없이 속으로만 인정하며 덜덜 떨리고 있는 손끝을 애써 주머니에 집어넣어 숨겼다.
“곧 시작할 것 같으니 나 먼저 들어가 있으마.”
“네. 먼저 들어가 계세요.”
조심스럽게 식장의 문을 여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이한성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렇게 대답하였다.
본래라면 양가의 어머님들이 개식사 후에 입장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애석하게도 신부 측에 어머니를 맡으실 분이 계시지 않았기에 부모님들의 입장은 생략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셨던 이한성의 어머니셨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건 아쉬우셨는지 어머니는 조용히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서신 채로 턱시도를 입은 아들에게 나지막히 말씀하셨다.
“한성아.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건 알지만…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말씀에 이한성은 잠시 긴장하는 것을 잊은 채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살면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못해주신 것이 많으신 어머니. 아직도 본인 스스로가 죄가 많다고 여기시는 어머니.
앞으로도 어머니는 그런 죄책감을 마음 속에서 지우시지 않으실 것이다. 아마 평생동안 그런 마음을 짊어지신 채로 살아가시겠지.
하지만, 그런 죄책감을 조금은 덜어도 괜찮지 않을까.
“…저도 알아요. 제가 자랑스럽다는 거.”
조금 뻔뻔하게, 잘난척 하듯이 이한성은 그렇게 어머니께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의 눈시울은 잠시 붉어지셨고, 그렇게 어머니는 그걸 감추시려는 듯 성급하게 식장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렇게 주변에는 잠시 훈훈한 분위기가 흐르는 듯 하였지만, 그런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빠 왜 잘난척 해?”
“재수없어.”
“….”
할머니를 따라 식장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고 옆에 남아서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한 아이들 때문이었다.
“…니들도 결혼식 시작하기 전에 빨리 들어가지 그러냐??”
“시른데?”
“우리가 왜?”
곧 있으면 시작할텐데 안 들어가겠다는 수정이와 세리의 대답에 이한성은 얼탱이가 없다는 듯이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또 왜 이래.
잠잠하다 싶었더니 또 말을 안듣는다. 아까 엄마 부탁은 잘만 들어줬으면서 아빠 말은 지지리도 안들으려고 하는 두 사고뭉치 자매의 모습은 그야말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더욱 황당했던 건 이어지는 수정이와 세리의 발언이었다.
“우린 아빠랑 같이 들어갈껀데?”
“언니가 그런다면 나도 그럴건데?”
신랑인 아빠 옆에 딱 들러붙어서 같이 입장하겠다는 수정이와 세리. 고집 불통인거야 평소에도 그랬지만 하필이면 이런 날에 고집을 부려도 이런 식으로 고집을 부리려 드는 두 아이의 억지에 이한성은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에휴, 그래. 맘대로 해라 이 웬수같은 딸내미들아.”
이미 시작한 모양이고 어쩔 수 없나…
안쪽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사회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한성은 제 시간 안에 두 아이의 고집을 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졸지에 자식 둘을 데리고 결혼식에 입장하게 생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기로 한 그는 될 되로 되라는 듯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며 안쪽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참으로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한성은 사회자가 하는 말의 대부분을 듣기만 할 뿐, 뇌를 거치지도 않은 채 다른 쪽 귀로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차례 뿐. 사회자가 하는 농담이나 연설 같은 건 그닥 관심이 없었다.
“그럼 신랑, 입장!!”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회자의 말이 울려퍼짐과 동시에 이한성의 차례가 찾아왔다.
“…가자.”
이한성은 나지막히 그렇게 속삭이며 식장의 문을 열고 아이들의 손을 잡은 채로 입장하였다.
식장 내부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애초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올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큰 곳으로 준비하지 않은 것이 그 이유였다.
…진짜 많이도 왔네.
입장 하기 무섭게 눈가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로 빼곡하게 가득 차있는 자리들. 조명이 어두워 하나하나 전부 누군지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럼에도 익숙한 얼굴 만큼은 확실하게 눈에 띄었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해영이와, 그런 해영이의 옆에서 건성건성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한스.
함께왔는지 나란히 자리에 앉은 채로 축하의 박수를 건네주고 있는 양예은과 양혜미 교사와 그런 두 자매의 옆에서 서로 투닥거리고 있는 하나와 정우.
또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모를 강수철 교수와, 그 옆에서 가족과 함께 머쓱하게 인사하는 임 사장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전히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감으로 축하를 보내오는 윤재훈… 아니, 윤재혁 씨와 최민석 상담사를 포함한 고아원 사람들, 또한 임수아 같은 화연의 대학 친구들도 있었다.
…좀 더 넓은 식장으로 준비해 둘 걸 그랬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 몰랐던 이한성은 그렇게 속으로 조금 후회하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아빠아빠! 사람들이 엄~청 많아!!”
“으으…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어지러워…”
이한성의 손을 잡은 채 꼬옥 붙어있던 수정이와 세리가 저마다 판이하게 다른 반응을 내보이며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의 존재를 그제서야 눈치챘는지, 사회자는 감탄사와 함께 마이크를 잡고 떠들었다.
“어이쿠야~ 이거, 놀랍군요? 신랑이 아이들과 함께 입장을 했습니다!”
“…박태식 교수님?”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사회자를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왜 있는지 모를 박태식 교수가 스테이지 위에 마이크를 잡은 채로 신난 얼굴과 함께 서있었다.
저 사람이 왜 저깄대?? 아니, 저깄는 건 둘째치고 왜 자연스럽게 사회자를 하고 있는 건데???
생각치도 못한 사회자의 정체에 너무 황당했던 나머지 입장하다 말고 멈춰설 뻔한 이한성은 얼굴에다 물음표를 가득 띄우며 박태식 교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아빠를 너~무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자, 신랑의 사랑스런 따님들을 위해 박수!”
[짝짝짝짝-]순식간에 식장에 거대한 파도의 박수가 성대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파가 무서웠던 세리는 이한성의 바짓가랑이를 꼬옥 붙들은 채로 숨어버렸고, 수정이는 무슨 모델이라도 된 듯 마냥 짜리몽뚱한 다리를 뽐내며 끼를 부렸다.
“어쩐지 내가 들러리가 되어버린 기분인데…”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이여야 할 신랑이 놀라울 정도로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사실을 스스로도 깨달아버린 이한성은 본인의 스포트라이트를 전부 채간 수정이와 세리를 바라보며 나지막히 한숨을 내뱉었다.
“자, 그럼 이제 신랑도 입장을 했으니 이젠 신부 차례겠군요. 그럼 신부도 어서 입장해주세요~!!”
“?? 아니, 나 아직 입장 안 끝났-”
신랑이 얼마나 주목을 못 받았는지 카펫을 다 지나가기도 전에 냅다 신부보고 입장하라고 외치기 시작한 박태식 사회자의 초스피드 진행에 이한성은 당황하며 그렇게 이의를 제기하려 하였다.
[덜컹-]하지만 이한성의 말이 끝을 맺지도 못한 채로 식장의 문은 열려버렸고, 그렇게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아버지 역할을 맡은 송강욱 판사와 함께 식장에 입장하며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
“….”
카펫 중간에서 서로 시선을 마주치고 말아버린 신랑과 신부는 말없이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ㅋㅋㅋ 결혼식을 너무 야매로 진행하는 거 아니야?”
“살다살다 이런 결혼식은 또 처음이네.”
“과연, 이 세계의 결혼식은 이런 식으로 하는건가.”
“사장님 답다면 사장님 답긴 한데…”
역대 결혼식 전대미문의 사태에 주변에서 한껏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에 이한성은 민망해서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참아냈고, 화연 또한 마찬가지로 얼굴이 다시 빨개지는 것을 겨우 억눌렀다.
“이렇게 된 거 두분이서 사이좋게 입장하시죠 누님.”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리자 송강욱 판사는 그저 웃으며 화연의 손을 놓아주었다. 본래라면 아버지 역할로 그녀와 함께 입장해야 했을 그였지만, 눈치가 빠르고 약았던 그는 재빠르게 손절을 치며 은근슬쩍 도망쳐버렸다.
“….”
믿었던 동생에게 배신당해버린 화연은 멍하니 어둠 사이로 도망쳐버린 송강욱을 바라보며 어이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미 도망쳐버린 사람이 되돌아오는 일은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홀로 발걸음을 옮겨 아이들과 이한성의 옆까지 조용히 걸었다.
“…빨리 가자. 더 민망해지기 전에.”
“…그래.”
화연의 말에 이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와 함께 나란히 카펫 위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제서야 주변의 소란스러움은 잦아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두 남녀는 전대미문으로 신랑과 신부의 동시입장이라는 업적을 달성하며 못되먹은 사회자인 박태식 교수가 있는 스테이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이거이거, 두분 모두 잉꼬부부가 따로 없군요? 이렇게 신랑과 신부 모두 함께 입장을 하다니. 정말이지 금슬이 좋은 모양인가봅니다~”
박태식 교수가 껄껄 웃으며 장난스런 말투를 가지고 축객들을 향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한성과 화연은 동시에 썩어들어가는 시선으로 그를 째려보았고, 화연은 째려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기 까지 하였다.
“빡태식 저게 진짜 죽을려고…”
“참아참아. 사람들 앞이야.”
금방이라도 고압전류로 박태식 교수를 태워버릴 기세를 보이던 화연의 모습에 이한성은 그녀의 귓가에다 그렇게 속삭이며 그녀를 말렸다. 그러자 다행히도 그녀는 알았다는 심호흡을 하고는 화를 가라앉혔고, 살기를 거두며 박태식 교수의 목숨을 연장시켜주었다.
“크흠! 자, 그럼 신랑도 신부도 모두 입장했으니 결혼식을 진행하도록 하지요.”
본인이 방금 감전사 할 뻔 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박태식 교수는 목을 가다듬으며 태연히 결혼식의 진행을 계속하였다.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예.”
“목소리가 조금 작은 것 같은데요… 다시 한번 크게 외쳐보시죠!”
“….”
화연의 벽안이 다시 한번 살기로 희번득이며 박태식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눈치가 없는지 겁이 없는건지, 박태식 교수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일절 무시한 채로 다시 한번 재촉할 뿐이었다.
“이거이거, 아무리 부끄러워도 대답은 하셔야 합니다? 자 그럼 다시 한번- 신부는 신랑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합니다.”
“뭐라고요? 다시 한번!”
“…사랑합니다!!!”
보통 이런 건 신랑한테 먼저 물어보기 마련이지만 이렇게 신부인 화연을 집요하게 저격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박태식 교수는 화연을 골려먹을 생각으로만 가득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신부께서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시군요? 부디 추후에 남편 분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없기를 바라겠습니다 허허.”
“저게 끝까지 진짜-”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봅시다~”
울컥하며 한마디 하려던 화연의 말을 잘라먹으며, 박태식 교수는 추임새를 잔뜩 넣은 말투와 함께 이한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럼 이번에는 신랑. 신랑은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하십니까?”
“예. 사랑합니다.”
“살 날이 다할 때 까지 신부를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신랑은 신부를 평생토록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까?”
“….”
첫번째 질문도, 두번째 질문도 무리없이 진심을 다해 대답할 수 있었던 이한성이었지만 이어지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평생토록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느냐.
서로 살아가는 시간이 다른 그녀를, 본인의 생이 다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삶을 계속할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있느냐고, 그렇게 묻는 듯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박태식의 질문에, 이한성은 조용히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조용하지만 확고한 목소리와 함께 대답하였다.
“평생토록 행복하게 해줄 자신은 없지만… 예, 평생토록 함께할 자신은 있습니다.”
“…!!”
이한성의 대답에 신부는 순간 흠칫하며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는 질문이지.
평생동안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막연하기 그지 없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기 이전에 생명인 이상, 절대로 주워담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평생동안 그녀의 곁에서 함께 행복하게 해주기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 만큼은, 모든 것을 걸고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늘 남들과 살아가는 시간이 달라 외톨이었던 그녀를 위해. 언제 다시 혼자가 될까 두려워 사람을 만나기를 피해왔던 그녀를 위해.
그리고…그런 그녀와 마찬가지로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
이한성은 나지막히 곁에 있던 수정이와 세리를 내려다 보았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누가 뭐라해도 자신의 딸인 두 아이를 바라본 그는, 이윽고 화연이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다시 한번 확고하게 말했다.
“우린 가족이니까요.”
“….”
화연의 푸른 보석과도 같은 눈동자가 물기로 한가득 어그러졌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표정을 지은 그녀는 그대로 이한성의 품에 달려들어 그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왜 울고 그래?”
“…우는 거 아니야.”
턱시도 너머로 어깨가 축축해지고 있는게 선명하게 느껴지고 있는데도 우는 게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는 화연의 아이 같은 모습에 이한성은 그저 옅은 미소로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600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온 너 조차 이렇게 아이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외로움이란 견디기 힘든 거겠지.
이해한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그건 겪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니까.
그랬기에 선택했다. 이해할 수 있게 되기 위해, 난 너와 같은 시간을 살아보기로 하였다. 여신이 준 작은 선물로, 너의 외로움을 이해할 수 있는 동반자가 되기로 결정했다.
600년. 혹은 그보다 더한 세월의 외로움이라도 한명이 아니라 두명, 그리고 두명이 아니라 다섯명이서 함께 나눈다면 조금은 나아질테니까.
“엄마 왜 울어?”
“아빠 때문에 그러는거야?”
울기 시작한 엄마의 모습에 수정이와 세리가 화연의 곁에 다가가 그녀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런 아이들의 위로에 그녀는 울면서 웃을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그녀는 이한성에게 그랬듯이 아이들도 똑같이 끌어 안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네 사람. 아니…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웃었다.
조금은 행복하게. 그리고 또 조금은 어설프게.
…분명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우리들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중에는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도 있을 것이고, 이미 지나간 나날들 처럼 어려운 순간 또한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건 롤러코스터처럼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겠지. 그 순간은 어렵고 힘들더라도, 분명 먼 훗날 돌이켜 보면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기억이 되겠지.
그렇게 살다 보면 적어도 삶이 지루하지는 않을거다. 아마 지루할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고 바쁠테니까.
하지만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삶이 아닐까.
그러니 한번 그런 삶을 살아보자. 살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한번 노력해 보자.
언젠가, 이 순간의 기억들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런 소원을 품어보며, 이한성은 이 순간의 기억을 머릿속에 영원토록 새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지어본 때묻지 않은 순수한 미소와 함께.
*
완결
그동안 알바생이 하프엘프를 키우는법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추후 신작으로 뵙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