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175)
Chapter 175 – 렌카 조교일지 1 #3
오늘 렌카의 모습은 상당히 귀여웠다. 얼굴이 귀엽다는 게 아니라, 행동이 그렇다는 얘기다. 구매한 굿즈가 담긴 1회용 쇼핑백을 품에 꼭 안은 채로 정면을 주시하고 있는데, 누가 보더라도 나처럼 생각할 거다.
신호에 걸려 브레이크를 밟은 나는, 여전히 미동도 않는 렌카를 쓰윽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피곤해요?”
“…. 딱히?”
“그럼 커피 마시러 가지 않을래요?”
“커피?”
“예. 커피요.”
“난… 음…”
어쩔까 고민하던 렌카가 흘끗 내 눈치를 보더니,
“한 잔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 오늘 일도 있으니까 커피는 내가 살게.”
별다른 망설임 없이 승낙했다. 아까 혼자 가겠다고 말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의 대답은 의외라 할 수 있었다. 추가구매해준 굿즈에 대한 빚을 지워버리고 싶은 건가? 뭐가 됐든 내게는 좋은 일이었기에, 나는 차를 몰고 근처 커피 체인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렌카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능숙하게 메뉴를 커스텀했다.
“녹차 크림 프라푸치노에 시럽은 화이트 모카로 바꿔주시고, 캐러멜 소스하고 엑스트라 파우더 추가해주세요.”
그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에 내가 잠시 벙 찐 사이, 주문을 끝낸 그녀가 날 돌아보며 물었다.
“너는?”
“음… 전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실게요.”
“그럴래? 알았어.”
커피 값을 계산한 렌카는 진동벨을 받고, 나와 함께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딱히 할 말이 없어 보이는 표정. 다만 어색한 분위기 자체는 껄끄러워하는 듯했다. 그녀의 생각을 읽어낸 내가 물었다.
“아까 그런 식으로 자주 주문해요?”
“뭐가? 아… 응. 이 체인점에 오면 항상 그렇게 주문해.”
“스승님이랑 많이 오나보네요?”
“치나미는 여길 잘 안 와. 가자 그래도 싫어해.”
“왜요? 복숭아와 관련된 뭔가가 없어서?”
“맞아. 치나미는 복숭아 과육을 추가하길 원하는데 여긴 그게 없거든. 그래서 치나미랑 카페를 갈 땐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지.”
역시 치나미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그럼 여긴 누구랑 오는데요?”
“혼자 올 때도 많고, 다른 친구랑 올 때도 있고…”
“다른 친구 누구.”
“…. 네가 모르는 사람이야.”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냐는 얼굴로 날 노려보는 그녀. 킥킥거린 나는 테이블에 놓아둔 진동벨이 울리자 그것을 가리켰다.
“벨 울리네요.”
“내가 가?”
그럼 주인인 내가 갈까? 고얀 지고…
“같이 갈래요?”
능글맞은 내 말투에 불안함을 느낀 건지, 렌카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진동벨을 집어 들었다.
“아냐… 내가 갖고 올게.”
이후 나더러 들으라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고는, 까끌까끌한 트레이를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잘 마실게요.”
“응.”
“부장 거 한 입만 마셔 봐도 돼요?”
“당연히 안 돼.”
“딱 한 입만.”
“싫어. 네 거나 마셔.”
단호히 거절의 의사를 밝힌 렌카가 녹차 프라푸치노를 손에 들고 몸을 반쯤 돌렸다. 자신의 물건을 빼앗기기 싫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 내게 조금은 익숙해졌으니까 저런 행동을 하는 거겠지? 새초롬해가지고… 마음에 든다.
피식한 나는 얌전히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이면서, 렌카와 드문드문 짧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
다음날, 점심시간. 미유키가 교무실에 들를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테츠야와 찢어져 부실로 향했다. 오늘 할 일을 미리 조금 해놓기 위해서였다.
테츠야와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낼 바에야 이러는 게 낫지. 이러면 치나미와 꽁냥거릴 시간도 늘어날 테고.
그렇게 부실에 도착한 내가 열쇠로 문을 열려고 할 때,
“마츠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 뒤를 돌아보니, 렌카가 미간을 구긴 채로 서있었다.
어제 사복 차림을 봐서인지, 제복을 입은 그녀가 퍽 신선하게 보인다. 보통은 반대가 되어야 정상 아닌가? 사람의 마음이란 아리송하기 짝이 없다.
뜬금없는 렌카의 등장에 고개를 갸웃한 내가 물었다.
“웬일이에요?”
“너야말로 웬일이야?”
“내가 먼저 물어봤잖아요.”
“유치하게 나올래? 그럼 난 부장이야.”
“권력으로 내리누르겠다?”
“그런 거지. 어쨌든 여기서 뭐해?”
“할 거 없어서 짬 난 김에 일하려고. 부장은 왜 왔어요?”
“나? 나도 뭐… 일하려고 왔는데… 굿즈 값도 할 겸…”
음음… 은원관계가 확실하구만. 자발적인 노예의 봉사… 기특하다.
“굿즈 값은 커피로 퉁 치지 않았나?”
“그걸론 조금 모자라다고 생각해서… 네가 무슨 이상한 트집을 잡을지도 모르고…”
“어떤 이상한 트집?”
“나야 모르지…”
그냥 고마워서 도와줄 생각이라고 말하면 되지, 쓸데없는 이유를 갖다 붙이기는. 전형적인 츤데레 같은 모습에 실소를 터뜨린 내가 말했다.
“조카한테 선물은 잘 줬어요?”
“…. 그걸 어떻게 하루 만에 줘? 같이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럼 언제 줄 건데?”
“주말에 주든가 해야지…”
“그럼 주말에 내려가겠네?”
“태, 택배로 보내도 되고…”
“망가지면?”
꼬치꼬치 캐묻는 내가 조금은 부담스러웠을까? 눈동자를 슬쩍 옆으로 굴리며 시선을 피한 렌카가 대답했다.
“키홀더는 망가질 걱정도 없고, 스탠드는 뽁뽁이 잘 둘러서… 아니 내가 왜 이런 방법까지 설명해줘야 돼…?”
“나한테도 지분 있으니까.”
“그건 그렇긴 하지만… 근데 너 왜 자꾸…”
“평어를 섞냐고?”
“…. 잘 아네… 예의 좀 갖추지…?”
“이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전혀 안 괜찮은데…”
“아직은 조금 껄끄럽다고?”
“누, 누가 아직이래…? 그런 말 한 적 없어…!”
왜 렌카와는 대화만 해도 재미있을까? 타격감이 찰져서 그런가? 미유키와 치나미와는 다른 즐거움을 얻는 기분이다. 계속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더 이상의 선은 넘지 말아야지.
“알았어요. 미안해요.”
“알면 됐어… 나 뭐하면 돼?”
“제가 시켜요?”
“나 혼자 왔으면 알아서 했겠는데, 네가 왔으니까 하라는 걸 해야지… 한참 서툴긴 하지만 그래도 매니저니까…”
“한참 서툴다고요? 진짜로? 스승님은 어엿한 매니저가 다 됐다면서 좋아하던데…”
“…. 내가 보기엔 아직 멀었어.”
렌카도 마음속으로는 날 매니저로 인정하고 있을 거다. 그럼에도 서툴다고 한 건, 치나미와 단둘이 있을 때 난입하기 위해서 핑계거리를 삼은 거라고 보면 되겠지.
“그런가요?”
“그런 거야. 나 뭐하냐니까? 아니면 알아서 해?”
“아뇨. 저랑 죽도 닦아요.”
“너랑…?”
“예. 왜요? 이상한 짓 할까봐 불안해요?”
“그건 아니지만… 다른 일도 많은데 왜 굳이 같이 하자고…”
“같이 하는 게 더 재밌잖아요. 시간도 잘 갈 거고.”
그리 말한 나는 보관실 문을 열고, 새끼강아지를 부르듯 렌카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우물쭈물 거리던 렌카가 머리를 벅벅 긁더니 걸음을 옮겼다. 나름 순둥해진 렌카도 나쁘진 않네. 바락바락 대들다가 순종하는 게 더 좋긴 하지만.
**
쩌억-!
상대방의 호면에서 들려오는 죽도 특유의 묵직한 충격음. 머리에 제대로 타격을 성공시킨 나는 이건 무조건 한판이라고 확신했지만, 방심하지 않은 채로 자세를 잡고 심판의 판정을 기다렸다.
“한판! 위치로!”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치며 빨간 깃발을 드는 고로. 제대로 점수를 따내고 대련을 끝낸 나는 상대와 인사를 나눈 뒤, 물개박수를 치고 있는 치나미에게 다가가 활짝 웃었다.
“어땠어요?”
“멋졌어요. 기세도 좋고, 자세도 완벽까진 아니지만 훌륭했답니다. 이 정도면 선봉으로서 아주 좋은 자질을 가졌다고 할 수 있겠어요. 하지만 절대 방심해서는 안 돼요. 대회는 실력이 무척 뛰어난 사람들이 즐비하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좋아요. 자, 이제 앉아보세요. 호면을 풀어드릴게요.”
치나미의 앞에 무릎을 굽히며 앉자, 그녀가 꼼꼼한 손길로 호면 끈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를 골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 나는 정신 사납게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러자 치나미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날 노려보더니,
콩-!
호면을 아주 가볍게 때렸다.
“가만히 좀 계세요…! 뭐하시는 건가요?”
“제자에게 손찌검을 하는 스승님이라니… 조금 슬퍼지려고 하네요.”
“어허…! 손찌검이라고 생각하시면 서운하지요. 이건 애정이 담겨있는 훈육이에요.”
“그렇다고 치겠습니다. 근데 스승님.”
“말씀하세요.”
“내일 마사지해줄까요?”
“느엣…?”
끈을 풀다 말고 손을 멈칫한 치나미의 입에서 새어나온 탄성.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린 그녀가 아주아주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마사지요…? 오일 마사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흠흠… 잘 모르겠네요… 갑작스러운 제안이라서 당황스럽군요…”
“그래요?”
“미리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흠… 오늘 집으로 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본 후에 답변을 드리도록 할게요…”
“알겠습니다.”
“네에…”
몸을 배배 꼬는 치나미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급속도로 빨개졌다. 마사지 외에 뭘 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밝히기는.
“이제 끈 풀어주셔야죠?”
“앗… 네… 가만히 계세요… 움직이면 혼낼 거예요…”
“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네… 알아요…”
횡설수설하고 있는 그녀에게서 풍겨 나오는 쑥스러운 감정. 반응을 보아하니 긍정적인 대답이 들려올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들박… 한 번 시도해볼 수 있으려나? 시도만 해보는 건 괜찮잖아. 그치? 치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