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Scrapped Extra Villain RAW novel - Chapter 309
라일락 꽃이 피지 않는 혼돈의 옥좌 위에서 (3)
*
나와 루리는 제국으로 돌아왔다.
‘어두워졌군.’
2년의 시간은 길었다. 내가 빙의된 게 원작이 시작되고 시간이 좀 흘렀던 시점이었던 걸 생각하면 지금은 원작의 후반부 정도.
대륙 곳곳에 재앙이 들이닥치고 비보가 날아드는… 대륙 제2의 암흑기가 도래하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그분이 계셔서 다행이야.”
“응, 맞아. 길버트 님이 계시니까….”
“이번에 세계수님의 씨앗을 가져오셨다며?”
“곧바로 서쪽의 패황을 자칭하는 아네트라는 여인과 싸우러 가셨다고 해.”
우선 거주할 곳이 필요했기에, 루리의 본가인 엘리도르 후작가로 갔다.
실종된 딸의 복귀에 놀라 달려온 아놀드. 피폐해진 몰골 위로, 희망이 내리 쬐인다. 마치 오랜 암흑 속에 죽은 대지 위의 한 줄기 햇볕처럼.
“오! 오오! 루리! 내 딸! 다행이다! 루리! 대체 어디 갔었니?!”
“….”
“오오, 얼굴 상한 것 좀 보거라! 정말, 루리구나!”
감격에 겨운 아놀드가 루리를 껴안는 순간, 나도 그의 안면을 붙잡았다. 이윽고 시작되는 정신지배.
심신이 엉망이 되고, 루리라는 약점마저 쥐었다. 그의 정신을 지배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
“….”
두 부녀를 앞세워, 나는 황실로 향했다. 마차를 타고 제국 수도를 지나는데, 온갖 소리가 다 들려왔다.
“들었어? 이번에 또 그 미친 황녀가 그림자 기사단과 검귀를 시켜서 백작령을 몰살시켰데….”
“빌어먹을. 황제랑 카쟉스 황자는 뭘 하는 거지?!”
“이 나라는, 아니. 대륙은 이제 끝이야….”
종말이 대륙 위로 얼굴을 들이밀고 있다. 그리고 대륙 또한 종말을 향해 날아오르는 중이다.
종말의 그림자가 드리운 대륙 위에서 음울한 감정이 인간들 사이를 나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 광기의 황녀를, 만나라….
황실에 들어선 난 광기의 황금황녀 아델라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머물고 있는 알현실은 어두웠다. 그럼에도 황금으로 반짝였고.
안으로 들어가자 형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인지 부조화의 그림자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황녀 아델라가 앉아 있었고.
“…?”
“….”
우린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운명. 그래, 우린.
“너.”
“당신.”
운명처럼 서로를 알아보았다.
“미쳐있구나.”
“미쳤군.”
아델라는 보는지 마는지 대충이던 자세를 흥미로운 축생을 보듯 바로잡았고, 나도 성큼성큼 걸어가 그녀가 앉은 의자 맞은편에 앉았다. 광기는 광기를 알아보는 법이다.
“제법이구나. 엘리도르의 잡것들까지 이용해가며 날 만나자기에 누군가 했더니.”
“협력하지. 협력해라.”
우리 사이에 긴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함께 대륙을 불태우도록 하자.”
“재미있구나. 좋다. 어디 건방진 구석이 있지만, 본녀가 넓은 아량으로 넘어가주마.”
그 후로 우리가 한 행동은, 즉흥적이었다. 그저 산책이라도 하듯 황제의 침실로 간 것이다.
병상에 누워 생기가 없는 듯 보이는 황제와 그를 지키고 선 카쟉스.
“뭣?! 아델라! 네년이 감히 여길 오다니! 옆에 그 남자는 또 뭐냐?!”
아델라는 그 자리에서 황제를 죽였다. 나는, 그의 곁에 있던 카쟉스에게로 다가가서… 그의 정신을 지배했다.
길버트에 대한 열등감. 황위의 압박감. 미친 누이동생에 대한 경계심. 놈의 정신세계는 허술했다.
“그림자 기사단, 본녀가 제위에 오를 것이다. 준비해놓도록.”
그림자 기사단들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반대자들을 죽이고, 추종자들을 모아 제위식을 거행할 생각이겠지.
“안내해주면 좋겠군.”
“어디로?”
“황금황릉.”
원작에서도 악마들은 제국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여기부터 무너뜨렸다.
“아델라 폰 해머드 임페리움의 이름으로 명한다. 열려라.”
황금황릉으로 가는 이동 마법진이 자리한 엄중한 금고로 향하는 삼중 황금문이 열리며… 황금의 마법진이 드러난다. 난 손을 뻗어 혼돈의 아가리를 뻗었다. 식사 시간이었다.
황금 마법진을 통해… 황금황릉을 타락시켜갔다.
[끄아아아아악!]비명이 들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건, 아니야! 내가 본 인류의 미래는, 이런 게 아니다! 넌, 분명… 대륙을 구할, 두 번째 영웅! 운명을 물어뜯는 사냥개일 텐데…?!]인간의 신 해머드. 초대 황제인 그의 영체마저 카오스를 힘입은 내게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신격인 해머드까지 잡아먹은 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소설의 표현에 따르자면 금강을 초월한 무언가겠지.
그동안 아델라는 그림자 기사단에게 무언가 보고받았는지 내게 와 말했다.
“제위식을 거행하지. 구경하겠느냐?”
“…뭐, 그러지.”
급조된 제위식이 거행된다. 모조품인 황금검을 아델라가 뽑아 들며 제관을 쓰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
“불가하다!”
정계의 노괴인 공작들이 등장했다. 데미니얀의 프로하딘. 하르마듄의 빌헬름.
그들이 아델라에게 뭐라 말하기도 전에, 혼돈이 입을 벌려 그들을 단번에 삼켰다. 으적거리는 씹는 소리만이 제위식장을 울렸다. 자리한 대소신료들이 벌벌 떠는 게 보였다.
“…신경 쓰지 말도록. 그저, 배가 고팠을 뿐이니까.”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제국의 방패인 타우포로스의 카록 공작이 찾아온 것이다. 뒤이어서 제국의 창인 아뮬런트의 레이튼 공작이. 그다음은… 플래티넘 넘버링 No.1 핵티아까지.
물론… 차례대로 잡아 먹어줬다.
“이제, 짐이… 대륙을 불태우겠다.”
여제 아델라의 탄생이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그림자 기사단이 대소신료들 사이에 나타나더니.
“다 죽여라.”
검을 빼 들어 모조리 도륙내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살려,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위를 인정합니다! 인정한, 커억!”
피의 제위식이었다. 난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델라에게 말했다.
“여제. 두 명에게 편지를 보내줬으면 해.”
곧 인류존속연장기관의 기관장과 아카데미의 룩펠스 교장을 비롯한 선생들을 초대해서… 모조리 포식했다.
단 한 명도,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전부 다.
‘그런 건가.’
기관장의 경우…, 포식하며 그녀의 기억을 읽을 수 있었다.
‘이년이, 날 여기로 데려온 Recola였군.’
뭐… 상관없다. 다 죽여버리자. 어차피 소설 속 세계. 어차피 잠시 머무를 곳. 어차피… 꽃이 피지 않는 세계다.
난 카쟉스 황자를 포식했다. 그의 기억을 토대로 세계수의 씨앗이 자라고 있는 심처를 찾아, 먹어치웠다.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지금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명. 아카데미에 복학했을 때 딱 한 번 보았던 그.
이 소설의 주인공, 길버트.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 이제 복수를 이뤄라. 내게 기쁨을 공양해라.
카오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제위식을 마친 아델라에게 권했다.
“잠시 나가지.”
“…?”
아델라를 데리고 황성의 가장 높은 테라스로 나왔다. 제국 전역이 보이는 거룩한 영역. 황제가 신민들을 굽어살피는 곳이었겠으나.
– 인류 최후의 보루를, 무너뜨려라.
음울하다.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폭풍전야. 최후를 직감한 도살장의 가축처럼.
손을 들었다. 혼돈이 쏘아져 하늘에 닿아 청명함을 검게 물들인다. 하늘이 휘저어지며, 혼돈이 소용돌이친다.
혼돈이, 제국의 위로 드리운다.
“으아아악!”
“우웨엑!”
대제국 임페리움의 수도는 난리가 났다. 시민들이 움직이지도 못하고 비명을 지르거나 토악질을 하거나.
“주, 죽어. 죽어야 해.”
“이 악몽을 끝내…!”
나름 경지에 올랐다는 기사들조차 검을 빼 들고 제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찌른다.
“히히히! 종말이다! 종말이야!”
“하하! 모두 승천하자!”
종말론자들이 굉소를 내지르며 뛰어다니고, 의식용 단검으로 사람들을 찔러 죽이기 시작했다.
“….”
그 하찮은 축생들을 보며, 난 측은함도 동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될 운명이었지.’
라일락 꽃이 시든 시점에서, 난 인류라는 족속을 너무나 잘 알아버리고 말았다.
전부 다 벌레다. 예쁜 꽃의 꿀에 탐욕을 부려 줄기마저 갉아 부러뜨리는 머저리들. 존재할 가치가 없는, 흑마법 폐기물들.
“소멸해라.”
이내 하늘에 펼쳐진 혼돈의 소용돌이, 블랙홀이 흡인력을 전개한다.
수도의 시민들이, 일천만에 육박하는 시민들이 빨려 올라간다. 귀족이고 부자고 노예고 할 것 없이 평등하게. 그리고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한다.
“카오스여, 이제 약속을 지켜라.”
– 혼돈의 의지가 당신의 청원에 대답합니다.
곧 대륙 전역에 있던 타임카오스 던전 폭주하기 시작했다.
“내 복수를, 완성하도록.”
경계의 던전이 대륙 심처로 침투해오고, 곳곳에서 던전이 발생해 대륙을 침식하기 시작했다.
대륙의, 나아가 인류의 멸망이 시작된 것이다.
*
하늘에는 혼돈의 소용돌이가 회전하고 생명이라고는 일절 느껴지지 않는 제국의 수도.
원혼조차 두려워 떠나는 대마경이 된 이곳에, 마침내 세계가 선정한 용사가 도래했다.
“마틴!”
어째 조용할 날이 없다. 루리를 대동한 채 아델라와 대륙의 향방을 논하던 자리에 불청객이 들이닥친 것이다.
아델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쯧, 경비까지 다 죽이진 말 것을 그랬나.”
아놀드와 카쟉스도 이젠 필요가 없어서 죽여버렸으니, 살아있는 생명이라고는 나, 루리, 아델라가 전부다.
“대답해, 마틴! 네놈이지?! 전부!”
어쨌거나 마지막 타자가 도착했다.
길버트, 리나, 메리, 보르드.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날 보는 게, 무척 거슬렸지만. 그보다 더 이상한 게 있었다.
“엘리샤가 없군.”
주인공 일행은 다섯으로 완성일 텐데. 내 말에 주인공 일행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진다. 그 행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그들을 보다가.
“아, 내가 잡아먹었지.”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내 말에 길버트가 검을 겨눈다.
“그래…, 널 추적한다고 나선 이후로 엘리샤가 사라졌지…! 역시 네놈이 범인이었구나! 마틴!”
전투는, 싱거웠다.
“제가 나설게요! 【헤비 레】…!”
마법을 펼치려던 메리의 발아래가 열린다.
“어…?”
혼돈이 아가리를 벌려, 메리를 집어삼킨다. 그 작은 몸이 고깃덩어리로 화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메리!”
“으아아아!”
보르드가 달려온다. 정면으로 마나의 거인을 일으키기에, 혼돈의 아가리를 키워 그냥 통째로 잡아먹었다.
“보르드!”
“전하! 피하십시오!”
리나가 길버트를 밀쳤다. 쏘아진 혼돈이, 리나를 통째로 씹어 삼켰다.
모든 게 고작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짓말.”
멍한 얼굴의 길버트에게로.
“이게, 뭐야….”
혼돈이 마저 입을 벌렸다.
*
세계가 울부짖는다. 대륙이 비명을 지르고 우주의 별들이 희미하게 꺼져 간다.
“얼마 안 남았구나. 원시 회귀까지.”
아델라가 천천히 걸어와, 옥좌 위로 오른다.
“오늘도… 본녀와 놀아다오.”
혼돈의 옥좌에 앉은 날 유혹한다.
그 위에 앉아 무표정하게 정면을. 공허한 우주를 응시할 뿐인 내게 다가와 내 뺨을 쓰다듬고 가슴팍에 손을 올리며 유혹하는 아델라.
그녀는 멍하니 내 옆에 서 있는 루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니 저 인형을 오래도 가지고 있는구나.”
아델라가 천천히 내게 입 맞춰 온다. 나도 응하여 잠시 그녀와 혀를 섞었다. 그리고는… 밀어냈다.
“…? 뭐냐.”
“오늘은 안 돼.”
“이러며 10년을 놀았는데, 더 안 될 건 무엇이냐? 원시 회귀가 행해지는 마지막 날이라 그러느냐?”
공허한 혼돈의 옥좌 위에서 난, 옥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들어버린 보라색 꽃들이 잔뜩 심어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 메이드복을 입은 라일락이 누워 있었고.
“오늘은 라일락 꽃이 시든 날이니까.”
천천히 일어나서, 옥좌에서 내려와 라일락의 앞에 섰다.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아 들고 다시 혼돈의 옥좌로 돌아와 앉았다.
아델라는 삐쳤다는 티를 내며 볼을 부풀리고는 내 옥좌 팔걸이에 앉는다.
라일락 꽃이 피지 않는 혼돈의 옥좌 위에서, 나와 아델라는 세상의 끝을 응시했다.
우주가… 회귀한다. 공허 속에서 만상을 자아내던 무수한 별들이 사라져 간다. 천체의 흐름도. 별들의 오묘한 이치도 소실된다.
또한, 우리도….
원시 회귀가 시작된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