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Terminally-ill Dragon RAW novel - Chapter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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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화. 후일담-각자의 삶 (3)
#독립
“로이스 님! 이거는 어디에 둘까요?”
“그거? 음… 그건 저쪽으로 놓으면 되겠네.”
“넵!”
로이스의 지시에 핀이 커다란 식탁을 들고 뾰르르- 날아갔다.
그 뒤로도 핀은 이것저것을 들고 와 로이스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로이스도 신중하게 답을 해 줬다.
“이거는요?”
“그건 나중에 옮기자.”
“넵!”
이리저리 물건을 옮기고 배치하는 로이스와 핀.
그런 둘의 얼굴에 피곤함과 지루함 따위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레어 꾸미기’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앞으로 자신들이 평생 살아갈 레어.
다시 말해 로이스에게도 이제 진짜 자신만의 집이 생겼다는 소리였다.
로이스가 커다란 공동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이뤘다… 내 집 마련의 꿈.”
2차 수면기가 끝나고 제네로커의 레어를 나올 때 이런저런 목표가 있었지만, 그중에는 ‘완벽한 독립’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모든 사태가 다 정리된 후, 로이스는 진정한 내 집 마련의 꿈을 위해 4대륙 곳곳을 헤집고 다녔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이상향에 딱 알맞은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로이스가 찾은 장소는 봄 대륙과 여름 대륙 사이에 있는 한 무인도.
그 크기가 한 소도시에 준하는 섬이었다.
그는 무인도 전체를 자신의 영역으로 삼았다.
‘위치 좋고, 조용하고! 딱이네!’
위치를 정한 로이스는 본격적인 레어 짓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여기서 예상외의 도움이 있었다.
‘용제 님의 레어라면 마땅히 우리가 나서야겠지요!’
로이스가 지킨 약속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된 드워프들.
그들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 선두에 고대 드워프의 왕, 거프가 있었다.
그는 대륙을 돌며 최고의 드워프 장인들을 모집했다.
곧 500의 드워프 장인과 2천의 보조 드워프들이 무인도로 넘어왔다.
‘그 어떤 레어보다도 뛰어난 최고의 레어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은혜를 갚고자 모인 드워프들은 의기투합하여 무인도 곳곳을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려 1년이 흘러.
‘완성됐습니다!’
자신의 집이 완성됐다는 소리에 도착한 로이스는 처음에 살짝 실망하고 말았다.
무인도의 모습이 자신이 처음 보았던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부 위장이었다.
드워프들이 공을 들인 것은 바로 무인도의 지하였다.
섬의 지하를 파내어 완벽한 지하 도시를 만들어 낸 드워프들.
그 화려함은 여름 대륙 최강의 제국이라는 프렌체 제국의 황궁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대륙에서 내로라하는 드워프 장인들이 이를 갈고 만들어 냈다.
인간들이 평생을 살아도 한 번 구경하기 힘든 장식품들이 즐비한 게 로이스의 레어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필요하실 거 같아서 만들어 봤습니다!’
드워프들은 무인도 한쪽에 인공 산까지 준비해 그 안에 로이스를 위한 특별 공간까지 만들어 냈다.
이에 로이스도 감탄하고 말았다.
‘와… 이걸 손으로 만들었다고?’
지금이라면 자신도 산 하나쯤 만드는 거는 일도 아니었다.
다만 드워프들이 꽤 큼직한 산을 일일이 손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
동시에 그는 크게 만족했다.
‘암! 드래곤이라면 자고로 이 정도 사이즈의 레어는 가지고 있어야지!’
세상 어떤 드래곤의 레어도 이보다 더 화려하고 최신식의 시설을 갖춘 곳은 없으리라.
로이스는 드디어 갖게 된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레어가 너무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핀과 함께 레어 꾸미기에 들어갔다.
이후 한 달이 흘러, 텅텅 빈 공간이 로이스의 것들로 완벽하게 채워진 어느 날 저녁.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들었다.
“로이, 나 왔어!”
“나도 왔어!”
싱글벙글 웃으며 쌍둥이가 들이닥쳤다.
그들을 본 로이스의 얼굴이 뚱해졌다.
“저것들이 어떻게 알고… 핀, 네가 말했냐?”
“죄, 죄송해요. 며칠 전부터 레어 정리 언제 끝나냐고 매일 물어보셔서 어쩔 수 없이…….”
핀이 죄송스럽다는 얼굴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이에 로이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핀이 무슨 죄가 있겠냐…….’
죄가 있다면 나이를 먹어도 바뀌는 게 없는 저 빌어먹을 쌍둥이에게 있겠지.
로이스의 시선이 집주인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레어를 뛰어다니는 쌍둥이에게 닿았다.
“우와! 여기 완전 좋다!”
“아빠 레어보다 훨씬 좋아!”
그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운동장만 한 공동.
거기에 딸린 수십 개의 공간까지.
쌍둥이는 로이스의 지하 레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그 모습에 이마의 혈관이 불거지려는 찰나.
“로이스 님,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희 왔습니다!”
이번에도 초대하지 않은 또 다른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켄드릭? 라비나?”
조금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라비나.
그리고 30대 정도로 보이는 켄드릭.
그들을 본 로이스가 핀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네가 불렀냐는 시선에 핀이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사이 로이스의 앞으로 온 켄드릭 부부가 들고 온 것을 내밀었다.
“레어 생기신 거 축하드려요!”
“이건 첫 입주 선물요!”
그들이 내민 선물에 뚱했던 로이스의 얼굴이 사르르 풀렸다.
“…기본은 되어 있네.”
빈손으로 와서 구경만 하는 ‘잡것’들에 비하면 켄드릭 라비나 부부는 충분히 환영할 만한 손님이었다.
그가 환히 웃으며 양팔을 벌렸다.
“어서 와!”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런데 말야… 너희, 여긴 어떻게 왔냐?”
“저희요? 쌍둥이님들이랑 같이 왔죠.”
“…….”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원흉은 네놈들이렷다?!’
로이스가 눈에 쌍심지를 켜자 쌍둥이가 쪼르르 그의 앞으로 알아서 달려왔다.
“로이, 로이!”
“이름 한 번만 부르라고 대충 500년은 넘게 이야기한 거 같은데?”
“로오오오이! 우리 파티 하자!”
“레어 첫 입주 파티!”
로이스의 얼굴에 ‘나 지금 심기 매우 불편하다’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레어를 치우고 꾸민 지 이제 고작 몇 시간이 됐을 뿐이다.
저 방정맞은 쌍둥이들과 함께 파티를 한다면 기껏 정리한 레어가 개판이 될 것은 분명할 터.
레어에 들어온 바로 다음 날을 쌍둥이가 어지른 것을 치우며 보낼 수는 없었다.
로이스의 불편한 기색에도 쌍둥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로이스와 핀이 기껏 배치해 놓은 식탁을 옮겨 와 파티 하자고 난리를 쳤다.
“…이것들이.”
로이스의 등 뒤로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검은 아우라에 켄드릭 부부가 슬금슬금 물러났다.
한편,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야단법석을 피우던 쌍둥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고 보니 얘는 또 왜 안 와?”
“그러게…….”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존재가 레어의 복도에서 나타났다.
“선생님, 저 왔어요!”
당차고 활기찬 목소리.
이에 로이스의 시선이 돌아가고.
“…….”
로이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있는 이는 다름 아닌 타니아였다.
“선생님이임!”
이제 쉰을 넘은 나이.
하지만 엘릭서의 효능과 더불어 제로의 경지를 이룬 그녀는 여전히 20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타니아를 향해 로이스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너…….”
“네!”
“그건 뭐냐?”
로이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타니아의 등 뒤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 족히 5배는 되어 보임직한 거대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로이스의 물음에 타니아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짐이죠!”
“그러니까 무슨 짐?”
“뭐가 필요할지 몰라서 일단은 이것만 챙겨 왔어요.”
“…일단은?”
“네!”
“…왜?”
“왜냐뇨? 살면서 뭐가 필요할지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건데?!”
“당연히 선생님이랑 같이 살려고요.”
“…….”
할 말을 잃어버린 로이스가 이마를 부여잡았다.
그가 큰 한숨을 내쉬었다.
‘물들었어… 물들어도 너무 물들었어.’
수련 여행을 한답시고 쌍둥이들과 이십여 년을 함께한 타니아.
그래서 그런지 안 그래도 저돌적이던 그녀의 성격이 더욱 직설적으로 바뀌었다.
하는 짓만 보면 쌍둥이와 판박이였다.
“오올! 타니아!”
“아, 나도 로이랑 같이 살까?”
“그럴까? 여기 진짜 좋은데?”
“칸, 넌 꺼져. 나랑 로이랑 살 거니까.”
“어림없는 소리!”
쌍둥이가 타니아를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가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했다.
그러자 다시금 시끌벅적해지는 실내.
“아…….”
로이스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내 평온한 독립의 꿈이…….”
자신이 원했던 독립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파티다, 파티!”
“우오오, 파티다!”
“그럼 술!”
“야, 인간아! 또 무슨 술이야!”
“아, 왜! 이런 날은 한잔해야지!”
“아, 저는 짐 풀고 올게요! 어디가 좋으려나.”
아공간에서 음식을 꺼내는 쌍둥이.
대뜸 술과 잔부터 식탁에 깔고 보는 켄드릭.
그런 켄드릭의 옆구리를 쥐어뜯는 라비나.
커다란 짐을 들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타니아까지.
집주인은 안중에도 없는 일행의 태도에…….
“이것들이…….”
결국, 로이스가 폭발하고 말았다.
“전부 꺼져!”
* * *
#온 가족
투명한 크리스털 속에 순백의 드래곤이 눈을 감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정적에 휘감겨 있던 크리스털.
그러던 어느 순간, 마침내 변화가 찾아들었다.
쩌적-.
크리스털의 상단에서 발생한 미약한 균열.
그와 동시에 드래곤의 가늘고 하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는 곧 심연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의식이 서서히 부상(浮上)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으음…….”
작은 신음과 함께 의식이 빠른 속도로 찾아들었고, 드래곤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크리스털의 균열 또한 커졌다.
그리고 크리스털이 완전히 깨어지기 전에 순백의 드래곤, 발렌티나의 의식이 온전히 돌아왔다.
‘…수면기가 끝났구나.’
아리아나를 낳고 들어간 산후 수면기.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으로 보아 아마 제법 오랜 시간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몽롱함에 취해 있던 것도 잠시.
‘우리 애들… 많이 컸겠지?’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은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로이스와 아리아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새끼들.
때문에 그녀는 어서 빨리 산후 수면기용 보호 법진이 깨지기를 기원했다.
그 순간이었다.
의식 다음 서서히 돌아오는 오감.
가장 먼저 촉각, 그다음으로 미각이 돌아왔다.
다음으로 트인 것은 청각이었다.
웅성 웅성-.
서서히 되찾아 가는 청각에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청각이 되돌아옴에 따라 들려오는 말소리도 점점 또렷해졌다.
“오빠, 엄마 깨어나? 이제 일어나는 거야?”
“응, 저것만 깨지면 이제 나오실 거야.”
“언제? 언제!”
“조금만 기다려 봐.”
“아빠, 엄마 일어난대!”
“아구구, 우리 딸, 엄마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요?”
“응!”
도란도란 들려오는 말소리에 발렌티나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그립고 그리웠던 이들의 목소리.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이를 인지하자 발렌티나의 심장은 더욱더 거세게 박동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크리스털의 균열이 점차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윽고.
쩌저정- 팡!
완전히 터져 나가 밝은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크리스털.
동시에 발렌티나의 눈이 서서히 떠졌고, 시야가 밝아졌다.
“아…….”
실로 오랜만에 세상을 바라보는 그녀.
눈부시도록 빛나는 세상 아래.
반짝이는 빛무리 저 너머에 그들이 있었다.
그녀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훙-.
한 번의 날갯짓.
순식간에 앞으로 향한 드래곤의 육신이 어느 순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탁-.
가볍게 지면에 착지한 발렌티나는 그대로 달려 나갔다.
순식간에 내달린 그녀는 눈앞의 이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하얀 머리의 청년.
그를 꼭 닮은 작디작은 여자아이.
그리고 그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검은 머리의 남성까지.
그들을 온전히 부둥켜안았을 때, 후각이 되돌아왔고 동시에 진한 냄새가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립고 익숙한 향기.
바로 가족의 향기였다.
그 향기를 즐기며 발렌티나가 밝게 웃으며 외쳤다.
“얘들아, 엄마 왔다!”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작디작은 여자아이가 양팔을 뻗었다.
“어어엄마아아아!”
“꺄아악! 아유, 이게 누구야?! 우리 딸이잖아?! 세상에, 세상에! 우리 딸, 누굴 닮아서 이렇게 예쁠까?”
“엄마!”
“아리야… 아빠는? 어제까지만 해도 아빠라며?!”
“엄마!”
“그, 그런?!”
“아휴, 그럼 엄마지! 우리 딸은 엄마 닮아서 이렇게 예쁜 거지!”
어릴 때 이후로 아리아나를 처음 껴안은 발렌티나의 얼굴에 행복이 번져 나갔다.
“딸딸, 또 해 봐, 엄마! 해 봐!”
“엄마!”
“아리야, 아빠도! 아빠도 해 줘!”
“아부지!”
“딸… 그거 누구한테 배웠니?”
“오빠!”
“우리 딸… 오빠의 좋은 점만 배워야 하는 거야. 그런 거 지지예요, 지지.”
앞에는 엄마, 뒤에는 아빠.
아리아나 덕분에 그들 사이에 끼게 된 로이스는 오랜만에 보는 팔불출 부모님의 주접을 온전히 느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오랜만의 재회와 분위기를 해칠 생각은 없었기에 그대로 가만히 있어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해야 하는 거다.
부모님의 주접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로이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만하고 가면 안 돼요? 집에 가서도 할 수 있잖아요?”
뚱한 로이스의 목소리에 발렌티나가 히죽 웃었다.
“우리 아들은 똑같네, 똑같아!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응? 응?”
무언가 기대가 가득한, 초롱초롱한 발렌티나의 눈빛 공세에 로이스가 슬쩍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어요.”
“응?”
“…보고 싶었어요.”
그제야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은 발렌티아의 입가에 함박웃음이 담겼다.
쑥스러워하는 로이스와 이를 보고 깔깔거리는 발렌티나.
엄마가 웃으니 덩달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아리아나.
자기도 끼워 달라며 재촉하는 제네로커까지.
도무지 자리를 옮길 생각을 않는 가족들을 보며 로이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의 입은 투덜거리는 속내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전신교의 교주.
염원의 탑의 주인.
프렌체의 수호룡.
세상을 구한 영웅.
드래곤의 황제 등등.
그를 칭하는 호칭은 많았다.
하지만 그는 어떤 것보다도 ‘제네로커와 발렌티나의 아들, 아리아나의 오빠’라는 호칭만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때문에 그는 염원했다.
‘이 행복이 깨지지 않기를.’
또한.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랄 뿐이었다.
* * *
&외전. 오해
“너지!”
로이스는 아침부터 자신을 졸졸 쫓아다니는 칸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뭐가!”
“너뿐이야!”
“그러니까 뭐가?”
“내 뇌령초 담금주!”
칸의 외침에 로이스는 흠칫했다.
하지만 그것은 0.1초의 움직임일 뿐.
로이스는 곧바로 티가 안 나게 얼굴빛을 꾸몄지만, 이미 칸에게 들킨 뒤였다.
칸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지금 움찔했지?”
“내가? 언제?”
“방금!”
“아, 추워서. 좀 쌀쌀하네.”
“네가 무슨 추위를 타!”
“어허! 우매하구나! 드래곤도 추위를 탈 수 있는 법이다.”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내 뇌령초 담금주 내놓으라고!”
“그걸 왜 나한테서 찾아?”
계속해서 발뺌하는 로이스의 모습에 칸의 눈썹이 역팔자로 휘었다.
초월학관 실전 평가 당시.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뇌령초 담금주를 가지고 협박을 했던 게 로이스였다.
때문에 집에 돌아와 바로 뇌령초 담금주부터 찾으러 갔건만, 아니나 다를까.
이미 뇌령초 담금주는 종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걸 묻은 장소를 알고 있는 게 자신과 로이스뿐이었으니, 칸이 그를 닦달할 만했다.
“장난치지 말고 빨리 내놓으라고!”
“장난이 아니라… 나도 모른다고!”
“내가 그거 프루지아 나무 밑에 묻어 둔 걸 아는 게 너뿐인데! 네가 아니면 누가 가져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 진짜 모른다고!”
“내놔!”
“몰라!”
칸은 로이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계속해서 ‘내놔!’를 외쳤다.
그럴 때마다 로이스도 복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일단 칸이 묻어 둔 뇌령초 담금주는 분명 자신이 챙겨 다른 곳에 묻어 두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체 그게 어디로 갔지?’
자신이 챙긴 뇌령초 담금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에이 씨, 내가 먹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자신은 개봉도 못 해 본 뇌령초 담금주 때문에 칸에게 시달리고 있으니 짜증이 올라왔다.
“달라고!”
“몰라!”
“줘!”
“아, 좀 가라고!”
그런 로이스와 칸의 싸움을 보고 카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하여간 애들도 아니고… 저 나이에 먹을 거 가지고 싸우고 있냐.”
그녀는 혀를 끌끌 차며 한심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한편, 로이스와 칸의 싸움의 단초가 된 뇌령초 담금주의 행방.
그 흔적을 쫓기 위해서는 시간을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때는 바야흐로 로이스가 독립을 선언하고 겨울 대륙으로 떠났을 당시.
“허…….”
제네로커는 아들이 떠나간 레어를 돌아다니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빈집 같네…….”
로이스가 떠난 지 고작 하루가 흘렀을 뿐이건만, 유달리 레어가 적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평생을 끼고 살고 싶었지만, 뜻을 세운 아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사실 잡는다고 해도 로이스가 잡혀 주지도 않겠지만.
“허어…….”
제네로커는 공허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레어 곳곳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모자라 레어 밖 로이스의 자취가 남은 곳을 따라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이 저기서 벼락을 맞았었지…….”
나비를 쫓다가 날벼락 3연타를 맞은 곳.
“저기서 낮잠 자는 걸 참 좋아했었는데…….”
졸졸 쫓아오는 제네로커를 피해 숨어 있던 나무뿌리 사이.
“우리 로이스가 처음 소꿉놀이를 하던 곳이네…….”
처음 익힌 성법의 위력을 시험하느라 생긴 구덩이에 물이 고여 생겨난 연못까지.
그렇게 제네로커는 한참이나 로이스가 떠나가며 남긴 세월의 흔적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다 그의 발길이 한 나무 근처로 향했다.
레어 인근에서 가장 큰 프루지아 나무였다.
그 옆을 지나던 제네로커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이건……?’
프루지아 나무 근처에 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 근처로 다가간 제네로커의 얼굴에 의혹이 서렸다.
“속성력……?”
그것도 그냥 속성력이 아닌 시간 속성의 기운이었다.
제네로커는 한참 동안 프루지아 나무를 관찰하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허!”
주변에 펼쳐진 성법으로 인해 프루지아 나무의 기운이 땅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대체 이런 곳에 왜?’
그리 의문을 표했지만,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영역 내에서 이런 짓을 할 존재가 또 누가 있겠는가.
제네로커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로이스 이 녀석… 또 무슨 장난을?”
슬쩍 호기심이 동했다.
대체 로이스가 여기다 또 무슨 장난을 한 것인지.
그는 조심스럽게 기운이 향하는 땅을 파헤쳐 보았다.
그러자 나타난 투명한 술병.
“이건……?”
병 안에 담긴 액체가 은은한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주향까지.
박학다식한 제네로커가 이 술의 정체를 모를 리 없었다.
“뇌령초?”
강하게 느껴지는 뇌기가 분명 술의 정체가 뇌령초 담금주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더불어 뇌령초 담금주의 효능의 그의 머릿속에 흘러갔다.
스테미나 보강.
정력을 위한 보양주.
‘이게 왜 여기에?’
그리 중얼거리던 제네로커의 뇌리로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네가 가면 적적해서 어찌 사냐고 물었던 말에 돌아온 아들의 대답.
[적적하긴 뭐가 적적해요. 어머니도 있고 한데! 다 큰 아들내미 생각은 그만하시고 이제 두 분이서 즐기세요. 저만 보고 살기에는 두 분의 여생이 너무 길잖아요?]그건 그냥 금방이라도 쫓아올 듯한 제네로커를 달래기 위해 한 말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묘한 문구가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바로 ‘저만 보고 살기에는’이라는 말.
이를 떠올린 제네로커가 살짝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녀석…….”
그가 검지로 코를 쓱쓱 문질렀다.
“동생이 가지고 싶으면 그렇다고 말을 하지…….”
제네로커의 얼굴에 수줍음이 보이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킁킁-.
제네로커가 술병에 코를 대고 향을 맡았다.
“딱 마시기 좋게 잘 익었네.”
아마도 프루지아 나무 근처에 흐르는 시간 성법은 뇌령초의 기운이 술에 잘 우러나게끔 만든 성법이리라.
‘아들…….’
제네로커는 어제 떠나간 아들을 떠올리며 아련한 얼굴을 해 보였다.
“갈 때는 그렇게 툴툴거리더니만…….”
떠나가며 이런 선물을 남기고 가다니.
그것도 딱 지금 먹기 좋게 술을 숙성시켜 놓고 말이다.
새삼 아들의 배려심에 코끝이 찡해졌다.
‘아들… 아빠가 힘내 볼게!’
그리 다짐하며 제네로커가 거침없이 병을 개봉했다.
뽕-.
경쾌한 소리와 함께 콧속으로 파고드는 달달한 주향.
제네로커는 거침없이 술을 들이켰다.
꿀꺽- 꿀꺽-.
“크으!”
750㎖에 달하는 술 한 병이 비워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동시에 제네로커의 얼굴에 감탄이 서렸다.
“허… 역시 뇌령초인가!”
드래곤들조차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뇌령초.
마시자마자 순식간에 몸에 활력이 울끈 불끈 치솟았다.
“좋구나.”
입가에 씨익 미소를 머금은 제네로커가 바로 몸을 돌렸다.
들뜬 발걸음으로 빠르게 레어를 향해 나아가는 그.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여보?”
로이스의 방을 서성이고 있던 발렌티나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서 있는 이는 다름 아닌 자신의 남편.
근데 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당신, 왜 그래?”
연신 콧김을 훙훙- 뿜어내는 제네로커의 얼굴에는 옅은 흥분이 서렸다.
성큼성큼 걸어온 그가 발렌티나의 손목을 대뜸 잡아챘다.
그리고 은은한 눈길로 발렌티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발렌티나.”
“응?”
“로이스가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
“자기만 바라보지 말고 즐기며 살라고.”
“그랬지. 그런데 그게 왜?”
“아무래도… 로이스가 동생을 가지고 싶은가 봐.”
“…….”
잠시 사고가 정지된 발렌티나가 눈을 끔뻑였다.
그러다가 이내 얼굴이 붉어지며 소리쳤다.
“대, 대낮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어허!”
박력 있게 발렌티나를 잡아당겨 품에 안은 제네로커가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우리… 로이 동생이나 만들어 볼까?”
그러면서 발렌티나를 공주님 안기로 번쩍 들어 올렸다.
“여, 여보! 자, 잠깐!”
발렌티나가 당황한 듯 다리를 바동거렸다.
“가 볼까?”
아내를 안은 제네로커가 성큼성큼 침실로 향했다.
“이, 이이가 뭘 잘못 먹었나?!”
당황스러운 듯한 발렌티나의 목소리.
하지만 그런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팔은 슬그머니 제네로커의 목을 감쌌다.
살짝 수줍은 얼굴로 말이다.
그렇게 로이스가 독립을 위해 여행을 떠난 다음 날.
아주 작은… 사소한 오해로 인해.
예정에 없던 여동생이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