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nter Club RAW - chapter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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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마녀의 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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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신가요? 입맛에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걱정하지 않아도 되느니라. 이 정도면 대단히 훌륭한 솜씨니… 우물우물….”
“너무 급하게 드시면 체할 수도 있답니다. 여기, 차랑 같이 드세요.”
“오오, 고맙구나. 후루룹….”
한동안 별 생각 없이 차를 홀짝이던 브리트라는 갑자기 흠칫 몸을 떨었다. 그리곤, 어딘가 상당히 불편한 시선으로 생글생글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임유진을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쳐다보느냐? 내 얼굴에 구멍이라도 낼 기세로구나.”
“어머, 불편하시다면 죄송해요.”
말로는 미안하다고 하면서, 임유진은 브리트라의 포동포동한 얼굴에 고정되어 있는 시선을 거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과 눈빛이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임유진의 열렬한 시선을 감내하며 꾸역꾸역 식사를 진행하던 브리트라는 결국 신경질적으로 식기를 내려놓으며 화를 냈다.
“그만 하라. 난 지금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있다.”
“네?”
“그렇지 않은가? 그대가 날 보는 눈빛은 윗사람에 대한 존중과 경외가 아니라, 어미가 나약한 새끼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나는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귀여우신걸요.”
“이 껍데기는 단순한 화신체일 뿐이다. 본질을 외양으로 판단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행동일지니….”
“정말 예뻐요. 브리트라 님, 오후에 같이 옷이라도 사러 갈까요? 제가 좋은 옷가게를 알아요. 아, 머리를 다듬는 것도 괜찮겠네요!”
“…이런 걸 짜증이 난다고 하는 건가?”
“네? 어떠세요?”
“…….”
극성 아줌마 모드가 되어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 임유진. 이래서야 도무지 대화가 진행되질 않는다. 답답한 한숨을 내쉰 브리트라는 가볍게 도리질을 하며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을 식기에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잘 먹었노라.”
그녀의 옆에 쌓여 있는 빈 식기는 도합 열 그릇이 넘었다. 그것도 모두 깨끗하게 싹싹 비워져 있는 빈 그릇. 위장에 블랙홀이라도 뚫려 있는 것인지, 도대체 저 조그마한 몸 어디에 저만한 음식이 들어갈 공간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사용인이 브리트라의 가냘픈 몸과 빈 식기를 번갈아 쳐다보며 테이블을 치우는 동안, 고압적으로 팔짱을 낀 브리트라는 예의 그 샛노란 뱀눈을 번뜩이며 임유진을 응시했다.
“자, 그럼 이제 원하는 것을 말해보아라.”
“원하는 거라뇨?”
“내가 바보인 줄 아느냐? 한낱 포로인 내게 이토록 극진한 대우를 해 주는 걸 보면 분명 원하는 바가 있을 터. 큰 대접을 받았으니, 내 형편에 따라서 청을 고려해 보겠다.”
“호호호… 극진한 대우라니요. 별로 해 드린 것도 없는데요.”
“아니다. 내 평생 이런 성찬을 즐긴 것은 처음이었다. 그대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느니라. 내 종속의 계약에 묶여 많은 것을 해 줄 수는 없지만, 미력하나마 보답을 하고 싶다.”
또박또박 말하는 브리트라의 얼굴은 무척이나 엄격하고 진지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임유진 쪽이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난처한 입장이 되었다. 극진한 대접이라고 하기엔 정말 별 게 없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헌터들이 즐겨 먹는 식사류 5, 6인 분 정도를 대접했을 뿐이다. 조그만 아가씨가 혼자서 해치우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이긴 하지만, 금전적으로 따지면 또 얼마 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그런 정도로 종속의 계약 운운하며 보답을 하고 싶다하니, 임유진이 곤란해 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간의 행동으로 판단하면, 이 브리트라는 나이만 많이 먹었지 세상물정이라곤 전혀 모르는 순둥이였다. 다시 말해서, 등쳐먹기 딱 좋은 바보라는 소리다. 하긴, 수백 년 간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반복하며 지하에 숨어 살았을 테니, 현실감각이 무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게다가, 브리트라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임유진을 비롯한 사람들이 브리트라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브리트라 님은 스퀘어에서 천 년을 살아온 존재라고 하셨지요?”
“그러하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문제될 것은 없지요. 저희가 원하는 건 브리트라 님이 살아온 삶 그 자체니까요.”
“우음?”
백금발을 치렁하게 늘어뜨린 미소녀가 똘망하게 눈을 치뜬 모양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지만, 임유진은 허벅지를 꼬집으며 간신히 욕구를 눌러 참아냈다.
“브리트라 님이 그이와 종속의 계약을 맺었으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희는 이 스퀘어란 세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카름 전쟁이 일어나기 전, 세계는 어떠했는지, 위원회의 성립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저희 나름대로 알아낸 것도 있지만, 산 증인에게서 듣는 건 또 다를 테니까요.”
그때, 어디선가 들려온 묵직한 음성이 임유진의 말에 사족을 덧붙였다.
“더불어 네가 지닌 방대한 지식도 말이지.”
“아! 일어나셨어요?”
잠옷을 입은 노구덕의 등장에 임유진은 반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브리트라의 반응은 임유진과는 딴판이었다. 그녀는 노구덕의 등장이 영 못마땅한 듯, 아랫입술을 픽 내밀며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브리트라. 주인이 왔는데 인사도 하지 않는 거냐.”
“인사라는 건 하잘 것 없는 세상의 예의에 지나지 않느니. 탈속한 존재인 이 몸이 그런 것에 구애될 이유가 전혀 없도다.”
“뭐라고 구시렁거리는 건지.”
뭐라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투덜대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다. 그도 그럴 게, 그래도 이곳 아이리스 클럽 홀에서 브리트라를 막 대하는 사람은 노구덕 밖에 없었다. 아무리 종속의 맹세를 하고 주인으로 모셨다지만 새파랗게 어린(?) 인간에게 막말을 들어먹는데, 브리트라가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잘 지냈냐?”
“덕분에 호강을 했다. 임유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래, 내 덕이란 소리군. 내가 유진이에게 잘 보살피라고 말을 해두었거든.”
“임유진 덕분이다.”
쓸데없이 딴지를 걸어오는 브리트라의 공격을 가볍게 흘려 넘긴 노구덕은 자연스럽게 임유진이 빼 준 의자에 엉덩이를 걸쳤다. 어젯밤 늦은 시간에 연맹총단에서 복귀를 한 지라, 그의 눈 밑엔 숨길 수 없는 피로감이 어려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빡빡한 일정이라도 그가 육체적인 피로를 느낄 리 없다. 그의 피로는 홀로 밤을 지새우느라 단단히 삐쳐버린 소피아의 기분을 풀어주는데서 기인한 정신적인 스트레스였다.
소피아의 기분을 맞춰주면서도 그녀와 앙숙인 데모나의 눈치도 살펴야 했으니, 그 고통이 오죽할까. 그러나 달리 누구를 탓할 것도 없는 그 자신의 업보였다.
어제의 고충을 털어내려는 듯, 크게 한번 숨을 들이켠 노구덕은 천천히 숨을 내쉬며 가슴 어림을 가리켰다.
“심장이 자리를 잘 잡은 것 같아. 힘이 더욱 강해진 게 느껴진다. 특히 영력이. 재능 레벨은 오르지 않았지만, 기운이 아주 충만해.”
“저널? 아, 너희들이 멋대로 끌어온 그 오염된 힘인가… 후후후. 그따위 미개한 수단으로 이 몸의 힘을 재단할 순 없느니라.”
심장을 홀라당 뺏긴 주제에 허리에 척 손을 얹으며 쓸데없는 자부심을 보이는 브리트라였다. 꼬맹이 소녀 주제에 근엄한 척 하는 것이 영락없는 어린애로만 보인다. 노구덕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괴리에 픽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충왕각인도 저널로서는 알 수 없는 힘이니까.”
“네가 얻은 힘은 이 몸의 막강한 권능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느니.”
“구체적으로 수치화시켜서 말해봐. 느낄 수 있잖아.”
“굳이 수치화시킨다면 약 이 할 정도….”
“20%인가. 그럼 아직 더 강해질 여지가 남아있다는 소리군.”
브리트라는 노골적인 그의 말에 불쾌하다는 듯 표정을 구기며 머리를 흔들었다.
“너희 인간들은 정말 구제불능이로구나. 병적으로 힘을 탐하며, 강해지는 데에만 집착한다. 찾아보면 다른 길은 얼마든지 널려있거늘.”
“다른 놈들이 어떤지는 관심 없어. 신선놀음이라면 나 말고도 할 일 없는 다른 누군가가 하겠지. 나는 오직 힘이 필요할 뿐이다.”
“하여튼…….”
“설교는 됐고, 방금 유진이에게 들었겠지? 우린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원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서부터 위원회와 연맹의 지난 행적, 네가 알고 있는 스퀘어의 오리지널 기술들… 전부 다. 애초에 그걸 알기 위해 살려둔 목숨이니까.”
오리 주둥이처럼 댓 발이나 튀어나왔던 브리트라의 입술이 슬그머니 들어갔다. 진지해진 노구덕 앞에서 빈정 상한 티를 내봤자 결코 이로울 게 없다는 걸, 그간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던 탓이다. 이 무지막지한 인간 앞에선 천 년의 연륜도, 연약하고 가냘픈 미소녀의 외양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만약 임유진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브리트라는 몸조리를 할 겨를도 없이 노구덕에게 잡혀 알고 있는 것을 모조리 토설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는 브리트라는 처연하게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겼다.
“그리 다그치지 않아도 된다. 어차피 나는 네 명령이 떨어진다면 협력할 수밖에 없는 처지니….”
“그럼….”
“허나, 지금은 조금 곤란하다.”
“뭐라고?”
그렇잖아도 흉험한 노구덕의 인상이 더욱 포악하게 일그러지자, 브리트라는 혹시라도 한 대 맞을세라 재빨리 뒷말을 덧붙였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서는 천 년을 살아온 왕뱀의 체면이고 뭐고 없는 법이다.
“나는 여러 번 탈피(脫皮)를 거듭하면서 가지고 있던 기억을 상당 부분 잃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최근의 것뿐이다.”
애잔하게 믿어달라고 말하는 표정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애당초 종속의 맹세를 한 브리트라가 거짓을 말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자세히 말해라.”
“발레기우스… 그자는 이상한 능력을 썼다. 그자가 발하는 빛을 내리쬘 때마다 이 몸의 일부가 기괴하게 변이하면서 통제를 벗어났다. 마치… 마치 거대한 기생충이 몸을 좀먹는 느낌이었다.”
“…그건… 이레귤러로군.”
브리트라의 진술을 들은 노구덕은 깊이 침음했다. 아무래도 발레기우스가 브리트라를 제압했던 일면에는 ‘이레귤러’라는 절대적인 무기가 숨어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 역시 따지고 보면 스퀘어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레귤러를 발생시키는 그 기이한 빛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터. 그것도 격전의 와중에 빛을 쬐면서 싸웠다면, 브리트라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발레기우스를 이길 순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자를 만날 때마다 오염된 부분을 잘라내며 탈피를 해야만 했느니라. 하지만, 강제적인 탈피였기에 진신(眞身)의 일부가 떨어져나가는 걸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레귤러가 일어난 신체를 도마뱀처럼 잘라내면서 살아남았다는 건가. 그 때문에 기억과 힘을 잃었고?”
“정확하도다.”
“…골치 아프게 됐군.”
생각지도 못한 암초에 걸려버린 노구덕은 지그시 이마를 짚었다. 브리트라를 살려둠으로써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으려고 했는데, 역시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하늘은 불로소득을 원치 않는 모양이었다.
머리가 아파진 노구덕은 비극의 여주인공처럼 가련한 얼굴을 하고 있는 브리트라를 마구 채근했다.
“그럼 기억나는 게 아무것도 없는 거냐? 뭐라도 좋다. 마녀회나 벌레교단, 아니면 강했던 인간들이 모여 있었던 장소라든가, 유적 같은 것 말이다.”
“으우움… 그러고 보니 하나 기억나는 장소가 있구나. 잘 된다면 큰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게다. 어쩌면, 내 잃어버린 일부를 되찾을지도 모르고.”
“그곳이 어디지?”
“남쪽… 남부에 있는 사막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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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마 한편으로 끝날 것 같습니다. 신년회가 잡혀서요.. ㅠㅠ 월말연초는 항상 바쁘군요..
리리플은 몇 시간 뒤에 달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다면, 지난화 코멘으로 달아주세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