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 writer! RAW novel - Chapter 18
나는 작가다 018화
18화
“으, 물 좀 마셔야지.”
성용 형님과 헤어진 뒤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냉장고부터 열었다.
안에 들어있던 물통을 꺼내 마셨다.
물이 좀 들어가니 술의 알코올 농도가 희석되는 기분이다. 물론, 기분만 그런 걸 수도 있다.
어쨌거나 기분이라도 조금 나아진 것 같으면 됐지.
물통을 냉장고에 도로 넣은 뒤 샤워부터 했다.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나오니 노곤하다.
한숨 잘까 싶었는데, 딱히 잠은 오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있던 난 잠이 안 오니 다른 할 거리를 찾았다.
“그래, 도서 갤러리나 들어가볼까?”
내 작품인 ‘황제 로키’의 이야기가 오간다는 도서 갤러리.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해 볼까 싶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컴퓨터를 켠 뒤 도서 갤러리에 접속했다.
내 작품을 검색해 볼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게시글 중 추천수가 많이 붙으면 가는 개념글에도 내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당장 1페이지만 봐도 간간히 내 이름과 작품이 언급된 게 보였다.
“개념글부터 봐볼까?”
제일 상단에 있는 개념글을 들어가 봤다.
제목 : 황제 로키, 이런 것도 소설이냐?
내용 :
평소에도 수준 낮던 상업소설이나 보는 것들이 아주 물고 빨고 장난 없네.
차라리 일본 소설 빠는 애들은 몇만 부, 몇십만 부라도 팔지.
우리나라에서 이딴 쓰레기 써봐야 몇 부나 팔리냐?
5천 부? 뭐, 들어보니 그것도 못 파는 쓰레기들이 수두룩하다더만.
자꾸 이런 종이 낭비하는 쓰레기가 될 것들 좀 빨지 말아라.
어디 소설 같지도 않은 걸 가져와서는, ㅉㅉ.
그리 긴 글은 아니나 꽤나 강렬했다.
“쓰레기라······.”
원래 디사가 이런 곳인 걸 알았지만, 막상 내 작품을 욕하니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어쨌거나 이곳에 날 드러낼 계획은 인세를 받고 난 후에나 할 생각이었다.
“댓글이나 보자.”
-넌 그만큼 쓸 수나 있냐?
└이딴 글을 왜 쓰냐? 쓰레기를.
└쓰지도 못하면서 씨부리긴.
└너 작가냐?
-황제 로키는 요 근래 판타지 소설 중 정말 내용이 풍족하다고?
└지랄을 해라, 맨날 여기저기서 써먹는 소스 가져다가 쓰는 쓰레기들 내용이 뭐가 풍족하냐?
└후, 뭐 눈에 뭐만 보인다더니.
└그게 바로 너네 이야기지, 쓰레기들아. 쓰레기들 눈에는 쓰레기만 보이지.
-근데 황제 로키가 책으로 팔리면 너보다 많이 벌걸?
└응, 형 한 달에 500만 원 이상 번다.
└ㅋㅋㅋ, 퍽이나 매달 500만 원 버는 놈이 여기서 이러고 있겠다.
└인증해 줄까?
└ㅇㅇ.
└오, 인증 구경하자.
└여기가 매달 500만 원 벌면서 디사나 하는 쓰레기가 있는 곳인가요?
-기다려라, 통장 사진 찍어서 옮겨온다.
└어디서 퍼오려고 기다리래.
└지랄, 내가 유동닉 ‘ㅇㅇ’ 메모지에 쓰고 브이로 손까지 인증한다.
······.
“한 달에 500만 원······.”
만약 내가 만년과장 이준경이었다면 부러워할 돈이긴 했다.
15년 동안 푸른숲 출판사에 인생을 바치며 일했어도 내겐 주어지지 않았던 500만 원이란 월급과 부장직.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난 편집자 이준경이 아니라 작가 이준경이었다.
한 권에 900만 원 가까운 인세를 받는. 또한 작심하면 이틀에 한 권씩 뽑아낼 수 있는.
이틀에 한 권이면 한 달에 총 열다섯 권.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한 달에 1억 넘는 인세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쓰면 나 자신을 태풍의 눈에 놓은 격이니 허리케인 이준경이 될지도 몰랐다.
하얗게 불타 버린.
어쨌거나 여유롭게 한 권만 쓴다 그래도 이미 500만 원 이상 벌게 된 내 앞에서 그 돈 가지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 있다.
하물며 내 작품을 쓰레기라고 폄하하며.
나 대신 많은 이들이 댓글이라는 몽둥이를 들었다.
‘우리가 재밌다고 한 작품을 쓰레기라고 하는 네놈이 쓰레기다’ 혹 ‘이거 북조아 사이트에 연재했다가 망한 놈 아니냐?’ 등등.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다.
황제 로키를 재밌게 읽고서 내 편이 되어주는 독자들.
작가에게 이보다 더 큰 뿌듯함이 또 있을까?
조금이나마 풀어진 기분으로 개념글 몇 개를 더 훑어봤다.
그 때 하나의 게시글이 보였다.
제목 : 월 500 인증이다.
내용 :
이 형은 너희처럼 하루 종일 도서갤이나 붙잡고 사는 백수들하곤 다르다고?
게시글에는 통장에 매달 말일 기준으로 500만 원이 약간 넘어간 사진까지 올라가 있었다.
딱 일자랑 금액만 제외하곤 전부 지운 통장 내역.
댓글로는 ‘합성 아니냐?’ 혹 ‘진짜라면 부럽긴 하네’ 등의 이야기들이 보였다.
그걸 본 난 술을 마시고 왔기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게시글 작성에 손이 갔다.
본래 인세를 받고 나면 인증하려고 했던 계획을 앞당겨 버린 것이다.
‘예고장’ 형태로.
제목 : 안녕하세요. 이준경 작가입니다.
내용 :
지인에게 도서 갤러리에서 제 작품인 ‘황제 로키’가 화제라고 해서 들르게 됐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제 작품을 좋아해 주셔서 너무나도 뿌듯합니다.
한데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반대인 사람들도 많네요.
유동이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대충 이렇게 이름을 붙여봅니다.
월오백님.
쓰레기라고 폄하하신 제 글이 오늘 계약서 도장을 찍었는데,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 다음 주 금요일 이 시간에 보여드리겠습니다.
제 글을 사랑하는 독자님들에게도 소정의 이벤트를 열 생각이니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오늘부터 황제 로키를 5편씩 올릴까 했는데, 제 편을 들어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오늘도 10연참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쓰고 올렸다.
취기에 올린 게시글을 가만히 바라봤다.
술기운에 실수를 해버렸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았다.
“어차피 하려던 거니까. 으, 갑자기 피곤하네.”
뭐랄까.
방금 올린 게시글에 쓴 움직임은 손가락뿐이었는데, 평소 집필할 때보다 더 피곤해졌다.
이제야 술기운이 수면제 역할을 좀 해주는 건지.
컴퓨터를 끄고 침대로 돌아갔다.
그곳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내일을 위해서.
***
“으, 잘 잤다.”
일어났다.
거기서 가장 먼저 한 건 어제의 기억을 더듬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이었으니까.
침대에 누운 채로 생각했다.
‘계약을 위해 성용 형님과 술자리를 가졌고, 거기서 도서 갤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으며, 집에 돌아와 도서 갤러리에다가 게시글을 하나 올렸지.’
잠들기 전 있던 일들을 떠올린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게시글!”
누워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화살을 쏘아낸 활시위처럼.
취중에 올린 게시글을 떠올린 나는 곧장 책상으로 움직였다.
컴퓨터를 켜기 무섭게 도서 갤러리부터 들어갔다.
굳이 어제 올린 게시글을 검색할 필요가 없었다.
도서 갤러리 개념글 최상단에 위치해 있었기에.
댓글이 수십 개가 달려있었다.
게시글의 내용을 확인하니 이제 네 시간이 지난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댓글들을 확인했다.
-미친! 진짜 이준경 작가야?
└사칭 아님?
└누가 이딴 사칭을 해?
└진짜 이준경 작가면 대박이겠는데?
-월오백님이래 ㅋㅋㅋㅋ
└졸지에 유동 녀석 닉 생겼네.
└내친 김에 고정닉 파라, 월오백아.
-월오백이 월오백 번다고 자랑스레 떠들었는데, 다음 주에 이준경 작가한테 발리는 각 아니냐?
└보니까 신인이던데. 월 500은 힘들지 않나?
└대가리가 없냐? 힘들면 뭐하러 이런 예고장을 던지냐?
└예고장 ㅋㅋㅋ, 괴도도 아니고.
└예고장은 쩔긴 했다.
└인정; 설마 작가가 직접 등판해서 다음 주에 어디 보잔 듯이 예고장을 던질 줄이야!
-여기가 그 소문 무성한 성지인가요?
└성지 순례 왔습니다.
└도서갤에서 사건 터졌대서 성지 순례 왔습니다.
-와, 이 새끼들은 잠도 없나? 이 시간에 댓글 다는 거 보소;
└자기소개 즐!
└그러게, 지도 이 새벽에 댓글 달면서 지랄이네.
······.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술기운에 내가 붙인 이름인 월오백과 다음 주 내 인증샷에 대한 이야기투성이였다.
그걸 본 내가 생각한 건 딱 하나였다.
“이왕 바를 거 4권이 아니라 이번 주는 황제 로키에 집중해야겠다.”
이준경 월드를 구축하기 위해서 준비 중이던 드래곤 나이트 원고.
잠시 집필을 멈추고 오늘부터 황제 로키 원고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하루 열 시간을 꼬박 쓰면 7만 자가량.
작정하고 스무 시간을 처박으면 14만 자도 가능했다.
인세를 최대한 벌어서 인증하기 위해 난 황제 로키 원고에다가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이 다가왔다.
***
“후, 금요일에 인증하기로 했으니 이 정도만 해서 보내자.”
저번 주 도서 갤러리에 예고장을 던진 날이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예고장에 인증하기로 한 날이 이번 주 금요일!
한두 푼도 아니고 몇 천에 가까운 인세를 받으려면 이틀 정도 여유는 줘야 가능했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상당히 큰 지출이었으니까.
때문에 딱 수요일인 오늘까지 정리한 원고부터 보내고 인세를 내일모레 지급해 달라고 할 심산이었다.
그래서 완성된 원고 권수는?
방금 딱 마침표를 찍은 원고가 황제 로키 7권이었다.
정말 월오백이란 유동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서 빡세게 집중한 결과.
본래 여유롭게 드래곤 나이트도 쓰면서 4권이나 완성하려던 기간 내에 세 권을 더 써낸 것이다.
난 완성된 원고를 성용형님 업무메일로 보냈다. 그리고 곧장 확인하고 인세를 부탁하기 위해 문자로 연락했다.
-형님, 원고 보냈습니다.
-오, 진짜?
보내주기로 한 원고가 도착했단 사실에 기뻐하는 성용 형님.
그에게 난 인세가 제때 지급되도록 언질을 줬다.
-예, 금요일까지 인세 지급 좀 깔끔하게 부탁드릴게요.
인세를 잘 좀 부탁한다고 하니 성용 형님에게서 곧장 답변이 왔다.
-예고장 때문이구나?
예고장.
도서 갤러리 사람들이 내가 올린 게시글을 보고 그리 불렀다.
성용형님 역시 그 게시글을 봤단 소리였다.
-형님도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제삼자의 시선에서 우리 출판사 작품이나 동종업계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니 매일 본다고.
-그렇군요.
-바로 사장님한테 보고 드리고 인세 지급은 차질 없도록 해줄게.
-예.
이제 금요일만 기다리면 되나 싶었더니 갑자기 성용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기 무섭게 성용 형님의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예?”
“너 혹시 원고 비축해 뒀던 거냐?”
“아닌데요.”
비축한 원고가 아니라고 하자 성용 형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그, 그럼 원래 4권까지 주기로 해놓곤 세 권을 더 쓴 거란 말이야? 단 5일 만에?”
“예.”
“그때 술자리라 편하게 이야기했는데, 아무래도 진짜 너 같은 작가는 못하겠다.”
“음?”
“아니, 5일 만에 세 권 반을 어떻게 써! 네가 인간이냐?!”
솔직히 편집자였던 내 경험으로 봐도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했다.
시놉시스를 정리하고 쭉 쓰는 쪽이 내게 맞는 집필 성향인 걸 알아냈다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내 집필 속도는 가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흔히들 작가들이 말하던 글 쓰는 기계가 된 기분이었다.
막상 이게 회귀한 내 버프가 아닐까 싶긴 했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세가 중요하지.
어쨌거나 사람한테 인간이 맞냐던 성용 형님에게 답했다.
“썼잖아요?”
내 대답에 성용 형님이 혀를 내둘렀다.
“원고 확인해 보니 진짜로 쓴 게 맞아서 뭐라 할 말이 없구나.”
마치 현실을 부정하고 싶으나 부정할 수 없는 자의 반응.
거기서 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 얼른 사장님한테 보고나 하시죠.”
사장에게 인세를 지급할 수 있도록 보고해 달란 말에 성용 형님이 김두식 걱정을 했다.
“알겠다. 사장님 기절하시겠네. 한두 푼도 아니고 6천이 넘는 돈을 내주시려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