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209)
00209 땅따먹기 =========================================================================
퍽! 드드드드! 치이익!
갈라지는 땅 틈으로 둘은 끝없이 추락했다. 정효주는 한 팔로 유지웅을 잡고, 다른 손으로 벽을 긁었다. 낙하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보호막이 걸려 있다지만 어디까지 떨어질지 알 수 없는 판이다. 조금이라도 충격에 대비해야 했다.
저 멀리 창공의 푸른빛이 보였다. 정효주의 안타까운 시선을 외면하듯이, 거대한 잎사귀가 빠르게 구멍을 덮어버린다. 점점 작아지는 구멍은 마침내 한 조각의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막혀버렸다.
그때 추락이 멈췄다. 정효주는 필사적으로 벽을 잡던 손을 뗐다. 아마 흙투성이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얼른 신랑부터 살폈다.
“괜찮니?”
“으……. 괜찮아. 너는?”
“나야 튼튼하지.”
비거가 거의 다 소모됐지만. 정효주는 그 말은 뺐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둘은 서로 꼭 붙은 채 몸을 웅크렸다.
한순간에 지하 깊은 곳에 떨어져 버렸다. 보호막 능력은 이런 곳을 탈출하는 데 필요가 없다. 어찌하면 좋을지 막막했다. 아니, 그보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갑자기 지진이 일어났어?”
“주파수로 언뜻 들었는데 땅속에 본체가 있었다는 말을 한 것 같아.”
“누가? 장 팀장님이?”
“……응. 그리고 아까 봤어. 어떤 커다란 잎이 우리가 빠진 구멍을 덮는 걸. 굉장히 컸어.”
“그럼 여기 어딘가에 괴수 본체가 있다는 거야?”
유지웅은 불안해져서 더욱 정효주를 바짝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살이 느껴졌지만 조금도 달콤하지 않았다.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속이 바짝바짝 탔다.
“땅이 무너지진 않을까?”
“근데 뭔가 이상해. 우리 밟고 있는 이거, 감촉이 바위나 흙 같지는 않아. 좀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탱커는 눈 밝지 않아? 안 보여?”
“눈 밝으면 뭐 하니. 빛이 전혀 없으면 못 보는데.”
유지웅이 그녀에게 보호막을 걸자 은은한 빛이 일어났다. 아주 밝지는 않았지만 밤눈에 익숙해진 둘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빛이었다.
눈에 들어온 풍경에 둘은 깜짝 놀랐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꿈틀거리는 굵고 기괴한 줄기, 껍질, 그리고 신경 다발처럼 퍼져 있는 잎맥들이 공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마치 근육 신경 조직을 확대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 이게 다 뭐야?”
“땅속이 아니라 꼭 괴수 안에 갇힌 거 같잖아?”
마른 침이 넘어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굵은 신경 다발이 꿈틀거리는 식물 조직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름드리나무의 몇 배를 넘어가는 줄기들이 전선 다발처럼 복잡하게 엉킨 채 끝없이 사방을 메운 광경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확실히 깨달았다. 단순히 땅속에 갇힌 게 아니라, 땅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식물의 안에 갇힌 것임을.
“그럼 이게 괴수 진짜배기란 거야? 우리가 땅에서 잡은 것들은 다 떨거지고?”
“……그럴지도 모르겠어. 어쩌지?”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제니스가 지상에서 상대한 건 다수의 레드 몹과 셀 수도 없는 옐로 몹으로 구성된 식물 군단이었다. 그런데 정작 본체가 땅속에 따로 있다면, 그 강함은 아마도 블랙 등급 정도 되지 않겠는가?
완편된 공격대라면 블랙 몹이라 해도 두렵지는 않다. 쉽지는 않은 상대지만 이제 자신감을 갖고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둘 밖에 없다. 그것도 정효주는 비거가 20% 정도 밖에 남지 않은, 리타이어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태다.
몸이 떨려 왔다.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살아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차갑게 피부에 꽂혔다.
블랙 몹을 상대로 일반 공격대는 무력하다.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차라리 바보짓이다.
결국 외부 조력 없이 자력으로 탈출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깊은 땅속에서 도대체 무슨 재주로? 그것도 효주는 거의 리타이어 직전인데?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절망감이 엄습해왔다. 하지만 유지웅은 꾹 참고 내색하지 않았다. 어쩌면 소용없는 짓인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생각 못할 만큼 효주는 어리석은 여자가 아니었으니.
가늘게 떨리고 있는 어깨가 바로 그 증거다. 둘은 한참이나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한 채 부둥켜안고만 있었다. 죽음의 위험을 서로가 깊이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문득 정효주가 입을 열었다. 죽어가는 듯이 조그만 목소리였다.
“만약에 우리 살아나가면…….”
“만약이라고 하지 마. 반드시 살 수 있어.”
“어떻게? 무슨 재주로?”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있다. 그게 안타까워 그는 더욱 아내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사, 살 수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젠장! 목소리가 왜 떨리지? 이래서야 설득력이 없잖아!
이빨이 딱딱 부딪친다. 다시 둘은 말이 없어졌다. 조용히 껴안은 채 서로의 체온만 느꼈다. 둘 다 인정한 것이다. 모든 게 틀렸다는 것을.
만약 정효주가 완벽한 상태였어도 별 반 다를 건 없었으리라. 땅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블랙 몹의 몸속에서 도대체 무슨 재주로 탈출할 수 있겠는가?
얼마의 시간을 다시 그렇게 흘려보냈는지 모른다. 문득 정효주가 조그맣게 말했다. 처음 유지웅은 제대로 못 들었다. 그녀가 재차 말을 하자 그는 꿈에서 깨어나듯 겨우 인식했다.
“……걸.”
“……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아이 가질 걸.”
후회와 눈물이 담긴 중얼거림에 그는 가슴이 꽉 막혔다. 그녀의 안타까움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흔히 위급한 순간 남녀의 성욕은 더욱 고조된다고 한다. 개체가 가지는 번식 본능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선명하고 차가운 죽음의 선고는 성욕 그 자체보다는, 세상에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것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고 있었다.
“살아 돌아가면 꼭 아이부터 갖자.”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 나가?”
“희망 버리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일단 블랙 몹이 우릴 모르는 거 같으니까 회복하는데 힘써. 비거가 다 회복되고 나면 방법이 있을 거야.”
정효주를 토닥거리며 유지웅은 힘 있게 말을 이었다.
“생긴 걸 보니 끽해봐야 식물형이야. 안을 잘 찾아보면 약점 같은 게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동물형이 아닌 게 어디야? 적어도 소화되지는 않고 있잖아?”
정효주는 그만 쿡 웃음을 터트렸다. 조금이지만 분위기가 살짝 누그러졌다.
“우리 갇혔다고 포기하지 말자. 방법이 있을 거야.”
“……응.”
“일단 비거부터 회복하자.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는 거랬지? 괴수도 우리를 모르는 거 같으니까 참고 기다리자.”
그녀가 조용히 끄덕거렸다.
말없이 그녀를 안고 있으니 유지웅은 갈증이 났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 남자 행세를 했지만 그라고 안 불안할 리가 없다. 과연 살아나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그녀에 대한 간절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위기의 순간 성욕이 고조된다는 말은 아무래도 아주 거짓은 아닌 것 같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녀의 가슴을 더듬거리며 단단히 쥐고 주물렀다.
매일 거르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섞는 사이다. 그녀가 당연히 그의 의도를 모를 리 없다. 그녀는 말없이 그의 손길에 순응해 왔다.
얇게 달라붙은 검은 상의 안으로 손을 밀어 넣고, 어둠 속에서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설육을 섞으며 상대의 몸을 더욱 바싹, 그리고 간절하게 끌어안는다.
그녀가 무릎 위에 사뿐히 앉았다. 배를 맞대고, 서로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탐욕스럽게 키스를 나눈다. 팽팽하게 일어선 중심이 그녀의 배를 쿡쿡 찔러댔다. 급박한 순간이라서일까. 어느 때보다 더욱 단단해진 물건이 그녀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허겁지겁 바지를 내리고, 팬티를 옆으로 당긴 채 단숨에 깊이 찔러 넣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안이 다른 때보다 더욱 달콤하고 상냥하게 그의 중심을 감쌌다. 몇 번 왕복하지도 못하고 그녀의 안에서 화려하게 폭발했다.
“…….”
“…….”
앉은 자세 그대로 껴안은 채 그녀는 말없이 입술을 부딪쳐 왔다. 성급한 폭발이었지만 조금도 실망한 눈치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끈적끈적하고 활발한 욕망에 만족스러워 했다.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임을, 그녀도 그도 둘 다 알고 있었다.
약간의 진정 후 그가 다시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부딪쳐 왔다. 그녀를 뒤로 쓰러뜨리고 덮치듯이 올라탄 채 맹수처럼 맹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몸을 활짝 연 채 성이 난 남자를 받아들이며, 그녀는 나지막하고 달콤한 신음을 냈다.
체력과 비거는 별개의 개념이다. 비거는 레이드 능력자로서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지구력 같은 것이다. 당연히 서로 아무 상관이 없다.
소모된 비거가 회복될 때까지 둘은 단단히 결합한 채 실컷 상대를 탐닉했다. 족히 열 번은 넘게 한 것 같다. 때가 때이니만큼 상대가 평소보다 더욱 사랑스럽고 간절했다.
정효주의 안에 중심을 찔러 넣은 채 또 한 번 뜨거운 폭발을 마친 그는 어깨를 껴안은 채 잠시 여운을 만끽했다. 부드러운 속살이 뭉클거리며 중심을 어루만져 온다. 그 감촉이 따스하고 기분이 좋아, 빠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를 달래듯 어깨를 토닥거렸다.
“이만 움직이자. 나 다 회복된 거 같아.”
“……한 번만 더 하면 안 될까?”
그녀는 거절하려고 했으나, 앞날에 대한 불안함이 담긴 목소리를 읽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다시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또 한 번 야수처럼 성을 냈고, 질척하면서도 애정이 담긴 욕망을 그녀의 안에 쏟아 냈다.
그녀는 옷을 찢어 대강 뒤처리를 하고 팬티와 바지를 입었다. 그리고 아직 흠뻑 젖어 있는 그의 물건도 청소해주었다.
정리를 마치고 둘은 일어섰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이라 상대의 눈빛을 조금도 확인할 수 없지만, 서로의 마음은 무엇보다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가 손을 잡았다. 그녀도 놓치기 싫다는 듯이 꼬옥 힘주어 손을 맞잡았다.
“가자.”
“응.”
유지웅은 그녀와 자신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빛이 일어나며 주변 풍경이 보였다.
* * *
백악관 수뇌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미 대통령은 가급적 평정을 지키려고 했으나, 영상을 보면서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도대체 저게 어떻게 된 일인가!”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였다. 누군들 이 상황에서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대초원을 빼곡하게 차지한 레드 몹 및 옐로 몹 식물 군단을 처치한 것은 좋았다. 그러나 지진이라도 난 듯이 땅이 갈라지며 유지웅 커플을 집어삼킨 것부터 공포의 시작이었다. 헬기의 고감도 카메라가 놓치지 않고 잡아낸 그 장면은 대통령의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땅위를 그득하게 차지하고 있었던 괴수 군단이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니.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분석 결과는? 아직도 분석 결과가 없나?”
대통령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온갖 비싼 첨단 장비를 동원해서 만들어낸 분석 결과가 마침내 도착했다.
지하에 자리 잡은 괴수는 지름 수백 미터가 넘는 거대한 씨앗 같은 형태로서, 그 결정체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는 가늠이 되지 않는 수준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그 전에 지상에 출몰했던 레드 몹 및 옐로 몹은 지하 괴수로부터 에너지를 공급 받아 탄생한 새끼 개체일 것으로 추정했다.
“작년 몬테나 주에서 식물 군단이 출현했을 때는 저런 건 없지 않았나? 그런데 왜 이번에는 저런 게 나타났단 말인가?”
“그건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각하.”
여러 가지 의견이 분분했지만 하나만큼은 일통했다. 지하에 자리 잡은 식물 괴수는 적어도 블랙 몹 이상의 강력함을 지녔을 것이라고 말이다.
블랙 몹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호막 능력자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보호막 능력자는 지금 블랙 몹에 잡힌 채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저 괴수를 놔두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안이 빗발쳤고, 그 중에는 심지어 핵사용도 있었다.
“각하,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지금 저 괴수를 처치하지 않으면 미국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니스 공격대장 부부의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는데 핵을 쓴다는 건…….”
“더 이상 시간을 끌었다가 미국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건 미국의 안위를 위해서입니다. 이미 제니스 공격대장 부부도 괴수 안에서 죽었을 겁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각하.”
참모진 및 미군 지휘부에서도 그렇게 결단을 촉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시간을 끌며 망설였다. 결코 감성에 빠져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입장에 기인한 신중함 때문이었다.
만약 둘이 살아 있다면? 마지막 희망을 버리고 최악의 패를 뽑는 어리석은 결단이 될 것이다.
이미 둘이 죽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누가 둘의 죽음을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을까? 미국은 과오를 용서하고 자국을 돕기 위해서 온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핵을 사용한 몰염치한 국가가 될 것이다.
핵을 사용해서 빨리 괴수를 처치하자는 쪽과,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었다. 대통령은 어느 쪽의 의견을 따라야 할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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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슬럼프는 아니고 글쓸 시간이 없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