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aristocrat RAW novel - Chapter (808)
00808 %3C프리시즌 딜러편%3E 최후통첩? =========================================================================
블랙 몹이 일으킨 폭발 에너지는 대부분 지표면으로 투사되었기에 은행 지하 금고는 무사했다. 말이 금고지 웬만한 빌딩 지하실을 통째로 금고로 만든 것이다. 두터운 합금과 콘크리트 벽으로 구성되어 있어 핵 방공호나 다름없는 강인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유지웅 앞에서는 무용지물. 간단하게 땅을 파내 금고를 찾아낸 그는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왼손으로 금고 문을 뜯어냈다. 정용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딜러가 마음만 먹으면 최악의 강도라더니.’
딜러는 최악의 강도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적 딜러는 무적의 강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용석은 바보스러운 공상을 잠깐 해보고 문득 오싹해졌다.
“자자, 들어갑시다. 정 요원님.”
“예?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원금이랑 배상금이랑 전리품은 당연히 챙겨야죠.”
유지웅은 지하 금고 안에 들어섰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이런 경험이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용석은 뺨을 짝짝 쳐서 정신을 차리고 얼른 뒤를 따랐다.
“……엄청납니다! 과연 영국 최대 글로벌 은행답습니다!”
정용석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영국 최대 은행의 본점다운 규모였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현찰과 금괴, 그리고 무수한 국채들…….
정용석은 이런 거액을 눈앞에서 보는 게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마 다시는 이런 경험이 없으리라.
“오, 그래도 꽤 있네?”
유지웅은 휘파람을 불며 가볍게 말했다. 대수롭지 않은 어투에 정용석은 정신을 차렸다.
무서워졌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막대한 돈뭉치를 눈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 저 사람은 대체 돈 감각이 어떻게 되어먹은 거야?
“어디 보자. 달러화가 10억, 유로화가 12억, 금괴가…… 에게, 겨우 1톤? 흠, 이건 약소하군. 엔화가 1000억, 위안화가 5억,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인 현금 다발을 보고 슥 지나치면서 유지웅은 그렇게 내뱉었다. 정용석은 이상해서 물어봤다.
“지금 얼마인지 헤아리시는 겁니까?”
“네. 근사치긴 하지만요.”
“어떻게 한 번 보고 그렇게 잘 아시는 거죠?”
“척 보면 알잖아요. 몰라요?”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한 번 슥 보고 얼만지(아무리 대강이라지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가능해?
현금 다발은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보기만 해도 질려오는데, 그리고 얼마인지 도대체 가늠이 안 되는데, 한 번 보기만 해도 안다고?
“내가 쓰던 것보다는 작네. 일이 어렵진 않겠어.”
“쓰던 것이라니요?”
“아, 저금통이요.”
“……?”
지금 유지웅이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지 정용석은 꿈에서라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튼 유지웅은 가지런하게 묶여서 정돈된 현찰 다발을 그대로 지나쳤다. 저런 것은 관심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금괴를 빼고 현찰만 원화로 5조 원은 너끈히 될 텐데, 그런 거액에는 눈길도 주지 않다니. 정용석은 새삼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8조 원이었나?’
그러고 보니 일성그룹을 엿 먹이는데 8조 원어치 결정체를 기꺼이 투하한 사람이었지? 저 사람에게 5조 원(금고에 있는 현찰만 원화로 셈했을 때 대략적인 가치) 정도는 별 거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기쯤에 있어야 하는데…… 어디 있는 거지? 좀 더 안쪽에 있나?”
“뭘 찾으시는 겁니까?”
“국채요.”
“국채요?”
“네. 펜탈 은행이 영국연방이 보유한 국채 거의 대부분을 보관하고 있거든요. 아, 찾았다!”
유지웅은 안쪽에서 뭔가를 찾아냈다. 정용석도 얼른 뒤따라가서 확인했다.
내부에는 좀 더 작은 간이 금고가 있었다. 대형 냉장고 정도 되어 보이는 크기였다. 유지웅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자물쇠를 뜯어내고 금고를 열었다. 안에는 서류 뭉치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모두 국채였다. 그것도 무기명.
유지웅은 몇 군데서 국채를 빼어 금액을 확인하고는 다시 집어넣는 것을 반복했다. 정용석은 이제 그가 무엇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국채 규모가 총 얼만지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혹시 머리가 엄청 좋은 거 아냐?’
정용석은 문득 무서워졌다. 저런 건 눈썰미가 좋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그냥 휘리릭 보자마자 얼마인지 척 하고 헤아리지 않는가?
1인 공격대, 전략 타격 능력, 보호막만 해도 이미 무시무시한데 여기에 머리까지 좋다면? 그야말로 언터처블 아닌가?
“국채가 유럽, 미국, 일본, 중국 뭐 이렇게 다양하게 있네요. 다행히 대부분 무기명이라서 편하게 됐네.”
“혹시 얼마쯤 되시는지도 알 수 있나요?”
“유럽은 너무 나라들이 자잘하게 많아서 안 세어봤고요, 미국이 4,000억 달러, 일본이 300조 엔, 중국이 5,000억 위안쯤 되는 것 같네요. 현찰까지 다 합치면 모두 대략 1조 달러쯤? 그 중 국채만 9,950억 달러쯤 될 것 같고요.”
말이 나오지 않는 액수였다. 1조 원도 아니고 1조 달러? 그럼 원화로는 1,000조 원? 도대체 대한민국 예산의 몇 년치인 거야?
“개이득. 이 정도면 당분간은 레이드 좀 쉬엄쉬엄해도 되겠다. 진짜 개이득.”
“서, 설마…….”
이걸 다 가져갈 생각은 아니겠지? 그랬다가는 외교적으로 어마어마한 불화가…….
‘아니, 아니지. 애초에 이럴 작정이 아니었으면 금고 문 뜯고 들어오지 않았겠지.’
“자, 가져가죠. 부피도 얼마 안 되니 들고 가기 편하겠다.”
유지웅은 팔을 걷어붙이고 국채를 쓸어 담기 시작했다. 정용석은 퍼뜩 놀라서 물었다.
“국채만 가져갑니까? 현금이랑 금괴는 어쩌시고요?”
“저거 돈도 안 되고 무겁고 부피만 많이 나가는데 뭐하러요?”
“…….”
그러고 보니 맞네? 총 1조 달러인데 그 중 국채만 9,950억 달러쯤 되니 현찰과 금괴는 모두 합쳐봐야 50억 달러가 겨우 될까 말까 하다. 가치는 0.5% 밖에 안 되는 주제에 부피는 99.999%를 차지한다.
“그, 그래도 아까운데…….”
정용석은 머뭇거렸다. 소시민적인 마인드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했다. 유지웅이 흘끗 보더니 말했다.
“현찰이나 금괴는 따로 챙기셔도 돼요.”
“예? 제가요? 정말 그래도 됩니까?”
“네. 어차피 여기 있는 거 다 내 전리품이니까.”
정용석은 화색이 돌았다. 그는 얼른 금괴를 집어 들어 주머니에 되는 대로 쑤셔 넣었다. 가격 대 부피를 생각하면 금괴를 챙기는 게 가장 현명한 짓이다.
1kg짜리 금괴 여러 개를 여기저기 주머니에 쑤셔 넣었지만 그것으로도 왠지 모자랐다. 그는 원통했다. 인생에 다시 안 올, 아니 남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오는 황금 찬스인데, 겨우 이 정도밖에 못 챙기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주머니 많이 달린 옷 입고 올 걸!
“들고 갈 자신 있으면 포대에 금괴 챙기셔도 뭐라 안 할게요.”
“가, 감사합니다!”
살았다! 정용석은 얼른 포대에 금괴를 닥치는 대로 쓸어 넣었다. 족히 30개는 집어넣은 것 같다.
그는 포대를 밧줄로 묶어 가방처럼 만들어 등에 맸다. 여기에 국채를 쓸어 담은 포대까지 짊어지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수십kg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니 당연했다.
반면 유지웅은 조그만 물체 하나만 집어든 간편한 차림이었다. 국채까지 모두 정용석이 짊어졌기 때문이다.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정용석은 일체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짐꾼 알바 한 번 하는 대가로 30kg이 넘는 금괴를 챙겼는데, 어떻게 고용주한테 뭐라 할 수 있단 말인가?(어느새 그의 마음에서 고용주로 위치가 바뀌었다)
“내가 안 거들어줘도 괜찮아요?”
“무, 물론입니다!”
“그래도 꽤 무거워 보이는데.”
“괜찮습니다! 이 정도야, 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갑시다.”
후들거리는 발을 떼면서 정용석은 겨우 지하 금고를 나섰다. 폐허가 된 대지에 서자 차가운 바람이 흘러들어왔다.
이상했다. 모든 게 쓸려나간 풍경인데 마치 경치 좋은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등을 묵직하게 압박하는 금괴 덕분인가?
“저, 그런데 들고 계신 그건 뭔가요?”
문득 그게 궁금했다. 유지웅은 대략 9,950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를 자신에게 맡겼으면서도 저 금속 덩어리는 직접 챙겼다. 금괴나 귀금속 같지는 않은데? 저 조그만 게 대체 뭘까?
“아, 이거요? 유로화 화폐 금형이요.”
“네? 정말이요?”
돈 찍는데 쓰는 틀이란 소리다. 물론 저것만 있다 해서 진폐를 그대로 찍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화폐를 찍어내는 데는 그야말로 고도의 인쇄술이 총동원되니까.
‘근데 저게 왜 펜탈 은행에 있지?’
“그것은 어디다가 쓰시려고요?”
“그냥 이뻐서 챙겼어요. 기념품이죠.”
“…….”
아무튼 수색 병력이 오기 전 둘은 무사히 런던의 폐허를 탈출했다. 삼엄한 경비망을 우려해 금괴와 지폐는 어디 적당한 곳에 묻어서 감춰두고, 눈에 띄지 않게 국정원 런던 지부 비밀 안가에 합류했다. 약 사흘쯤 지난 때였다.
“뭐라고요? 테러리스트? 내가?”
“예. 지금 그것 때문에 국제 사회는 난리가 났습니다. 유지웅 씨가 런던을 쓸어버렸다고…….”
런던 지부장, 박희중은 조심조심 유지웅의 눈치를 살폈다. 사람 좋은 청년처럼 보이는 이 사람은 자기를 공격했다는 이유만으로 10만 명이 넘는 시민을 몰살한 사람이다. 아무리 조국의 명령이 있고, 또 같은 나라 사람이라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세 번 자고 일어나니 테러범이 돼있더라. 유지웅은 황당했다.
‘무슨 MD망이 이렇게 구려?’
보아하니 영국은 블랙 몹의 존재 자체를 캐치하지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크기가 그렇게 큰 편도 아니고, 또 블랙 몹의 결정도는 이 시대의 센서 출력으로는 한계 초과이니 그럴 수 있다. 레이더에 괴수가 잡혀도 어디 그냥 평범한 옐로 몹 한 마리가 날아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것들이 정말! 안 되겠어! 전화 좀 쓸게요.”
“여, 여기 있습니다!”
“이거 보안 완벽하죠?”
“물론입니다! 어디에도 흔적이 남지 않습니다!”
유지웅은 곧바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의 목소리를 확인한 상대방은 울먹이듯이 외쳤다.
「회, 회장님! 무사하셨군요!」
“네, 저는 건재합니다. 김 실장님이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얼마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일단 저 살아 있는 거 효주하고 범석이한테만 알리고요, 국내 여론에 좀 신경 써주세요. 이 틈을 타서 일성이랑 재계에서 허튼 짓 하나 안 하나 잘 감시하시고요. 한국에 들어가는데 며칠 걸릴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유지웅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호흡을 다스렸다. 울화가 속에서 치밀었다.
‘내 이것들을 그냥! 누구를 테러범으로 몰아!’
“여러분, 당분간 제가 살아있다는 건 본국에도 보고하지 마세요. 비밀이 누설되면 곤란하거든요. 당연히 대통령한테도 안 됩니다. 아셨죠?”
“네!”
요원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대답했다. 정용석으로부터 들은 유지웅의 무시무시함은 두 번째 치더라도, 그가 단단히 챙긴 한몫에 요원들은 간이고 쓸개고 빼서 충성을 바칠 태세였다.
“저, 그런데 아직 하셔야 할 일이 남았나요?”
“네. 제 누명을 벗어야겠어요.”
유지웅은 블랙 몹을 잡으려고 나섰다. 다행히 오리나가 블랙 몹의 위치를 희미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요원들의 도움을 받아 영국을 몰래 몰래 이동하며 블랙 몹을 잡으려고 했다.
‘세상을 구한 영웅인데! 누구를 테러범으로!’
그러나 블랙 몹은 그가 가까이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재빠르게 도망쳤다. 아무래도 유지웅한테 강력한 위협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비행형이라서 어떻게 쫓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잡히지 않는 블랙 몹이랑 술래잡기하느라 시간만 낭비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희대의 테러리스트가 되어 있었다.
분통이 터진 그는 결국 포기했다.
“아씨! 몰라! 그냥 한국 가요!”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됐다, 됐어! 로버랑 균열 때문에 바빠 죽겠는데 언제 누명 따위 벗고 있어? 그냥 테러범으로 살지 뭐.”
모두가 존경하는 영웅으로 한 번 살아봤으니, 모두가 두려워하는 악당으로 한 번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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