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17)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7화
행복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리지 못한 채 콘서트 둘째 날이 시작되었다.
[이경 씨, 오늘이 콘서트 둘째 날이잖아요? 어제보다 좀 덜 떨리시나요?] [전 어제도 안 떨었습니다.] [울기만 했군요.] [아, 진짜!]‘와, 진짜…….’
채은성은 스타일리스트들이 한 땀 한 땀 수제로 제작한 일체형 사자 동물 잠옷을 입고 멤버들을 놀리느라 바쁜 예찬을 바라보았다.
무대에 오를 준비를 하는 내내 멤버들을 붙잡고 행복 타령을 해대다가 마지막엔 허탈한 얼굴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기에 걱정했는데, 그야말로 참 쓸데없고 아까운 시간과 감정의 낭비였다.
‘진짜 걱정도 팔자였군. 누가 누굴 걱정한 거야.’
언젠가 인터넷에 레굴루스를 검색하다가 ‘아이돌 하예찬’의 장점을 분석한 글을 본 적이 있었다.
얼굴, 몸, 목소리, 노래 실력, 춤 실력, 작곡 능력, 성격, 말투 등 온갖 좋은 점이 미사여구를 곁들여 나열된 글이었는데, 놀랍게도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전부 공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공감에서 끝나지 않고 거기에 몇 줄 더 더하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특히 강철 멘탈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부동심? 어쨌거나 그거야말로 첫 줄에 들어가야 한다고 쓰고 싶었지.’
동갑내기 같은 팀 리더 예찬은 아이돌로서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중에서도 예찬의 프로로서의 의식은 츄마프 시절을 빼고 레굴루스로 데뷔한 지 벌써 만 1년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주할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요소였다.
스케줄에 임하기 전엔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지만 거의 매일 같이 하루에도 몇 개씩 스케줄이 쏟아지는 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좀 쳐지는 날이 생기곤 했다.
저만의 요령이 있는 건지, 아니면 비실비실한 것 치고 의외로 회복력은 남다른 것인지, 예찬은 그런 날이 다른 멤버들보다 극도로 적었다. 거기에 설사 일 년에 한 번쯤 컨디션이 최악인 날에도 카메라나 관객들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하게 멀쩡한 아이돌의 탈을 뒤집어썼다.
무대에서 날아다녔던 예찬의 이마가 막상 무대 아래에서 보니 식은땀으로 차갑게 젖어 있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때때로 예찬의 그런 점을 단점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었다. 인간미가 없다든지, 가식적이라 진실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든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당연히 예찬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채은성의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오늘처럼 심적으로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였을 때도 예찬은 무대에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만만한 아이돌의 얼굴을 했다.
‘아이돌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이 딱 맞는다고 해야 할까.’
채은성은 좋아하는 아이돌도, 존경하는 아이돌도 아주 많았다. 롤모델로 꼽는 아이돌도 있었다.
그렇지만 예찬과 만나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모든 목록의 최상단에 하예찬의 이름이 자꾸만 선명해져 갔다.
‘절대로 어디에도 말 안 할 거지만.’
채은성의 안에 ‘아이돌 하예찬’이 크게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친구 하예찬’ 또한 그 존재감이 대단했다.
‘만약 내가 자기를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걸 알면……. 차라리 죽여줘…….’
채은성의 본심을 알고 의기양양해서 우쭐할 예찬을 생각하면 죽을 때 비석에나 써 달라고 남기면 모를까, 그 전엔 죽어도 입 밖에 낼 생각이 없었다.
[여러분, 우리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보내요!]‘앗.’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선우이경과 만담하던 게 끝났는지 예찬의 입에서 행복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객석을 향했던 시선을 멤버들에게 돌린 예찬은 이번엔 멤버들을 향해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 멤버들도, 마지막에 꼭!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콘서트를 합시다. 꼭!]‘아니, 대체 뭔데…….’
이쯤 되니 어제 병원을 찾아갔다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지 걱정이 될 뿐이었다.
* * *
“…….”
예찬은 방금까지 무대 위를 누구보다 신나게 뛰어다닌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 볼 수 없는 심각한 얼굴로 깍지 낀 손에 턱을 괸 채 앉아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엔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연락은 오지 않고 있는 스마트폰이 연신 새 메시지의 도착을 알리고 있었고.
“예찬이 벌써 갈 준비 다 한 거야? 빠르네.”
“쉿! 섣불리 말 걸지 마세요, 상록이 형. 예찬이 형 제정신이 아니에요.”
“응?”
“잠깐 이쪽으로……. 콘서트 끝나고부터 또 행복 타령 시작했어요. 가까이 갔다가 당한다고요.”
‘다 들린다, 정의탁.’
예찬에게 들리지 않도록 거리를 벌리고 목소리를 죽인 노력이 아쉽게도, 사람을 무슨 전염병 취급하는 정의탁의 목소리는 예찬귀에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박혔다.
여느 때라면 까부는 동생을 철저히 응징해 줬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의욕이 나지 않았다.
‘왜냐.’
[메인 퀘스트 발생!>― 모두가 행복하게 콘서트를 마무리하세요!
(진행 상태 1/9, 남은 기간 28일)
‘도대체 왜 때문이냐.’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실수 하나 없이 콘서트를 마쳤음에도 진행 상태에 박힌 숫자 1은 박제라도 당한 것처럼 변하지 않았다.
‘아직 자정이 지나지 않아서인가? 혹시 매일 자정에 갱신되는 그런 시스템? 저기요, 하경이 형? 그런 건가요? 그런 거라면 또 튀어나와 봐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하하경일지도 모를 홀로그램 창을 불러 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진행 상태를 눌러도 마찬가지였다.
진행 상태 1/9
― 하예찬 (O)
― 심상록 (X)
⋮
― 정의탁 (X)
― 배새벽 (X)
‘왜……?’
분명 앙코르를 부르는 멤버들의 표정은 만족 그 자체였다. 그 표정이 연기로 만들 수 있는 거라면, 당장 단체로 배우 겸업을 선언해도 전망이 밝을 것이었다.
“어이, 리더. 집에 갈 시간이다.”
강해솔에게 목덜미를 잡혀 차에 실리는 와중에도 예찬의 고민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졌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들 중 절반은 피곤함이 이제야 몰려왔는지 곧장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피로마저 잊은 예찬은 여전히 눈앞에 둥둥 떠 있는 홀로그램 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뒤쪽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쓱쓱 넘겨보고 있던 선우이경이 작게 웃음을 터트린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하하, 우리 콘서트 제목이 개(開) 아니고 행복이었냐는데?”
“아, 인정이요. 저 저만 콘서트 주제 잘못 알고 있는 줄.”
“예찬이가 큰 건 했다.”
“…….”
잠들지 않은 멤버들이 하나둘 말을 보태며 웃는 와중에 예찬은 차마 할 말이 없어 먼 산을 바라보는 시늉만 했다.
팬들이 오늘 콘서트의 주제를 ‘행복’이라 칭해도 놀랍지 않을 정도로 예찬은 오늘 토크 내내 ‘행복’이란 단어를 쉴 새 없이 입에 올렸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일종의 세뇌였다.
[집계는 콘서트가 끝났을 때의 감정을 기준으로 삼습니다.>홀로그램 창에 적힌 조건을 보면 콘서트가 끝났을 때 멤버들이 행복이란 감정을 느껴야 했다.
‘완전 주관적이야.’
감정이란 게 무 자르듯 여기서 여기까진 행복, 또 저기서 저기까진 분노, 이런 식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혹시 행복과 비스름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거기에 다르게 이름을 붙이면 집계에서 누락되는 불상사가 있을까 걱정돼서 콘서트 도중에, 그리고 콘서트가 끝나고 느낄 감정은 무조건 행복이라고 주입식 교육을 한 것인데 빌어먹을 숫자 1이 그대로인 걸 보니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 사이 멤버들과 신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선우이경이 예찬이 들으라는 듯 조금 크게 말했다.
“뭐, 주제는 ‘개(開)’여도 부제는 ‘행복’일지도 모르겠네! 실제로 우리도 팬들도 행복해졌잖아?”
‘……거짓말.’
이름 뒤에 가위표를 달고 말은 잘했다. 행복한 것은 예찬과 팬들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만 행복했던 걸지도?’
홀로그램 창으로 팬들의 마음을 확인하면 ‘뭐 이딴 콘서트가 다 있어? 돈 버렸네’ 하고 침을 뱉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극단적인 상상을 하는 사이 차는 숙소에 도착했다.
“다들 오늘은 일찍 자.”
“넵. 새벽이, 세혁이 일어나자.”
“그냥 업고 가는 게 빠를 거 같아요. 둘 다 눈꺼풀에 접착제 바른 수준이에요.”
찌뿌둥한 몸을 이리저리 풀며 멤버들이 하나둘 차에서 내리는 사이, 채은성이 조심스럽게 운전석 옆으로 돌아갔다.
“저기, 형. 정찬양 선배님은 괜찮으시대요?”
“아, 정찬양 씨.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서 연락해 봤는데, 괜찮다는 거 같아.”
‘뭐?’
“후우,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채은성과 달리 그렇지 않아도 불편했던 예찬의 심기는 한없이 어지러워졌다.
‘괜찮은데 연락을 안 해?’
메인 퀘스트도 메인 퀘스트지만 정찬양이 하던 소리도 신경 쓰이긴 매한가지였다.
문제를 하나라도 완벽하게 털어 내고 싶은 예찬은 곧바로 메시지 앱을 켜서 장문의 메시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정찬양, 대화가 그렇게 끊겼는데 연락을 안 하는 건 대체 어느 나라 매너…….’
“병문안은 또 안 가 봐도 될까요? 내일 콘서트 끝나고라도…….”
“그게 나도 물어봤는데, 몸은 괜찮은데 계속 잠만 자고 있나 봐. 병원에선 피로가 심하면 그럴 수 있다고 일단 지켜보자고 했대.”
‘……뭐?’
분노를 양분 삼아 메시지를 써 내려가던 손가락이 건전지가 다 된 것처럼 뚝 멈췄다.
“정말요? 아, 어떡해…….”
“우리 쪽에서 종종 연락해 볼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내일 콘서트에 집중하자.”
“네…….”
채은성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지켜보던 예찬은 막 다섯 줄을 넘겼던 메시지를 조용히 지웠다.
아직도 끄지 않고 내버려 둔 홀로그램 창은 걱정이라도 하는 건지 평소보다 더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그건 뭐야?”
죽어도 혼자서 씻어야겠다며 마지막 순서로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강해솔은 예찬의 태블릿 화면을 보고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강해솔을 힐끔 바라본 예찬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긴 뭐야. 인터넷 서점이지. 도서관에 가거나 책 배송 오는 걸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이북이라도 사 보려고.”
“……내일, 아니 오늘도 콘서트인데 지금?”
“그래서입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 강해솔을 향해 예찬은 태블릿 화면이 잘 보이도록 들어 올렸다. ‘행복’이란 키워드가 들어간 도서 목록이 주르륵 띄워져 있는 화면을 말이다.
그중에서도 예찬이 점찍어 둔 책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12가지’란 책이었다. 확장판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24가지’도 있었는데 이건 이북이 안 나왔다.
‘이제 남은 콘서트가 몇 번 없는데 하루 빨리 행복하게 만들어야지.’
예찬의 비장한 얼굴과 태블릿 화면을 번갈아 바라보던 강해솔은 이내 거실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로 책장 사이라든지, 테이블 아래, 천장 구석, 화분 안쪽 같은 카메라가 숨어 있던 장소 위주로.
그러고선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 못했는지 예찬을 향해 묻는 것이 아닌가.
“……이거 깜짝 카메라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