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an idol who has used up all the resets RAW novel - Chapter (418)
리셋을 다 쓴 아이돌입니다만 418화
“무슨 소리야. 어제오늘 너무 피곤했어? 얼른 머리 말리고 자.”
강해솔의 경계심 서린 눈빛을 과도한 피로에서 오는 정서불안 정도로 해석한 예찬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일단 열두 가지 책을 사서 실천해 보고 괜찮은 거 같으면 스물네 가지 책을 주문하는 방향으로……, 아니지? 괜찮으면 퀘스트가 이미 성공했어야 하잖아?’
다시 태블릿으로 시선을 돌린 예찬이 몇 없는 책의 후기를 꼼꼼히 살피는 사이, 슬금슬금 다가온 강해솔이 옆자리에 앉았다.
“왜? 형도 읽어 보고 싶어?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행복은 스스로 찾는 게 중요하지.”
부탁도 안 했는데 흔쾌히 빌려주겠다며 어울리지 않게 푸근한 미소를 짓는 예찬을 바라보는 강해솔의 눈동자가 바들바들 떨렸다.
“야, 너…….”
“응, 나 뭐?”
“……혹시 이상한 종교에 물든 건 아니지? 행복교라든지, 해피교라든지…….”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상한 종교라니! 게다가 터무니없이 직관적인 이름은 또 뭐란 말인가!
사람을 사이비로 모는 강해솔의 작태에 예찬은 결제 버튼을 누르려던 손마저 멈추고 눈을 매섭게 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예찬의 험악한 얼굴을 본 강해솔이 무척 안심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린 점이었다.
“아, 역시 아니네. 휴. 살았다. 네가 사이비면 이제 어떡해야 하나 좀 무서웠다고.”
“대체 상상이 왜 그런 쪽으로 튀는데.”
“네가 자꾸 이상하게 굴잖아…….”
전부 자업자득이라며 입을 삐죽거린 강해솔은 소파를 팡팡 내리치기까지 했다.
“너 오늘 하루 종일 행복이란 단어를 몇 번 말했는지 알아?”
“그걸 다 세고 있었어?”
“셌겠냐!”
예찬이 기겁하는 시늉을 하자 발끈한 강해솔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충 많이 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 있잖아!”
“아, 어. 그치. 그렇지.”
순간적으로 ‘그렇게 말하면 화낼 거 같아서 그랬어. 형 화내면 재밌거든.’하고 솔직하게 대답할 뻔했던 예찬은 살짝 느슨해졌던 정신을 다시 당기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데 해솔이 형. 진정하고 들어 봐.”
“……그래, 어디 얘기해 봐.”
대체 뭐가 문제인지 여기서 다 털고 가자는 듯 강해솔이 편하게 소파에 기대앉았다.
‘그래. 아깐 너무 놀라서 디테일하게 물어보지 못했어.’
강해솔 이상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예찬으로선 적극적인 태도가 고마울 뿐이었다.
‘행복하게 콘서트를 마무리, 행복하다고 느끼면 클리어, 집계는 콘서트가 끝났을 때 감정이 기준, 행복의 반대는 불행이 아니다. ……좋았어.’
예찬은 혹여 놓치고 있는 것이 없는지 마음으로 퀘스트와 그 상세 조건을 복기한 다음,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어제랑 오늘 콘서트, 아니 이제 그제랑 어제가 돼 버렸네. 어쨌거나 콘서트를 하고 행복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니거든?”
최대한 진지한 티를 내기 위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까지 장착했건만, 강해솔의 반응은 영 마뜩잖았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렇다면 그런 거지. 나도 멤버들도 행복했다고요.”
“아니라니까. 형 안 행복했어. 내가 딱 보면 알 수 있다니까? 다들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요.”
‘숫자가 말해 준다고, 숫자가.’
예찬의 완고한 태도에 강해솔의 얼굴이 더 부루퉁해졌다.
“거짓말은 무슨. 그거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거짓말을 해? 이거 이제 보니까 네가 행복하지 않았던 거 아니야?”
그래서 남들도 그렇겠거니 뒤집어씌우는 것 아니냐는 강해솔의 말에 예찬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닌데? 난 행복한데?”
‘숫자가 말해 줬다고. 숫자가.’
고개가 절로 도리도리 저어졌다. 대체 왜 다들 행복하지 않았으면서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 보여 줄 수가 없으니, 대화는 계속 제자리에서 돌고 돌기만 반복했다.
“와, 답답하다.”
“나야말로 답답하다, 정말. 어떻게 그렇게까지 확신해? 뭐, 너 관심법 같은 거 써? 사람 마음이라도 보이는 거야?”
흐릿하던 예찬의 눈이 반짝였다.
“마음, 마음……. 형 천재야?”
“뭐?”
마음이 보인다는 강해솔의 말에 떠오른 것은 츄마프 마지막 왕위 계승식에서 받아놓고 묵혀 두었던 스토커 7종 세트였다.
‘분명 마음이 어쩌고 하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 뭐가 남아 있지?’
너무나 스토커 같은 성능에 평생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려 했으나, 멤버 중에 터무니없는 길치가 있었던 터라 멤버의 위치 확인권과 시야 공유권은 그를 구제하는 데 진작 사용한 지 오래였다.
‘인벤토리. 어디 보자……. 남아 있는 건…….’
[파티원 마음 읽기권(1회)> [파티원 스마트폰 복사권(10분)> [파티원 기억 여행권(1회)> [파티원 진실 한정권(1회)>‘있다! 마음 읽기권!’
드디어 하루 종일 고민하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머리 위에서 환희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예찬은 망설임 없이 단출하게 네 가지가 남아 있는 인벤토리 창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음 읽기권을 선택한 다음, 강해솔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형, 콘서트를 마치던 순간에 왜 행복하지 않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하게 떠올려 볼래?”
“어, 둘 다 거실에 있었네? 매니저 형이 보낸 메시지 봤어? 내일 아침 김밥 괜찮냐는데 아무도 답장을 안 했네.”
“아.”
예찬이 막 질문을 시작한 순간, 거짓말 같은 타이밍으로 방에서 나오던 심상록이 반갑게 두 사람을 향해 말을 건넸고, 그 결과 두 사람의 오디오가 완벽하게 물려 버렸다.
그리고 단 하나뿐인 마음 읽기권이 발동했다.
[인섭이 형 말 안 하면 땡초 김밥만 사 오던데, 다른 거 사다 달라고 보내야겠다.>강해솔의 진솔한 마음이 육성보다 더 생생하게 예찬의 귀에 박히자, 예찬은 ‘이렇게 들리는구나’하고 감탄할 새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건 아니지!”
‘여기서 땡초 김밥이 말이 되냐고!’
예찬의 타오르는 분노와 답답함을 알 도리가 없는 강해솔이 어깨를 움츠렸다.
“깜짝이야!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래?”
“예찬이 김밥 싫어?”
“아니 이건 아니잖아!”
두 사람에게 대답할 여력이 없는 예찬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떻게 하필 이 타이밍에?’
우악스럽게 제 머리를 헤집는 손길에 싹싹 빗어 두었던 예찬의 빨간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졌다.
“예찬이 김밥 싫어했나?”
“쟤가요? 무슨 청소기처럼 흡입하던데…….”
“와 미치겠네?”
단 한 번뿐인 기회를 이렇게 날리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건 양심적으로 환불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하하경 씨?’
잔뜩 원망을 담아 괜히 천장을 바라보았지만 당연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제가 답장 했어요.”
“그래. ……오, 해솔이는 땡초 싫구나. 맛있는데.”
“아니, 있어도 상관없긴 한데 인섭이 형은 전부 땡초만 사 오잖아요. 참치도 참치 땡초, 멸치도 멸치 땡초, 새우튀김도 새우튀김 땡초.”
“아, 그건 그래. 애초에 형이 사 오는 김밥집 이름이 ‘땡초와 나’였나 그랬던 거 같아.”
“과연…….”
“응? 해솔이 너 아직 머리 안 말렸구나. 빨리 말리고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실의에 빠진 예찬을 뒤로하고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던 강해솔과 심상록은 급기야 자리를 파하고 떠나기까지 했다.
“…….”
거실에 홀로 남은 예찬은 멤버들이 새근새근 자고 있을 방문들을 차례로 바라보다 쓸쓸히 태블릿을 들어 올렸다.
‘책이나 보자…….’
* * *
레굴루스의 첫 콘서트의 셋째 날이자 서울 콘서트의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여전히 정찬양에게서 온 연락은 없는 메시지 함을 확인한 예찬은 스트레칭을 가볍게 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새벽이 일어…… 났네, 오늘도.”
“완전 기분 좋아요.”
얼마나 잠을 잘 잔 건지 배새벽의 눈은 흰자위가 푸르게 보일 정도로 맑고 투명했다.
“예찬이도 어제는 잘 잤나 보네? 거실에서 늦게 들어온 거 같던데.”
“네, 뭐.”
선우이경은 오늘도 먼저 일어나 가볍게 샤워를 했는지 화장실 쪽에서 걸어 나왔다.
어젯밤 예찬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 12가지’ 책을 구매해 빠르게 훑어본 뒤 잠을 청했다.
‘……솔직히 참고할 만한 건 거의 없었어.’
잠을 잘 잘 것, 밥을 잘 먹을 것, 건전한 취미 생활을 즐길 것, 성취감 있는 일을 할 것.
너무 뻔한 소리만 나열해 놓은 터라 하마터면 리뷰란에 장난하냐고 적을 뻔했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런 뻔한 것들부터 잘 다져야 사람은 행복해지는 거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어제보다 사정이 나았다.
예찬을 기다리느라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전날과 달리 다들 어느 정도 길게 잠을 잤으니까.
‘오늘이야말로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어.’
예찬의 눈이 섬뜩하리만치 번뜩였다.
* * *
“얘들아, 아침 사 왔다!”
매니저가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범세혁을 제외한 모두가 거실에 모여 있었다.
‘다들 이렇게 벌떡벌떡 잘 일어나는 걸 보면 콘서트가 좋긴 좋은 거 같은데. ……아닌가? 긴장돼서 절로 깨는 건가?’
예찬의 눈이 평소엔 거의 업혀서 숙소를 나서는 배새벽에게 향했다. 긴장했다기엔 너무 평화로운 표정이었다.
‘흠…….’
“해솔이가 땡초는 좀 그렇다고 해서 오늘은 다른 것들 위주로 사 왔어!”
“아, 그냥 한 줄만 다른 걸로 사다 주셨어도 됐는데…….”
강해솔이 머쓱한 듯 목덜미를 만지작거리자, 매니저가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그렇게 취향 알려 주는 거 아주 좋아! 형이 일한 지 벌써 한참 됐는데 너희 취향을 너무 몰라서 미안하다.”
“와, 김밥 좋아요!”
“뭐 뭐 있어요?”
“난 세혁이 깨워 올게.”
먹는 걸 좋아하는 멤버들이 바지런히 식탁에 내려놓은 김밥 봉투에 달려들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지를 깐 김밥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오, 이건…….”
“와, 냄새부터 찡한데……?”
그리고 예찬은 매니저의 뚝심에 조금 질렸다.
“여기 땡초 김밥도 잘하는데, 고추냉이 김밥도 잘하거든! 하하!”
고추냉이 참치 김밥, 고추냉이 새우튀김 김밥, 고추냉이 돈가스 김밥……, 그 외 수많은 고추냉이 김밥 시리즈가 멤버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잠은…… 확 깨겠네요.”
막 채은성이 업고 나오는 범세혁을 향해 곁눈질한 강해솔이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 * *
콘서트 셋째 날도 앙코르 무대만을 앞두고 있었다.
‘……인벤토리.’
옷을 갈아입은 예찬은 다시 인벤토리를 열었다.
사람이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템으로 승부를 본다……!’
[파티원 스마트폰 복사권(10분)> [파티원 기억 여행권(1회)> [파티원 진실 한정권(1회)>딱 봐도 쓸모없어 보이는 첫 번째를 제외하고 남은 선택지는 둘.
둘 다 그럴듯해 보이면서 동시에 애매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예찬에겐 나름대로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쓸 타이밍은 마지막 인사를 한 직후……!’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편 예찬은 다시금 무대로 향했다.
(계속)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