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6★ Gacha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306화 : 인중에 깃털이 나는 병 1
게임 중에서는 아주 민감한 소재를 주제로 삼은 녀석들이 있다.
한세아가 있는 지구4에서도 있는 것 같고, 내가 살던 세상에도 나치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승리한 미래를 그린 게임도 있었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화를 하는 순간 바로 아웃. 낚지들은 악의 제국으로 등장해 플레이어에게 탕탕이가 되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니 피에 굶주린 광전사처럼 구는 시청자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여신을 믿는 왕국이 제국주의자를 타파한다? 이거 완전 사상전파꼐임 읍읍…!
-날카로운통찰력이십니다선생님이벤트에당첨되셨으니어서주소를불러주세요
-후발주자 플레이어는 몰라도 한세아는 걍 루트 고정 아님?
-한세아만 고정이 아니라 방송인은 싹 다 고정이지 시발 ㅋㅋㅋ 몰매맞을 일 있냐
-이것은 미치광이 히틀러를 사살한 아돌프를 기리는 게임. 깃털 제국은 유쾌하다 매우 🙂
게임 물 좀 먹은 게이머라면 이것이 일종의 분기 퀘스트라는 감이 딱 오는 상황.
마왕이 용사에게 세상의 절반을 줄 테니 우리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하고 쫄튀를 시전하는 것처럼 게임사가 플레이어에게 일종의 선택지를 던지는 것이다.
정의의 편에 서서 신념을 지키는 대가로 하드 난이도를 플레이할 것이냐
악을 외면하고 이득을 얻으며 그 대가로 이지 난이도를 플레이할 것이냐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기서 이지 난이도를 선택한다면 한국인으로서, 게이머로서, 방송인으로서 한세아는 죽는다.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게 식민 지배를 당했던 한국인으로서 할 짓이냐며 사이버 망령들이 물어뜯을 것이고, 태생 6★ 치트키 캐릭터를 뽑은 주제에 이지 난이도를 보여준다며 시청자들이 거품을 물것이며, 방송에서 제국주의 스토리를 보여주냐며 서양 쪽 시청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테니까.
그걸 프로 방송인 한세아가 모를 리 있나.
“에헤이, 그렇다면 당연히 왕국 루트지. 왕국에 신전도 다 지어놨는데 뭘 제국에 합류해. 43층에서부터 밀고 올라온 우리 신전 기사님들이 ‘불경한 자가!’ 하면 하피 애들 머가리 뚝스딱스 깨지는 미래가 보이는데.”
일말의 의혹도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어투. 그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내 등 뒤를 졸래졸래 따라오는 아이린에게 다가가 입을 연다.
“아이린 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피 왕국과 하피 제국이 결국 부딪치게 될 것 같은데….”
“그렇죠? 아무래도 왕국의 분들과는 다르게 여신님을 모시지 않을 것 같네요.”
녀석들의 정체는 하피 여제가 하늘의 여신이라 믿으며, 날개 없는 것들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제국주의자들. 나치가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주장했다면 녀석들은 조인족의 우수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날개 달린 하피는 우월하며, 날개 없는 인간은 열등하다. 그러니 이목구비도 없고 땅 밑에서 살아가는 돌 난쟁이들은 하늘의 신께서 노예로 살아가도록 창조한 가축에 가까운 종족.
뭐 그런 이야기를 당연하다는 듯이 하는 갑옷 하피의 모습을 보면 딱 봐도 생명의 여신은 죽어도 안 믿겠다 싶지. 그 때문에 아이린의 안색은 조금 어두운 편이었다. 사람을 납치하며 여신을 부정하는 제국이라니, 거의 이단의 소굴 아닌가?
아이린과 신전의 교리를 생각한다면 악의 제국이라기보다는 거의 이교도의 제국이라 불러야 할 수준. 생명의 여신이 왕실 가문을 선정했다 믿는 왕국과, 하피 여제가 곧 하늘의 여신이라 믿는 하피 제국은 결코 손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면 개종한 하피 여왕을 도와서, 하피들을 통합시켜야 할 것 같지 않아요?”
“……통합?”
“네, 통합. 여신님을 모시는 하피 왕국이 제국을 점령해야 우리도 51층으로 마음 편히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상황에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한세아의 뱀 혓바닥. 마치 독을 흘려 넣듯 속닥거리니 다시 한번 아이린의 표정이 묘하게 풀린다.
이쪽이 하피를 들쳐메고 앞장서는 동안 뒤에서 계속해서 소곤소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내용이 지난번과는 사뭇 다르다. 그야 하렘 창설에 대한 꼬드김과 하피 제국을 박살 내자는 이야기는 결이 다르니까.
시청자들의 반응을 생각하는지 단호하게 말하는 한세아. 그 모양새가 제 손으로 제국을 멸망시켜버릴 김히틀러의 기세인지라 되려 아이린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피 제국은 돌 난쟁이들의 도시까지 점령해서 노예로 부리는 것 같으니까요. 지하 통로를 통해 뚫고 들어가서 도시를 해방하고 제국을 점령하면 될 것 같은데.”
“그,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었나요, 한나?”
“네, 언니. 여신님의 뜻을 위해선 무력을 사용할 생각도 해야죠.”
-전쟁! 결코 전쟁! 다시 전쟁! 전쟁! 결코 전쟁! 다시 전쟁! 전쟁! 결코 전쟁! 다시 전쟁! 전쟁! 결코 전쟁! 다시 전쟁!
-가만 보면 이 무7련이 신전의 광신도보다 한술 더 뜨는 것 같은데
-사악한 이종족의 제국을 무찌르는 선택받은 용사(폭탄 및 생화학 테러를 즐김)
-폭발은 예술이다 시전하려고 싱글벙글중인 한머씨 이대로 괜찮은가?
-그래도 세아세아가 현실에서 폭탄테러 예고 안하는 걸 보면 게임은 질병이 아니긴 해
그 화끈한 이야기에 시청자들은 무슨 광신도가 전쟁을 선포하는 교황을 숭배하듯 한세아의 이름을 울부짖는다.
※
이 세상은 인권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게임의 메인 스토리 및 이벤트에서 불이익을 당하니 매우 아니꼽다―의 인권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 지닌 권리 따위에 관해 관심이 없다는 소리였다.
늘 말하지만 모험가나 용병의 주머니를 건드리려다 잡힌 소매치기는 그대로 손목을 잘라버려도 죄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는 두 발로 걷게 되면 일을 시작하며, 먹을 게 부족해지면 자연스럽게 입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몬스터 밥으로 만드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같은 인간도 아니고 이종족인 돌 난쟁이를 노예로 삼았다는 게 문제일 리 없다.
“……불경한 것들이!”
“허어, 하피 자매님들은 참으로 경건하다 생각했거늘.”
“똑똑함이 신실함으로 이어지지 아니했으니, 우리는 필히 이를 정화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한다면, 하피 제국에서 하피 여제를 여신이라 믿는 신권정치제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거다.
다른 이종족을 노예로 삼아도 상관없다. 같은 하피 동족을 몇 등 시민으로 분류해 차별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감히 생명의 여신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여제를 여신이라 믿는 행위는 ‘교화’ 당해야 마땅할 이교도들의 사고방식.
이런 식으로 내가 아니라 한세아가 이야기를 주도하고 있으니 시청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건 당연한 이야기다.
-얌마는 왜 용사가 아니라 선동꾼이 되어서 돌아왔지?
-이제는 짐꾼이 아니라 먼가 다른 단어가 필요한 수준인데. 선동꾼? 외침꾼?
-제국 상대로 잠입물이나 찍나 했더니 기냥 빠꾸 없이 신전한테 일러바치는거 보소 ㅋㅋ
-먼 잠입액션이여~ 그냥 십자군 선포하고 성전 열어버린다음 전술롤랑 투하하라고
-그 와중에 신전도 다른거 다 괜찮은데 여제=여신 이야기 듣고 눈 돌아가는거 개무섭네 진짴ㅋㅋㅋ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이런 건 질질 끌어봐야 좋을 게 없는 거 알잖아. 진짜 전쟁을 한다고 해도 준비할 게 잔뜩일 테니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말해놔야 알잘딱깔센으로 준비해 오겠지.”
[우리용사님은안물어요님 10,000원 기부!]
팩트) 지금 준비해야 자기도 폭탄과 염산을 준비할 수 있어서 서두르는거다
그렇게 한세아가 [한세아/논란/제국주의 옹호]를 회피하기 위해 풀 악셀을 밟는 동안 파티원들과 이야기하는 건 나의 몫. 평소에는 아이린이 말없이 따라오는 모양새였는데 이번에는 그레이스와 케이티가 얌전히 따라오는 모양새가 되었네.
두 사람 모두 엄청나게 신앙심이 깊다든가, 노예 제도에 분노하는 깨어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보니 하피 제국에게 분노까지는 하지 않은 모양새.
하지만 여신의 사명을 받은 모험가로서는 갑옷 하피에게 살살 긁힌 모양인지 한세아의 급진적인 점령전 이야기에도 딱히 반발은 하지 않는다. 그야 탑 내부의 이종족에게 ‘열등종’ 소리를 듣고 기분 좋으면 그건 구제 불능의 마조히스트잖아.
“하피 제국과의 전쟁이라… 확실히 지하 도시부터 점령하는 게 좋겠네. 땅 밑에서부터 올라가면 대응을 잘 못 할 테니까.”
“흠… 북부에서도 겪어보지 못한 영지전을 탑 안에서 겪게 될 줄이야. 그러고보니 롤랑은 영지전에 참여한 적 있어?”
“없지. 내가 용병도 아니고 모험가인데 사람 잡으러 다니긴 귀찮았거든.”
사실은 판타지 세상 탈출을 위해선 무조건 탑을 올라야 한다고 생각해 매달리고 있었던 거지만 아무튼. 한세아가 아이린을 옆에 끼고 신전에 이야기하는 동안, 마탑에 갑옷 하피를 보내버려 홀가분해진 나는 케이티와 그래이스를 통해 내가 보여야 할 반응을 조금 생각해 두었다.
우생학에 가까울 정도로 맹목적인 갑옷 하피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생각해보면 그건 중세 판타지의 주민이 보일 반응이 아니었거든.
다행스럽게도 변태 소리를 듣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느니 쇼크를 받았느니 하며 놀려 먹는 쪽으로 시청자들의 여론이 흘러가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누군가는 명백히 이상하다고 주장할 법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