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Hidden Powerhouse Of The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537)
대영제국의 숨은 거물이 되었다-537화(537/537)
< 두 사람(외전 완결) >
빅토리아 아멜리아 록펠러는 어렸을 때부터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미국에서도 손에 꼽히게 풍족한 재산을 지닌 가문에서 태어나 물질적으로는 고생을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에 막 들어간 어린 시절에도 어딘가 모를 공허함이 느껴졌다.
뭔가를 하고 싶은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다.
몇몇 친척들은 어린 아이가 벌써부터 이렇게 우수에 차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병원에 데려가 보라는 말도 했었다.
부모님도 내심 걱정하고 계셨었는지 실제로 딸을 병원에도 데려가 보고 저명한 아동 심리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아보게도 했다.
하지만 당연히 이상이 없었고, 심리 상담가들도 아멜리아의 내면은 건강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아 확인해주었다.
“그런데···따님께서 확실히 또래에 비해서 많이 성숙하신 편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 아니라 고학년에 가까운 거 같습니다.”
“그러면 그냥 조금 조숙했을 뿐이라는 거죠?”
“예.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렇게 이유모를 공허함을 느끼며 살아온 10번째 생일.
아멜리아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병실 밖에서 드문드문 들려왔다.
그녀도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계속 이상한 풍경이 지나가고, 이상한 이름과 얼굴들이 떠올랐다.
공포 영화 같은 걸 보면 악마들린 사람들이 나오던데 자신도 그렇게 된 건 아닐까 무서웠다.
그러나 며칠 뒤 놀라울 정도로 몸 상태가 나아졌고 아멜리아의 삶은 그 때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게 됐고 더욱 멀리 나아갈 수 있게 됐다.
주변 사람들은 한번 크게 아프고 나았더니 훨씬 더 성숙해진 거 같다는 평을 해주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을 뿐인데도 주변 사람들은 귀족적이다, 역시 대가문의 여식은 다르다는 찬사를 쏟아냈다.
가문의 일과 전혀 상관없는 일을 파고든 것도 그런 말이 듣기 싫어서였다.
어째서 AI 개발자였는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앞으로 새로 나타날 무언가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언제나 시대를 앞서갔던 누군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멜리아, 정치를 해볼 생각은 없니? 너라면 조금만 경험을 쌓아도 하원 의원은 당선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조금만 더 밀어주면 상원 의원은 물론 나중에는 백악관도···.”
“죄송하지만 아버님, 정치는 별로 하고 싶지가 않아요.”
“아니, 왜?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한결 같이 너를 본 선생들은 네가 언제나 학교의 중심이었다고 하던데.”
“제가 원해서 그런 게 아닌 걸요?”
“그거야 말로 타고난 재능이다. 부모인 내가 봐도 넌 남들로 하여금 우러러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어. 그걸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길은 당연히 정치일 테고. 네가 정치에 입문하겠다고 하면 가문에서도 발 벗고 도와줄텐데 대체 왜 해보지도 않겠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실제로 록펠러 가문에서도 분가의 무남독녀가 유력 정치인이 된다고 하면 두 팔 벌려 환영하긴 할 것이다.
다만 그녀는 정치와 관련된 그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치인 아멜리아보다는 그냥 한 사람의 아멜리아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훨씬 컸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어렸을 때부터 노력한 결과 덕분인지, 아니면 가문의 재력 덕분인지, 어쨌거나 그녀의 사업은 상상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
록펠러 가문의 분가 정도의 위치에 불과했던 그녀의 집안은 이제 제임스 킬리언 그룹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중심축이 되었다.
몇 년만 지나도 본가보다 훨씬 더 큰 부를 쥐게 될 거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제임스 킬리언 그룹의 핵심 사업부로 들어온 이상 대영제국 황실과 가까워지는 것도 그야말로 시간문제.
부와 명성, 권력까지 전부 손에 쥐자 이전부터 쏟아지던 구애는 거의 배가 되었다.
처음에는 계속 거절했으나 부모님만이 아니라 가문 전체와 그룹 사람들까지 이리저리 간섭을 해대니 계속 버티고 있는 것도 스트레스다.
결국 아멜리아는 들어오는 소개를 거절하지 않는 노선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대신 데이트 내용은 언제나 똑같았다.
만남은 대영제국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자 런던에 갈 때마다 언제나 들리는 킬리언 박물관.
물론 그녀와 만나는 남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킬리언을 존경하고 그를 닮고 싶어하는지 온 힘을 다해 보여주려 했다.
“저는 킬리언 폐하의 그 능력을 본받고 싶습니다. 세계 역사를 통틀어 봐도 그분만큼 능력이 출중한 분은···.”
“아아~그러시군요.”
“저는 킬리언 폐하의 다정함을 존경합니다. 그분께서는 소문난 애처가지 않으셨습니까? 저도 가정적인 사람이라···.”
“아~네. 저도 가정적인 사람이 좋답니다.”
“저는 킬리언 폐하의······.”
다들 판에 박힌 비슷한 대답을 한다.
사실은 저렇게 알려져 있으니 다들 당연한 반응을 보이는 거라고 해야할까.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자신이 이곳에 항상 오는 이유도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온다고 해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저 먼 옛날의 과거의 흔적만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인데 어째서 이곳을 서성이는 걸까.
지나간 일은 다 잊고 미래를 바라보는 게 이성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사람의 사고방식 아닐까?
돌아가면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빠져 살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
그렇게 생각을 해놓고 런던에 돌아가면 또 쳇바퀴 돌 듯 같은 장소를 찾아간다.
“아멜리아 님, 오늘도 오셨네요? 여기서 또 다른 분을 만나기로 하셨나요?”
“네. 다음주에 AL그룹의 부회장님을 만나기로 했어요.”
“진짜 특이하시네요. 런던에 분위기 좋고 음식도 맛있는 곳이 널렸는데. 대영제국 황족분들도 아멜리아 님만큼 이 박물관을 사랑하지는 않으실 거 같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대영제국의 상당수 박물관과 갤러리가 그렇듯 킬리언 박물관 역시 무료로 운영된다.
당연히 사방에서 기부가 쏟아져 들어오는 덕분이었고 아멜리아는 이 기부자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최고의 큰손 중 하나였다.
오죽하면 박물관 내부에서도 그녀에게 직함을 하나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AL그룹 부회장이면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거물 아닌가요? 이번에는 진짜 잘해보세요.”
“하아···그러고는 싶은데.”
모르겠다. 본인이 대체 뭘하고 싶은 건지도 확실치 않은데 대체 어떤 사람과 잘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냥 죽을 때까지 이렇게 혼자 살아도 괜찮을 거 같은데 굳이 남자를 만나야 하나?
세간에서는 천재 개발자다, 지성과 지도력을 겸비한 우수한 경영인이다 떠들지만 그건 이쪽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품어왔던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허는 모든 걸 자각한 이래 작아지기는커녕 겉잡을 수 없이 더욱 커졌다.
하다못해 인격이 완전히 형성된 이후 떠올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직 너무나도 어렸던 열살짜리 아이가 너무나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 이렇게 되는 건 필연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현재의 삶에 온전히 자리를 잡는 것도, 그렇다고 지나간 과거만 끌어안고 사는 것도 그다지 행복한 삶은 아니었다.
AL그룹의 부회장이라는 사람과 만나는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보면 자신이 과거에 미련이 많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딱히 그러지는 않았다.
아무리 선명한 필름으로 사진으로 찍어도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듯 기억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풍화되기 마련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들의 얼굴도 이제는 초상화나 오래 된 흑백사진의 모습으로 밖에 기억 나지 않는다.
다만 딱 한 명.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한 사람의 얼굴만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어째서 자신은 이곳에 계속 찾아오는 걸까? 그건 아마도···.
사전에 받은 사진과 똑같이 생긴 청년이, 그리고 왠지 모르게 기억속의 그 얼굴과 어딘가 닮은 거 같은 사람이 박물관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모습을 보며 아멜리아는 천천히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기억속의 그 얼굴을 잊어버리는 게 두려워서겠지.
* * *
“······.”
“······.”
실수다. 그냥 실수도 아니고 대실수.
설마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대책없이 일을 저지를 줄이야.
얼떨결에 같이 밥을 먹자고는 했는데 이제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아까 박물관에서 하던 이야기를 마저···아니 같은 이야기만 계속 반복하는 건 너무 뇌절 아닌가?
애초에 그냥 커피만 한잔 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뭐에 눈이 돌아가서 밥을 먹자고 한 걸까.
당황한 티가 너무 나서일까.
“저기, 너무 그렇게 억지로 맞춰주시려고 하지 않아도 된 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도 집안에서 하도 성화를 부려서 나온 거니까요.”
“아,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건은 특히 에드워드 9세 폐하께서 중간에 껴 계셔서···.”
“많은 분들의 체면이 달린 일이니 한두번 만나고 끝내는 건 조금 그렇고. 그냥 앞으로도 같이 차나 커피를 하면서 가끔씩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정도로 지내면 어떨까요?”
“좋네요. 그게 피차 마음이 편할 거 같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플러팅을 한 건 아닐까 걱정했었는데 저쪽의 반응을 보니 원래부터 내게 별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건 그것대로 조금 복잡한 기분이지만 괜한 구설수에 오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나는 부담감을 내려놓은 채 식사를 즐기는 동안 여러 가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새 식사는 디저트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렇게 이야기가 잘 통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별로 없었는데 진짜로 좋은 친구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건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닌 듯 그녀 역시 처음보다 한 결 더 편해진 눈치였다.
“혹시 평소에는 어떤 취미를 즐기시나요? 박물관 말고요.”
“음···여러 가지 하죠. 영화도 보고 공연도 보고 이거저거 다양하게 한답니다. 그래도 클래식 공연과 발레, 오페라를 제일 좋아해요.”
이건 또 상상 이상으로 고전적인 취미를 즐기는 사람일세.
누가 보면 19세기 사람인 줄 알겠어.
“우연이네요. 사실 저도 그렇거든요.”
“그 외에도 심심풀이로 카드 마술 같은 것도 하는 편이에요.”
“카드 마술이요? 이거억지로 엮는 게 아니라 저도 카드 마술에 일가견이 있는 편인데 이쯤되면 신기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정말요? 확실히 이런 게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아이스 브레이킹 하는데는 좋더라고요.”
그녀는 흥이 조금 올랐는지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서 깨끗하게 정리 된 테이블 위에 좌르륵 펼쳐두었다.
“여기 보시면 카드 안에 단어들이 써 있죠? 이 카드들을 섞은 다음 상대방이 원하는 걸 뽑아보게 하는 거에요.”
어라? 이 마술은 분명히···.
“하지만 상대방이 아무리 뽑아도 결국 제가 미리 준비해둔 문장이 완성되도록 하는 거죠. 이렇게 해서 자신에게 딱 맞는 문장을 뽑게 되면 신기해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분도 좋아지거든요.”
“아주 좋은 방법이네요. 여러 사람을 앉혀놓고 각각 다른 문장을 뽑게 하면 효과가 더 좋겠어요.”
“그렇죠? 그것도 제가 애용하는 방법이에요. 혹시 흥미가 있으시다면 부회장님께도 한번 해드릴까요?”
“네. 재밌겠네요.”
아니겠지. 아니겠지만 나는 이번에도 무언가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카드를 섞는 그녀에게 말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문장이 있는데 그게 나오도록 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뭐가 나오게 해드릴까요?”
반백년을 훌쩍 넘는 세월이 지나갔음에도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어제일처럼 생생하다.
첫 만남의 긴장감과 실수하지 않고 계획을 성공시켰다는 성취감.
지금의 인생이 끝나고 다음의 인생이 시작되더라도 저 순간만큼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겠지.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인내] 제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문장입니다.”
“아, 네. 자신의 때가···예?”
아마 의도적이었던 거겠지만 빅토리아는 일부러 자신의 일기에 나와의 첫만남에 대한 내용을 죄다 바꿔서 기록해두었다.
표면적인 상황이라면 몰라도 저 날의 진상을 전부 알고 있는 사람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 두 사람뿐.
순간. 내쪽을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떨어트린 것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물었다.
“···혹시 왜 저 문장을 좋아하시는지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아주 먼 옛날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해준 문구였으니까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이러다가 터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제 말이 그렇게 슬펐나요?”
“아니요. 기뻐서요. 인생에서···제일 행복한 날인 거 같아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맞은 편이 아닌 바로 옆에 앉았다.
사실 굳이 더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그녀의 뺨에 부드럽게 손을 올렸고 그녀는 내가 편하게 입을 맞출 수 있게 살짝 얼굴의 각도를 틀었다.
항상 그래왔다는 듯 너무나도 익숙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