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72)
72화. 1차 발표
“충격이다.”
“이게 무슨 일이야.”
“헐.”
세현예고 전국대회 준비반.
합격자 발표를 전해 들은 애들이 당황하며 곤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1차 시험은 당연히 전원 합격할 거라 믿고 있던 세현예고.
그런데 70명의 응시자 중 무려 28명이 1차 예선에서 탈락한 거다.
“뭐야. 권효성 쟤, 그럭저럭 괜찮지 않았어?”
“오하늘도 그날 나쁘지 않았다고 했는데.”
“아니, 김예슬이 붙었는데 오정희가 떨어진 건 좀 이상하지 않냐?”
웅성웅성.
심사 결과를 두고 떠드는 아이들.
김윤수와 김여진 선생, 미술과 과장 조재환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대회 기준이 굉장히 빡빡해진 모양입니다.”
“그러게요. 1차 예선에 500명 정도는 통과할 줄 알았는데.”
“커트라인이 예년보다 높아요. 3,000명 중 300명만 2차 시험이라니. 예고생들 비중도 예측했던 것보다 낮고요.”
“예고생들은 몇이나 통과했죠?”
“1,000명 응시생 중에 150명요. 예선 통과자가 300명이니 딱 절반이네요. 적어도 80%는 될 거라 생각했는데.”
“허어.”
조재환 미술과장이 고개를 기울였다.
입시든 대회든, 준비 과정에서 철저히 살피고 기대는 부분이 바로 ‘경향’이다.
이전에 진행된 방향과 난도, 특징을 분석해야 올해 시험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으니까.
세현예고 역시 전국대회 경향 연구를 철저히 했고, 때문에 전국대회 유경험자인 김윤수와 김여진 선생을 선두에 세워 준비반을 운영했다. 그런데, 대회 결과는 예측 부분을 상당히 빗나갔다.
어딘가 변수가 있던 게 분명했다.
“두 분은 일단 하던 대로 준비시켜주세요.”
조재환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통과자 300명 중 42명이 세현예고 학생이니 나쁘지 않아요. 중앙이나 다른 예고 성적은 훨씬 처참하기도 하고.”
“…….”
“…….”
1차 통과자 수가 확 줄었으니, 탈락자가 생긴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세현예고는 국내 최고 명문. 중앙이나 다른 예고의 성적은 여태 신경 쓰지도 비교하지도 않으며 고고한 자세를 유지해왔다.
그런데도 조재환이 타교의 성적을 언급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그가 최형욱과는 달리 오만하지 않은 인물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는 그가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읽어냈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우리지만 중앙예고 성적이 처참해. 그래도 중앙이면 부동의 2위인데, 고작 10명이 통과했다니. 이러면 3, 4위 예고들보다 못한 성적이잖아.’
심사에 개입할 방법은 없었고, 그럴 마음도 없었지만, 대체 이 찜찜한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아봐야겠다는 게 조재환의 생각이었다.
***
“축하해.”
“응, 너두.”
1차 예선을 통과한 42명의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서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그 중엔 당연히 수현과 차윤희도 있었다.
“살벌하네. 다 같이 우르르 갈 줄 알았는데.”
“그러게 말이야.”
“와, 2차 시험 땐 스쿨버스도 한 대로 줄겠다. 진짜 확 실감 나겠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며 차윤희가 긴장으로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렇게 동요할 거 없어. 먼저 떨어지느냐, 나중에 떨어지느냐의 문제인 거지. 결국 최종 합격자 수는 정해져 있는 거잖아.”
수현이 싱긋 웃으며 차윤희를 다독였다.
“어?”
“1차에 2,500명이 떨어지고, 2차에 450명이 떨어지고, 3차에 50명이 남는다고 해도 입상은 11명이야. 1차에 2,700명이 떨어지고 2차에 270명이 떨어지고 3차에 30명이 남는다고도 입상은 똑같이 11명이고.”
“아…… 결과는 어차피 같다는 거네.”
“그렇지. 동요할 필요 없어.”
“와. 한수현. 개똑똑해.”
차윤희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이 시절의 찐 리액션이었다.
“그보다 리스트부터 좀 보자.”
수현이 1차 통과자들에게 주어진 2차 시험 요강을 펼쳤다.
“아. 나 그거 보기만 해도 어지럽더라.”
차윤희가 울상을 지으며 입을 삐죽였다. 엄살이라고 할 순 없었다.
100개의 오브제 리스트.
빽빽하게 적힌 주제 목록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중압감을 주고 있었으니까.
전국대회 2차 시험은 들었던 룰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주최 측은 100개의 주제를 제시하고, 응시자가 그중 2개의 주제를 골라 투표한다.
투표 결과를 확인한 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주제와 가장 적은 표를 받은 주제, 두 가지를 시험 주제로 낸다는 것.
무턱대고 가장 좋아 보이는 두 개의 주제에 표를 던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두 주제가 시험에 나올 리는 만무했다.
오히려 외면했던 주제가 최저점을 받아 낙찰되면 그만한 낭패도 없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애들은 가장 선호하는 주제 하나와 가장 자신 없는 주제를 하나씩 골라 투표하는 게 합리적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전을 짤 정도의 규모가 되는 팀에선 전체 판을 흔들 방법이 뭘지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
“염려할 거 없네. 1차고 2차고, 중요한 건 결과 아닌가.”
중앙예고 미술과 강 과장이 은사인 황 화백과 서울 모처 일식집에서 만나고 있었다.
“하아. 그래도 어디 면이 서야지요.”
강 과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웅얼거렸다.
전국대회를 준비하던 중, 황 화백이 자신을 불러들였고, 이번 대회에 쓸만한 인재를 찾으란 말을 넌지시 흘렸다.
‘제대로만 된다면 대상을 준다는 말씀인가?’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였다.
전국대회 1등.
만년 2등인 중앙예고에 이보다 더한 실적이 있을까.
은사인 황 화백은 한국 미술계의 주요 원로 중 하나. 알게 모르게 뻗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
어지간한 대회, 입시, 전시회에 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였고.
만일 세현예고 최형욱이 건재했다면 그에게 돌아갔을 기회.
그러나 시의적절하게 최형욱이 잘려 나갔고, 행운은 자신에게 굴러들어왔다. 당연히 잡아야 하는 기회라 생각해 움켜쥐었는데, 내가 뭘 놓친 건가?
황 화백의 라인을 타고 승승장구해도 모자랄 판에 전국대회 1차 예선 10명 통과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보니 아찔한 기분이 드는 강 과장이었다.
“작년에도 절반 이상은 1차를 너끈히 통과했습니다. 40명이 응시하면 25명에서 30명까지도 올라갔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10명이라니. 하아. 애들 실력이 딱히 떨어진 것도 아닌데…….”
오히려 선배들보다 뛰어난 기수였단 원망의 말은 꿀꺽 삼켰다.
어쨌거나 속 시원한 답이라도 듣고 싶은데 황 화백은 입을 오물거리며 계절 회를 하나씩 맛볼 뿐, 얄미울 정도로 말을 아꼈다.
“내가 말했잖나. 중요한 건 최종 결과라고.”
“물론 그렇긴 하겠죠. 입상만 제대로 한다면 1차에서 몇 명이 통과하고 떨어지고 하는 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나른하지만 단호한 말투의 황 화백. 강 과장은 답답하지만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황 화백은 전국미술과 협회 회장을 내리 지내왔고, 이번 전국대회 심사위원단도 그의 주축들이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섣불리 건드려 관계를 트는 건 손해였다.
그래, 조바심을 내다가 일을 망칠 순 없지. 기다려보자, 조금만 기다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오겠지.
강 과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애 말이야.”
황 화백이 청주로 입을 헹구며 말했다.
“자네 학교에서 내보낸 그 아이.”
“아, 민준이 말씀이십니까?”
“어때. 2차 시험까진 스스로 통과할 능력이 있는 앤가?”
“……네?”
강 과장이 얼른 알아듣기 힘든 말에 눈을 끔뻑였다.
“한번 물어보게. 뭐가 제일 자신 있고, 뭘 피하고 싶은 건지.”
“아!”
혹시 투표를 조작하려는 건가?
단순한 강 과장은 금세 화색이 되어 무릎을 쳤다.
“네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쓰읍.”
그런 강 과장을 황 화백이 한심하단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네?”
“알아보고 그다음은?”
“……네?”
“하아.”
황 화백이 탁.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강 과장을 응시했다.
“성실아.”
“네?”
“왜 이리 아둔하누.”
“…….”
질책을 당하는 이유도 짐작하지 못한 채, 강 과장의 목덜미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네가 그러니 아직도 중앙예고 미술과 과장에 머물러 있는 거 아니겠어.”
쯧.
혀를 찬 황 화백이 다시 젓가락을 들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회 한 점을 집어 날름 입에 넣었다.
“감나무 아래서 백날 입 벌리고 앉아 있을 거야?”
“…….”
“쓸만한 작대기라도 가져와서 나무를 흔들어봐야 할 거 아냐.”
“네.”
조용한 꾸짖음에 말귀를 알아들은 강 과장이 그제야 고개를 주억거렸다.
“움직일 수 있는 표가 얼마나 되나, 어떻게 해야 일이 쉽게 만들어지겠나 잘 고민해보란 얘기야.”
“알아들었습니다.”
“그래. 너도 언제까지나 고등학교 선생이나 할 순 없는 노릇 아니냐.”
“네?”
“성실이 너도 이제 교수 타이틀 달아야지.”
“……!”
“안 그러냐?”
“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허허. 됐고. 열심히 해봐. 이번 일이 큰 기회가 될 테니.”
황 화백이 다시 청주가 담긴 잔을 들어 입을 헹궜다.
두 시간 후.
“들어가십시오!”
“오냐.”
비싼 모범택시를 불러다가 황 화백을 모신 강 과장이 택시가 골목을 빠져나가자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하아.”
기세에 눌려 바짝 엎드리긴 했는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결국 알아서 판을 깔고 준비하란 소리잖아? 그럼 자기가 해주는 건 뭔데?
중앙예고가 포섭할 수 있는 세력을 모아 투표를 조작해보란 이야기.
위험 부담이 큰 데다가 알음알음 같은 편을 모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에이 씨.”
행여 자기한테 불똥이 튈까, 위험한 일을 맡긴 걸까.
잠시 의심이 들었으나 달콤했던 말이 귓가를 울렸다.
“성실이 너도 이제 교수 타이틀 달아야지.”
“하아…… 개새끼, 대회 끝나고 딴소리만 해봐라.”
강 과장이 담뱃갑을 꺼내려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손님, 택시 잡아드릴까요?”
마침 가게 문을 열고 나온 일식집 종업원이 보고 아는 척했으나 강 과장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됐습니다. 저 앞에서 버스 타고 갈 거예요.”
좀 전 비싼 회에 술값까지 계산하고 나와 지갑엔 겨우 만 원짜리 한 장이 남아있었다.
“집에 가면 또 잔소리 듣겠네.”
바가지를 긁을 마누라가 떠오르자 강성실이 인상을 팍 구겼다.
***
세현예고 미술과 조재환 과장은 대회에 미심쩍은 사건이 있나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고, 중앙예고 미술과 강성실 과장은 인맥과 권력을 동원해 자기 말을 들을만한 이들을 하나둘, 포섭해 나갔다.
물밑에서 일어나는 일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애들은 투덜거리다 그림을 그리다 하며 전국대회 2차 시험에 대비하고 있었다.
사실 2차 시험의 룰은 보면 볼수록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주제 리스트를 미리 공개하고 시험 당일 투표를 한다는 것도 대비를 하게 하려는 배려인지, 의도적인 흘리기인지 알 수 없었다.
수현 역시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을 의심하고 있었으나, 그뿐이었다.
‘어차피 잘 그리는 놈이 이긴다.’
어떤 배경이 깔려있다 한들 지금 수현의 위치와 힘으론 그걸 바로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 작전의 방향을 틀어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