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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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캠핑
“감독님!”
황인아 감독은 자신을 찾는 조감독의 목소리에 인상을 먼저 찌푸렸다. 저렇게 자신을 부를 때면 딱 골치 아픈 일이 벌어졌다.
최근 새 작품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퍼진 뒤로 수도 없이 연락이 오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연락인 게 문제였다.
“클, 클로버 엔터에서 연락 왔어요.”
“클로버? 에이씨! 진짜 아이돌은 한 작품에 한 명만 받자, 좀. 나도 한 번쯤은 편하게 촬영하자고, 좀!”
“아니, 그게 아니고…….”
“나도 세레나데 좋아. 이번 크리스마스 싱글도 다 좋아. 그래도 연기는 아니지. 걔들은 청량하고 상큼한 이미지잖아. 이번 작품은 그런 이미지가…….”
“아니라고요! 좀! 들어 보시라고요!”
황인아 감독은 말을 끊은 조감독의 외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소 말 많은 자신에게 잘 맞춰 주는 조감독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게 놀라웠다.
“누, 누군데?”
“이재인이요. 이재인 배우 매니저한테서 연락 왔어요. 한번 볼 수 있냐고요.”
“진짜? 매니저 누구? 김대주 실장이야? 차기작 정해져서 안 된다고 미안하다고 전화받았었는데.”
“최상호 매니저라고 현장도 같이 본대요.”
“아아! 상호 매니저? 알지. 몇 번 본 적도 있고. 그럼 사실인가?”
“네.”
황태자 역할로 재인을 섭외하고 싶어서 연락했을 때 김 실장한테 스케줄상 출연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었다. 계약한 차기작과 촬영 기간이 겹쳐서 안 된다고, 미안하다고 기프티콘 선물도 받았었다.
“언제 보재?”
“해 넘어가기 전에 보자고 하던데요.”
“크으! 나한테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약속 잡아요? 이 PD님한테는요? 연락드려요?”
“당연하지. 우린 아무 때나 된다고 해.”
제작 감독한테도 연락하라는 황인아 감독의 허락을 받았지만, 조감독은 바로 연락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말을 꺼낸 사람이 보이기엔 모호한 태도였다.
“왜 그래?”
“이재인 배우요. 잘생겼잖아요.”
“그렇지.”
“너무 잘생겨서 부담스러워요.”
“잘생긴 게 왜 부담스러워. 잘생긴 게 최고지.”
“저 말고요.”
조감독은 캐스팅은 자신의 권한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재인의 외모는 독보적이었다. 연기력도 인지도도 외모도 비교당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을 꺼낼 만큼.
“>여우비> 최신화 보면 연기도 많이 좋아졌더라고요.”
“그렇더라. 발음은 원래부터 좋았는데, 이젠 아예 귀에 때려 박더라.”
“그래서 걱정이에요. 같이 촬영할 배우들이…….”
“그걸 우리가 왜 걱정해? 연기가 처지면 배우가 노력해야지. 밥상 차려 줬으면 됐지, 숟가락질까지 대신해 주려고?”
“그건 아닌데…….”
“정신 차려. 작품 생각하는 건 좋은데 쓸데없는 걱정이야.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책임질 것만 책임지면 되는 거야.”
신인 배우 조련의 달인이라고 불리는 황인아 감독 같지 않은 냉정한 조언이었지만, 이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는 신인 배우에게 신인 배우 이상의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게 아마 신인 배우 소속사가 그를 찾는 이유일 것이다.
“약속이나 잡아. 이유야 어쨌든 이재인이 합류할 가능성이 생긴 건 호재야.”
“네.”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또래 배우와 비교당하고 좌절하고 하는 것 역시 온전히 배우의 책임이었다. 그런 부분까지는 감독이 책임져 줄 수 없었다.
* * *
“크흐흡!”
재인은 김 실장이 내는 크흡, 크흐흡 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속 보일까 봐 참느라 그런다지만, 그냥 시원하게 웃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신경 쓰여서 제안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고운 PD한테 연락을 받았다고 했었지.’
김 실장의 의도대로 재인과 >황태자비 스캔들> 제작진이 만난 것은 김고운 PD의 귀에 들어갔다. 가끔 관계자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이라더니 정말로 김고운 PD랑 연이 있는 사람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소식이 바로 전해졌다.
“크흡!”
진짜로 그냥 웃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게스트로 나갈 예능 목록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인은 >여우비> 종방 뒤에 나갈 예능 프로그램들을 고르고 있었다. 휴가 가기 전에 골라 두려고 일부러 시간을 냈는데, 김 실장의 상태가 저래서는 오늘 안에 고르기 힘들어 보였다.
“매니저님 따뜻한 거 마시고 올까요? 실장님 진정되실 때까지요.”
“그러시죠.”
“크흠! 저 정신 차렸어요. 예능 고르셔야죠.”
“네.”
김 실장은 사무실을 나갈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한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눈을 깜빡이면서 정신 차렸다고 어필하는 입가에 여전히 웃음이 걸린 걸 보면 김고운 PD를 놀려 먹은 게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쪽은 인터뷰 포함 15분 정도 출연이고요. 이쪽은 가능하면 출연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인기 프로이기는 한데, MC들이 신인에 대한 배려가 적어서요. 주연 배우 두 분이 출연하시는 쪽으로 하는 게 낫습니다.”
“네.”
“이쪽은…….”
좋은 말로 신인에 대해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실상은 깎아내리기 바쁜 프로그램이었다. 김 실장은 제작사에서 보낸 목록에서 그런 프로그램들은 가차 없이 지워 버렸다.
“이렇게 몇 개만 나가죠.”
“네.”
“재인 씨는 워낙 화보를 많이 찍으시는 편이니까요. 그쪽에서 인터뷰하면서 언급하는 정도면 괜찮을 겁니다.”
“네, 그렇게 할게요.”
드라마가 종영된다고 해서 출연자들의 일이 모두 끝나는 건 아니었다. 종영하고도 몇 개의 프로그램에 출연, 홍보해야 했고, 해외에 판매되었을 때 현지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재인 씨.”
“네.”
“>완벽한 파트너>는 정말 그렇게 처리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제가 먼저 제안한 거잖아요. 번복할 생각 없어요. 만약 그쪽에서 싫다고 하면 그때는 실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알겠어요. 그쪽은 아마 싫다고 못 할 거예요.”
김 실장은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속으로 흐뭇해했다. 재인이 자신을 위한 건 아니라지만, 욕심을 부리는 게 기꺼웠다.
‘주인공이 아이돌로 활동하는 과거 장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서 워너비원 멤버들이 같이 출연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가능하면 OST도 한 곡 정도 넣으면 좋을 텐데, 그건 어렵겠죠?’
‘어렵긴요. 클로버 소속 가수가 몇인데요. 당연히 저희한테 한 곡 정도는 맡겨야죠.’
‘그럼 그것도 워너비원 멤버한테 맡길까요? 데뷔 앨범 수록곡 중에 멤버가 작곡한 곡도 있던데, 괜찮을까요?’
‘괜찮지요. 자랑은 아니고, 형찬이가 곡을 잘 만들어요. OST 맡겨도 잘할 거예요.’
‘그리고 후반부 제 촬영 분량을 좀 당겨서 찍었으면…….’
며칠 전 나눈 대화를 떠올린 김 실장이 다시 한번 크흐흡 소리 죽여 웃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누명으로 맘고생 한 워너비원 멤버를 챙겨 주면서, >황태자비 스캔들>의 출연 가능성도 재 보는 재인의 영리한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자신을 위해서 조금만 더 욕심을 내 줬으면 하지만, 타고난 성품이 그러시니.’
사실 업계에는 이번에 재인과 조세형을 붙여 두면서 화제를 먹으려는 일 정도는 흔했다. 남을 모함하고 짓밟고 올라가는 게 당연하다는 기류가 알게 모르게 깔려 있었다. 당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받는 게 정당한 일이라는 듯이.
‘물론 내 배우가 부당한 일을 겪게 둘 마음은 요만큼도 없지만.’
아마 회사 규모가 작은 곳이라면 이용당하는 걸 알아도 웃으면서 네, 네 했을 것이다. 재인처럼 출연하지 않겠다 은근하게 협박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조세형 씨는…….”
“만나 보고요. 만나고 난 뒤에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
굳이 조세형을 만나 볼 이유가 있나, 그냥 치워도 되는데. 김 실장은 김고운 PD와 만나서 요구할 내용을 정리하면서 입맛을 다셨다.
조세형 정도는 굳이 그가 손을 쓸 필요 없이, 불편하다는 운만 띄워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차피 배우의 출연은 카메라 돌기 전까지 모르는 일이니, 하차시키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그럼 김고운 PD하고는 이대로 진행하지요. 그리고 >황태자비 스캔들>의 황 감독하고…….”
* * *
“뺙뺙뺙! 뺙뺙!”
“아니, 그건 형이 어떻게 해 줄 수 없는데…….”
재인은 신나게 달려 나갔다가 차가운 눈을 밟고 성질을 부리는 혁에 할 말을 잃었다. 캠프장 바닥이 잔디가 깔린 마당이나 열선이 깔린 정원 타일과 다른 건 당연했다. 발이 시리다고 혁이 성질을 부려도 캠프장 자갈밭을 다 그렇게 만들 순 없었다.
‘병아리용 신발 같은 것도 있나?’
퍼덕퍼덕 날갯짓하며 성질을 내는 혁을 손바닥 위에 올려 준 재인은 절대 못 구할 것 같은 조류용 신발의 구매를 잠시 고민했다.
“눈이야. 혁이 눈 처음 보지?”
“뺙뺙뺙!”
“발 시리다며?”
“뺙뺙!”
재인이 고개를 저으면서 혁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발 시리다고 성질을 부릴 때는 언제고 안아 들자마자 내려 달라 난리였다.
“뺙뺙! 뺙뺙!”
내려 주자마자 하찬을 향해 달려가는 게 하찬이 탐색 중인 울타리 주변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하여간 제멋대로라니까.”
말로는 그새 하찬 옆에 붙어서 뺙뺙거리는 혁을 타박했지만, 행동은 달랐다. 캠프장까지 오는 내내 낮잠을 자느라 점심을 거른 혁을 위해 고기를 꺼내고 있었다. 집에서 한 끼 분량씩 나눠서 준비해 온 혁 전용 도시락이었다.
“난로 그쪽으로 놔 드릴까요?”
“……아니.”
“그럼 화로 앞으로 좀 더 당겨 앉으세요. 추워요.”
“……응.”
보글보글 찌개가 끓는 화로 근처로 최태원이 당겨 앉는 걸 확인한 재인이 바쁘게 몸을 놀렸다. 오랜만에 하는 캠핑에 신이 나서 사 들인 장비들을 용도에 맞게 정리했다.
난로와 서큘레이터는 텐트 안을 전부 데울 수 있는 위치에, 조리 도구와 식자재는 테이블과 가까운 곳에, 전기 매트와 침낭은 이너텐트의 잠자리에. 며칠 동안 생활하기 편하게 정리했다.
“점심 먹고 산책해요.”
“……응.”
적당히 걸리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물건을 정리하고 나자 찌개가 다 끓었다. 최태원이 건네는 그릇을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차기작 고르고 계신다면서요?”
“……응.”
“좀 더 쉬시지 않고.”
“……연기는, 좋아. 괜찮아.”
“네.”
설 연휴가 지나면 바로 차기작 촬영에 들어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재인은 진심으로 최태원이 쉬었으면 했다. 이전 소속사에서 원체 시달린데다, 아직도 법정 다툼이 이어지고 있어서였다.
미등록 각성자 범죄라서 처벌은 빨랐지만, 피해 보상과 손해 배상 소송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복잡한 이슈들이 정리될 때까지 쉬었으면 싶었다.
“……너는? 괜찮아?”
“차기작이요?”
“…….”
“괜찮아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기로 해서요. 손해 본 것도 없고, 따지고 보면 이득인 부분이 더 많아요.”
“……응.”
김고운 PD와 어떻게 결착을 봤는지 상황은 재인에게 꽤 유리하게 정리되었다. 후반부 촬영 스케줄을 당기는 일도 합의했고, 워너비원을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일도 통과됐다.
남은 건 캠핑이 끝난 후 조세형과 만나는 일뿐이었는데, 그다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김 실장이 조세형과 같이 출연하는 분량을 최소로 해 달라고 요구했고, 그 요구도 받아들여졌기 때문이었다.
‘세상 평화롭네.’
>여우비>가 케이블 드라마여서 연말 시상식이 없는 게 참 편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쯤 시상식 준비다 뭐다 해서 엄청 바빴을 것이다. 이렇게 한가하게 캠핑을 즐길 시간 따위 없었을 것이다.
“여기 좋네요. 다음에 또 와도 좋을 것 같아요.”
“……응.”
연말 대청소에 투입된 동생도 같이 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최태원과 동행한 것도 나쁘지 않았다. 워낙 조용하고 얌전한 사람이라 느긋한 캠핑 동료로 딱 알맞았다.
“컹컹! 컹컹!”
“뺙뺙! 뺙뺙!”
“또 싸우네.”
“…….”
시끄러운 두 녀석과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