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quirrel Seeking For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3)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33)화(133/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33화
그렇게 가족 식사에 가까웠던 짧은 약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손을 잡은 채 반지를 고른다는 핑계로 데이트를 나섰다.
더 이상 신경 써야 할 적도 없고, 속여야 할 눈도 없고, 비상용으로 챙겨야 할 물약도 없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는, 우리의 순수한 첫 데이트였다.
반지를 고르러 나가는 길, 우리는 마차 안에서 길게 입맞춤을 나누었다.
요한은 언제나 그랬듯이 아찔할 정도로 나를 몰아세우며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마주치는 살결마다 열이 오르고 발끝이 오그라들었다.
“그, 그만…… 이제 힘들어.”
“유리카. 정말 이상하게…….”
요한이 잠긴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진정될 마력도 없는데, 미치도록 좋아. 여전히 황홀하고, 똑같이 널 너무나 원해.”
그의 몽롱한 눈을 보니 예전하고 별 차이도 없는 것 같았다. 그가 옅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대체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어. 테오도르 같은 놈이 나타나면, 예전처럼 똑같이 분노할 것 같은데.”
“그래?”
“분노의 정도는 다르지 않을걸. 다만 이제 내 마력이 뭘 때려 부수지 못해서 그렇지.”
“그것참 다행이네.”
실제로 요한의 태도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다.
내가 그를 진정시켜 주었을 때와 비교해 봐도 별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달라진 건 확실히 있어.”
나는 그의 손을 깍지 껴 잡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서로의 감정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차이점이 있지.”
“영리한데, 유리카. 늘 그랬듯이.”
요한이 내 눈을 바라보며 마치 탑에 갇혀 있다가 다람쥐를 처음 만난 소년처럼 웃었다.
우리의 마음 편한 첫 데이트가 이제 시작인 것처럼, 우리 앞날에 함께할 아주 다르고도 똑같은 날들도 이제 시작이었다.
“그런데 요한.”
나는 요한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테오도르 황자는 왜 만나겠다고 했어?”
아까 아버지가 ‘처분에 원하는 것이 없느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리베나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러자 요한도 냉큼 ‘저도 테오도르 황자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약 올리려고.”
요한은 아주 섬뜩한 얼굴로 유치한 말을 했다.
“그 자식이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약 많이 올랐었구나.”
“어.”
그가 생각만 해도 싫다는 듯 짜증을 냈다.
“마법사가 아니니 비로소 독대할 자신이 생겨. 마법사일 때 단둘이 만났으면 난 그놈의 얼굴을 보자마자 폭주해서 죽여 버렸을 거야.”
진심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마법사가 아닌데도 그 자식이 너를 납치했던 걸 생각하면 엄청 싫네.”
아무래도 요한의 질투는 마법사의 본능과 관계가 없는 듯했다.
그냥 천성이 집착하는 성격일 수도…….
“근데 넌?”
요한이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리베나를 만나서 뭐 하려고?”
“아, 나는…….”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뭐 좀 가르쳐 주려고.”
* * *
아버지가 입궁하여 이런저런 일을 모두 처리한 이후.
테오도르에게는 무기 징역이, 그리고 리베나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신전은 완전히 해체되어 폐쇄되었다.
신전이 독점하고 있던 약물 연구는 의료 아카데미에서 연계하기로 했다. 그 모든 일의 책임자는 당연히 르나트가 되었다.
그는 의사인데도 신전의 약물을 분석하여 사람을 구한 전례를 가진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가 오다니 꿈만 같습니다.”
르나트는 다시 한번 내게 깊이 감사했다.
“다 공녀님 덕분이에요.”
나 역시 우리 어머니를 구해 준 르나트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서 기뻤다.
다행히 그 소년 대신관은 죽지 않았다. 그러나 듣기로는 어린 나이에 갑자기 철이 들어 굉장한 무신론자가 되었다고 했다.
“연구하다 보니 그렇게 의학과 다르지도 않아요.”
르나트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저 제도의 영역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연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전같이 폐쇄적이지 않으니 같은 지식이라 하더라도 더 공익을 위해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잘된 일이었다.
“아, 그리고.”
아버지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이엘라 후작가는 수도를 떠나기로 했다.”
“네?”
이엘라 후작가라면 예전에 뒤에서 나를 열심히 씹어 대던 무리였다.
“늦게 와서 못 봤어. 저 여자가 그 영악해 빠진 가짜 고아인 거야? 엄청 화려하게 하고 왔네?”
“응. 진짜 메데스트 공녀라도 된 것처럼 꾸미고 왔지? 누구나 아는 가짜 주제에 어디 진짜 행세를 하려고 드나 모르겠어.”
첫 연회에서 그들이 한 뒷말을 내가 잘 이용해 먹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말들이 내게 상처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심지어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친딸인 줄도 몰라서 오히려 ‘난 이 일 다 해결하고 나서 내 발로 메데스트 가문을 나갈 거야!’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버텼다.
“하여튼 괜히 진짜 행세를 하고 있는 게 아니죠. 근데 메데스트 공작가 사람들도 진짜 너무 호구들 아니에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면 가짜가 진짜라도 된대요?”
“거기서 그만둔 사용인의 말을 들어 봤는데, 정말 진짜 공녀처럼 굴고 있대요. 나 참, 가짜 공녀 사건으로 한 번 집안을 뒤집어 놓고 나서 뻔뻔하기도 하지……. 요새는 자기가 진짜라는 주장도 하고 있다면서요?”
그런데 마지막 신전 행사에서까지도 그렇게 줄기차게 나를 깎아내렸으니…….
그 말을 나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 정도는 제가 가뿐하게 처리 가능한데…….”
리베나도 물리쳤는데 이엘라 후작 영애 따위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허허 웃으면서 내 어깨를 쳤다.
“그동안 버거운 일들을 혼자 처리하느라 애썼다. 아주 작은 일도 하지 말고 그 망할 놈이랑 행복하기나 하렴. 아, 망하면 안 되지.”
왠지 중간에 진심이 섞인 것 같긴 했지만 어쨌든 굉장히 어른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럼 나머지는 그냥 제가 처리할게요.”
나는 이엘라 후작 영애 주변에 모여 있던,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영애들을 떠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기억이 안 나도 친한 정보 길드에게 물어보면 약점까지 줄줄 나올 게 분명했으니까.
“저도 슬슬 사교계에서 친구도 사귀고 그래야지요.”
“그래.”
아버지는 뿌듯하게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메데스트의 공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모두 누리도록 해라.”
“네, 그동안도 언니 덕분에 많이 누렸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리베나에게는 언제 갈 예정이냐?”
“오늘 저녁에요.”
나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요한은 벌써 테오도르 황자에게 갔더라고요. 정말 엄청나게 벼르고 있었나 봐요.”
* * *
유리카의 말대로, 요한은 테오도르의 면회권이 주어지자마자 곧바로 입궁했다.
재판이 이루어지고 테오도르가 신전과 결탁하여 로이먼드를 해치려고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래서 황족으로는 최고형인 무기 징역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 결과를 들은 많은 이들이 사형 선고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부르짖었다.
하지만 요한은 의외로 무기 징역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대신 그는 조건을 하나 내걸었고, 다들 요한이 참 자비롭다고 생각하며 회의를 끝냈다.
“굉장히 화려하네요.”
요한은 감옥 안에 들어가 있는 테오도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테오도르는 꽤 넓은 곳에 갇혀 있었는데, 구석에서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요한이 씩 웃었다.
“하이라드 공작 성 지하 감옥에도 저를 해치려 했던 제 친애하는 계모와 이복동생이 들어가 있는데 이것보다는 훨씬 더 환경이 열악하지요.”
유리카와 가족들을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서늘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황태자 전하를 해치려 하고도 이런 대우라니, 황족이 좋긴 좋군.”
“……비꼬려고 온 거라면 꺼져라.”
테오도르가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요한을 노려보았다.
“그거 아십니까?”
요한은 씩 웃으며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무기 징역으로 끝내는 대신, 당신에게 진정 물약을 주지 말자고 주장한 사람이 바로 나야.”
테오도르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나는 원래 받는 대로 주는 걸 좋아합니다.”
요한이 서늘한 얼굴로 말했다.
“다들 그 정도면 너무 관대한 처사가 아니냐고 나를 자비로운 사람 취급하더군. 수도의 고위 귀족 중 남아 있는 마법사가 없으니 말이지.”
“네가 감히!”
테오도르는 벌떡 일어나려고 했으나 고통스러운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요한이 그 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알지? 진정 물약이 없으면 마법사는 점점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걸. 당신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 고통에 괴로워하며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울부짖게 될 거야.”
“이…… 이 잔인한!”
“당신이 유리카를 두고 나를 자극했을 때 나는 더 고통스러웠지.”
요한은 만족스럽다는 듯 눈을 휘어 보이며 말했다.
“난 그 고통에서 이제 완전히 해방되어 유리카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거야. 당신은 그 고통 속에서 영원을 살아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