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Squirrel Seeking For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34)화(134/134)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134화
어스름이 지기 시작하는 저녁.
나는 홀로 리베나가 갇혀 있는 감옥으로 향했다.
감옥은 황궁 지하에 있었고 계단을 꽤 오랫동안 내려가야 했다.
간수들이 지키고 있는 초라한 감옥 구석에서 리베나는 무력하게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나는 한동안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동안 최선을 다해 열심히 추적하고 두려워했던 상대였다.
그건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나는 그녀의 실험체로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한 번 완전히 장악당해 보았기 때문에 느낄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그저 평범하고 아무 힘 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유리카?”
인기척을 느꼈는지 리베나가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래. 나야.”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잠시간 눈이 마주쳤다.
내가 천천히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살려 줘, 유리카. 제발 날 살려 줘. 나를 밑에 둬. 그럼 메데스트를 위한 연구를 할게. 응? 신전에서보다 더 열심히 말이야.”
그녀가 무릎으로 기어서 내 앞까지 왔다. 그리고 창살을 붙든 뒤 광기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절규했다.
“난 아직 아이도 없어! 아르테어의 이 대단한 핏줄을 물려줄 수도 없단 말이야! 유리카,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 줄 아니? 어? 인류가 도약할 수 있는 커다란 기회를 잃은 거라고!”
“하…….”
나는 그녀의 번들거리는 눈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정말 내가 상상했던 것 중 가장 최악의 결말이었다.
“살려 줘, 유리카. 응? 정말 뭐든 할게…….”
차라리 과학자로서의 고고함이라도 끝까지 보여 주었다면 이런 감정까지는 안 들었을 텐데.
“원한다면 네가 다람쥐와 인간을 마음껏 넘나들 수 있는 연구를 할게. 약도 요한도 필요 없는, 완벽한 방법을 말이야!”
“그래?”
나는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말투부터 바꿔야지. 안 그래?”
리베나는 아차 싶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한번 쉬고 고분고분하게 말했다.
“……네, 공녀님.”
그녀가 몸을 더 납작 엎드리며 애원했다.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아르테어는 언제나 메데스트를 위해 연구해 왔어요. 공녀님과 제가 그 역사를 다시 이어서, 하이라드는 물론 황가보다도 더 메데스트를 번영시키면 됩니다.”
“그렇구나. 근데 난 네 충성심을 못 믿겠는데.”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녀를 싸늘하게 노려보았다.
“머리라도 돌바닥에 찧어 보는 게 어때. 네 진정성을 보여 봐.”
“…….”
“난 원래 영리한 사람을 좋아해. 르나트를 끝까지 후원한 걸 보면 몰라? 최선을 다해 보지 그래?”
“……예.”
리베나는 심호흡을 한 뒤 곧바로 바닥에 머리를 스스로 부딪히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근데 말이야. 난 네 실험용 다람쥐였잖아? 네가 정말 내게 복종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복종의 의미로 내 구두를 핥아볼 수 있겠어?”
“…….”
“끝까지 날 실험대에 올렸던 사람이 너잖아. 이 정도도 시험 못 하나?”
리베나는 잠시 망설이더니 그대로 내 구두에 입을 맞추었다.
그마저도 소름이 끼쳐서 나는 곧바로 발을 뒤로 빼 버렸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리고 냉랭하게 말했다.
“내가 미쳤어? 다른 누구도 아닌 너를 거두게?”
내 단호한 말에 리베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분노에 휩싸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그녀가 벌떡 일어나 창살을 붙들고 소리쳤다.
“감히 날 갖고 놀아?”
“응. 내 맘대로 갖고 놀았어.”
나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뭐 어때, 넌 내 인생을 갖고 놀았잖아.”
그 말에는 할 대답이 없는지, 리베나가 감옥 바닥에 침을 뱉으며 말했다.
“널 하이라드 공작가에 보내는 게 아니었어. 그것만이 후회될 뿐이야. 별것 없다고 분양시키는 대신 조금 더 연구했다면 너는 정말로 내 역작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질린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보니 나를 정말 소유물로 생각한 건 요한도 테오도르도 아닌 리베나였다.
“네 눈에는 아직도 내가 네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다람쥐로 보이나 봐.”
내가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너와 똑같은 사람이 아니야. 너는 날 인간으로 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난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도 널 인간으로 보고 있어.”
“그게 무슨…….”
“합법적인 벌을 받아. 이게 내 요구 사항의 전부였어. 너는 내게 인간이 할 수 없는 짓을 했지만, 난 인간 사회가 만든 규범으로 너를 끝까지 대하는 거야.”
“지금 나 가르쳐?”
“어.”
나는 리베나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 아르테어의 핏줄에 연연하지 마. 네가 있어서 이 세상은 좋을 게 하나도 없었어. 만일 네 자식이 그런 마음으로 태어난다고 해도 아주 불행할 거야.”
처벌이 결정되었으므로 어찌 보면 소용없는 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리베나와 이렇게 인간 대 인간으로 대화를 한번 나눠 보고 싶었다.
그동안은 너무 속내를 숨긴 채 서로를 대했으니까.
“나는 이제 평범한 인간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잘 살 거야. 메데스트 가문에서 언제나 원하던 것처럼. 아르테어가 결국엔 틀린 셈이지. 그러니 네 대에서 끊어지는 거고.”
나를 실험체로 만들고 여기까지 오게 한 그녀에게 나는 당당히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게 우리의 결말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도록.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말이다.
할 말을 다 한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뒤에서 리베나가 뭐라고 크게 소리쳤지만 울려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동안 나는 언제나 리베나가 두려웠다.
나를 다람쥐로 만들고 또 내내 실험을 한 사람이었으니까.
내가 인간화를 하고 나서도 언젠가 그녀에게 종속될까 봐 막연하게 무서웠다.
그런데 이렇게 갇혀서 내 앞에 무력하게 무릎 꿇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완전히 해방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더 이상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있어.”
나는 감옥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리베나가 아닌 과거의 나 자신에게 인사했다.
“리베나의 손아귀에 있던 나 자신 모두.”
* * *
감옥에서 나오자 완전히 날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유리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옥 바깥에는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을 해 보였다.
“유리카, 괜찮니? 별일은 없었고?”
걱정스러운 얼굴의 어머니.
“그 여자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하지는 않디? 혹시 좀 심란하지는 않아?”
대뜸 다가와서 내 안색부터 살피는 제이든.
“만일 네게 함부로 대했다면, 그 죄도 물어서 사형을 조금 더 앞당길 수 있다.”
벌써 오만 가지 시나리오를 다 쓴 것 같은 아버지.
“유리카, 혹시 혼자서 무섭지 않았어? 내가 같이 가 줄걸…….”
내내 발을 동동 구른 것 같아 보이는 메리엘.
“혹시 그 여자가 약물이라도 숨기고 있지 않았습니까? 몸이 이상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커다란 왕진 가방까지 들고 온 르나트.
“네가 심란할까 봐 다들 온 거야, 유리카. 다들 걱정하고 있는 게 똑같더라고.”
나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봐 주는 요한까지.
혼자 가겠다고 한 나를 차마 방해하지는 못하고 다 같이 모여 내 기분을 걱정했을 그들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아니, 이렇게 다들 안 와도 되는데…….”
“그래도 불안해서 말이다. 그 여자는 왠지 네 트라우마의 집약체일 것 같아서.”
제이든이 혀를 차며 말했다.
“우리도 끔찍해 죽겠는데, 넌 오죽하겠니. 특히나 오래도록 그 여자의 손아귀에 있었잖아.”
나는 제이든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동안 과도하게 의식했던 건 사실이니까.
그 강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오늘 리베나를 눈으로 확인하고 온 것이기도 했다.
“괜찮아요.”
나는 나를 걱정하며 기다려 준 내 사람들을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이제는 리베나의 손아귀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있으니까요. 이렇게 다들 저를 위해 주는데 제가 이제 뭐가 두렵겠어요?”
다 같이 황궁 감옥까지 와 준 것이 고마워서, 나는 한 명 한 명 꼭 안아 주었다.
그러고는 요한의 곁에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좋은 일들만 생길 거잖아요. 언니의 결혼식이라든지, 제 결혼식이라든지…….”
그 말에 아버지와 제이든은 무릎에 힘이 풀리는지 비틀거렸다.
물론 메리엘과 요한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말이다.
“이제 돌아갈까요, 그럼.”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모든 것이 다 끝났으니까요.”
비로소 모든 것이 다 끝났지만, 행복한 일상들은 이제 시작이었다.
<악당을 구하는 다람쥐가 되었다>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