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Academy’s Disabled Student RAW novel - Chapter (78)
EP.78 혈운(1)
보통 몬스터는 종족 단위로 싸잡아 칭한다.
적엽견, 혹은 레드 하운드. 표준위계는 7위계로 정하고, 그 외의 변종 등을 알파로 칭하며 끝낸다.
개체마다 차이점은 있을 수 있지만, 따로 종족을 구분하거나 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저건 아니다.
혈운(血雲)의 아에루스.
협회가, 플레이어가 가진 시스템이 이명과 개체명을 지어줄 만큼 특별한 몬스터.
위계로는 3위계. 그중에서도 알파개체로 취급된다.
〈세이비어〉에서 세상을 개판으로 만드는 몬스터 중에서도 꽤 상위권에 위치한 괴물이다.
역대 회차 중에서 아에루스에게 죽은 회차는 없다. 하지만 만나본 회차는 많다.
저걸 잡은 회차? 있었다. 하지만 곱게 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애당초 3위계를 안정적으로 토벌하기 시작한 회차는 8회차다.
그 이전까지의 회차는 스펙이 어중간하거나, 출력은 우월해도 어딘가 엉성한 결함투성이였다.
9회차는 본격적으로 악성(惡性) 루트를 모색하다가 선을 잘못 타서 중간에 터졌다.
플레이어 혼자서 3위계 이상을 토벌할 수 있던 회차는 8, 10, 11, 12회차뿐이다.
‘이런 시발.’
그런 잠재력을 가진 괴물을 앞에 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지금 당장 3위계는 아닐 것이다.
만약 저게 3위계였다면 생존자가 없었겠지.
– 크아아아아!
그래도 내게 있어 저것은 괴물이었다.
포효가 덮쳐들었다. 옷자락이 거칠게 펄럭였다. 고막을 찢으며 날아드는 폭음과 강렬한 살의에 안색이 죽어버렸다.
기세. 기감이라 해야 하나. 공간지각까지 함께 동원해 저것의 수준을 지례 짐작했다.
홍연화에게 전소당한 5위계짜리… 그거랑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개같은 현실에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불안정해지는 호흡을 다독이며 내 몸 상태를 살폈다.
왼팔의 팔뚝 아래로 감각이 옅다. 움푹 뜯겨나간 살점… 저 고통을 온전히 느꼈다면 꽥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마력은… 절반 이상은 남았다. 코어와 회로는 혹사당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몸뚱이는 팔뚝을 제외하고는 그나마 멀쩡하다.
무장 상태. 챙겨온 보급용 검은 아에루스의 앞발을 막아내고는 폐품이 되었다.
하늘의 날개깃은 마력을 퍼붓자 조금씩 형태를 회복하고 있다. 복구 기능이 없었다면 방금 공격으로 폐품이 되었을 거다.
‘시발.’
시발, 시발, 시발.
진짜 죽을뻔했다. 머리가 싸늘하게 식었다.
죽을 지도 모른다가 아니다. 요람에서 겪은 훈련 따위가 아니다. 폭주에 휘말린 것처럼, 잘못하면 죽는다가 아니다.
죽음이 코앞에 있었다. 공간지각이 없다면, 감각으로 지도를 그리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죽음이 아른거렸다.
방어마법, 방패 대용으로 쓴 검, 하늘의 날개깃, 전신에 두른 강기와 최대로 발휘한 강체술.
무엇 하나 없었다면 방금 죽었다.
삶이 끝났을 거다. 공간지각으로 무수히 느낀 시체처럼, 나도 그런 꼴이 났을거다.
‘도망…’
가야 한다. 망설일 이유가 없다.
저거랑 싸우면 죽는다. 생존본능이 비명을 질렀다.
내 목숨이 중요하지 다른 게 별거냐?
나는 애당초 이기적인 놈이었어. 이렇게 기를 쓰며 강해지려는 이유도 나 하나 살자고 하는 짓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발을 뒤로 끌었고.
대피소 내부의 정보가 기어들어왔다. 걸러내고 할 시간이 없었다.
전부 담아내지 못했다. 그저 일부의 정보가 들어왔을 뿐이다.
공포와 불안. 축약했지만 혼란스러운 감정이 휘몰아치는 대피소의 내부가 느껴졌다.
나는 이기적이다.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 왜 그 사람을 구했더라?
얻을 거라곤 조금도 없었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했는데, 그 탓에 다리가 날아갔는데, 어째서 움직였더라.
– 너는 태어나면 안 될 오물이라고, 어?
억울해야만 하니까. 그 말을 부정해야 했으니까. 거기서 가만히 있었으면, 그 말을 긍정하는 것 같았으니까.
빠득! 이를 악물었다. 입속으로 침이 아닌 액체가 얼쩡거렸다. 아릿한 통증이 정신을 일깨웠다.
마력을 일으켰다. 삐걱거리는 코어가 마력을 토해낸다. 전신을 일주하는 마력으로 강체술을 운용했다.
발을 앞으로 끌었다.
화아악! 마력을 듬뿍 퍼먹은 강기가 격렬하게 몸을 휘감았다.
– 콰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렸다. 발현지는 괴물, 아에루스였다. 가뜩이나 핏빛으로 보이는 털가죽 위로, 시뻘건 안개가 휩싸였다.
고유능력은 초인만이 가지는 게 아니다. 용어가 달라도, 발현과 구동의 방식이 다를지라도, 분명 인간을 제외한 개체에게도 발현된다.
몬스터도 그렇다. 대부분 종족특성으로 뭉뚱그려 묶이지만, 저 정도 되는 특이 개체에게는 분명 고유능력이 있다.
「혈운」
핏물로 만들어진 듯한 안개를 발현하는 고유능력.
저 혈운은 강기의 역할을 겸한다. 몸에 두르는 것만으로 스펙을 끌어올리고, 단단한 갑옷이자 적을 찢어발기는 무기가 된다.
– 콰드득!
땅을 박찼다. 내가 아닌 괴물의 발걸음이다. 아스팔트가 한 움큼 파이며 거체가 쏘아졌다.
빠르다. 스펙은 저쪽의 압도적인 우위다. 동시에 움직이면 이쪽이 당한다. 움직임을 예상하고 먼저 움직여야 한다.
공간지각으로 움직임을 예측했다. 폐품이나 다름없는 검을 역수로 쥐고서 내던졌다. 강기까지 둘러진 검이 허공을 갈랐다.
아에루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방어하는 기색도 없었다.
– 캉!
철과 철이 맞닿는 소리. 안개에 충돌한 검이 박살 나며 파편이 허공을 비산했다.
‘당연히 피해는 없겠지.’
아에루스가 육박해왔다. 거리가 가까워지며, 공간지각이 삐걱였다.
‘알파구나’
혹시나 싶었던 생각을 접었다. 저건 분명히 알파개체다. 그것도 폭주 중인 던전의 적극적인 백업을 받고 있는 상태다.
즉, 아에루스가 던전의 핵이며 중심이다. 아에루스가 위치한 곳이 곧 던전의 중심이고, 던전의 힘이 가장 강한 곳이다.
공간지각을 밀어내는 힘이 거듭 강해졌다. 정보를 끌어오는데 방해됐다.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두터운 앞발이 뻗어졌다. 길쭉한 발톱에도 혈운이 둘러져 있다.
마주 강기를 머금은 손을 뻗었다. 왼쪽 팔뚝의 부상을 염두해 오른손을 먼저 뻗었다.
– 콰드득!
혈운과 강기가 서로를 스쳤다. 터무니없는 반발감이 팔을 통해 전해졌다. 당장이라도 손이 부러질 것 같다. 이를 빠득 악물며, 궤적을 틀었다.
서걱! 가까스로 흘린 아에루스의 두터운 앞발이 땅을 파고들었다.
저 공격에 찍혔으면, 살가죽도 두부 가르듯 베여졌겠지. 섬뜩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공격을 허용하면 안 돼.’
손수 처맞으며 느낀 바 기본적인 체급 차가 너무 크다.
좀 전에는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연달아 허용했다가는 고깃덩이가 되어버린다.
– 콰드득! 쾅! 서걱!
전투가 성립됐다. 연신 공격을 흘려냈다. 빗겨나간 공격이 사방을 긁었다.
발톱의 궤적에 겹쳐진 건물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아스팔트가 쩌적 갈라진다. 도로 위에 방치된 차량이 토막 나더니 거친 폭발을 동반했다.
기량은 내가 위다. 짐승에게 기술을 따지는 것도 우습지만, 기량의 차이 덕분에 공격을 흘려낼 수 있다.
아트라 교수와의 대련에서 수많은 무장을 한두 번씩 다루어봤지만, 가장 많이 다루어본 것이 손과 발이다.
검을 다루다가도 검을 놓쳤을 때는 주먹을 내질러야 했고, 다리를 휘둘러야 했다.
그 경험이 덕택에, 괴물의 공격을 흘릴 수 있었다.
– 콰가가각!
강기가 뭉텅이로 깎여나갔다. 문제는 없었다. 움푹 파여버린 강기를 다시 채워 넣었다.
이전보다 더욱 단단하게 굳힌 기운. 마력이 구멍 뚫린 듯 소모되지만, 회로와 코어를 혹사시키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일단 일격에 파괴되지는 않는다. 한두 번은 버틸 수 있다. 아까처럼 갑작스럽고, 괴물의 전력을 담은 공격이 아닌 이상에야 일단 버틸 수 있다.
소비된 강기는 다시 복구하면 된다.
하지만…
‘쯧.’
삐걱대는 공간지각과 더불어 마력의 회복도 시원찮아졌다.
신체에 피해가 누적된다. 딴에는 공격을 흘려내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신체에 전해지는 부담이 있었다.
장기전 따위 상정하지 않았지만, 예상만큼 오래 버틸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단기전으로는? 죽일 수가 있을까?
기회를 엿봤다. 앞발이 내리 찍혀 왔다. 내 몸 위로 그림자가 졌다.
동작이 크다. 대체적으로 그런 덕분에 공격을 흘리고, 간혹 이쪽에서 공격을 넣을 수 있었다.
몸을 틀었다. 강기의 끄트머리를 긁어내린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몸을 스쳤다. 왼손을 펼쳤다.
「마력참격:다발」
손아귀에서 터진 참격이 아에루스를 덮쳤다. 체구의 차이 덕분에 날아든 참격의 다발이 옆구리에 처박혔다.
붉은 안개를 베어냈다. 그 과정에서 참격이 다수 소실됐다. 남은 참격이 털가죽에 닿았다.
– 콰드드드득!
뻣뻣하게 일어난 털에 참격이 가로막혔다. 제아무리 위력이 감소했다고는 해도, 털가죽을 조금 해집는 선에서 그쳤다.
– 크아아아!
고막이 파르르 떨렸다. 인상을 와락 찡그리며 재빨리 땅을 박차 물러났다.
방금까지 있던 자리로 큼지막한 주둥이가 닫혔다. 콰득! 이가 맞물리며 섬뜩한 소리가 귓가에 여실히 담겼다.
아에루스가 울음소리를 흘리며 고개를 들었다. 빠득빠득 갈리는 이 사이로 잘려나간 하늘의 날개깃이 물려있었다.
공간지각으로 이에루스를 살폈다. 참격이 꽂힌 자리로 옅은 상흔이 새겨져있었다.
죽일 수 있을까?
‘불가.’
아에루스와 엇비슷해 보이는 기생나방은 홍연화의 개화에 직격 당해 죽었다.
나는 그만한 출력의 능력이 없다.
겁화? 그날 이후로 써본 적 없다. 쓰고 싶었던 적은 많지만, 이 지랄맞은 능력은 주인의 뜻에 따라주지 않았다.
– 크르르르르…!
나도 아직 죽지 않았다. 한방이라도 제대로 맞으면 끝나겠지만, 공격은 연신 흘려 내지며 애꿎은 지형지물을 때려 부쉈다.
그것이 걸리적거렸을까, 아에루스의 목덜미가 울렸다. 철을 쇠꼬챙이로 긁는 듯한 울음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이어 두 앞발이 번쩍 들렸다. 휘감긴 혈운이 올록볼록거리며 몸집을 부풀렸다.
명백한 강공의 신호. 직감이 함께 울렸다.
맞으면 죽는다.
막을까? 못 막는다. 막아도 죽을 거다.
이번에도 빗겨낼까? 직감이 고개를 저었다.
피부를 두드리는 살의와 마력의 기세에 땅을 박찼다.
앞이 아닌 뒤로. 이에루스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 크르르르!
섬뜩한 울음소리. 그것이 마치 비웃는 듯한 느낌이었다. 쿵! 양 앞발을 감싼 혈운이 재차 몸집을 불렸다.
혈운과 털색이 유사한 탓에 앞발이 거진 두세배는 커진 듯 느껴졌다.
아니, 저건 그냥 앞발이었다. 위로 쭉 펼쳐진 앞발이 비교적 멀쩡한 상가의 옥상에 닿을 만치 길어졌다.
이어서, 아에루스의 뒷발이 부풀었다. 근육이 풍선처럼 부풀고, 그 위로 혈운이 감겼다.
‘그래.’
상대가 멀어지면 자기 쪽에서 가까워지면 되겠지.
쾅! 아에루스 뒤편의 땅이 불쑥 치솟았다.
그 대신 아에루스의 신형이 쏘아지며, 몇 배는 부풀어 오른 앞발이 함께 다가왔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햇빛이 차단됐다. 내 주변 인근이 어두컴컴해졌다.
위에서 아래로.
힘을 담기 가장 좋은 궤적으로.
하늘을 가린 앞발이 내리 찍혔다.
* * *
땅을 박찼다. 그 여파로 거친 돌풍이 몰아쳤다.
기세를 이기지 못한 초목이 우수수 부러져 몸을 뉘었다. 흙더미가 사방을 비산하고, 나무토막 따위도 함께 터져나갔다.
명백한 자연 파괴지만, 아트라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시프나하에는 게이트 터미널이 없다.
가장 가까운 게이트 터미널은 에든버러 게이트다.
거기서부터, 아트라는 조금도 쉬지 않고 직선으로 내달렸다.
이하율이 던전의 폭주에 휘말렸다.
던전의 등급은 고작해야 4급이다.
거기서 쏟아지는 표준 위계는 기껏해야 8위계다. 던전의 백업을 생각해도 7위계 남짓.
이하율의 실력을 생각하면, 분명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그리 생각했다.
그 아이라면 괜찮을 거라고.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그랬고, 아트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싸늘한 팔 한 짝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제발.’
아트라의 얼굴이 처참히 일그러졌다. 과거의 악몽이 현재에 겹쳐졌다.
‘살아만 있어라.’
살아있다면, 어떻게든 고쳐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치유에 관한 방법은 많다. 어떻게든, 살아만 있다면 고쳐 줄 수 있다.
그저 그리 되뇌며, 뒤를 생각하지 않고 강체술을 발휘하여 산과 강을 가로질렀다.
황금빛 선이 하늘에 그려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