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3)
Chapter 162 – 162. 레몬맛
그리핀 왕국의 남부에 위치한 브라이트 가문의 영지, 바이올렌에서 북부를 넘어선 클락 공화국까지.
데이우스 베르디가 어떻게 한순간에 워프를 타고 돌아올 수 있었냐고 묻는다면 단연 일등공신은 그의 약혼녀.
에리카 브라이트였다.
“어우, 빡세다.”
제로니아 가문은 이미 떠나갔고, 데이아의 고집으로 며칠 더 바이올렌에서 머물게 된 상황.
그녀는 지금까지의 고생을 토로하듯 근처 화단 난간에 걸터앉아서는 씩 웃어 보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데이아.”
어이가 없다 못해 치솟아 오르는 뭔지 모를 불쾌감에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봤으나, 데이아는 바로 과장된 턱짓으로 책임을 돌린다.
“니 예비 와이프가 하자고 한 일이야. 나는 또 착한 시누이니까 따른 것뿐이지.”
데이아가 가리킨 곳에는 황금의 빛기둥을 만들어낸 에리카가 서 있었다.
그녀는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면서도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덕분에 브라이트 가문에서는 우리한테 바짝 쫄았을걸? 뒷조사 해오길 잘했다니까.”
다리우스였으면 이런 거 절대 못 했다면서 으쓱거리는 데이아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충동이 치고 올라왔다.
왜 갑자기 가주인 엘란부터 시작해서 브라이트 가문의 장남과 차남이 데이아의 눈치를 보는 건가 했는데 이런 비화가 있었나.
“어쨌든 나는 도와준 것뿐이고 왕실에 연락하고 그쪽 속인 건 새언니야.”
“꽤나 친해졌나 보군.”
스스로를 시누이라고 부르고, 에리카를 새언니라고 칭하는 걸 보면 나름대로 에리카를 인정한 건가 싶었는데.
데이아는 역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에리카 쪽을 바라본다.
“너랑 가까이 있기 위해서 너를 포기한 여자니까. 현명하다는 건 인정해.”
“…….”
“네가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겠지만, 만약 헤어짐을 말할 거면 최대한 부드럽게 해줘.”
그리 말하곤 데이아는 다리를 꼬며 브라이트 가문의 정원을 거칠게 망치고 있는 빛의 기둥으로 시선을 돌린다.
꽤나 진귀한 절경이라며 눈에 새기는 모습.
이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한 데이아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에리카 쪽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옴을 느낀 그녀는 으쓱거리듯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왕실 쪽이랑 연락했어. 이걸 이용하면 바로 클락 공화국의 제1수용소라는 곳으로 가게 될 거야.”
“에리카.”
그녀를 불러보지만, 에리카는 듣지 못한 척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엘레노아랑 아리아가 먼저 움직이고 있던 게 다행이야. 두 사람도 아카데미에서 네가 이상해진 거랑 핀덴아이가 사라진 걸 눈치채고 미리 움직이고 있었나 봐.”
그 두 사람도 끼어있는 건가.
내가 분명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뒀는데 정말 누구도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싶었다.
“에리카.”
“가면 핀덴아이가 있을 거야. 가서, 함부로 도망친 메이드를 데려와.”
“에리카.”
“…….”
결국 나의 부름을 무시하지 못한 에리카가 크게 심호흡하며 고개를 퍼뜩 든다.
“응, 데이우스.”
“나는 이걸 바란 적 없다.”
“알아.”
담백하게 답해왔으나 전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대답.
“하지만 너에게 필요했어.”
“…….”
말없이 천천히 눈을 돌려 황금의 기둥을 올려다보자 에리카는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린다.
“대단하지? 마도심판관들의 워프에 내 전공인 빛의 마법을 좀 섞어봤어. 덕분에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지.”
“이쪽에서도 통로를 열기 위해선 대량의 마나가 필요했을 텐데.”
“우리 가문의 머저리들이 멍청해도 마나량 하나는 왕국에서 손에 꼽으니까.”
결국 입을 꾹 다문 채로 바라보고 있자니 에리카가 천천히 옆으로 다가왔다.
“네 약혼녀가 애써 만든 선물인데? 정말로 안 받을 거야?”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
내 질문에 에리카는 쓰게 웃으면서도 그 표정을 억지로 숨기려 든다.
“너를 사랑해서?”
“…….”
“그래서 보내주는 거야. 당장에는 내가, 핀덴아이의 공백을 채울 수 없으니까.”
“후.”
숨을 깊게 내쉬며 나는 잠시 시선을 내려 발치를 바라본다.
분명 내 마음은 이것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 있는 이 여인을 두고 간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툭.
내 옷깃을 잡은 에리카가 부드럽게 당겨온다.
별거 아닌 행동이었지만 긴장을 풀고 있던 나의 상체는 자연스럽게 앞으로 쏠렸고.
땅에 닿아있던 내 시선은 에리카의 발뒤꿈치가 들려있는 걸 보았다.
부드럽게 입술이 포개어 들어온다. 빛의 기둥이 조명처럼 그녀와 나를 감싸오며 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해왔다.
레몬 향이 코를 은은하니 간질인다.
툭하고 입술을 뗀 그녀는 조심스레 눈을 뜨며 나를 바라본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하듯 에리카는 미소를 지어주었으나, 오히려 더 쓰라리게 다가왔다.
“발악은 해봐야지.”
어느새 그녀가 들어 올린 손이, 내 가슴팍에 얹어진다.
“이 순간이, 네 심장에 남기를.”
그리 말하며 에리카는 나를 빛의 기둥으로 밀어 넣는다.
당혹스러운 상황인지라 나 역시 깜짝 놀랐고 저 멀리서 데이아가 뭐라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곧이어,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풍경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우아아아! 어디 가는 거예요!]그때 귓가에 울려오는 흑령사의 목소리. 최근 들어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디 있나 했는데 어느새 내 어깨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워프 되는 도중에도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구나 싶어 나는 덤덤하니 물었다.
“그동안 어디 있었지.”
[……자아 찾기 같은 거 했어요. 그것보다 키스는 좋았어요?]“…….”
[대답 안 해줄 거예요?]“알면 묻지 마라.”
[치, 나는 살아있을 적에는 해본 적 없단 말이에요.]투덜거리면서도 흑령사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내게 더욱 기대어왔다.
하지만 하나 거슬리는 건.
“살아있을 적에는?”
그럼 죽은 뒤에는 해봤다는 소리인가?
[…….]바로 볼을 부풀리듯 입을 다문 흑령사. 거슬리는 정보를 입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끄아아아아아악!] [살려줘어어어어어어!] [죄송해요! 죄송해요! 죄송해요!] [지옥이다! 이곳이 지옥이야!] [통령! 저주한다! 통령! 저주한다아아아!]어느새 도착한 공화국.
우리를 환영하듯 한이 서린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격하게 반겨왔다.
공화국의 추위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마도심판관들과 엘레노아도, 몰래 타이른의 등 뒤로 숨는 아리아도.
그 무엇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귀가 찢어질 정도로 과격한 영혼들의 비명소리와 땅과 하늘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영혼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는다.
“어찌, 이리도 소란스러운지.”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다.
저 멀리 하늘 너머에 떠다니는 것은 구름이 아니라 망자였으며.
대지의 색이 바래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영혼들이었다.
그야말로 망자가 없는 장소가 없는 이곳.
사람의 목숨이 기계의 부속품과 하등 다를 것 없이 취급되는 땅.
클락 공화국이었다.
[좀 도와드릴게요.]나와 같은 광경, 같은 것을 들은 흑령사가 고개를 저으며 마나를 모은다.
덕분에 귓가를 찌르며 주변의 모든 걸 방해하던 비명이 잠잠하니 잦아든다.
“야! 교수님 안 부른다면서!”
“조용히 해!”
타이른의 뒤에 숨은 채로 엘레노아에게 다가간 아리아가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시선이 두 소녀에게 닿자 둘은 움찔거리며 바로 어쩔 줄 몰라 한다.
“하아.”
결국 짙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내 말을 무시했지만 결국 나를 위해서 행동했던 거니까.
무작정 질타할 수만은 없었다.
“저쪽이에요.”
슬쩍 손짓하는 엘레노아.
그 끝에는 건물의 거대한 문 앞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는 핀덴아이가 있었다.
옷이 그야말로 피에 절어있는 것이 그녀가 한계까지 싸워왔다는 걸 알리고 있었으나, 주변을 굴러다니는 빈 병들을 보니 목숨의 위기는 넘긴 듯 보였다.
또한 어느새 내 발걸음은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차분하면서도 묵직한 발걸음.
기대어 앉은 그녀를 내려다보자 핀덴아이는 슬쩍 고개만 들어 인사해왔다.
“안녕, 데이우스.”
“…….”
“이런 누추한 곳에는 왜 오셨나.”
가쁘게 숨을 토해내며 핀덴아이가 물어왔다. 왜 왔을까.
“혹시라도 도와줄 거면 돌아가.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나를 냉정하게 밀어내는 핀덴아이의 한마디.
내가 혹시라도 공화국 쪽 사건에 연관될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내게 닿지 않았다.
내가 왜 왔는가.
오롯이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맹렬히 회전할 뿐.
에리카와 데이아에게 등 떠밀려 왔고, 실제로 핀덴아이를 보자 이제야 그녀가 떠난 동안 내가 평소답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핀덴아이의 질문에는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없었다.
“너를 체포하러 왔다.”
그렇기에 그것은 나도 모르게 내뱉어진 답이었다. 왜냐면 나조차 핀덴아이를 왜 찾으러 왔는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었으니까.
“어?”
심지어 핀덴아이조차 이런 나의 대답에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렸고 뒤에서도 미묘한 탄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
나는 변명처럼 뼈대뿐인 말에 살점을 덧붙여간다.
“나는 그리핀 왕국의 유일한 흑마법사, 폐하께서 선택하신 위령사라는 직책을 짊어지고 있다.”
“…….”
“그런 내게 약물투여 및 성희롱을 했다. 중죄라고 부를 수 있겠지.”
그러자 뒤에서 울려오는 두 소녀의 목소리.
“성희롱? 저게 진짜 미쳐가지고! 괜히 구해줬네!”
“데, 데이우스한테 뭐했어! 너 뭐했냐고!”
아리아와 엘레노아가 따지고 들자 핀덴아이조차 벙찐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따먹진 않았는데?”
어떻게 어휘가 변하질 않는지 모르겠다.
“했으면 넌 이미 죽었어! 교수님! 제가 딱 5분만 용사가 되는 걸 허락받아도 되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타이른! 저거 사형시켜! 바로 사형시켜!”
투닥거리며 이쪽으로 달려오려는 두 소녀를 진정시키는 타이른 올 벨로쿠스.
어쨌든.
나는 핀덴아이를 내려다보며 선언했다.
“핀덴아이, 너를 체포하마. 함께 그리핀으로 가자.”
“……푸핫!”
어이없다면서 웃음이 터져버린 핀덴아이는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더니 깊은숨을 토해낸다.
“이 안에, 내 공범들 있거든.”
슬쩍 손으로 자신이 등지고 서 있는 건물 안을 가리키는 핀덴아이.
“걔들도 같이 잡아가 줘.”
실로.
“당연하다.”
내 말에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린다. 그곳에는 평소와 다름없는 호탕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체포되기 전인데 연초 하나 빨아도 되나? 돛대인데.”
별 상관없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핀덴아이는 그대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내가 선물한 연초를 입에 문다.
고통에 신음하며 일어난 핀덴아이가 고개를 슬쩍 내민다.
“불.”
“…….”
뻔뻔하게도 요구해오는 게 참으로 거슬렸지만 어쨌든 나는 손끝에 불을 일으켜 연초 끝에 붙여준다.
“후우.”
짙게 연기를 뱉어낸 핀덴아이는 뭔가 이상한지 몇 번 뻐끔거리더니 다시금 연초를 빨아댄다.
“흐음.”
“뭔가 문제가 있나.”
이상하다며 머리를 긁적이는 핀덴아이. 내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연초를 바닥에 툭 던져 버렸다.
“썩 별로네.”
“……?”
분명 맛 좋다면서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런 의문이 담긴 순간.
입안을 가득 메우는 연초의 연기와 향.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들어 오는 짐승과 같은 혀.
어느새 내 목에 팔을 감은 핀덴아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내 입술을 탐하고 있었다.
뒤에서 아리아와 엘레노아의 사람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 비명이 울려왔으나.
“푸하.”
입술은 떼었으나 여전히 내 목에 매달린 핀덴아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게 제일 고프더라.”
그 어느 때보다 환한 미소를 짓는 핀덴아이가, 지금 내 눈앞에 있었다.
“근데 왜 저번이랑 다르게 레몬맛이 나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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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사령술사가 되었다-1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