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312
◈ 312. [STAGE 13] 트롤의 왕
밤빠밤- 밤빠밤밤-
요란한 행진곡이 울려 퍼진다.
다름 아닌 트롤왕 휘하의 군악대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다.
트롤 군단의 왕께서 보유한 군악대는 북과 징, 뿔나팔 따위의 조악한 악기들로 그럴싸한 행진곡을 연주하며 왕의 등장을 알렸다.
“…….”
아니, 제가 무슨 알라딘이냐고.
이 요란뻑적지근한 등장을 보며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이윽고 진군해온 트롤 군단은 전진기지 남쪽 벌판에 자리를 잡았다.
보석 터번을 쓰고 마법 양탄자 위에 올라탄 거대한 트롤- ‘트롤왕’은, 우리 쪽 성벽을 좌우로 슥슥 살피더니, 옆으로 손짓했다.
그러자 키가 작은 트롤 하나가 쪼르르 옆으로 달려 나오더니, 우리 쪽을 향해 목청 돋워 소리쳤다.
《들어라, 지상의 인간들아!》
놀랍도록 유창한 인간의 언어가 튀어나왔다.
《위대한 정복자이자, 유목하는 처형자이자, 살아 움직이는 근육! 바위 트롤 부족의 족장이자 모든 트롤들의 왕이신 트라듀누마하트란 님을 경배하라!》
듣고 있던 에반젤린이 중얼거렸다.
“이름 기네요…….”
“그러게…….”
우리가 그러든 말든 트롤왕의 사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인자하신 트라듀누마하트란 님께서는 전쟁을 바라지 않으신다! 얌전히 항복하고 성문을 열어라! 그리하면…….》
그리하면?
트롤왕의 사자는 성벽 위를 좌우로 슥 훑더니, 음흉하게 외쳤다.
《예쁘장한 것들은 첩으로 삼고, 못생긴 것들은 단숨에 죽여 주마.》
기겁한 에반젤린이 두 팔로 스스로를 감쌌다.
“세상에, 어떡해요? 저 트롤 녀석 저를 노리고 있나 봐요!”
그러자 트롤왕의 사자가 버럭 외쳤다.
《너처럼 못생긴 것은 필요 없다!》
“캬아아악!”
에반젤린은 피를 토하며 무너졌다.
쓰러진 에반젤린이 눈물마저 글썽이며 중얼거렸다.
“트, 트, 트롤에게…… 못 생겼다는 소리 들었어…….”
“지, 진정해 에반젤린. 종족이 다르니 미의 기준이 다른 거겠지.”
“이건 다 뼈 갑옷 때문이야…… 뼈 갑옷 때문일 거야…….”
그런 우리의 앞에서 트롤왕의 사자가 계속 지껄였다.
《모름지기 아름다움이란 근육에서 비롯되는 법. 그런 빈약한 육체는 왕께서 질색하신다!》
어, 이런 사고관, 예전에 어디서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은데……?
《너희 중에서 왕의 총애를 받을 만한 녀석은…….》
트롤왕의 사자는 손을 쭉 뻗더니, 성벽 위에서- 쿠일란을 가리켰다.
《저 정도뿐이군.》
“엣?”
쿠일란이 떨리는 손으로 스스로를 가리켰다.
“나, 나……?”
참고로 쿠일란은 현재 수인 모드.
평소보다 더 근육이 우락부락하다. 거기에 털도 뿜뿜하다…….
쿠일란은 어쩐지 감동받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늑대 상태인 나를 좋다고 말해 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아니 그, 지랄하지 마십쇼.”
애초에 사람이 아니라고! 트롤링에 흔들리지 마!
혼란에 빠진 우리에게 트롤왕의 사자가 계속해서 지껄였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의 왕께서는 여성이시다! 물론 어여쁜 여인도 좋아하시지만, 잘 생긴 남자를 조금 더 좋아하신다!》
그러자 양탄자 위의 트롤왕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아, 그렇군. 여성체였구나. 아니 솔직히 외모만 봐서는 성별 구별이 바로 안 되다 보니까.
트롤의 성별은 꼬리를 보면 알 수 있는데, 남성체는 꼬리가 하나고 여성체는 꼬리 끝이 갈라져서 2개 이상이다.
자세히 살피자, 트롤왕의 살랑거리는 꼬리 끝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그렇군. 여자였구나, 너…….
《흠?》
그때, 트롤왕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스캔하는 듯한 그 빤한 시선에 온몸에 소름이 쭈뼛 돋았다. 아니, 뭐야! 왜 그렇게 나를 봐!
트롤왕이 사자에게 손짓했고, 무어라 귓속말했다. 고개를 빠르게 끄덕인 사자가 목청을 돋웠다.
《거기 검은 머리 인간 남성! 운이 좋구나!》
“네?”
당황해서 존대가 튀어나왔다.
《왕께서 네가 마음에 든다고 하신다! 키울 보람이 있는 몸이라고 하시는구나!》
씨발 이건 또 뭔 개소리여.
《항복하면 왕의 옆자리를 약속하마! 트롤왕께서 직접 너를 어여삐 여겨 주실 게다! 영광으로 알아라!》
직후 나를 응시하던 트롤왕이 입가를 치켜 웃으며 눈썹을 까딱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주위의 파티원들이 나를 보며 일제히 오오~ 낮은 환호성을 흘렸다. 아니 너네가 환호해서 뭐 어쩌자는 건데?
“어째 요즘 인기 폭발이지 않아요, 황자님?”
“그러게요…… 특히나 괴물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받고 있는 것 같은데…….”
데미안과 쥬니어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조용히 해! 내 정조가 위험하다고!
“후우…….”
마른 한숨을 뱉은 나는 데미안에게 손짓했다.
“데미안. 내 대답을 대신 좀 전달해라.”
“네, 황자님.”
데미안은 싱긋 웃으며 품의 마총을 꺼내들었다.
《자, 어떠하냐! 당장 항복하여 왕의 자비를 구걸…….》
사자 놈이 뭐라 더 지껄이기 전에, 내 손짓에 따라 데미안이 마총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쿠에엑?!》
벼락처럼 내리꽂힌 마탄이 놈의 몸 중앙을 꿰뚫어 버렸다.
즉시 절명한 트롤왕의 사자가 사방으로 피를 쏟으며 처참하게 나동그라졌다.
《……캬핫.》
부하의 피를 뒤집어쓴 채 트롤왕은 웃었다.
마치 이러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그런 괴물에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워 준 뒤, 나는 소리쳤다.
“네놈에게 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괴물! 가장 예쁜 쿠일란도, 가장 못생긴 에반젤린도! 내 동료는 아무도 못 줘!”
쿠일란은 감동 받은 얼굴로 두 손을 가슴팍에 모은 채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고(아 꺼져), 에반젤린은 살의어린 얼굴로 나를 보며 창날을 혀로 핥았다. 아니 농담이야, 농담!
“내가 네놈에게 줄 것은…….”
나는 손을 위로 크게 들었다.
즉시 잘 훈련된 나의 군대가 대포에 불을 붙이고 발리스타 시위를 뒤로 당겼고,
“불꽃과 죽음뿐이다-!”
내가 손을 앞으로 뻗는 것과 동시에,
펑! 퍼버버버벙-!
수백 발의 포탄과 화살세례가 괴물무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
트롤왕의 특징은 하나.
튼튼하다.
종족이 타고난 특성 그대로, 그저 순수하게 튼튼하다.
그런데, 이 튼튼함이 도를 넘으면.
이것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된다.
펑! 펑! 퍼버버벙……!
아군 군단의 맹렬한 십자포화 가운데.
다른 부하 트롤들은 진작 뼈도 못 추리고 쓰러진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저벅.
저벅.
저벅.
트롤왕은, 태연자약하게 걸어온다.
발리스타의 전용 거대 화살은 이 괴물의 피부에 변변한 상처도 내지 못하고, 포탄의 폭발과 화염 역시 유효한 대미지를 주지 못한다.
설혹 운 좋게 한 부위에 연속 작렬해서 상처를 입힌다 해도,
부글부글…….
반짝!
재생(再生).
상처 부위의 피부가 끓어오르듯 움직이더니, 금세 새것처럼 말짱해진다.
“그럼 어디,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요-!”
허공에 둥실 떠오른 쥬니어의 양손에 각각 바람과 벼락이 맺히더니, 합쳐져서 앞으로 강맹하게 쏘아졌다.
쿠과과광!
무지막지한 벼락의 태풍이 일대를 휩쓸었고, 마지막까지 트롤왕의 앞을 보호하던 트롤 로얄가드들은 문자 그대로 녹아서 사라졌다.
하지만,
저벅. 저벅. 저벅.
여전히, 트롤킹은 태연하게 걸어온다.
벼락에 까맣게 타버린 내장이 새것으로 채워지고, 바람의 칼날에 도려내진 뼈와 피부가 서로 달라붙어 아문다.
“저, 저게 뭐야?”
놀란 쥬니어가 입을 떡 벌렸다. 그때 데미안이 마총을 앞으로 겨누며 말했다.
“약점을 저격하겠습니다!”
[사냥꾼의 응보]를 꺼내든 데미안은 매끄럽고 깨끗한 3연사를 가했다. 탕! 탕! 탕-!송곳처럼 쏘아진 마탄 3발은 그대로 트롤왕의 머리를 꿰뚫고, 심장을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부글부글…….
촤르륵!
곤죽이 되었던 뇌도, 걸레짝이 되었던 심장도, 즉시 회복.
데미안은 어찌나 놀랐는지 뒤로 펄쩍 뛰어올랐다.
“우와앗?! 뇌도 심장도 재생한다고……?!”
“비켜 보거라, 아해들아!”
이번에는 더스크 브링어가 앞으로 나섰다.
“저런 것들은 한 번에 날려버리는 게 제격이니라!”
용왕의 작은 입이 쩍 벌어지더니, 상어처럼 돋아난 뾰족한 이빨 사이로 마력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에……. 에…….”
그 상태로 더스크 브링어는 몸을 움찔움찔 떨더니,
“푸엣취이-!”
드래곤 브레스(Dragon Breath)를 뿜어 냈다!
어째 영 위엄이라고는 없는 재채기 같은 발동이긴 했지만, 아무튼 드래곤 레이디의 입에서 쏘아진 순수한 마력의 격류는 닿는 모든 것을 지우개로 지워 버리듯 앞으로 뿜어졌고.
쿠과과과광-!
트롤왕에게 직격.
어마어마한 마력의 폭발을 일으켰다. 더스크 브링어는 코 아래를 슥 훑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뭐, 이 정도니라…… 응?”
의기양양하던 더스크 브링어의 눈에 당황이 어렸다.
그럴 만도 하지.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마력 폭발의 현장 한 가운데에서-
저벅. 저벅. 저벅.
무슨 터미네이터마냥 트롤왕은 계속해서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상반신이 모조리 날아간 몰골이었으나, 트롤왕은 하반신만으로도 걸음을 옮겼다.
척추가 돋아나고, 혈관과 근육과 살점이 재생되어 붙으며, 괴물은 삽시간에 상반신을 복구했다.
《캬하핫-!》
막 재생성된 턱뼈를 벌리며 트롤왕이 웃었다. 더스크 브링어는 작은 입을 한껏 벌렸다.
“저, 저게 내가 아는 트롤이 맞느냐? 포션 재료 괴물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그게 맞다. 저놈이 특이 케이스지.
트롤 군단을 죽이면 얻을 수 있는 아이템, [트롤 군단 체액]은 최고급 포션의 재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놈들의 피는 그 자체로 강력한 회복 도구이며,
그런 트롤 군단의 모든 탱커 유전자의 집대성이랄 수 있는 트롤왕은…… 극강의 재생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나는 아파 오는 이마를 짚고 한숨을 뱉었다.
‘인게임에서는 초당 체력 재생 999퍼센트 상시 적용이었지.’
999퍼센트!
미친 씨발, 999퍼센트!
숨만 쉬어도 초당 총 HP의 9.99배만큼이 회복된다는 거다. 이게 말이 되는 수치인가? 버그 아니야?
그래서, 게임상에서 트롤 군단 자체는 그리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아니었지만.
재수 없게 보스로 이 트롤왕이 뜨면 그 게임은 그냥 터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트롤왕의 다른 스탯은 평범하다. 공격력도 약하고, 마법도 못 쓰고, 뭐 다른 특수 스킬이나 기믹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죽일 수가 없다……!
어마무시한 물리 방어력/마법 방어력에, 또라이 같은 체력 재생이 합쳐져서. 불사 아닌 불사 상태로 이놈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때려도 안 죽는데, 이놈은 꾸역꾸역 걸어와서는 아프지도 않은 주먹으로 우리편을 퍽퍽 친다.
그럼 어떻게 되냐고?
우리편은 죽는다.
군수물자도, 회복마법도, 포션도 아티팩트도 유한하다. 하지만 이 새끼의 재생력은 무한하다.
아무리 안 아픈 대미지라도 무한히 때리면 누적된다. 트롤왕은 한자릿수 대미지로 성문을 부수고, 성벽을 부수고, 아군 영웅들을 때려죽인다.
그야말로 숟가락 살인마……!
‘게임에서 딱 한 번 만나 봤지.’
742번의 공략 중 딱 한 번 조우했을 때.
시청자들은 그냥 포기하고 새 게임 진행하라고 나를 만류했다. ‘트롤 만나면 서렌 치는 게 예의’라며.
하지만 나는 그동안 진행한 게임이 너무 아까워서, 진짜 이 악물고 누가 이기나 보자면서 이 괴물을 잡으려고 쌩쇼를 벌였다.
그때 트롤왕 공략전에 사용한 시간만 현실 시간으로 일주일.
사용한 턴수 9999. 게임 한계 턴수를 꽉 채웠다.
어떻게 됐냐고?
9999턴까지 진행하는 동안 트롤왕은 코딱지만 한 대미지로 요새를 다 때려 부셨고, 아군 영웅 절반을 때려죽였다.
하지만 한계턴수까지 버틴 덕에, 방어 측 승리로 판정.
트롤왕은 물러났다. 나는 내가 이겼다고 고함을 내질렀고 시청자들은 인간승리라며 환호했다.
……요새도 영웅도 물자도 다 파탄 나서, 바로 다음 스테이지에서 멸망했지만.
조금 전까지 인간승리라며 환호해 주던 시청자 놈들이 바로 ‘인간패배!’ ‘고덕패배!’ ‘오오 트럴왕 오오’ ‘타즈딩고~’ 거리며 나를 조롱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아무튼!’
나는 눈을 부릅떴다.
그때의 치욕적인 패배 뒤로, 나는 어떻게 하면 이 미친 탱커 유닛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또 마주치면 그때는 잡아야 하니까.
공략방송 중에는 더 이상 마주치는 일이 없었지만, 그때 확립해둔 공략 이론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있다.
‘그날의 굴욕을 갚아 주마, 트롤왕……!’
나는 고개를 들었다. 주위의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 내게 있으리라 믿는 눈빛이었다.
“자!”
그럼, 기대에 부응해 보실까……!
“지금부터 작전을 지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