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771
◈ 771. [STAGE 48] 파죽지세 (7)
전장에서 적을 조롱하여 사기를 꺾는 일은 매우 흔하다.
에반젤린은 저 체중 희롱 또한 그런 류의 공격이라 여겼다. 그래서 별 타격 없이 넘어가려 했다.
‘모조리 두들겨 패주겠다, 괴수 놈들…….’
전의는 더더욱 불타오르고 있었지만.
그러나, 흑기사 대장의 이 저울 놀음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었다.
거대한 저울이 에반젤린이 더 무겁다는 ‘판결’을 내린 직후.
철그렁……!
쇠사슬이 끌리는 듯한 무거운 소리와 함께, 에반젤린은 갑자기 휘청거렸다.
“윽……?!”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비틀거리며 성벽을 잡고 휘청거리던 에반젤린은 이를 악물었다.
‘뭐야 이게, 몸이……?!’
뒤이어 흑기사가 저울에 새로운 대상을 올리며 말했다.
《사람의 하루 품삯은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 감람유와 포도주 조금으로 충분하니.》
“……?!”
《이를 넘어서는 죄업은 그 영혼에 쌓이고, 지옥으로 그 영혼을 끌어당기는 무게추 역할을 하게 됨이라.》
저울에 두 대상이 올려졌다.
하나는 에반젤린이고, 반대편에는 송아지였다.
철그렁!
에반젤린이 더 무거웠다.
에반젤린의 온몸에 가해지는 무게의 압력 또한 불어났다. 에반젤린은 숨막히는 압력 속에서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철그렁! 철그렁! 철그렁!
연이어 에반젤린과 다른 수많은 짐승들이 죄의 무게를 비교했다. 그리고 그 어느 짐승보다도 에반젤린이 저지른 죄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
《너는 숱한 살생을 저질렀구나. 네 죄업은 여느 짐승보다도 훨씬 무겁도다.》
흑기사 대장이 천천히 손을 뻗어 에반젤린을 가리켰다.
《그만큼 너의 생명을 거두어 가겠노라.》
저울이 서로 빙글빙글 돌며 원을 그리고, 물로 맺힌 소녀기사 형상이 그 중앙에 위치했다.
고대의 강력한 저주가 장전되었다.
이제 흑기사가 손을 내저으면, 에반젤린의 몸에서 판결한 만큼의 생명을 떼어낼 것이다.
“죄업이라고……?”
그때, 저주의 압력을 이겨내고 에반젤린이 입을 열었다.
“네가 뭔데 내 인생의 판사 노릇을 하려는 거야……?”
우드득!
저주를 마법으로 풀어내는 대신, 에반젤린은 완력으로 버텨냈다.
온 사방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저주에 맞서 배에 힘을 꽉 주고 기어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포효했다.
“나는 에반젤린 크로스다! 샤를과 엘라인의 딸이며, 크로스 가문의 장녀이며, 에버블랙 제국의 변경백계승자!”
쿵!
창과 방패를 다잡은 에반젤린이 적장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내가 적을 죽인 것은 나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 땅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뒤로, 나는 단 한 순간도 스스로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
“내 인생을 네 기준으로 판단하지 마라, 괴수!”
흑기사 대장은 말없이 저주를 완성했다.
철그렁-!
에반젤린의 주위 허공에서 쇠사슬로 뭉쳐진 집행구가 수없이 나타나며 에반젤린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에반젤린은 힘껏 방패를 치켜들어 그 모든 저주를 막아냈다.
캉! 카아앙-!
에반젤린의 방패가 눈부시게 백열하며, 쇄도해온 저주를 ’적의 공격’으로 인식, 모조리 흡수해 냈다.
“그리고 뭣보다…… 내 몸무게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마!”
끝없는 [대미지 세이브] 용량으로 흑기사의 저주를 완전히 받아낸 다음, 에반젤린은 그 저주를 자신의 창끝으로 옮겼다.
“내 모토는 ‘많이 먹고 많이 일한다’니까! 내가 맛있게 먹고 건강하면 그만이잖아!”
그리고 모인 저주를 힘껏 앞으로 쏘아냈다.
“다이어트 같은 거 안 해, 이 자식들아-!”
쿠과과과광-!
[대미지 페이백]으로 역으로 돌아간 저주가 흑기사 무리에 작렬했다. 공격에 당한 흑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아, 하아…….”
적의 첫 저주 공격을 완벽하게 무위로 되돌렸다.
온몸을 짓누르던 압력도 사라졌다. 에반젤린은 가벼워진 몸으로 가볍게 통통 제자리에서 뛰었다.
“어우, 이거 한번 했다고 벌써 배고프네.”
저주를 받아낸 여파인지 극심한 허기가 엄습했다.
방패 안쪽에 끼워 두었던 보급용 과자를 단숨에 입 안에 털어 넣는데, 그 옆에 서 있던 베르단디가 조심스레 에반젤린을 불렀다.
“회장님.”
“네? 왜 그러세요, 베르단디 언니?”
그러자 베르단디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뱃살, 조금 있는 편이 더 귀엽다고 생각해요.”
“…….”
“진짜로. 특히 우리 종족은 살이 잘 안 찌는 체질이라서, 통통한 쪽이 더 미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기거든요.”
“…….”
“회장님은 지금 정말 보기 좋아요. 기왕이면 조금 더 쪄서 3년 전의 동그란 볼살을 복구해 주면 좋겠지만…….”
“…….”
“아무튼 이대로만 갑시다!”
그러더니 이를 드러내며 반짝! 웃고는 엄지를 치켜 보이는 것이 아닌가.
“…….”
다이어트 걱정이라곤 않을 것 같은 이 엘프 종족의 왕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보다가, 에반젤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그 아저씨한테 물어나 봐야겠네요, 어느 쪽이 좋은지…….”
뭐, 그 남자 취향이 어떻든 상관없다.
어차피 자신은 방금 선언한 대로 살아갈 테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맡은바 열심히 일을 한다.
이런 삶의 과정이 죄업일 리 없으므로.
“자아, 들어와라!”
흑기사 부대 전체가 제2 전진기지 전체에 저주를 걸기 위해 저울을 치켜들었다.
전진기지의 전원에게 [최후의 요새] 효과를 부여하며 에반젤린이 소리쳤다.
“너희 다 조져버리고 오늘 저녁은 배 터져라 먹을 생각이니까-!”
***
휘이이잉-
제1 전진기지 앞에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후우, 후우, 후우…….”
《…….》
거칠게 숨을 다듬는 토르켈과, 그 앞에 거대하게 선 불타는 켄타우로스.
적기사 대장과 토르켈의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둘 모두 용장이었고, 타고난 맷집이 엄청났다.
적기사 대장이 발굽으로 땅을 찰 때마다 불길이 일고, 휘두르는 대검에서 열풍과 불꽃이 쏟아져 나왔지만.
토르켈은 자그마치 그 나이트 브링어의 브레스도 몸으로 받아낸 적이 있는 남자였다. 이 정도 공격은 웃으며 받아낼 수 있었다.
물론 방어만 한 것은 아니었다. 토르켈은 사이사이에 철퇴를 휘둘러 적기사 대장에게 타격을 시도했다.
대단한 공격 기술을 보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토르켈의 완력 또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토르켈이 휘두르는 철퇴는 철판 정도는 우습게 우그러뜨릴 수 있는 힘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적기사 대장의 무용(武勇)은 대단했다. 토르켈이 기습처럼 철퇴를 내뻗어도 어렵잖게 대검을 휘둘러 걷어내기 일쑤였다.
적기사 대장이 맹공을 퍼붓고, 토르켈이 굳건하게 방어하다가 날카롭게 반격하면, 적기사 대장은 그 공격을 완벽하게 받아내는 과정의 반복.
수십 합이 오가고, 이대로는 승부가 나질 않으리라고 깨달은 적기사 대장은 패턴을 바꾸었다.
화르르륵!
위로 치켜든 대검이 맹렬한 불길에 휩싸이더니, 이윽고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불의 토네이도가 솟구쳤다.
적기사 대장은 그대로 이 불의 대검을 아래로 내리쳤다.
“……!”
토르켈은 회피해야 함을 알았지만, 바로 뒤에 전진기지가 있었다.
자신이 저 무시무시한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하면, 전진기지가 파괴될 것이다.
“흐읍-!”
토르켈은 망설이지 않고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를 발동.
방패마저 내던지고, 몸으로 적기사 대장의 불꽃대검을 받아냈다.
콰과과과광-!
어지간한 요새쯤은 간단히 둘로 쪼개고 불태울 수 있는 위력의 검격이었으나, 토르켈은 이보다 더한 공격도 몇 번이나 받아낸 적이 있었다.
온몸으로 불꽃을 갈라내며 정면으로 달려든 토르켈이 두 손으로 철퇴를 쥐었다.
적기사 대장은 전력을 다해 이 불꽃대검을 사용하느라 움직이지 못했다. 토르켈의 두 눈에 승기가 담겼다.
‘잡았다!’
쩌어억-!
적기사 대장의 머리를 노리고 철퇴가 강맹하게 휘둘러졌다.
하지만 철퇴는 적기사 대장의 머리를 부수지 못했다. 대신 허공을 가르고 아래의 땅을 부쉈다.
“……!”
전장에 난입한 다른 적기사가 자신의 대장을 잡고 뒤로 홱 물렸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하게 철퇴를 피해낸 적기사 대장의 머리에서 불꽃이 피처럼 흘러내렸다.
그런 대장을 뒤로 물리고, 나머지 적기사들이 토르켈을 둥글게 포위했다.
“지휘관 사이의 결투에 끼어들다니…….”
토르켈이 혀를 찼다.
“명예를 모르는 친구들이군.”
적기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각자의 대검을 치켜들고, 일시에 토르켈에게 달려들기 위해 준비할 뿐.
토르켈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철퇴를 다시금 움켜쥐었다. 기병대답게 포위는 재빨랐고 또 완벽했다.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타격을 입지 않지만, 조금 뒤면…….’
[인간은 패배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는다] 효과가 끝나면 단숨에 적들이 밀고 들어올 것이다. 그때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하며 토르켈이 철퇴를 고쳐 쥐는데…….
퍼어억-!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포위의 일각이 무너졌다.
성벽에서 날아든 한 사내가 그대로 공중에서부터 내리꽂히는 킥을 후려찼고, 적기사 하나의 뒤통수를 뭉개며 썰매처럼 깔고 내려앉은 것이었다.
“이보슈, 토르켈.”
붉은 댕기머리를 휘날리는 근육질 사내는 쿠일란이었다.
“그쪽은 여기에 일개 전사가 아니라 지휘관으로 온 거잖아?”
씩 웃는 쿠일란의 좌우로, 어느새 열린 전진기지 문을 통해 크로스로드측 백병전 부대가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럼 동료들을 좀 더 믿어보라고. 적재적소에 우리를 사용해 달란 말이야.”
퍽! 퍼억! 투쾅-!
쿠일란 휘하 형벌부대가 단숨에 무기를 후려쳐 적기사들을 밀어냈다.
특히 쿠일란은 무지막지한 권경을 토해내며 압도적인 돌파력으로 일대의 적기사들을 으깨버렸다.
포위를 유지하는 것이 어려움을 깨달은 적기사들이 포위를 풀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토르켈을 구원하러 나온 쿠일란과 전사들이 토르켈의 뒤에 우르르 섰다.
“……이것 참.”
토르켈이 멋쩍게 웃었다.
“제가 이만큼 많은 분들을 이끄는 위치에 선 게 처음이다 보니, 이런 실수를 했군요.”
“괜찮아. 멋있었거든. 시간도 잘 끌었고. 뭣보다…….”
쿠일란이 씩 웃으며 저쪽에서 자세를 다잡는 적기사 대장을 향해 눈짓했다.
“이겼잖아.”
“하하…….”
“멋없게 일대일 깨지고 먼저 부하들 내보낸 건 저쪽이고 말이야.”
쿠일란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토르켈의 방패를 주워 건넸다.
“우리 총대장이 너를 이곳 지휘관으로 세운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그 기대에 보답해달라구.”
“…….”
토르켈은 말없이 그 방패를 받아 왼팔에 장비했다.
“자, 그럼! 제1 임시 전진기지 지휘관 토르켈 경!”
쿠일란이 자신의 두 주먹을 가슴팍 앞에서 쿵! 부딪힌 뒤 물었다.
“명령을 내려주쇼! 저 놈들을 어떤 식으로 으깨줄까?”
토르켈은 자신이 장착한 투구, 나이트메어 슬레이어 [원죄]로 전장 일대의 아군 상황을 단숨에 파악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명예롭게, 전사답게 싸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대결의 흥을 먼저 깬 건 저쪽이니…….”
토르켈은 천천히 몸을 돌려 전진기지 쪽을 보았다.
“우리도 치사하게 가봅시다.”
그곳에는 쥬니어가 자신의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문이 열린 전진기지 안쪽에는 합동 마법진을 펼치고 한데 마력을 모으는 마법사들이 보였다.
그동안 마법사들이 마력을 모아 쥬니어에게 전달하고 있었고, 이제 그 과정이 모두 끝난 것이다.
“지휘관 사이 대결이라니, 낭만은 있지만요.”
쥬니어가 쓰게 웃으며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요즘 전쟁’은 이런 거죠.”
번쩍-!
쥬니어의 지팡이 [로드 오브 크림슨]에 눈부신 빛무리가 맺히더니, 적기사 부대의 머리 위 하늘을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 지점으로 무지막지한 양의 먹구름이 몰려들었고…….
적기사들의 속성인 ‘불’의 상극.
그리고, 쥬피터 쥬니어가 본래 타고난 속성인 ‘물’이-
미친 듯이 아래로 퍼부어졌다.
콰르르르릉!
거센 벼락과 압도적인 돌풍을 동반한 빗줄기가 적기사 부대를 인정사정없이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