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SS Chapter 59
외전 59. [After Story] 그 결혼식 (3)
제국력 653년.
괴수와의 최종결전으로부터 1년 뒤.
에버블랙 제국. 남단 크로스로드.
결혼식 당일.
***
나와 세레나데, 에반젤린과 루카스.
오늘 결혼하는 두 커플은 거의 한숨도 못 자고 결혼식을 준비했다.
해가 뜨기 전 새벽부터 일어나 신부 화장과 신랑 화장을 했다. 그나마 나와 루카스는 머리카락도 짧고 턱시도도 비교적 입기 간단하기라도 했지, 세레나데와 에반젤린은 긴 머리를 묶고 틀어 올리고 고정하고 드레스는 뭘 어떻게 입고 또 파츠를 덕지덕지 붙이고 우와아악.
“두 분! 어서 신부님들께 아름답다고 칭찬하세요!”
조용히 다가온 도우미가 우리에게 속삭였고, 퍼뜩 정신을 차린 나와 루카스는 와아- 소리를 내며 둘에게 다가갔다.
“정말 아름다워, 세레나데!”
“최고로 귀여워, 에반젤린!”
하지만 끝나지 않는 화장 앞에서 세레나데는 초췌하게 웃어 보이고 에반젤린은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진짜 고생이군.
그렇게 몇 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단장이 모두 끝난 두 사람은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나, 그 대가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머, 머리가, 머리가 무거워요, 낭군님…….”
“내 착각이 아니라면, 이 드레스 무게가, 내가 입던 갑옷 급인데…….”
파들파들 떠는 두 여자는 각자의 신부대기실로 옮겨졌다. 이제 신부 입장까지 신부대기실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아야 할 것이다.
“흑흑, 주인님,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십니다…….”
“너무 아름다우세요, 세레나데님!”
세레나데의 신부대기실에서 엘리제와 다람이 부산을 떨었고.
“와아, 최고로 예뻐요, 영주님!”
“이모 이뽀!”
에반젤린의 신부대기실에서는 릴리와 시드가 아첨을 떨었다.
“음하하하! 시드가 이쁘다고 해주다니, 이건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이겠구만!”
호쾌하게 웃던 에반젤린의 머리에서 장식이 우수수 떨어졌다.
“으악 내 머리!”
“격하게 움직이지 마시라니까요!”
비명을 지르며 달려온 도우미가 다급하게 에반젤린의 머리 보수 공사에 들어갔다.
이 촌극을 지켜보던 나와 루카스는 허허 웃으며 식장의 입구로 이동했다.
호텔 크로스로드 전체를 대여해 결혼식장으로 사용하기로 했는데, 찾아올 손님의 숫자를 생각하면 이걸로는 어림도 없어서.
호텔 입구부터 대로까지 이어지는 공간 전체에 천막을 치고 따로 공간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아야 한다.
결혼식 시간은 정오.
하지만 손님은 거의 아침 아홉 시부터 오기 시작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행복하게 잘 사세요!”
식장 입구로 손님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기 시작했고, 나와 루카스는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며 손님들을 맞았다.
먼 길을 와준 손님들이 감사한 것과는 별개로, 악수 횟수가 수백 차례를 넘어서자 슬슬 의식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죽겠다, 야…….”
“조금만 버티십시오, 주군. 곧 끝납니다.”
그 말을 듣고 시계를 확인해 보자 이제 오전 열 시였다. 아니 아직 한참 남았잖아!
“여어, 애쉬!”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켈리베이가 등장했다. 짧뚱한 몸에 멋진 예복을 입혀두니 묘하게 잘 어울리면서도 귀여운 드워프 영감님이셨다.
“결혼 축하한다!”
“고마워요, 켈리베이.”
“이게 다 내가 1년 전에 만들어 준 청혼반지 덕이니, 이번 결혼에는 내 지분도 꽤 있다고 할 수 있겠지? 흐흐.”
낄낄거린 켈리베이는 굳은 내 어깨를 손으로 툭툭 털어주었다.
“얌마, 어차피 결혼식에서 주인공은 신부야. 신랑은 뭐랄까, 네 아름다운 신부를 돋보이게 해주는 오브제 같은 거랄까? 그러니까 좀 더 어깨 힘 빼고 편하게 있어.”
“하하.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봐요.”
“다들 너희 행복한 모습 보러 온 거지, 네가 얼마나 격식 잘 차리느냐를 보러 온 건 아니니까. 알겠지?”
눈썹을 까딱거린 켈리베이는 씩 웃으며 품에서 커다란 자루를 하나 꺼냈다.
“자 그럼! 축의금을 넣어보실까!”
그러고는 축의금을 받는 접수처(다람과 릴리가 받고 있다)에 가서는, 여봐란듯이 자루에서 황금 덩어리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입을 가리고 경악하는데, 켈리베이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큭큭큭. 어때, 이 정도면 내가 1등이지?”
그때였다. 스산한 여성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아직 1등을 논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나요?”
“뭐얏?”
켈리베이가 돌아보자, 멋진 녹색 드레스를 입은 베르단디가 콧대를 치킨 채 안으로 들어왔다.
“애쉬세레, 에반루카! 두 커플 결혼 축하하고, 우리 요정왕국의 축의금도 받아!”
우르르!
베르단디가 쏟아낸 것은 고색창연한 빛깔을 뿜어내는…… 고대(古代)의 세공품들이었다.
“이, 이것은!”
어디선가 때맞춰 튀어나온 디어뮈딘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설명해 주었다.
“최소 수백 년은 된 유물들이잖아! 게다가 전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 이보게, 쥬니어! 사관으로서 자네도 봐둬야겠어. 이리 와서 거들게!”
“예? 저요? 엣?”
지나가던 쥬니어와 그 옆의 헤카테까지 디어뮈딘에게 붙잡혀 함께 유물의 감정과 포장 작업에 동원되었다.
후후 웃던 베르단디가 잘난 척하며 콧대를 쭈욱 치켜들었다.
“값을 따질 수 없는 선물! 이 정도면 우리 요정왕국이 얼마나 축하의 마음을 가지고 왔는지 알겠지?”
부들부들 떨던 켈리베이가 꽥 소리를 냈다.
“값을 따질 수 없다는 건, 결국 값이 없다는 거랑 똑같은 말 아니야?”
“뭐, 뭐라고요?”
“그렇잖아! 이런 유물 줘봐야 얘들이 어디에 쓰겠어? 결혼하고 새 출발하는 커플에게는 든든~하고 뜨끈~한 현금이 최고 아니겠냐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드워프와 엘프가 기싸움을 하는데, 눈치를 보다 입장한 롬펠러 남매가 웬 보석 상자를 쿵 내밀었다.
“인어족의 보석이야!”
“황금보다는 환금성이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희귀하기는 더 희귀하다고?”
“유물보다는 가격적으로 더 비싸고!”
아니. 감사하긴 한데.
너네 왜 갑자기 축의금 배틀을 하고 있는 건데……?
삼파전 구도가 된 세 종족이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는 사이, 쭈뼛거리며 들어온 쿠일란이 조심스럽게 금화증명서가 든 봉투를 내밀었다.
“우리 수인족은 막 그렇게 부유하진 못해서 이 대결에 끼진 못하겠지만…… 대신 최고의 축가를 준비해왔다우! 그건 기대해 줘!”
축가 이야기가 나오자, 나머지 세 종족의 눈이 희번덕이며 이쪽을 보았다.
“아, 그래…… 그쪽 분들도 축가를 준비해 왔다죠? 후후. 우리 요정 오케스트라단의 압도적 위용 앞에 무릎 꿇을 게 분명하지만.”
“큭큭.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엘프. 우리 난쟁이의 황금으로 만든 악기가 내는 육중한 음향으로 너희의 그 기다란 귀를 유린해주마.”
“이게 또~ 우리 인어족이 또 세이렌의 피를 이은 덕인지 노래 실력 하나는 모든 종족 중 1등이거든~”
“우리 수인족은 축무(祝舞)도 함께 준비했수다. 모름지기 노래란 춤과 어우러져야 또 그 맛이…….”
서로 이마를 맞댄 네 종족의 왕이 으르렁댔다.
“…….”
내 결혼식에서 왜 여러분이 축의금-배틀에 이어 뮤직-배틀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뭐 이것도 나름의 흥을 돋우는 과정이라 봐야 하려나……?
그때였다. 투구를 뒤집어쓴 사제복 차림의 거한이 입장했다.
나는 반가워서 그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야, 토르켈! 오랜만이야!”
“전하!”
용병에서 은퇴하고 사제가 된 토르켈이었다.
나와 악수를 나눈 토르켈은 품에서 유리병을 하나 꺼냈는데, 그 안에는 종이로 접은 학이 가득 들어 있었다.
“저희 섬의 사람들이 축하 편지를 쓴 뒤, 그것으로 학을 접었습니다. 네 분의 결혼 생활에 대한 축복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헉.”
“어차피 세계제일의 부자가 되실 전하께 금품 몇 푼이 그리 중요할까, 싶어서. 이런 선물을 준비했는데…… 혹시 괜한 일이었을까요?”
토르켈이 멋쩍어하며 투구를 긁적였다.
“아, 물론!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축의금도 따로 챙겨왔습니다…….”
나는 토르켈의 손에서 유리병을 받아 든 뒤 빙그레 미소했다.
“고마워, 토르켈.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게.”
“그래주신다면 저희 섬 사람 모두에게 영광일 겁니다.”
나와 토르켈이 서로 마주보며 훈훈하게 웃고 있는데, 이어서 한니발이 등장했다.
“황태자 전하!”
“한니발!”
인사를 나눈 한니발은 정성스럽게 땋은 색색의 수실을 품에서 꺼냈다.
“이건 저희 하프 블러드의 아이들이 직접 땋은 수실이에요. 장수와 번영을 비는 부적이 들어 있어요.”
오늘 결혼하는 네 명 모두에게 하나씩 주기 위해서인지, 수실은 총 네 개였다.
“조촐하지만 저희의 축복도 받아주세요. 결혼 축하드려요, 전하.”
“정말 고마워. 한니발. 잘 간직할게.”
이 모습을 지켜보던 네 종족의 왕들이 꽥 소리를 질렀다.
“아니, 토르켈! 한니발! 대결 장르를 바꿔버리면 어떡해?!”
“이러면 우리만 물질적 탐욕에 젖은 못난 어른들로 보이잖아!”
“아니, ‘우리’에 넣지 말아 주실래요? 엘프들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양도했거든요?”
허허, 어떤 형태로든 축하해 주면 감사할 일이지, 선물의 액수나 가치가 무어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아웅다웅하는 사람들 틈에서 내가 반쯤 득도한 표정으로 허허 웃고 있자, 걱정스러운지 루카스가 내 쪽을 기웃거렸다. 괜찮단다…… 원래 결혼식 당일은 정줄 놓고 보내는 거래…….
아무튼 그 뒤로도 손님들이 쏟아졌다.
세계수호전선 시절의 여러 왕 분들이 차례로 방문했고, 새로 부부 될 두 커플과 덕담을 나누고, 축의금 배틀에 참전했다…… 아니 그거 그만하라고!
그리고. 마침내.
“애쉬!”
호수왕국의 왕녀께서 단아한 정장 차림으로 등장하셨다.
“아리엘!”
마주 환히 웃으며 맞자, 다가온 아리엘이 나와 악수했다.
“결혼 축하한다. 행복하길 바란다.”
“축하해 주러 와줘서 고마워.”
“당연히 와야지. 우리가 어떤 사인데. 아, 루카스 경. 결혼 축하드립니다.”
루카스와도 악수하며 축하의 뜻을 전하고.
“아참, 이따가…….”
아리엘은 저쪽에서 축의금 배틀(진행중)과 축가 배틀(예정)로 서로 싸워대는 사람들을 살핀 뒤, 내게 작게 속삭였다.
“나도 축가 한 소절 불러도 되겠나?”
아니 자네까지 왜 그러는 건가?!
***
모든 난리법석이 지나고.
드디어 본격적인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오늘, 이 세기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신 하객 여러분, 자리를 빛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맥밀란의 능숙한 사회와 함께 순서는 단숨에 진행.
순식간에 우리가 입장할 시간이 되었다.
공동결혼식이기도 하고, 양가 부모님 중 부재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두 커플이 각자 손을 잡고 동시에 입장하기로 했다.
“자, 그럼! 뜨거운 박수 환호와 함께! 신랑 신부, 입장-!”
와아아아……!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렬한 시선과 환호를 받으며, 나는 세레나데의 손을 잡고, 또 에반젤린과 루카스는 각자의 손을 잡은 채로, 함께 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
“…….”
웨딩 베일 아래로 세레나데가 수줍게 웃었다.
그녀의 상기된 얼굴과, 또렷이 나를 응시하는 은빛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천천히 그녀를 이끌었다.
“조심해서, 천천히 가자.”
“네, 낭군님.”
나는 세레나데가 긴 치마를 밟고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며, 나를 향해 휘파람을 불고 엄지를 치켜 보이는 손님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
문득 코끝이 찡해졌다.
피와 화약으로 범벅이 된 채, 전선에서 함께 어깨를 맞대고 서 있던 그때의 동료들이.
지금은 모두 한껏 멋을 부린 채 하객으로 앉아서, 내 결혼을 축하해 주는 이 모습에.
“주례를 맡은 트라하 ‘피스메이커’ 에버블랙이오.”
굳이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 아무튼 스스로를 소개한 아바마마께서 근엄한 목소리로 주례를 시작하셨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조언들이 이어진 뒤에, 아바마마는 씩 미소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는 오지 못하셨지만, 누구보다도 너희의 행복을 바라셨을 더스크 브링어 선대 공작의 말씀으로 주례사를 마치도록 하마.”
이어진 말에, 우리 네 명은 동시에 미소했다.
“아이들아, 사랑하라.”
사람들이 환호했다. 아바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삶이란 사랑하기만 해도 짧다. 그러니…….”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하라.
더스크 브링어의 해맑은 미소가 눈앞을 스친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와 세레나데는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주례사는 그렇게 끝났고.
이제 모두가 기다리던(?) 축가 순서가 왔다…….
“축가를 부르고자 하는 분들께서 제게 제안을 주셨습니다.”
맥밀란이 어색하게 웃으며 사회를 이어갔다.
“여러 팀께서 축가를 부르실 예정인데, 크흠. 어느 팀이 제일 잘 부르는지, 엄정한 심사를 해 달라고…….”
아니 그러니까 내 결혼식이라고! 왜 여기서 전국노래자랑을 열려는 건데, 이 자식들아!
“하지만 정성으로 준비해 온 축가에 어찌 순위를 매기겠습니까. 다만, 인기상 한 팀만 따로 뽑도록 하겠습니다. 심사위원은…….”
맥밀란이 객석 앞쪽을 가리켰다.
“우리 시드 군이 해주기로 했습니다!”
릴리의 품에 안긴 시드가 활짝 웃으며 통통한 팔을 치켜들었다.
“내가 하께!”
시드가 심사를 맡는다고 하자, 어째선지 모두가 납득하며 고개를 음음 끄덕이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축가 대결이 시작되었다.
미리 예고한 4대 이종족의 축가에 이어서, 로제타와 제니스, 그리고 토르켈(!)이 함께하는 크로스로드 성가대도 한 곡조 뽑았고, 음유시인으로 전향한 갬블 클럽 역시 축가를 불러주었다.
갑자기 대결 구도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다들 우리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렇게 준비해 와준 것 아닌가.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사람들의 노래를 들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최종 승리자는 아리엘이었다. 시드가 선정했는데, 다른 팀들은 모두 여럿이서 나왔지만, 아리엘은 혼자 불러서라는 이유였다.
“혼자서 용기 이써!”
그리하여 인기상을 받은 아리엘은 시드를 트로피처럼 안고 환하게 웃었다. 사람들이 웃으며 그런 아리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
그 전쟁으로부터 1년.
이제 현대 세계에 완전히 녹아든 호수왕국을 보는 듯해서, 조금 기뻤다.
어찌저찌 혼돈의 축가 순서도 끝나고.
이후로는 반지를 교환하고, 키스하며 꽃잎 세례도 받고, 와중에 화장 지워질까봐 입술만 살짝 닿는 정도였는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가만히 맞대고 있느라 고역이었고.
흘러흘러 부케를 던지는 순서가 되었다.
“자, 그럼 신부님들께서 부케를 던지시겠습니다! 받고 싶으신 분들은 이리로 나와주세요.”
이 순서는 정말 아무 예상 못 했는데,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앞으로 쏟아져 나왔다. 부케 받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많았어?
먼저 던진 것은 세레나데였다.
“얍!”
세레나데가 머리 위로 부케를 홱 던지자, 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괴성을 지르며 추락지점으로 몸을 내던졌다. 저렇게까지?!
“이리 내놔!”
“세레나데님의 부케는 내 거야!”
“기운을 받아서, 황태자님처럼 좋은 남자 얻을 거라고-!”
공중으로 펄쩍펄쩍 뛰어오른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고, 서로의 손을 쳐내는 처절한 공중전에 이은 육탄대결 지상전이 펼쳐진 끝에…….
“이겼다-!”
부케쟁탈전에서 승리한 사람은 바로…… 바이올렛이었다.
처절한 전투의 흔적으로 정장은 다 터져나갔고 비싸게 주고 한 듯한 머리도 잔뜩 헝클어졌지만, 그녀는 부케를 치켜올리며 포효했다.
“이제 나도 근사한 연애 좀 해보자, 제바알!”
상당히 절실하구나, 바이올렛. 나중에 멋진 연애 하길 바란다.
이어서 에반젤린이 부케를 던질 차례.
하지만 어째서인가, 에반젤린이 부케를 던진다고 하자, 영 하객 반응이 시들시들했다…….
세레나데의 부케는 모두가 받고 싶어 했지만, 에반젤린의 부케는 어쩐지 꺼림칙해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째서냐?
“훗.”
하지만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에반젤린은 건방지게 웃으며 이렇게 소리쳤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제 부케 안에는…… 한 가지 ‘상품권’을 넣어뒀어요.”
“……!”
“?!”
“뭐, 뭐라고!”
별 관심 없어 하던 사람들까지도 일제히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다.
“어디 한번 잡아봐라! 이 세상 전부를 여기 넣어뒀으니까!”
에반젤린은 우하하하 웃으며 힘차게 부케를 던졌다. 아니 얘는 무슨 부케를 투포환 던지듯이 전력투구하는 거야!
“잡아라!”
“이 세상 모든 것이 저기에 있다!”
“보물은 내꺼야-!”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우와아아- 소리를 지르며 멀리 날아가는 부케를 쫓아 뛰었다.
날아가는 부케와 몰린 인파는 호텔 입구를 빠져나가, 대로까지 이어지는 천막 존으로 진입.
서로 마구 몸싸움을 하며 부케를 잡기 위해 싸우다가, 그만…….
우지끈!
누군가가 기둥에 부딪히며 무서운 소리를 냈고,
우당탕, 와르르……!
이어서 호텔 바깥에 세워진 천막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다.
“아니 식장 무너지잖아-!”
내 고함과 함께 쓰러지는 사람들의 비명이 일대를 메웠다. 갸아아악……. 구와아악…….
천만다행히도, 바깥에 세워진 기둥도 가벼운 재질이고 쓰러진 것도 천막뿐이라 사상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훌륭한 아수라장이 펼쳐졌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허억, 허억…….”
그리고, 이 처절하고 끔찍한 최후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는.
“연애…… 할 거라고…….”
또다시 바이올렛이었다. 아니 진짜 연애 집념 대단하네!
두 번째 부케를 품에 꼭 안은 채 숨을 헐떡이던 바이올렛이 떨리는 손으로 부케 안에서 종이를 꺼냈다. 에반젤린이 말한 문제의 상품권이었다.
바이올렛의 주위로 몰려든 갬블 클럽 멤버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상품권 내용이 뭐야, 그래서?!”
“대체 뭘 넣어두신 거래?!”
“우리 부자 되는 거야?!”
나도 궁금해서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그리고, 바이올렛이 힘겹게 펼친 상품권의 내용은-
“…….”
“…….”
“…….”
직후, 의식을 잃은 바이올렛이 입에 게거품을 문 채 기절했다.
“꾀꼬닥.”
“바이올레에에에엣-!”
갬블 클럽의 처절한 비명을 뒤로하고 나는 호텔 안으로 돌아왔다. 아수라장이 된 바깥도 이제 뒷수습할 엄두가 안 난다…….
‘이 또한 축제의 즐거움이겠지요…….’
대충 자기합리화하며 돌아오자, 맥밀란이 나에게 손짓했다.
“전하, 마지막으로 여기 화가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답니다!”
그쪽으로 가자, 이번 결혼식을 기록하기 위해 온 궁정화가가 기다리고 있었다.
“네 분, 다시 한번 오늘 결혼 정말 축하드립니다.”
베레모를 쓴 궁정화가는 사람 좋게 웃으며 설명했다.
“이번 결혼식 모습은 이미 다 밑그림과 기록을 끝내둔 상태입니다.”
이미 끝내두었다는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축의금 배틀의 현장? 전국노래자랑? 부케 투척에 결혼식장이 무너지는 모습……?
“마지막으로 서비스라고 할지, 네 분의 모습을 기념으로 그려드리려고 하는데요.”
캔버스를 꺼낸 궁정화가가 연필을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는 간단한 스케치만 할 테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오오! 황실 궁정화가님께서 그려주시는 결혼식 기념화라니!”
흥분한 에반젤린이 루카스의 손을 잡은 채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자, 그럼 먼저 영주님과 기사님! 여기 앉으시고, 간단한 포즈 부탁드려요!”
나와 세레나데는 일단 옆자리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고.
화가가 지정한 소파에 나란히 앉은 에반젤린이 루카스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저씨, 아저씨! 그럼 우리 그 포즈 해요!”
“어? 그 포즈?”
“왜 있잖아요, 결혼 준비하면서 이런 때 있으면 우리 동시에 똑같이 하기로 한 포즈!”
루카스는 잠깐 고민하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아~! 그 포즈 말이구나!”
“마음이 통했네! 역시 우리 천생연분이라니까?”
화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에반젤린과 루카스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신호하면, 동시에 그 포즈 똑같이 취하는 거예요!”
“좋아!”
“갑시다,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