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Youngest Prince in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19)
소설 속 막내황자가 되었다 219화
55장 의문과 오해(1)
빛.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빛이 깃들어 있다.
그렇다면 만약 그러한 빛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그 광경이 사람들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아니, 펼쳐진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눈동자에 담기는 것은 허무로부터 비롯된 무한한 어둠뿐.
발을 내디딜 수도.
손을 휘저을 수도 없었다.
마치 세계 바깥의 공허에 홀로 떠 있는 듯한 느낌과 그로부터 전해지는 끝없는 공포에 주저앉아 몸을 떠는 것만을 할 수 있을 뿐.
소리마저 사라진 것인지 비명을 질러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점점 막혀가는 숨과 함께 희미해지는 의식.
마침내 그런 사람들의 호흡이 완전히 끊기기 직전이었다.
후욱!
마치 지금까지 벌어졌던 모든 일이 허상이라도 된 것처럼 한순간 모든 것이 돌아왔다.
익숙한 대기와 딛고 있는 땅.
소리, 그리고 빛까지.
“허억, 허어억!”
평소에는 의식조차 하지 않았던 호흡에 감사함을 느끼며 고개를 들어 올리는 사람들의 눈에, 스스스-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던 환영 거인의 몸이 흩어지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한 가지만 묻지.”
거인의 중심에 있던 오만의 대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방금 그것은 분명 초월기였다.”
이미 모든 게 끝났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런 그의 목소리에는 짙은 허무가 깃들어 있었다.
“어떻게 신격에 오르지 못했으며…… 더불어 영겁의 후예에 불과한 네가 이런 걸 펼칠 수 있는 거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실.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
그에 가라앉은 눈으로 오그리트를 바라보던 시온의 입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영겁에게 후예는 존재하지 않아.”
“……뭐?”
“흑성하 또한 그 누구에게도 이어진 적 없지.”
잠시 멍한 빛을 띠고 있던 대공의 눈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네가, 네가……!”
마침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시온을 향해 손을 뻗는 오그리트.
하지만 그런 그의 손도, 그리고 목소리도 끝내 시온에게 닿지 못했다.
그 전에,
스르륵-
완벽하게 가루가 되어 흩어졌으니까.
“…….”
잠시 그렇게 흩날리는 가루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온은 몸을 돌렸다.
‘앞으로 셋인가.’
짧지만 강렬했던 경계에서의 전쟁이 끝나가고 있었다.
* * *
“꺄하하하! 그만 이제 포기하는 게 어때?”
보랏빛 입술을 지닌 소녀의 광소와 함께 주변의 공간이 모조리 부서져 나간다.
쩌저저저저정!
그와 함께 이어지는 무지막지한 연격!
“흐으…….”
전신에 보랏빛 권능의 장막을 두른 채 그러한 연격을 막아내는 젤리스의 입에서 자그마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아까와는 달리 그녀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상처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몸과 그로부터 끊임없이 새어 나오는 마기.
처음 전투를 시작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다소 여유가 있었던 젤리스가 이토록 밀리게 된 이유는 눈앞의 아크리모시아 때문이 아니었다.
‘설마 정말로 올 줄은 몰랐는데.’
그 생각과 함께 질투의 눈이 광란의 뒤쪽에서 그녀와 동등한 위력을 지닌 공격을 이쪽으로 퍼붓고 있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전신을 로브로 감쌌기에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한 명의 사내.
바로 낮은 목소리의 주인이자 사대공 중 하나인 분노였다.
‘그것도 이렇게나 빨리.’
무모하다는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젤리스는 아무런 생각 없이 반역을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계산을 한 뒤 반역을 일으킨 상태였다.
마왕은 심연의 궁에 박힌 채 나오지 않고 있었고 제국은 용사와 더불어 나타난 ‘시온 아그네스’라는 불세출의 대적으로 인해 이쪽의 계획을 모조리 박살 내며 준동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기에 마땅한 명분까지 주어졌으니 그야말로 반역을 일으키기 최적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른 대공들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그들은 전부 하늘을 찌를 듯한 자존심을 지니고 있었고 그렇기에 절대 합공은 하지 않으리라 판단했었다.
물론 그 판단은 틀렸고 그렇기에 이렇게 궁지로 몰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대공 둘이 나 하나를 상대로 이렇게까지 힘을 쓰다니. 너무 추한 거 아니야? 아니면…… 나보다 급이 낮다고 자랑이라도 하는 건가?”
점점 기울어지는 승기에 일부러 도발적인 언행을 내뱉어 보았지만,
“뭐? 너 정도는 지금이라도 나 혼자서 찢어 죽일 수……!”
“흥분하지 마라. 틈을 만들려는 술수일 뿐이니까. 지금은 그저 전투를 빨리 끝내는 것만을 생각해라.”
분노의 제지로 인해 걸려들지 않았다.
그 이름답지 않게 침착하기 그지없는 모습.
‘망했네, 이거.’
그런 분노의 모습에 젤리스가 슬쩍 입술을 비틀며 혀를 찼다.
저 차분한 모습은 그가 아직 제대로 힘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미 패배는 확정된 것 같고.’
그 생각과 함께 젤리스는 눈을 돌려 흘깃 주변의 전장을 훑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군세 또한 광란과 분노가 이끌고 온 군세들의 합공으로 인해 빠르게 정리되어 가고 있었다.
‘슬슬 도주각을 봐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그 틈이 보이질 않았다.
이미 자신이 도주할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분노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선 채 퇴로 전부를 차단하고 있었으니까.
이대로라면 끝없이 밀리다가 목숨마저 날아갈 판이었다.
‘무언가 변수를 만들어야…….’
그 순간이었다.
“!!!!!!”
젤리스를 비롯한 모든 대공이 한순간 전투를 멈춘 채 똑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확장되어가는 그들의 눈동자.
그런 그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마역과 제국의 경계였다.
정확히는 경계에서도 외곽에 속해 있는 지역.
“이거…….”
“그래, 오만이 죽었다.”
요동치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광란을 향해 분노 또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착각은 아니었다.
반신격에 오른 사대공들은 어디에 있든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방금 오만의 존재 자체가 세상에서 지워져 버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럴 만한 변수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만약 변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부 가볍게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가 바로 오그리트였다.
“……상황이 꼬이는군.”
그 어느 때보다도 굳어진 얼굴을 한 채 차갑게 말을 내뱉는 분노의 대공.
그의 눈은 그사이에 도주해 버린 젤리스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시온이 오그리트를 격멸한 후 이어지는 전투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사대공 중 하나의 죽음.
그 충격으로 인해 마족들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했고 그렇기에 제국 측의 군세는 별다른 피해 없이 마족들을 전부 정리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시온이 데려온 막대한 전력으로 인해 이미 승패는 정해져 있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전쟁이 끝이 나고 뒷정리 또한 서서히 마무리되어 갈 때쯤.
“하하! 맛이 어떠신지요, 시온 전하. 여기 경계에서만 마실 수 있는 특제 커피입니다.”
시온은 경계 군단의 막사에서 경계 군단장인 기라드가 타준 커피를 들이켜고 있었다.
“나쁘지 않네.”
곧이어 은은한 웃음을 지은 시온이 다시 찻잔을 내려놓았다.
원두도 아닌 커피 가루로 향을 내고 철로 만들어진 군용 물컵에 담긴 싸구려 커피에 불과했지만, 시온의 눈에는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
이 커피는 과거 시온이 전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 전장을 누빌 때 한 번씩 수하들이 타 주었던 이름 모를 차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때의 향수와 커피에서 느껴지는 투박한 향은 시온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역시 좋아하실 줄 알았습니다.”
시온을 향해 씩 웃음 짓는 기라드.
그렇게 시온을 바라보는 눈에는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존경과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했다.
마왕을 제외하고 마역에서 가장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대공.
그중 하나인 오만의 대공을 시온이 격멸하는 광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상태였으니까.
그야말로 전설적인 업적.
제국이 건국된 이후로 이러한 업적을 세운 존재는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시온 전하처럼 홀로 대공을 격멸한 존재는 더욱 적고.’
어쩌면 기라드 자신은 앞으로의 역사에 기록되어 영원히 회자될 만한 존재와 함께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오직 경외만이 담긴 눈으로 시온을 바라보는 기라드와는 달리,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구나.’
막사의 한쪽에서 그런 시온을 바라보는 이벨린의 눈에는 커다란 의문이 어려 있었다.
오그리트를 격멸할 때 시온이 보여주었던 힘.
그 힘은 분명 필멸을 초월하여 불멸에 다다른 힘이었다.
‘그러한 경지를 1년이 약간 넘는 시간 만에 이룩했다고?’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역사상 최고의 재능을 지닌 존재라고 해도 아니, 용이라고 하더라도 불가능했다.
‘유일한 가능성은 신기와 같은 최상급 유물의 능력을 빌려 일시적으로 그러한 힘을 냈다는 건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능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 정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없을 터.
생각하면 할수록 복잡해지는 머릿속에 고개를 한 번 저은 이벨린이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올릴 때였다.
“어? 전하! 전하도 커피를 좋아해?”
근처에서 그 장면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리우시나가 슬금슬금 그녀를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그렇다만…….”
무슨 일이냐는 듯한 눈으로 대답하는 이벨린.
그에 눈을 빛낸 마녀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슬쩍 황녀를 향해 내밀었다.
“그럼 이거 한 번 마셔볼래? 민트 커피라고 하는데 내가 무척이나 아끼는 거야! 요정림에서도 아주 극소량만…….”
“싫다.”
그런 리우시나의 말에 끝나기도 전에 이벨린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흘러나왔다.
“안 마실 거니 어서 그 통을 내 앞에서 치우거라.”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눈썹을 찌푸린 이벨린이 다시 한번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그, 그럼 다른 사람들은…….”
그 명백하기 그지없는 표현에 다음 타겟을 정하듯 리우시나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저도 민트는 좀…….”
“저는 원래 커피 안 좋아합니다.”
“오늘은 왠지 커피보단 홍차가 당기는군요.”
“오, 군단장님도 그러십니까? 저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눈을 피하며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이거 맛있는데…….”
그에 저번처럼 시무룩해진 채 중얼거리는 리우시나를 잠시 바라보던 시온은 기라드가 탄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일을 정리했다.
‘이제 여기도 거의 정리된 것 같으니 슬슬 다음 목적지로 이동해야겠어.’
그 생각과 함께 시온이 떠올린 목적지는 바로 요정림이었다.
사실 중요도나 급한 것으로 따진다면 수인해 쪽이 먼저이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온이 요정림을 다음 목적지로 정한 이유는 바로 흑성하의 성취 때문이었다.
시온은 알고 있었다.
흑성하를 7성까지 올리지 못한다면 대공급 마족들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에는 크로노스의 물음을 사용해 처리할 수 있었지만, 이제 남은 물음은 단 하나였고 그에 비해 대공의 숫자는 셋이었다.
‘만약 젤리스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둘.’
저번 부유 도시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대공급 마족이 또 언제 자신의 앞에 갑자기 나타날지 알 수 없었으니 최대한 빠르게 7성에 오르는 것이 맞았다.
요정림의 금지에 자신이 남겨놓은 물건을 이용한다면 훨씬 더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을 터.
‘물론 그 전에 여기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하나 남긴 했지만.’
오우거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했던가.
“시온 전하, 용사 클레어 플로시마르를 비롯한 일행들이 전하를 뵙기를 청합니다!”
그런 시온의 생각이 끝나자마자 막사 바깥에서 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워주었으면 하는데.”
기사의 외침과 동시에 슬쩍 웃음 지은 시온이 막사 안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 * *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후 곧바로 막사 안으로 들어온 용사 일행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격렬했던 전투의 흔적을 보여주듯 몸 이곳저곳에 커다란 상처들이 존재했고 그중에서는 아직까지 출혈이 잡히지 않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전부 살아 있는 게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전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 보았던 저들의 상태를 떠올리며 시온이 그렇게 생각할 때,
“시, 시온 전하를 뵙습니다!”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한 엘리시스가 가장 먼저 시온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그런 그녀를 따라 고개를 숙이는 다른 일행들.
“인사는 그쯤 하면 됐고. 날 찾아온 용건이 뭐지?”
이미 어느 정도 용건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시온은 용사 일행, 아니 정확히는 클레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에 다시 고개를 든 클레어가 시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시온 전하, 용건을 말씀드리기에 앞서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해봐.”
생각을 정리하듯 잠시 침묵하는 용사.
곧이어 그런 용사의 입에서,
“영겁제 오르렐리온 칸 아그네스.”
하나의 물음이 흘러나왔다.
“그는 살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