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본론
“네, 한 번 해 보죠.”
대답을 뱉은 후 나는 우스운 사실을 하나 깨달았다.
어떤 공모전인지도 듣지 않고 해 보겠다는 의사를 표했다는 걸.
‘왜지.’
잘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레 말이 나갔다.
학창시절 홍수찬선생님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르며.
잠깐의 침묵 이후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잘 생각했다.”
“아, 근데요, 선생님.”
“뭐냐.”
“어떤 공모전인데요? 아니, 그 이전에……”
대답하고 나서 생각하니 떠오른 의문이 존재했다.
나는 선생님을 향해 그 의문을 던졌다.
“제가 참가할 수 있는 미술 공모전이 있어요?”
물론 공모전에 참가한 적은 많았다. 수상한 적 역시 많았고.
허나 자의적으로 참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공모전에 거의 흥미가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때는 그냥 그림만 그릴 수 있으면 됐지.’
꼭 공모전을 통해 그림을 그릴 필요는 없었다는 뜻.
그런 탓에 학창시절 내가 참가한 공모전은 늘 홍수찬선생님의 권유로 이루어졌다.
때로는 권유가 아니라 강요일 때도 있긴 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둘 중 뭐든 전부 나를 위해서였다는 것.
‘생각해 보니 지금도 마찬가지네.’
7년이 지났는데도 나를 향한 선생님의 케어는 끝나지 않은 모양.
그 사실이 괜히 뭉클하게 다가왔다. 징그럽게 이 감정을 표현할 생각은 없긴 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은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들려오는 선생님의 대답.
“당연히 있지. 미술 공모전이 학생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니까.”
그렇게 대답하고선 홍수찬선생님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추천하려는 공모전은 ‘주원이 네가 참가할 수 있는 공모전’이 아니야.”
“.. 네? 방금 참가할 수 있다면서요.”
“말을 끝까지 들어, 이 녀석아.”
“네, 말씀하세요.”
“정확히 말하면 네가 참가할 수 있는 공모전이 아니라, 너같은 녀석만 참가할 수 있는 공모전이지.”
정확히 말했다고는 하는데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다.
나같은 녀석만 참가할 수 있다니. 나같은 녀석이 어떤 녀석인데.
오히려 더 생뚱맞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그게 뭔데요? 저같은 녀석이.”
“청년.”
“.. 청년이요?”
“그래. 내가 말하는 공모전 이름이 ‘전국청년작가 미술공모전’이야.”
처음 들어보는 공모전 이름이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선생님의 말대로 ‘청년’일 거 같았다.
그게 곧 참가 요건이 될 테니까.
그렇다면 다음 질문도 정해져 있었다.
“청년의 기준이 뭔데요?”
“대한민국 국적의 만 24세 이상 만 42세 이하 청년작가. 그게 공모자격이다.”
“만 24세 이상…”
되뇌는 동시에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현재 내 나이가 절묘하게 커트라인에 걸쳤으니까.
‘청년.’
지금의 나는 그 범주에 속하는 모양이었다. 동시에 아빠이기도 하지만.
뭐, 모든 사람은 여러 범주에 속하는 법이니까.
홍수찬선생님의 말이 이어졌다.
“접수 기간은 넉넉한 편이다. 자세한 공모내용은 링크를 보내줄 테니까 확인해 보고.”
“네, 그럴게요.”
“오랜만인 만큼 부담 갖지 말고 해라. 예전에 하던 것처럼. 주원이 네가 참가했던 미술대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규모가 있는 공모전이야. 수준 높은 참가자들도 많고.”
그렇겠지. 제목부터 ‘전국청년작가’가 들어가 있는 걸 보면.
나로서는 오히려 좋았다.
수상하지 못하더라도 경쟁력 있는 공모전에 나가 최선을 다해보고 싶었으니까.
그 과정에서 내 기량도 확인해 보고 싶었고.
여러모로 지금의 내게는 최적의 공모전인 거 같았다.
‘.. 어? 잠깐.’
그런 와중 문득 깨달은 엄청난 사실 한 가지.
이런 건 바로 말해줘야 하는 법이었다.
“선생님.”
“응.”
“저 지금 엄청난 사실을 하나 깨달았어요.”
“엄청난 사실? 그게 뭔데?”
“생각해 보세요. 청년작가 기준이 만 24에서 42세잖아요.”
“그래. 근데 그게 왜?”
“그 기준에 따르면.. 선생님도 청년이에요!”
일부러 텐션을 잔뜩 올려 이야기했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처럼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 듯이.
부글. 부글.
이상하다. 물을 끓이는 것도 아닌데 뭔가 끓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은데.
이윽고 나는 핸드폰을 귀에서 뗄 수밖에 없었다.
홍수찬이 빽 소리를 질렀으니까.
“이 놈의 자식이! 선생님을 놀려!”
나는 능청스레 대꾸했다.
“놀리다뇨. 오히려 젊으시다고 얘기한 거죠.”
“.. 그런 거냐?”
“네. 같은 청년이라 동지애도 느껴지는데요? 요즘 세상에 마흔이면 젊은 나이죠.”
“허허, 그렇지. 그렇고 말고.”
휴. 다행히 잘 둘러댄 거 같았다.
사실은 장난친 거 맞는데.
‘더 하면 들킬 테니 여기까지 하고.’
선생님한테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다.
나는 재차 선생님을 불렀다.
“선생님.”
“또 왜.”
“감사해요.”
“뭐야, 이 녀석아. 징그럽게.”
“인사를 해도 뭐라고 하시네.”
“뭐?”
“아니에요.”
“그.. 주원아.”
“네.”
“정 감사하면……”
자연스레 이어지는 선생님의 한 마디.
“새해인사 영상 빨리 좀.”
못 말리는 연두바라기 홍수찬이었다.
***
(링크 첨부)
툭.
터치와 동시에 모집요강이 떠올랐다.
선생님이 보내준 상세 공모내용이 쓰여있는 공모전 링크였다.
나는 곧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공모자격 : 만 24세~ 만 42세
젊은 청년인 나와 상대적으로 나이 든 청년인 홍수찬선생님까지 포함하는 기준.
아까 들은 그대로의 범주였다.
‘접수 기간도 넉넉하고.’
공모주제나 작품의 규격도 특이점은 없었다.
참가대상 빼고는 학창시절 참가한 공모전이랑 별 차이가 없다고 해야 할까.
자연스레 내 시선은 ‘시상내용’ 목록을 향했다.
‘중요한 게 여기 있으니까.’
다름아닌 상의 종류와 ‘시상 내역’이었다.
시상 내역에는 상금 및 여러 보상이 포함됐다.
그 목록을 본 내 입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 이 정도라고?’
상의 종류는 일반적인 공모전과 동일했다.
대상 한 작품, 우수상 두 작품, 선정작가상 다섯 작품.
심플하게 세 종류로 이루어져 있었다.
‘더 세부적으로 나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상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건 없었다.
내가 놀란 건 상금을 포함한 보상이 적힌 ‘시상 내역’이었다.
우선 상금의 금액이 상당했다.
대상 3000만원, 우수상 1500만원, 선정작가상 500만원.
총상금이 합하면 오천만원에 달했다.
공모전에 많이 참가해 봐서 대강 알고 있었다.
공모전 규모와 상금 액수의 연관관계에 대해.
‘상당히 큰 공모전이야.’
그런 내 경험에 다르면 꽤나 큰 규모의 공모전이었다.
괜히 제목에 ‘전국’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니었군.
허나 내가 놀란 건 비단 상금의 액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외의 항목에 눈이 가.’
상패 및 상장은 그렇다 치고 모든 수상자에게는 ‘그룹전’을 지원한다고 쓰여있었다.
그리고 대상 수상자에게는 ‘개인전’까지 지원한다고 명시된 문구.
개인전. 미술학도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었다.
자기만의 작품으로 꾸민 전시회를 여는 건.
‘미술학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그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었다.
벌써부터 조금 심장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서 자그맣게 들려오는 목소리.
“아빠..”
“응, 연두야.”
“연두도 보고 시퍼요.. 아빠 조아하는 거……”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하는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 내 표정이 어땠을지도 짐작이 갔다.
“미안. 아빠가 너무 혼자 봤지? 아게 뭐냐면 연두야……”
나는 공모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줬다.
설명을 마치자 연두는 말했다.
“그럼 그림 그리기로 시합하는 거에요..? 누가 더 잘 그리나……”
“응, 그런 셈이지. 누가누가 더 잘 그리나.”
“아빠.”
“응?”
그냥 나를 부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두가 생긋 웃으며 말을 이었으니까.
“아빠가 제일 잘 그려요..!”
“하하, 그래?”
“네에.”
나는 괜히 어깨를 으쓱하며 맞장구쳤다.
“맞아. 아빠 옆에는 우리 연두가 있으니까.”
“히히.”
내 그림을 좋아해주고 동시에 그림의 모델도 되어주는 연두.
전에도 말했지만 내게는 딸인 동시에 뮤즈같은 존재였다.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된 것도 연두로 인해서였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야.’
나만 연두의 곁에 있는 게 아니었다. 연두도 항상 내 곁을 지키고 응원해주고 있었다.
내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덩달아 기뻐해 주며.
그러니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온전히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그래야 그 감정을 연두와 공유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마지막 하나 남았는데. 아빠랑 같이 볼까?”
“네!”
힘차게 대답하는 연두.
나는 연두와 나란히 앉아 마지막 항목을 확인했다.
마지막 항목은 바로 ‘심사과정’이었다.
‘1차와 2차로 나뉘어 있고.’
자세히는 적혀있지 않지만 느낌은 왔다.
규모가 적지 않고 상금도 큰 만큼 공신력 있는 심사위원들이 참가할 터.
다만 모든 작품이 그들의 심사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기에는 출품작이 너무 많을 테니.’
즉, 그들이 심사에 참여하는 건 2차일 터였다.
1차 심사를 하는 건 상대적으로 더 쉽게 쓸 수 있는 인력일 테고.
공모전에 참가해 본 경험과 여기저기서 들은 정보가 있기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공모전 심사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확실한 건.’
진짜 경쟁은 2차부터라는 점이었다.
최소한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그림을 그려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아니, 할 수 있다.
‘기왕 하는 거라면.’
1차 통과가 아닌 정상을 노릴 생각이었다.
***
청암동의 한 카페.
구석진 곳의 테이블에 신세연이 앉아있었다.
반대편에서 그녀를 향해 건네는 목소리.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우리?”
신세연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보는 거 맞으니까 그러지, 바보야.”
“와, 나 지금 되게 기분 나쁘다? 세연이 너한테 바보라고 들으니까.”
“뭐? 그 말은.. 내가 바보라는 거?”
반대편에 앉은 여자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으며 대답했다.
“못 본 사이에 눈치가 많이 빨라졌네, 우리 세여니..”
“죽는다, 서은주..”
딱 봐도 친한 친구사이로 보이는 대화 내용.
보는 그대로 그녀는 신세연의 베스트 프렌드 서은주였다.
거의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동성친구.
오랜만에 만난 만큼, 둘은 신나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화 중에 서은주가 말했다.
“근데 뭔가 슬프다.”
“뭐가?”
“우리 예전에는 진짜 매일같이 만났었는데. 이렇게 얘기하고. 진짜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봐.”
“.. 그치.”
난데없이 추억에 젖은 둘.
그러다 서은주는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다 세연이 너가 너무 바빠서 그래. 그냥 나랑 근처에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신세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 알잖아.”
“하긴. 너도 그렇지만 시은이도 있고.”
아쉬움을 머금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반짝거리는 서은주의 눈.
괜히 신세연은 당황한 듯 말했다.
“뭐, 뭐.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슬슬 들어가야지.”
“뭘 들어가?”
“본. 론.”
오늘 수다의 메인 주제가 등장할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