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작화가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원고.
동화작가 조은서는 설레는 표정으로 노트북을 열었다.
벌써 몇 번째 받아보는 원고였다.
“흐헤…”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웃음소리.
그만큼 조은서는 이 시간이 좋았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선물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지금껏 한 번도 이런 적은 없었다.
매번 원고를 받아보려면 먼저 요청해야 했고 그마저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으니.
결국 쌓고 쌓아서 받아보는 원고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지.
‘고칠 게 너무 많아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감이 안 올 정도였다.
퀄리티 문제가 아닌 원작자의 의도를 전혀 고려할 생각이 없는 작화가 문제였기에.
그런 마당에 수정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있겠는가.
추리고 추려서 요청해도 시늉이라도 하면 다행이고 결국 바뀌는 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180도 달랐다.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원고가 주기적으로 들어왔다.
장면별로 나누어 한 파트 작화를 끝낼 때마다 보내주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작화 속도도 무척 빨랐다.
‘퀄리티는 말도 안 되게 상승했는데.’
우습지만 뭔가 반칙을 하고 있는 기분도 들었다.
지금까지 함께한 작화가와 모든 게 다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점을 꼽자면 하나.
그건 바로 작화가의 마인드였다.
‘느껴져.’
환상의 파트너라고 칭한 초록님과 선우영.
둘이 그린 그림을 보면 느껴졌다.
단지 일로 맺어져 그림을 그리는 걸 넘어 ‘소녀와 환상의 숲’의 스토리 자체에 애착을 갖고 있다는 게.
그렇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그림이었다.
‘그나마 문제를 꼽자면.’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게 문제였다.
자신도 일을 해야 하는데 작화가 너무 완벽하니 참여할 요소가 없는 거다.
그러자 한 번은 초록님이 역으로 얘기해 왔다.
“저는 사실 그 부분이 고민이었거든요.”
“아, 어떤 부분이요?”
“작가님이 주신 원고를 보면 고양이가 연주하는 음률이 무지개색의 다리를 만들어 다음 공간으로 이어준다고 되어 있잖아요.”
어렵게 말하자면 청각의 시각화를 활용한 파트였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를 가진 소녀를 고려해 시각적으로 표현한 부분.
하이라이트인 만큼 힘을 줘야 하는 연출이기도 했다.
따라서 의아했다.
‘완벽한데.’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는 없겠다 싶을 정도로 그 파트는 완벽했다.
그런데 어떤 점을 고민했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지.
이어지는 말에서 알 수 있었다.
“작가님 원고를 보고 저랑 우영이가 생각한 연출이 두 가지가 있었는데……”
고민 끝에 그중 하나를 채택했다는 거다.
조금 더 작가의, 그녀의 의도에 적합한 연출이라고 판단해서.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일단은 둘 다 그려 봤거든요. 다른 원고도 추가로 보내드릴 테니까 더 작가님 마음에 드시는……”
결국 놀란 조은서는 말을 끊었다.
“자, 잠시만요!”
“네?”
“그러니까.. 제가 어떤 걸 더 좋아할지 몰라서 두 가지 버전을 전부 그리셨다는 건가요?”
“네, 혹시 문제라도……”
뒤이어 귀에 들어오는 너무나도 태연한 대답.
그때 확실히 느꼈다.
‘다르구나.’
아예 작화가로서의 마인드셋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창작자인 자신조차 고려하지 못한 부분까지 고민하며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스스로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찬가지겠지.’
또 다른 작화가인 선우영도 초록님과 결이 같은 사람일 터였다.
괜히 뿌듯하게 느껴졌다.
전에 둘에게 얘기한 ‘환상의 파트너’라는 호칭이.
‘특별해.’
막상 당사자인 둘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녀에게는 너무 특별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과장이 아니라 원고를 볼 때면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었다.
[Episode 5(원숭이 주드)]소녀가 다리를 다친 원숭이 주드를 만나는 에피소드.
공감과 진정한 의미의 치유.
그 정서가 담긴 첫 에피소드라 볼 수 있었다.
‘삭막한 숲이지만.’
그 속에서 주드의 상처에 공감하는 소녀의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특별히 몰입해서 원고를 써낸 파트이기도 했다.
따라서 엄청나게 궁금했다.
‘어떻게 그려졌을까.’
과연 그 장면은 둘의 손끝에서 어떻게 그려졌을지.
달칵.
클릭과 동시에 떠오른 원고.
마우스를 쥔 조은서는 시선을 고정한 채 홀린 듯 스크롤을 내렸다.
그에 따라 눈앞에 펼쳐졌다.
스토리를 써내며 머릿속에 그리던 숲속의 이미지,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들, 생동감 넘치는 대사까지.
‘그리고..’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머릿속에 그리던 ‘Episode 5’의 하이라이트가.
상상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버리고 싶지 않았어! 주드의 가족들은, 친구들은.. 주드랑 계속 가치 살고 싶었어!)
눈물을 머금은 소녀의 외침.
(나 때문에 엄청 힘드러도..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버리고 싶어 하지 않아.)
(.. 사랑하니까.)
(주드도 그럴 거야. 분명히.)
뒤에 이어지는 표현하고자 했던 공감과 치유의 정서까지.
순간적으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게 정말 내가 만들어낸 스토리가 맞는 건가 하고.
다 보고 난 뒤 입 밖에 흘러나오는 한 마디.
“.. 어떡하지.”
너무 행복했다.
출간한 것도 아닌데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 찬 기분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사.
연두부라면 모두 알고 있는 연두튜브의 공식 명대사였다.
“아빠가 마법을 보여줄게.”
주어는 해당이 안 되지만 그 말대로였다.
초록님은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
“.. 아빠!”
“억!”
깜짝 놀라 펜을 떨어트렸다.
덩달아 깜짝 놀란 연두가 토끼 눈이 돼서 나를 바라본다.
손에는 종이가 들려있다.
“미안. 놀랐지, 연두야.”
재빨리 태블릿 화면을 껐다.
자연스레 태블릿으로 옮겨가는 연두의 시선.
궁금해하는 눈치다.
딱히 숨기려던 건 아니었는데 놀란 탓인지 내가 봐도 허둥지둥 수상한 움직임이긴 했다.
애써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손에 든 종이는 뭐야?”
“그리미요..”
“연두 그림 그리다 왔구나. 아빠가 봐도 될까?”
스윽.
피아니스트가 꿈이 된 이후로 음악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는 연두였다.
내민 종이를 받아서 보니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한 명은 내가 확실하고 다른 한 사람도 왜인지 알 것만 같다.
‘너무 다르지만.’
실제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애써 모르는 체하며 물었다.
“잠깐. 이 사람은 누구지? 엄청 예쁘고 귀엽고 천사 같은 공주님은.”
이런. 너무 힌트를 많이 줬나.
내 말에 연두는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리듯 답했다.
“여, 연두인데..”
역시나.
초창기 연두의 그림도 곧잘 알아봤던 나인데 지금 못 알아볼 리가 없지.
틀렸다는 듯한 중얼거림이지만 전혀 틀리지 않았다.
전부 100% 의도 하에 앞에 붙인 수식어들이니까 말이다.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근데 연두야.”
“네.”
“왜 이렇게 키를 크게 그렸어? 물론 우리 연두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이렇게 크지는 않잖아. 옆에 있는 아빠보다 살짝 작은 수준인데?”
그 와중에 나보다는 작게 그린 게 포인트였다.
연두는 배시시 웃더니 대답했다.
“연두는 빨리 크고 시퍼요!”
“크고 싶다고?”
“네.”
다소 갑작스러운 바람에 나는 물었다.
“키가 크고 싶은 거야, 아니면 어른이 되고 싶은 거야?”
“…”
거기까지 생각하지는 않은 건지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지는 연두.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막연히 가지는 생각이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막상 되고 나면 그 생각은 180도 바뀌지만 말이다.
“.. 둘 다에요!”
결국 고민 끝에 나오는 대답.
그렇구나. 우리 연두는 키도 크고 싶고 어른도 되고 싶구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행이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연두가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게 다행이란 건 아니다.
그럼 뭐가 다행이냐고?
마침 연두도 알쏭달쏭한 표정이다.
“으응..?”
나는 빙긋 웃으며 얘기했다.
연두가 그린 그림 속의 나를 가리키며.
“그려 줬잖아, 아빠.”
“네.”
“그럼 어른이 된 연두의 옆에도 아빠가 쭉 있다는 거니까.”
“.. 아!”
입가에 미소를 띠며 연두는 말했다.
“마자요! 연두도 커도 쭉 아빠 옆에 이쓸 꺼에요..!”
“하하, 그래.”
그림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한 서로를 향한 애틋함.
바로 이 타이밍이었다.
요즘 들어 늘 소지하고 다니는 내 보물 1호.
“짠!”
당당하게 펼쳐 보이며 외쳤다.
“뽀뽀 쿠폰 사용!”
어버이날은 지났지만 쿠폰북의 유통기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껴 쓴 만큼 아직 많이 남아있다.
연두는 생긋 웃음 짓고선 내 볼에 쪽 뽀뽀를 날렸다.
“흐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쿠폰북을 처음 만든 사람은 천재임이 틀림없다.
노벨상 안 주고 뭐 하지?
그런 주접을 하는 와중 연두가 빤히 나를 보더니 말했다.
“아빠.”
“응.”
“아빠는 머 하고 있어써요..?”
역시 궁금했구나.
아까는 다소 수상하게 행동하긴 했으나 딱히 숨길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다.
“그림 그리고 있었어. 동화책.”
“아!”
또 연두가 묻는다.
“연두도 보여주면 안 대요…?”
“안 돼.”
“…”
단호박처럼 단호한 대답에 다소 충격받은 듯한 연두의 표정.
허나 이건 굽힐 수 없었다.
작화가로서의 신념과도 같은 거니까.
‘반드시.’
연두에게만큼은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완성된 ‘소녀와 환상의 숲’을.
그전까지는 보여주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조금만 기다려 줘, 연두야.”
“네..”
조금은 속상함이 엿보이는 연두의 표정.
마음이 아프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 시점에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을 거 같았다.
“연두야.”
“네, 아빠.”
“조금만 기다리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이야기를 보여줄게.”
***
어느 평일 오후.
연두를 어린이집에 보낸 뒤 나는 외출 준비를 했다.
만나기로 한 상대가 있었다.
‘뭔가 어색하네.’
따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거의 없는 터라 어색한 기분이 몸을 감쌌다.
뭐, 그와 별개로 좋은 일이었다.
집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나가서 누구라도 만나는 편이 좋으니까.
더군다나 오늘 약속 상대는 연두와 관련이 있기도 하고.
‘오랜만인데.’
벌써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꽤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연두와 관련된 거라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열심히 달린 끝에 도착한 약속 장소.
조용한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스르륵.
자동문이 열리고 식당 내부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눈에 들어왔다.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는 반가운 얼굴의 여성이.
“누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녀.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왔어, 주원아?”
사실상 내가 ‘누나’라 부르는 유일한 사람.
윤우 녀석의 친누나이자 미술치료사, 최윤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