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372)
372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바로 위로 모셔보도록 하죠!”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단비음악대의 축가 시간.
슥.
자리에서 일어서는 연시레를 따라 나도 몸을 일으켰다.
공주님들을 무대 위로 안전하게 에스코트할 역할이 필요했으니까.
“.. 어?”
누군가의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연두 아니야?”
“뭐, 뭐야.. 연두가 왜 저기서 나와?”
“아까 서약 읽을 때 연두튜브 나온 게 이걸 위한 복선이었나?”
“시은이랑 레나도 있어!”
그밖에도 연두가 온 걸 알고 있던 하객들도 놀란 표정으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심지어 최서아를 포함한 여자애들도.
그럴 만도 했다. 축가를 할 거라고 따로 말하지 않았으니.
‘괜히 떨리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수많은 시선을 느끼며 올라가다 보니 괜히 긴장되는 기분이었다.
내가 축가를 불러야 하는 것도 아닌데.
걱정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아이들을 바라봤다.
“하하.”
자연히 입 밖에 나오는 웃음.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느껴졌다.
아무래도 가장 긴장한 건 나인 모양이다.
‘하긴.’
백명의 연두부 앞에서도 멋진 콘서트를 보여줬던 아이들이다.
이번에는 한 곡인 데다가 연습도 엄청나게 했으니,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마침내 무대 위에 선 나와 연시레.
“얘들아.”
아무리 떨지 않는다고 해도 말 한마디 없이 내려갈 수는 없는 노릇.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무척 긴장한 상태일 수도 있었다.
특히나 연두는 그런 경우가 많았다.
“네에..”
“네, 아저씨.”
“네.”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이팅! 아까 리허설한 것처럼 하면 돼. 실수해도 괜찮으니까 편하게. 알겠지?”
“네!”
“밑에서 아저씨가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들.
이로써 내 역할은 끝난 거 같았다.
“아빠..”
“응, 연두야.”
“연두 잘 할께요..!”
눈에 꾹 힘을 주고 말하는 연두의 모습에 웃음이 번졌다.
***
알아서 척척 자리를 잡는 연시레.
수찬쌤과 하객들에게 인사하고 나는 강당에서 내려와 제 자리로 돌아갔다.
벌써부터 친구녀석들은 흥이 오른 상태이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수찬쌤 벌써부터 콧구멍이 벌렁거리시는데?”
“그럴 만도 하지. 연시레의 축가인데.”
여자애들도 마찬가지였다.
“와.. 이건 반칙 아니야?”
“나도 단비음악대 축가 받고 싶다.”
“그전에 결혼할 수 있는지가 먼저 아닐까?”
“결혼이야 마음만 먹으면 하지.”
“풉.”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는 대화이다.
한편 다른 테이블에 앉은 하객들도 강당 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연시레에게서.
“어머. 귀여운 거 봐..”
“어떡해..”
“저 조그마한 손으로 연주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허허.”
“엥? 삼촌 몰라?”
“뭘?”
“단비음악대 모르냐구. 안 되겠네. 오늘 집 가자마자 연두튜브 검색해서……”
확실히 모른다면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저렇게 연약하고 하얀 자그마한 손으로 제대로 된 연주가 가능할지.
차라리 셋 다 마이크만 쥐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지.’
바로 그게 단비음악대의 특별성이었다.
나는 확신했다.
깜짝 놀랄 만할 축가 무대를 단비음악대가 보여줄 거라고.
그야, 연습하는 모습과 리허설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 말이다.
스윽.
바로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단비음악대의 첫 축가를 남겨놓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까.
벌써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툭.
촬영을 시작함과 동시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런 게 잘 키운 제자 하나가 열 아들 안 부럽다는 말의 실제 사례죠?”
응? 무슨 말이지?
갑자기 웬 뜬금없는 말인가 했더니 여기서 잘 키운 제자가 나였다.
“잘 키운 제자가 초록님이 돼서 결혼식 날 단비음악대의 축가를 듣게 됐으니까요! 아마 이 순간 신랑분은 무척 뿌듯함이 들 거 같은데요. 신부도 마찬가지고요. 벌써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네요.”
그 말대로 신랑신부의 눈에서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하객들도 마찬가지고.
등장만으로 결혼식장의 분위기를 한껏 더 끌어올린 연두였다.
“아, 참! 축가를 시작하기 전에 신랑신부한테 전할 말씀이 있는데요!”
다행이다.
혹시 깜빡할까 봐 걱정했는데.
내가 사회자에게 몰래 전한 이야기가 있었다.
축가의 즐거움을 한층 더할 특별한 요청이.
“초록님의 부탁입니다. 아이들이 부르는 축가에 맞춰 신랑신부는 노랫말에 맞는 연기를 해 줬으면 좋겠다고요.”
“예, 예?”
커다랗게 눈이 확장된 홍수찬선생님.
그럴 만도 했다.
수찬쌤은 이미 아이들이 부를 곡이 뭔지 알고 있었으니까.
“주, 주원이 너!!”
“흐흐.”
선생님은 뭐라 말하려다 체념한 듯 입을 다문다.
옆에 있는 신부는 마냥 재밌는 표정이다.
이유는 짐작이 갔다. 메리미는 남자가 여자를 향해 부르는 노랫말이니까.
‘흐음. 너무 안심하기는 이르신데.’
그렇다고 신부가 활약할 부분이 없는 건 아닐 테니 말이다.
뭐, 그래야 더 재밌겠지.
나야 여기서 팝콘 먹는 기분으로 즐기면 되는 일이었다.
“와, 이주원 설계 봐.”
“꿀잼이겠다. 수찬쌤의 연기라니, 킥킥.”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냐?”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어지는 사회자의 말.
“그럼 바로 들어보도록 하죠! 단비음악대가 부르는 메리 미!”
환호 속에 단비음악대의 축가가 시작됐다.
***
“푸르르르.”
축가에 앞서 여기저기서 터진 웃음.
모두를 웃게 만든 건 다름아닌 시은이의 입에서 나오는 프로펠러 소리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등장한 입 풀기.
문제는 그걸 마이크에 대고 해 버렸다는 거다.
‘스승을 잘 뒀어.’
주연이가 정말 좋은 걸 알려줬다.
그 꿀팁 덕에 웃은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특히나 다른 누구도 아닌 시은이가 그러니까 훨씬 재미있었다.
화악.
막상 시은이는 화들짝 놀라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는 어쩔 줄 몰라하며 얼굴을 붉힌다.
아무 생각 없이 마이크에 대고 한 모양이다.
웃기네. 아까는 전혀 긴장 안 하더니 목 풀고 저렇게 쑥스러워하는 게.
“큼. 크흠.”
목을 가다듬고는 다시 마이크 앞에 서는 시은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린 채로 입을 움직인다.
전혀 안 들리지만 귓가에 계속 맴도는 거 같았다.
푸르르. 푸르르르.
중독성 있는 그 소리가.
한편 시은이가 입을 푸는 동안 연두와 레나는 손가락을 풀고 있었다.
연두의 손은 건반 위를, 레나의 손은 바이올린 현 위를 움직인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스윽.
셋이서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러 번 본 장면이라 저게 뜻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였다.
달리 말하면 이제 무대를 시작할 거라는 뜻.
타이밍을 맞추는 건 시은이의 카운트다운이었다.
“하나, 둘, 셋!”
그와 동시에 피아노 연주가 시작됐다.
건반 위를 춤추는 연두의 손.
차분하면서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피아노 선율이 귀를 타고 들어온다.
뚜둔. 뚠.
놀란 표정의 하객들.
단비음악대 콘서트 이후로도 짧은 시간 동안 상당한 발전을 이뤘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이윽고 섞여들었다.
활을 잡은 레나의 손이 만들어내는 바이올린 소리가.
“와..”
“대박. 나 소름돋았어.”
“바이올린 소리 섞일 때 진짜 미쳤다. 왜 저렇게 잘해?”
“인생은 불공평해…흑.”
수찬쌤과 신부 최정윤도 반쯤 입을 벌리고 무대를 바라본다.
허나 아직 놀라기는 이르다.
세 번째 소리는 아직 등장하지도 않은 상태니까.
그 소리가 뭐냐고? 바로 시은이의 목소리였다.
“비 내리는 날엔~ 우산이 돼 주고~ ♪”
듣는 순간 확신했다.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고.
기본적으로 연주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신랑과 신부를 향하는 구조였다.
가사에 따라 수찬쌤이 움직였다.
“흐흐.”
처음부터 꿀잼이었다.
우산이 없는데 우산이 되어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간단했다.
스윽.
커다란 두 팔을 들어 신부의 위를 감싸는 수찬쌤.
진짜 우산이 된 느낌이다.
주연이의 표현에 따르면 귀족 영애를 지키는 호위무사가 된 느낌.
자연히 하객석에서는 웃음과 함께 환호가 쏟아졌다.
“와!”
“멋있다!”
“홍수찬! 홍수찬!”
발라드이기에 무대 퀄리티와 관계없이 다소 따분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첫 소절만 들어도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지는 시은이의 노래.
“어둠이 오면 빛이 돼 줄게~ ♪”
“…?”
수찬쌤의 표정에 멘붕이 떠오른다.
‘아니, 이건 어떻게 표현해?’라고 말하는 눈빛이다.
허나 그냥 넘길 수는 없는 노릇.
샤랄라.
귀여운 손동작으로 반짝이는 걸 표현한다.
그 앙증맞은 수찬쌤의 모습에 우리 테이블을 포함해 모든 하객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뭐야! 귀여워!”
“수찬쌤 귀엽다고 생각하는 거 처음이야.”
“완전 열심히 하시네, 큭큭.”
생각 이상으로 핫한 반응이었다.
기본적으로 메리미의 가사는 신랑이 신부를 향해 전하는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프러포즈 형식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지금의 축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대신 해 주는 거지.’
사제관계라 그런지 몰라도 수찬쌤은 나 못지않은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차이는 있다.
학창시절을 더듬어 보면 수찬쌤은 나와는 달리 파워보컬이었다.
문제는 파워만 있다는 거고.
‘파워를 제외한 모든 게 없지.’
과장이 아니라 다른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비유하자면 도라이몽의 퉁퉁이식 보컬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왜 노래를 불렀냐고?
징벌.
선생님의 노래는 특정 상황에서만 등장했다.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징벌의 용도로.
노래 한 곡을 듣고 나면 놀랍게도 나를 포함한 친구들의 집중력이 향상되곤 했다.
‘아무리 그런 효과가 있다고는 해도.’
결혼식장에 온 하객들에게 징벌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따라서 결정했다.
선생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세레나데를 연시레가 대신 전하기로.
꼬옥.
효과는 확실한 듯했다.
꼭 마주잡은 수찬쌤과 정윤쌤의 손.
노래가 진행됨에 따라 둘은 애틋한 표정으로 눈을 맞췄다.
‘그래. 이거지.’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연두와 레나도 중간중간에 타이밍을 맞춰 목소리를 섞었다.
“잠에 들 때까지~ 머릴 만져줄께~ ♪”
“니가 두려을 때마다 꼭 옆에 있서줄게~ ♪”
확실히 중간중간에 섞이는 연두와 레나의 목소리가 듣는 맛을 더해줬다.
아이들도 완전히 즐기는 모습이었다.
무대를 즐기는 하객들과, 눈앞에서 가사에 맞춰 연기하는 신랑 신부를 보며.
한편 슬슬 신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됐다.
“어, 어떡해..”
어쩔 줄 몰라하며 중얼거리다가,
“코오..”
“무서워..”
가사에 맞춰 잠에 든 연기와 무서운 연기를 한다.
부끄러움 가득한 표정으로.
수찬쌤은 그런 신부의 머리를 만져주고 옆에서 토닥이며 위로해준다.
이 모든 게 축가 한 곡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완벽하네.’
주인공인 신랑신부, 타이밍에 맞춰 무대를 뽐내는 연시레, 그리고 이 순간을 한껏 즐기는 하객들까지.
삼박자가 완벽한 축하 무대였다.
***
어느새 들어선 하이라이트.
점점 고조되는 감정과 노랫말에 따라 신랑신부가 해야 하는 연기도 더욱 고조됐다.
예식장 내부 분위기도 최고로 달아올랐고.
연시레가 동시에 마이크를 입에 댔다.
“메리 미~ 내 손 잡아줄래요~ ♪”
그에 따라 수찬쌤은 신부의 앞에 손을 내밀었다.
수줍은 표정으로 신부가 그 손을 맞잡았고.
“와아! 예쁘다!”
“멋지다!”
“더 꽉 잡아라! 포옹해! 포옹해!”
과몰입해서 한참 앞서가는 하객도 있었다.
그만큼 연시레가 부르는 축가가 달콤하다는 뜻 아닐까.
심지어 양측 부모님들까지 잔뜩 신이 나서 무대를 관람하고 있다.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메리 미~ 나와 평생 함께할래요~ ♪”
평생 함께하자.
추상적인 노랫말인 만큼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갈등하는 수찬쌤의 표정.
결심한 듯 맞잡은 손을 놓더니 두 팔을 벌려 신부를 품에 안는다.
“..!”
토끼눈이 되는 신부.
지켜보던 나 역시 무척 놀랐다.
평생 함께하자는 노랫말을 포옹으로 표현할 줄이야.
쏟아지는 열렬한 환호.
그대로 포옹한 채로 다음 가사가 이어졌다.
“남은 나의 모든 삶~ 오직 그대 남자로 살고 시퍼요~ ♪”
그제야 수찬쌤은 팔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음 자세를 준비하는 걸까.
그럴 만도 한 게, 이제 남은 가사는 한 소절뿐이었다.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가사.’
마지막 가사인 만큼 한 템포를 쉬고 서로 눈을 맞추는 연시레.
반짝이는 눈으로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 세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달콤한 노랫말이.
“메리 미 달링~ 나랑 결혼해 줄래요~”
프러포즈 멘트로 장식하는 노래의 끝.
그와 동시에 수찬쌤이 천천히 한쪽 다리를 굽혔다.
그리고 신부와 눈을 맞춘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찬쌤이었다.
모두가 떠올리는 프러포즈 자세.
앉은 채로 신랑이 내민 손을 신부는 환한 미소를 띠며 잡아서 일으킨다.
짝. 짝. 짝.
“와아!!”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쏟아지는 함성과 박수 소리.
이후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어디선가 터져나온 말을 시작으로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외치기 시작한 거다.
“뽀뽀해!”
뽀뽀라는 단어는 곧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단어로 변했다.
“키스해! 키스해! 키스해!”
사실 이런 식으로 애정표현을 강요하는 건 별로 좋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아니었다.
‘강요가 아니니까.’
확신할 수 있었다.
어쩌면 하객들이 이러지 않았더라도 신랑 신부가 입을 맞췄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축가를 통해 달아오른 애틋한 분위기였다.
“헤헤..”
“뽀뽀해! 뽀뽀해!”
어느새 연시레도 관객 모드로 전환한 상태.
괜히 부럽네.
가장 명당자리에서 지켜보는 게.
‘뭐, 그럴 만 하지.’
최고의 무대를 보여줬으니 자격은 충분했다.
한참동안 눈을 맞추는 신랑과 신부.
놀랍게도 먼저 용기를 낸 건 신랑이 아닌 신부 측이었다.
사뿐.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간 신부.
그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바보였다.
그리고 내가 아는 수찬쌤은 그런 바보가 아니다.
스윽.
두 입술이 맞닿았다.
그렇게 맞닿은 입술은 꽤나 긴 시간 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단비음악대의 축가가 이끌어 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