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13)
613화. 보금자리
삐돌이 연두. 뒤를 천천히 따라간다.
원래 이럴 때는 기분이 풀릴 때까지 조금은 그대로 두는 게 상책이다.
얼마나 걸어갔을까.
‘아니, 이렇게 말하면 엄청 많이 걸어간 거 같잖아.’
실상은 스무 걸음 정도다.
그마저도 연두 보폭이라 내게는 열 걸음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연두가 살짝 뒤를 돌아본다.
슥.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홱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나는 봤다.
찰나의 순간에 스치는 안심하는 연두의 표정을.
“.. 흐흣.”
최대한 소리를 죽여 웃었다.
삐진 와중에도 뒤를 돌아보면 내가 없을까 봐 불안했던 모양이다.
이제 타이밍이었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포인트가 있었다.
‘볼록하네.’
뒤에서 보니 평소에 비해 훨씬 더 책가방이 볼록했다.
살그머니 다가가서 말했다.
“연두야.”
“.. 네에.”
“책가방 무거워 보이는데. 아빠가 들어줄까?”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다.
“괜찮아여.”
“아빠가 안 괜찮아서 그래. 무거운 거 들면 키도 많이 안 큰다?”
“.. 진짜요?”
“그럼, 진짜지.”
그사이 나는 책가방을 쏙 빼냈다.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무게가 더 나가서.
“크흠..”
그렇다고 티를 낼 수는 없지.
아무렇지 않은 듯 책가방을 한쪽 어깨에 둘러메며 자연스레 말했다.
“이렇게 무거우면 아빠한테 얘기했어야지.”
문득 떠오른다.
아까 나를 보자마자 해맑게 웃으며 달려오던 연두의 모습이.
…… 무거웠을 텐데.
나에 대한 반가움이 그만큼 컸나 보다.
“아빠..”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많이 무거워여..?”
“아빠는 하나도 안 무거워. 아니, 무거울 수가 없지.”
“왜요?”
“우리 딸 책가방이니까.”
일부러 강조했다.
아까 연두를 꺄르르 웃게 만들었던 ‘우리 딸’이라는 호칭을.
그래서일까.
순간 진동하는 연두의 입꼬리가 보인다.
“그럼 갈까?”
“네에.”
이번에는 나란히 걸어간다.
표정을 보니 기분이 어느 정도는 풀린 거 같다.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근데 연두야.”
“네.”
“오늘따라 우리 딸 책가방이 왜 이렇게 무겁지? 안에 뭐가 들었길래.”
“책이요.”
“책?”
“네. 도서실에서 책 빌렸어요..!”
뜻밖의 얘기였다.
숙제가 많다거나 할 줄 알았는데.
“호오, 기대되는데? 연두가 빌린 책이 뭘지.”
“헤헤.”
좋아.
기분은 완전히 풀린 거 같다.
여기서 그 얘기까지 하면 완전히 돌아오겠군.
“연두야.”
“네.”
“아빠가 이제 작화팀을 만들잖아. 그런데……”
차근차근 알기 쉽게 설명해줬다.
팀원들과 함께 첫 번째로 주연이 앨범 아트를 그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
질문이 꼬리의 꼬리를 물긴 했다.
타이틀곡이 뭔지, 수록곡이 뭔지, 앨범이 뭔지, 앨범 아트가 뭔지 등등.
“…… 아빠가 연두튜브 채널아트 그렸던 거 기억하지?”
“네에.”
“앨범 아트도 비슷한 거야. 주연이언니가 만든 노래나 앨범 안에 있는 노래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거지.”
“아!”
전혀 귀찮지는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
연두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주는 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지 오래니까.
“그럼.. 봄꽃도 그리는 거에요..?”
봄꽃.
연두가 뮤즈인 주연이 자작곡이다.
수록곡 중 하나로 들어간다고 했으니, 작업 범위 안에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진짜.. 진짜 예쁘겠다…”
“하하, 그래?”
“네.”
그럴 만도 하다.
나 역시 가장 기대감을 갖고 있는 파트였으니까.
다만, 할 얘기가 있다.
“근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야.”
“.. 으응?”
“이건 아빠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랑 같이하는 거니까. 이 일을 할지 말지 의논이 필요하거든.”
“의논이여..?”
“응. 그러니까 조별 과제 같은 거지.”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에 나는 빙긋 웃으며 덧붙였다.
“저번에 우영이오빠 학교에 갔을 때 기억해?”
“네.”
“그때 하던 게 조별 과제야. 팀원들끼리 힘을 합쳐서 일을 해내는 거. 연두도 나중에 하게 될 테고.”
꼭 대학생만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동아리 활동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었다.
마침 또 하나의 좋은 예가 떠오른다.
“단비음악대도 마찬가지야. 연두 혼자 연주하는 게 아니라 시은이, 레나, 유리랑 힘을 합쳐서 연주하는 거니까. 어떤 곡을 연주할지도 같이 정하고.”
이제야 연두는 완전히 납득한 거 같았다.
대화는 쭉 이어졌다.
자연스레 전환된 화제, 그 속에서 연두가 말했다.
“.. 보고 싶어요.”
“응?”
“아빠 작화팀, 연두도 보고 싶어여!”
집에 도착했을 때 들려온 말이었다.
***
“아빠 작화팀, 연두도 보고 싶어여!”
여기서 작화팀은 출근하게 될 회사를 말했다.
이어지는 말.
“다 같이 보러 가요!”
내일 연두를 데려다주고 인테리어가 끝난 회사를 보러 가는 게 원래 계획이었다.
그럼 의문이 들겠지.
기한이 오늘까지인데 답변은 어떻게 줄 거냐고.
‘단톡방.’
만나서 의논하는 건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해서 단톡방으로 공유하려 했다.
원래 그런 용도로 만든 거니까.
얼굴을 보며 얘기하는 것보다는 덜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연두의 말을 들으니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직 이른 시간이야.’
인테리어는 끝났다.
꼭 확인을 혼자 하러 갈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단톡방을 통해 회사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던 팀원들이었고.
그렇다면 명분은 충분하다.
“고마워, 연두야.”
“…?”
고개를 갸웃하는 연두를 두고 핸드폰을 꺼냈다.
단톡방에 들어갔다.
[스튜디오 초록]물론 작화팀 단톡방이었다.
이주원 : 여러분
아직은 어색하다.
팀원들을 통틀어 부르는 호칭이.
하나둘 답하는 팀원들에게 간단히 안부를 건네고 본론을 꺼냈다.
이주원 : 다름이 아니라, 오늘로 회사 인테리어가 끝나서요. 저는 오늘 확인차 들러볼 생각이고요.
최표식 : 오, 정말인가요?
유하나 : 드디어.. 이제 출근하는 일만 남았네요… 두근두근
다들 한 마디씩 건넨다.
배경은 충분히 깔았으니 뜸을 들일 이유는 없었다.
이주원 : 시간이 되는 분에 한해서 같이 구경 가는 게 어떨까요? 얼굴을 보고 전달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요.
바로 덧붙였다.
일정이 있으면 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더불어, 전달사항은 단톡방에도 공유할 거라는 말까지.
당연했다.
이유가 뭐든 간에 일정에 대한 존중은 필요했다.
유하나 : 헉.. 저도 해당되는 얘긴가요?
이주원 : 물론이죠.
생각할 것도 없는 물음이었다.
작화가든 경리든 하는 일이 다를 뿐, 작화팀의 일원이라는 점에서는 같으니까.
행복 가득한 연두부콘.
유하나를 시작으로 하나둘 채팅이 올라왔다.
최표식 : 마침 무료함과 싸우던 중이었는데.. 좋네요.
이렇게 두 명.
다음으로 나타난 건 한경우였다.
한경우 : 바로 시동 걸면 되나요, 대장님?
서도연 : 차 없잖아요, 경우님.
한경우 : 자전거 말한 건데요. 자전거 무시하시는 건가요, 도연님?
실제로 본 모습 그대로다.
차이점이라면 단톡방 안에서는 존댓말로 투닥거린다는 것.
한경우 : 그래서 도연님은 오실 건가요?
서도연 : 네. 일정이 없어서요.
어쩌다 보니 벌써 네 명에게 올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예상과는 다른 흐름이네.
당일에 꺼내는 얘기인 만큼, 기껏해야 절반 정도가 오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제 남은 사람은 하나였다.
선우영 : 좀 늦을 수도 있어요. 오후 수업 끝나고 가는 거라.
이렇게 확정됐다.
작화팀 완전체의 비공식 첫 출근이.
***
주원이 모르는 게 있었다.
모두가 일정에 차질이 없는 건 아니었다.
“.. 읏.”
신음을 뱉는 작화팀 일원 중 하나.
다름 아닌 서도연이었다.
얼음보다 차가운 숟가락을 눈에 대고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미쳤어, 미쳤어..’
살면서 이렇다 할 일탈을 해본 적 없는 그녀였다.
어젯밤이었다.
그런 그녀가 일탈을 한 건.
출근을 이틀 앞두고 싱숭생숭한 마음에 늦은 시간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기대가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해서.
꼬르륵.
그러다 보니 배가 신호를 보냈다.
평소와 다른 패턴이었다.
원래라면 잠이 들어 배가 고픈지도 모를 시간이었으니까.
보글. 보글.
결국 라면을 끓였다.
후루룩.
처음 알았다.
라면이 그렇게 맛있는 음식인지.
순식간에 하나를 해치운 도연은 못 참고 한 봉지를 더 뜯었다.
‘.. 괜찮겠지?’
갈등이 되긴 했다.
야심한 새벽에 라면 두 봉지는 도연에게 있어서는 꽤나 큰 일탈이었으니까.
생각 끝에 그녀는 라면을 퐁당 빠트렸다.
‘출근은 이틀 후야.’
지금 먹는 라면이 이틀 후까지 영향을 주지는 않을 거 같았다.
워낙 마른 편이기도 하고.
그렇게 하나를 더 먹은 게 실수였다.
“..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구.”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탱탱 부은 얼굴을 보는 건.
과장을 좀 섞자면 평소보다 두 배는 부풀어 오른 거 같았다.
눈은 두 배로 작아졌고.
‘지금이라도 못 간다고 할까?’
휙휙 고개를 저었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사태를 파악하기 전에 보낸 메시지.
서도연 : 네. 일정이 없어서요.
번복할 수는 없었다.
사실대로 말할 수도 없고, 없는 말을 지어내서 그러기는 더더욱 싫다.
무엇보다도 가고 싶었다.
팀원들이 처음으로 한데 모이는 자리에 혼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 가라앉을 거야.”
그렇게 되뇌며 도연은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문득 드는 생각.
‘왜 이렇게 신경 쓰고 있지?’
말 그대로다.
학교에서는 밤잠을 설치면서도 한 번도 외모에 신경 쓴 적은 없었다.
딱히 잘 보일 사람도 없었고.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던 도연은 어느 순간 납득했다.
‘지금은 있구나. 잘 보일 사람.’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학교와 달리 지금은 직장 동료를 만나러 가는 상황이다.
구면도 있지만 초면도 있다.
더군다나 그중에는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작화가도 있었다.
별다른 망설임 없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작화팀에 들어가기로 한 이유.
그것도 사실상 그 한 사람 때문이었고.
‘당연하네.’
신경쓰는 건 지극히 당연했다.
좋은 첫인상을 남기고 싶은 건 누구든 마찬가지일 테니.
그렇게 납득한 도연은 다시 숟가락을 눈가에 댔다.
“.. 악.”
일탈의 대가는 컸다.
***
차를 타고 이동했다.
작화팀 위치는 여러 요소를 고려해서 결정했다.
교통편, 주변 시설 및 편의성, 그리고 여러 회사들과의 접근성까지.
‘가장 중요한 건 접근성이지.’
특히 작화팀에 있어서는 그랬다.
자체적으로 완성품을 제작하는 게 아닌, 협업을 통해 일하는 게 작화팀의 업무 방식이니까.
따라서 다른 회사들과의 연계가 원활해야 했다.
그런 요소들을 전부 고려하여 정한 위치였다.
“어, 저기 서 있네요. 서도연.. 아니, 도연님.”
호칭도 정리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한경우 말대로 서도연이 오른쪽 도로에 서 있었다.
앞에 정차한 뒤 말했다.
“타세요, 도연씨.”
“.. 네.”
왜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을 가리고 꾸벅 인사하며 뒷자리에 탄다.
“안녕, 연두야..”
“안녕하세여, 도연언니!”
“응.”
한경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묻는다.
“저기, 도연님.”
“네.”
“근데 왜 얼굴을 꽁꽁 싸매고 계세요?”
“…”
대답이 없자 알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말한다.
“아! 그런 거구나!”
“네?”
“왕여드름 하나 올라오신 거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봐 봐요. 팀 동료인데, 뭐.”
왠지 모르겠지만 동건이가 겹쳐 보인다.
“볼이에요? 아니, 코인가? 설마 인중은 아니죠? 으.. 거긴 진짜 아픈데…”
“…… 경우님.”
여전히 얼굴을 가린 채로 서도연이 한경우의 귀에 대고 뭐라 뭐라 속삭인다.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다.
다만, 얼어붙은 한경우의 표정이 백미러로 보였을 뿐.
그 뒤로 차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끼익.
얼마 뒤 도착한 목적지.
나머지 두 명은 거리가 가까워 따로 오기로 한 참이었다.
우영이는 조금 늦는다고 했고.
주차를 끝내고 차에서 내렸다.
“여기인가요, 초록님?”
“네, 맞아요.”
팀원들과 달리 나는 몇 번 와 본 장소이다.
그런데도 떨렸다.
혼자가 아니라 그런지, 정말 시작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떻게.. 조금 기다렸다 같이 들어갈까요?”
“네.”
한경우가 씩 웃으며 말을 받는다.
“의리가 있으니까요!”
“하하, 그렇죠.”
유하나와 최표식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헉, 죄송해요. 늦었죠..”
“아뇨. 우리도 방금 도착했어요.”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완전체는 아니지만 우영이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한데 모였다.
참, 연두도 빼놓을 수는 없지.
“…”
반짝이는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엄청 기대하고 있다는 걸.
여기서 더 뜸을 들이는 건 상도덕이 아니지.
“그럼 들어가 볼까요?”
“네!”
스르륵.
좌우로 열리는 문.
드디어 작화팀 ‘스튜디오 초록’의 보금자리 입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