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ome a Fool When It Comes to My Daughter RAW novel - Chapter (641)
641화. 악몽
한동안은 웃음이 나왔다.
술주정을 하던 우영이의 모습이 떠올라서.
“.. 귀여운 자식.”
앞으로 우영이 속마음을 듣고 싶으면 술을 먹이면 될 거 같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세 잔만.
이번에 이런 일이 있었으니 조심하지 않겠냐고?
‘다 방법이 있지.’
간단하다.
승부욕을 자극하며 살살 긁어주면 넘어오게 되어있었다.
물론 한 번씩 써야겠지.
시도 때도 없이 흑역사를 만드는 건 잔인하니까.
언젠가 또 한 번 우영이의 취중진담을 듣고 싶은 최적의 타이밍이 올 터였다.
그때는 공평하게 나도 취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네.
부릉.
차에 탄 나는 운전대를 잡고 액셀을 밟았다.
목적지는 월이네 집이었다.
다소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월이 어머님이 말씀하신 것보다는 이른 시간이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이 됐다.
‘잘 있겠지?’
꼭 연두만 해당하는 의문은 아니었다.
연시레.
월이 계획대로 세 아이가 잘 화해했을지가 관건이었다.
‘어떠려나.’
궁금했다.
도착했을 때 어떤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지.
사실 그랬다. 화해를 시키려면 진작에 얼마든지 시킬 수 있었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인 내가 나서서 화해를 종용하는 것보다는, 아이들 스스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으니까.
세연씨 생각도 마찬가지였고.
끼익.
차에서 내린 나는 월이네 집을 향해 걸어갔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벨을 누르자 나온 건 아이들이 아닌 월이 어머님이었다.
“어머, 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까 인사를 드리고 갔어야 하는데 못 드렸네요.”
“아니에요. 월이 요 가시나가……”
이미 정황을 다 알고 계셨다.
월이가 왜 그런 건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고 계신 거 같지만.
빙긋 웃으며 나는 말했다.
“월이가 생각이 깊더라구요.”
“네?”
“다행이에요. 연두가 월이처럼 예쁜 마음을 가진 친구를 사귀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녀는 대답했다.
“고, 고마워요.”
“저야말로 너무 감사하죠. 다음번에는 제가 집으로 초대할게요.”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 차례였다.
“아이들은 잘 있었나요?”
내 물음에 그녀가 뭐라 입을 떼려는 참이었다.
들려오는 인기척.
그에 따라 고개를 돌리니 눈에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연두였다.
“.. 아빠?”
놀란 나는 살짝 입을 벌린 채로 물었다.
“울었어, 연두야?”
“…”
뜨끔한 듯 몸을 한차례 들썩이더니 어색하게 고개를 휙휙 저으며 답한다.
“안 울었어요..!”
울었구나.
그것도 아주 펑펑 운 거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눈이 저렇게 탱탱 부었을 리가 없지.
‘왜 울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딸이 울었다는 걸 안다면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지금은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어지는 장면에 나는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 안녕하세요.”
잇달아 등장한 시은이.
시선을 내리니 연두의 손을 꼬옥 잡고 있다.
꽤나 오랜만에 보는 거 같네, 이 장면.
“안녕, 시은아.”
“.. 아저시!”
레나도 빠지면 섭했다.
꼭 잡고 있는 연두와 시은이의 손을 보더니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한다.
“서운해!”
“.. 으응?”
동공지진이 일어난 연두.
나는 알 수 있었다.
서운하다고 얘기하는 레나의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잔뜩 묻어난다는 걸.
“둘만 손잡고! 나도 손잡고 싶어!”
그러고선 마치 자랑하듯이 나를 보며 말한다.
“이제 서운한 거 있으면 다 말하기로 했서요!”
뭔가 했더니.
서운한 걸 아무렇지 않게 어필하는 자신의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연두와 시은이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레, 레나도 여기 손잡아..!”
“그렇다고 아무거나 다 서운하고 말하는 건 안 돼, 레나야.”
오구오구해주는 타입의 연두와 논리정연한 타입의 시은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나는 잔뜩 신이 난 상태였다.
“그럼 난 여기!”
“.. 앗!”
레나가 파고든 건 연두와 시은이 사이였다.
떼어진 손.
“히히.”
양쪽으로 둘의 손을 잡은 레나가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음 짓는다.
그 뒤에 들려오는 시은이의 말이 웃음포인트였다.
“.. 서운해.”
“응?”
“레나가 그러면 나랑 연두는 손 못 잡잖아.”
아무거나 다 서운하다고 말하는 건 안 된다더니, 연두랑 손을 못 잡게 되는 건 아무거나가 아닌 모양이다.
…… 미치겠네.
애써 웃음을 참으며 나는 말했다.
“그럼 방법이 있지.”
“네?”
“자, 이렇게 연두가 이쪽으로 오고 시은이가 이쪽으로 오면.”
둥글게 둥글게.
절로 그 노래를 연상케 하는 포즈가 만들어졌다.
노래만 잘했으면 불렀다, 진짜.
“이, 이게 뭐예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걸 보니 나름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어쨌거나 확실해졌다.
세 아이는 완벽하게 화해한 거 같았다.
‘더 애틋해진 기분도 들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그 속담처럼 이 일을 계기로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더 알게 되지 않았을까.
“헤헤..”
연두도 세상 밝은 미소로 돌아왔다.
다행이네.
숨겨진 일등공신인 월이는 어디 있냐고 물어보려는 참이었다.
“아저씨.”
시은이의 말.
고개를 돌리니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조금은 수줍은 얼굴로.
“응, 시은아.”
열릴 듯 말 듯.
몇 차례 망설이던 입술 사이가 마침내 열렸다.
“.. 축하해요.”
“응?”
“작화팀.. 대박.”
“푸흣.”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망설이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축하인사였다니.
어감도 재미있다.
‘연두가 알려준 건가.’
작화팀 대박.
그 짧은 축하 인사가 무척이나 귀여우면서도 고마웠다.
가까스로 웃음을 멈춘 나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입을 뗐다.
“고마워, 시은아.”
너무 대놓고 웃어서인지 아직도 표정에서 수줍음이 안 가셨다.
나는 넌지시 덧붙였다.
“그리고 아저씨도 축하해.”
“.. 네?”
“대박 화해.”
다시금 더 단단하게 뭉친 연시레였다.
***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일등공신은 월이 하나가 아니었다.
지우와 하연이도 있었으니까.
‘설마 합동작전이었을 줄이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꾸만 혼자서 쿡쿡 웃는 연두를 향해 나는 말했다.
“그렇게 좋아, 연두야?”
“네에.”
“다행이네. 잘 화해한 거 같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한다.
“아빠 말이 맞았어요!”
“응?”
“시은이는 연두를 싫어하게 되지 않았어요.. 연두가 시은이 좋아하는 것처럼.. 시은이도……”
말하는 도중에도 좋은지 멈추고 쿡쿡 웃는다.
나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연두야.”
“네, 아빠.”
“친구들이 도와준 걸 알았을 때는 어땠어?”
“고마웠어여! 그래서……”
그러다 불쑥 연두는 무언가 떠오른 듯 말한다.
“아빠.”
“응, 연두야.”
“친구들이 안 도와줬으면.. 시은이랑 레나랑 화해 못 했어요..?”
어미가 조금 안 맞긴 하지만 ‘못 했을까요?’라고 묻는 거 같았다.
조금 놀랐다.
이 정도로 깊게 가정해서 생각하는 걸 보고.
살짝 풀 죽은 듯이 덧붙인다.
“연두한테 서운한 것도.. 몰랐는데…”
가정이긴 해도 화해하지 못했을 걸 생각하니 속상한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다행히 해줄 말이 있었다.
“연두야.”
“.. 네.”
“친구들이 왜 연두를 도와줬을 거라고 생각해?”
살며시 고개를 드는 연두.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뒤에 나는 재차 입을 뗐다.
“연두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런 거야.”
“.. 연두가요?”
“응. 지우한테도, 하연이한테도, 월이한테도 연두가 소중한 친구라서 그런 거지. 그래서 도와달라 말하지 않아도 도와주고 싶은 거고.”
놀이터에서 혼자 있던 지우에게 손을 내밀었던 것, 하연이의 토를 치워줬던 것, 스스럼없이 월이에게 다가갔던 것.
그런 장면들이 모여서 돌아온 거다.
아무래도 연두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뭐, 그래서겠지.’
연두는 그런 아이였다.
딱히 의식하지 않고도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줄 아는 아이.
그렇다면 굳이 의식시켜 줄 필요는 없겠지.
“친구들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그 후에는 연두도 솔직하게 얘기했지? 연두가 한 생각들을.”
“네..”
“그럼 된 거야.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솔직할 수 있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거든.”
“용기요?”
“응.”
“시은이랑 레나도 솔직했어요!”
“그래. 그래서 연두랑 시은이랑 레나가 최고로 멋있는 거지.”
“.. 흣.”
되게 좋아하네.
요즘은 예쁘다는 말만큼이나 멋지다는 말도 좋아하는 거 같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한다.
“아빠.”
“응.”
“아빠도 싸웠어요. 학교 다닐 때.”
물음이 아닌 평서문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내가 최서아라는 여자애와 다툰 적이 있다는 걸 연두도 알고 있으니.
그와 별개로 갑작스러운 언급에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 그랬지.”
“아빠는 친구들이 안 도와줬어여? 화해…”
“…”
말문이 막혔다.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앞서 내가 한 말이 자충수가 되어 돌아오는 셈이다.
나는 ‘도와주고 싶지 않은 친구’가 되는 거니까.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고.’
친구들은 도와주려 했다.
내가 괜한 자존심에 도움의 손길을 전부 뿌리쳤을 뿐이지.
결국 나는 대답했다.
“아니. 아빠도 좋은 친구들이 많았거든.”
내 이미지를 위해 친구들을 매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팩트에 기반한 거라면 모를까.
“.. 근데 왜 화해 못 했어요?”
세상 순수한 연두의 물음이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힌다.
지금까지 못 했으면 어쩔 뻔했냐, 진짜.
“그때는 아빠가 좀 어렸어. 친구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내팽개칠 정도로.”
“몇 살이었는데여?”
“열일곱 살.”
눈이 동그래진 연두가 말한다.
“안 어려요!”
“하하, 꼭 나이가 많다고 어리지 않은 건 아니야. 정신연령이라는 게 있거든.”
우영이를 예로 들려다가 그만뒀다.
이미 나부터 훌륭한 예시인데 다른 사람이 왜 필요하겠는가.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그러니까 여덟 살인 연두가, 열일곱 살이었던 아빠보다 훨씬 멋있는 거지.”
이번에는 멋있다는 말에도 웃지 않는다.
인정하기 싫다는 듯이.
얼마간 꾹 다물고 있던 입술 사이가 떨어지며 들려오는 말.
“그래도.. 괜찮아여!”
“응?”
“스물여덜 쌀의 아빠는 최고로 멋지니까..!”
단호한 표정.
그 표정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딸에게 이런 말을 들을 정도면, 스물여덟의 나는 정말로 조금은 멋진 녀석이 아닐까 하고.
“.. 고마워, 연두야.”
장난스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아빠가 보기에 여덟 살의 연두는 두 번째로 예쁜 거 같아. 흐으, 아쉽다. 첫 번째는 이길 수가 없겠네.”
백미러를 통해 서운함이 담긴 뾰로통한 표정이 들어온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하긴 하지만.
“처, 첫 번째는요..?”
“아홉 살의 연두.”
“.. 으응?”
“여덟 살의 연두도 엄청 예쁘긴 한데, 내년의 연두는 더 더 예쁠 거 같으니까.”
잠깐 멍한 표정을 짓던 연두가 말뜻을 알아듣고서 세상 환하게 웃음 짓는다.
그 웃음을 보고 또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연두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예쁘지 않을까 하고.
***
“으으..”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뒤척이던 우영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감각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두통.
기억은 안 나지만 무언가 좋지 않은 꿈을 꾼 거 같았다.
“후우..”
살며시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이 보이는 걸 보니 침대 위였다.
언제 잠들었지?
아직 잠결이라 그런지 기억이 모호했다.
어쩌다 잠든 건지부터, 어제 뭘 했는지도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아, 맞다.”
떠올랐다.
첫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소고기를 먹고 가볍게 한잔하기로 한 다음에……
흠칫.
차근차근 기억을 되새기던 우영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흐릿하던 눈은 또렷해졌다.
곧이어 손을 들어 시선을 봉인한 우영의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짤막한 한 마디.
“.. 미친 새X.”
퍽! 퍽!
난생 첫 이불킥.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좋았을 기억의 파편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악몽을 꾼 게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이, 우영에게는 악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