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Die RAW novel - chapter 61
‘내게도 저런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왠지 사랑을 피하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현은 거기에 여러 가지 정보를 말해주었다.
“여기에 민기 오빠도 있어. 같이 도망 왔거든.”
“진짜? 민기 오빠도? 하긴 같이 촬영했으니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니 좋네.”
하지만 무작정 좋은 건, 아니다.
동시에 허달을 떠올렸다.
‘나름 괜찮은 오빠라고 생각했는데.’
쓰레기가 되었다. 신민기는 어떨까?
‘그래도 여기는 멀쩡해 보이니.’
호텔 같은 이상한 장소는 없을 게 분명하다. 도하연은 다시 웃으며 대화에 참가했다.
조아현은 신입인 그녀에게 대략적인 위치를 설명해주었다.
“각 층 끝에는 샤워실로 개조한 공간이 있고, 보급품은 일주일 단위로 들어와. 식사는 보통 도시락 위주로 주고. 정해진 시간에 받아 가면 돼.”
“철저하네. 시간이 딱딱 정해져 있어.”
호텔 생활과는 다르다. 자유가 있던 그 시절에 비해 이곳은 철저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래도 감염자들이 있는 세상보다는 안전하니까.”
“그래. 그게 어디야. 이렇게 친구랑도 만나고.”
도하연은 다시 아현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딱 그 나이 때에 보는 발랄한 모습. 태희는 흐뭇하게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헬기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거기에 정만도 역시 있었다.
그는 방 배정보다 의무실부터 찾아갔다.
지하 의무실에 누워있는 정민도는 코가 뭉개진 채로 신음하고 있었다.
“아…. 아….”
동현의 매서운 주먹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너무 아파. 죽여 버릴 거야!”
흥분한 정민도의 옆에는 허달이 함께 있었다.
정민도를 살린 이들이 바로 그였다.
“정 차관님. 참으세요. 주변에 사람이 있을 줄이야.”
“야, 허달! 입 닥쳐! 이게 대체…….”
정민도는 누워서 끙끙 앓았다. 점점 숨이 가빠지고 있었다.
“후우. 일단, 그 좆같은 새끼를 날리고. 도하연. 그년 다시 데려와.”
“네?”
허달은 머리를 긁었다. 감정에 치우쳐저 지금 무리수를 남발하고 있었다.
“그 개 같은 놈은 무조건 사과 받고! 책임을 물을 거야.”
“차관님. 그건 좀 힘들어요.”
“야! 허달! 자꾸 이럴 거야? 내가 지금 이러고 있어도 차관이야! 어딜!”
허달은 황급히 일어섰다. 물론, 허달 뿐이 아니었다.
관계자들도 일어섰다.
“아프니까 진통제나 아무거나 갖고 와! 그리고 이도진한테 말해서 호위 병력 좀 붙여달라고 하고!”
관계자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고, 혼자 남은 정민도는 휴대폰을 빼 들었다.
통신이 몇 번 울리고 얼마 후 지아가 통화를 받았다.
“차관님이시군요.”
하지만 왠지 무미건조하다. 통증에 시달리는 정민도는 그걸 눈치 채지 못했다.
“우리 이쁜이 잘 있었어? 어떻게 탈출했나 보네. 다른 애들은?”
“….못 데리고 왔어요.”
“저런! 슬프겠네. 이 오빠가 위로해줄 테니. 아래로 내려올래?”
하지만 대답이 없다.
정민도한테는 처음 있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자기의 말에 바로바로 반응하던 지아가 아니었던가.
“지아야?”
“차관님. 죄송한데 이제 안 될 거 같아요.”
“무슨 소리야?”
정민도는 놀라운 말에 순간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지금 무슨 소리니? 지아야.”
“이제 그만 하죠.”
뚝.
통화는 끊겼다.
정민도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시발! 장난해? 그동안 내 득 본 게! 내가 저딴 애들한테도 무시당해? 내가?”
정민도는 통증을 참으며 움직였다. 두들겨 맞은 충격에 허리부터 삐걱거렸지만, 그보다는 분노가 우선이었다.
“실컷 이용하고! 모른 척하려고? 그러면 안 되지. 너희는 그러면 안 돼. 누가 위인지 확실히 가르쳐주지.”
흥분이 통증을 이겨내고 움직이고 있었다.
동현과 매니저의 판단은 정확했다.
누가 말해주기도 전, 이들은 보급관을 찾아 모포를 얻는 데 성공했다.
동현은 보급관에게 밧줄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밧줄이요? 물론 있는데 왜요?”
“아. 저희가 뭐, 묶을 게 있어서요. 튼튼하고 긴 걸로 하나 주슈.”
동현이 너스레를 떨며 긴 밧줄까지 품에 안았다.
매니저는 보급관 뒤의 라면을 노려보았다.
“부식은 몇 시에 나오죠? 매점은 있나요?”
“물론이죠. 부식은 밤 7시. 매점은 지하층에 있습니다.”
“역시.”
군대에서 이미 다 경험한 것들이다.
동현과 매니저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방 안에 도착하자, 이미 왁자지껄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동현은 웃으면서 그들을 반겼다.
“아니, 어디서 벌써 친구를 사귀었어?”
절로 웃음이 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라는 게 얼마 만인가.
통성명하고 난 뒤, 동현은 박수를 쳤다.
“조아현 씨? 이야! 우리 하연이도 예쁜데, 이거 분위기가 아주 좋네!”
그러다가 ‘웃고만’ 있는 태희와 눈이 마주쳤다.
“뭐니뭐니해도 우리 자기가 이곳을 가장 빛내지.”
“됐네요.”
태희가 혀를 차고, 동현은 금세 달려가 애교 총력전을 펼쳤다.
다시 음료수와 과자로 작은 파티가 시작되었다. 조아현은 바깥을 가리켰다.
“모두 나가서 진지를 조금씩 공사 중이에요. 단순하게 쌓는 것도 있지만 이제 조금씩 소탕작전도 하거든요. 범위를 넓히는 거죠. 보통 군인들이나 자원한 사람들이 앞장서고 저희는 열심히 노가다 하는 거죠.”
도하연은 점점 앞으로 향하는 방어선을 보았다.
1차 방어선, 그 앞에 2차 방어선이 하나둘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넓어지면…. 사람들도 많아지겠다. 감염자로 변한 사람은 없었어?”
“초기에만. 근데 안정적으로 변하니까 이상하게 감염자들이 거의 없더라고. 신기하지?”
“마음이 평온해서인가? 나도 군 관계자들한테 여기가 체계가 잘 잡혔다고 들었거든.”
도하연의 머릿속에는 흥분하며 돌변하는 이들을 떠올렸다.
‘하긴, 흥분할 상황이 없으면 그만큼 줄어들지도.’
과학자도 아니고 그녀가 감염자의 생태를 파악할 수는 없는 일.
과자를 먹고 있는데, 매니저와 동현이 아까부터 밧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뱀이 움직이는 것처럼 기묘한 매듭을 만들었다.
도하연이 의아해했다.
“그게 뭐예요?”
이들은 대답 대신 손을 움직였다. 곧 선 하나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조이자마자 군데군데 매듭이 만들어졌다.
도하연은 절로 박수를 쳤다.
“마술 같아요.”
“이게 탈출할 때, 중간중간 매듭이 없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어. 이렇게 하면 훨씬 잡기 편해.”
동현은 시험 삼아 바깥쪽 창문을 열고 밧줄을 내던졌다. 1층보다 살짝 위까지 내려가는 게 아닌가.
“이거면 충분해.”
그 모습에 조아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탈출이요?”
“만약을 대비한 거야. 혹시 몰라? 포위당할지?”
제주도를 살아온 자만이 느끼는 대비. 도하연 일행은 첫날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모든 인원이 도착한 건, 석양이 진 때였다. 이제 3월 초로 넘어가는 만큼, 날씨가 조금씩은 풀리고 있었다.
도하연은 저녁 식사 전에 매점으로 향했다. 딱히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허달의 연락을 받아서였다.
매점이 아니라 바깥. 허달은 초조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
“하연아.”
“오빠. 그런 사람이었어? 실망이네요.”
조아현이 있을 때와는 다르게 하연의 얼굴은 그야말로 시베리아 벌판의 냉기 그 자체였다.
허달도 그걸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아니, 하연아. 나도 이해해줘라. 여차하면 내 일도 망칠 수 있는 사람이야. 나도 그렇게 독한 곳일 줄은 몰랐어.”
“됐어요. 전, 그 덕에 아주 큰 꼴도 당할 뻔했으니까요. 그 사람도 여기 왔어요? 되도록 눈앞에 안 보였으면 하는데요.”
도하연은 이미 냉랭해진 상태였다. 허달도 미안한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래. 네가 화내는 것도 이해해. 그래도….”
“그래도? 오빠. 지금, 대체 왜 이래요? 그 늙은이한테 돈이라도 받고 있어요? 여자 소개해주는 대가로?”
“아니야. 그게 아니라.”
“현실을 보세요. 지금 세상은 감염자들이 날뛰고 정부도 지금 제 기능을 못 하잖아요. 그런 명령을 왜 신경 써요? 무시해요. 지금 우리가 사는 게 중요하지. 그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뭐 할 거 같아요? 아무것도 못 해요. 감염자들이 달려들 때 명령이라도 해요? 감염자들이 멈춰요? 아니잖아요. 이제 그 사람 따까리 짓 좀 그 정도만 해요.”
도하연은 그렇게 쏘아붙이고 몸을 돌렸다.
허달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울리는 휴대폰을 보았다.
[망할놈]휴대폰에 뜬 이름에 허달은 한숨을 쉬었다.
“여보세요? 네? 의무실에서 나가니 부축해달라고요? 갑자기 왜요?”
그는 도하연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움직였다.
저녁 식사시간. 많은 사람이 식판을 들고 식당으로 모였다.
호텔에 비하면 그야말로 기가 막힌 수준. 오늘 도하연과 같이 온 이들 대부분은 이 음식에 경악했다.
“아니, 고기도 정량 배식? 이런 게 어디 있어?”
“반찬 봐. 고작 3개가 끝이야?”
최미옥은 기겁하는 눈치였다. 그녀에게 이런 식단은 듣도 보도 못한 것.
그녀는 밥을 나눠주는 취사병을 향해 삿대질했다.
“야!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이 풀 쪼가리랑 먹으라는 거야?”
취사병은 한 귀로 흘리고 무시 했다. 최미옥은 그걸 넘어가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 새끼 봐? 야! 네 상관 데리고 와! 지금 사람 말을 무시해?”
호텔이었다면 이런 항의가 통했을 거다. 하지만 곧, 뒤에 있던 사내에게 제지당했다.
“여기는 정량 배식이에요! 여기 왔으면 규칙을 지켜요.”
“아니, 넌 또 뭐야?”
최미옥은 뒤를 돌다가 훤칠한 미남을 보았다. 그녀는 성향상 그게 누군지 잘 알고 있었다.
신민기. 조아현과 같이 이곳에 온 배우이다.
“누구고 자시고 행패 부리지 말고 가요. 뒤에 사람 기다리니까.”
“너, 아주 미쳤구나?”
“아줌마.”
그리고 신민기는 눈을 부라렸다.
“닥쳐.”
“뭐, 뭐, 뭐, 뭐?”
“닥치라고. 빨랑 안 가?”
신민기가 그녀를 밀쳐내었다. 한낮 연예인이 자신을 밀친다? 최미옥의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열 받아서 어깨를 잡아채려 했지만, 신민기가 거칠게 뿌리치자 최미옥은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아니, 사람을 쳐? 저거 잡아! 빨랑!”
애처로운 외침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최미옥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사람들 대부분이 차갑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아줌마 정신 못 차리네.”
“여기가 어디라고? 아직도 자기가 뭐라도 된 양 저러네.”
“아줌마! 시끄러우니까 좀 입 다물고 먹읍시다.”
그녀에게 적대적인 시선이 가득했다. 최미옥도 뒤늦게 눈치를 보았다.
자기가 원래 행하던 대로 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 중랑구 피난민센터는 그런 곳이었다.
그녀는 조용히 식판을 들고 자리로 도망갔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으며 다시 정상적인 배식을 시작했다.
도하연은 방금 상황에 박수를 절로 보냈다.
“우와. 여기는 좀 다르네요. 높으신 사람이라 그냥 통할 줄 알았는데.”
매니저도 의외라는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보통 최미옥 정도면 힘 좀 쓰는 타입인데.”
조아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곳은 초기부터 피난민들이 열심히 개척한 곳이에요. 샤워실부터 내부 잡기물들 치우고, 진지를 건설했어요. 스스로 열심히 모두가 뭉쳤는데. 저게 통하겠어요?”
도하연은 두 눈을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감동 먹었어. 너무 멋지다. 호텔에서는 진짜….”
“저 사람들 갑질 하고 다녔어?”
“갑질 정도가 아니야. 어휴.”
말하기도 싫은 악몽을 뒤로하고 도하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밥은 한 번 더 풀 수 있어서 다행이네.”
정량식사라지만 현재 자율 배식이 허용되는 반찬이 있다.
김치. 밥.
다만, 추가 배식은 1회뿐. 도하연은 그 기회를 살려 추가로 밥을 푸려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거기서 이도진을 볼 수 있었다.
“아.”
“아.”
서로 놀라면서도 자연스레 안부를 물었다.
“이도진 씨. 식사는 잘하셨어요?”
“네. 물론이죠. 하연 씨는요?”
“저도요. 그런데 놀라지 않았어요?”
도하연은 그때 호텔에서 시원하게 욕을 박은 걸 떠올렸다.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 나갔었지.’
다만 그때는 정신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상당히 막 나갔다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이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뭘요. 그때, 엄청나게 충격 받으셨는데. 제가 호텔을 관리하는데 제 부주의에요. 지하 2층에서 논다고 하길래 허락을 했는데, 추악하게 놀 줄 몰랐어요. 마약도 나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