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140
제141화
스미르노프 사건 이후로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각 S급 헌터들은 자기네들 베이스캠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얼굴 한번 내밀지 않았다.
심지어 어제 낮에는 한과를 사 들고 리롄제를 찾아온 한 장관이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30분 정도 기다렸다가 시무룩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한진환이 “눈치 없이 뭐 하는 거요?”라면서 핀잔을 줬다.
아무 말도 하지 못 하고 돌아가는 한 장관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한진환에게 핀잔을 받은 모습이 얼마나 비참해 보였는지 알아야 할 텐데….
[세계수 어린나무는 그위친이라는 인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있습니다.]나도 그렇긴 한데….
지금은 찾아가봤자 한 장관처럼 문 앞에서 컷 당하게 될걸?
그리고 한진환에게 “뭐하냐?”라는 핀잔을 듣게 되겠지.
난 비참함을 느끼게 될 테고.
[어린나무는 그럼 언제 만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묻습니다.]글쎄….
적어도 이틀 정도는 더 지나야 하지 않을까?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각 정부에서 “경거망동하지 마라”라는 말이 내려온 것 같으니.
[어린나무는 다시 한번 그위친이라는 인간을 만나고 싶다고 전합니다.]나도 그래.
왜 그가 내게서 그리운 에너지를 느낀 건지.
어째서 그에게 나와 비슷한 능력이 있는 건지 궁금하거든.
“무슨 연관이 있는 게 분명한데….”
“…네? 뭐라고요?”
옆에 있던 도희가 날 바라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도희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
“……?”
그래.
도희랑 함께 찾아가면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러는 도희를 좋아하니까.
잠깐이라도 만나주지 않을까?
도중에 컷 당하지도 않을 테고.
넌지시 그위친을 불러달라고 하면 된다.
문제는….
“왜 빤히 쳐다봐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그냥. 우리 도희 예뻐서.”
“…뭐래, 미쳤어?”
너무 당황한 걸까?
2년 전 도희의 말투가 튀어나왔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도희는 입을 가로막고는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조심스럽게 내게 묻는다.
“아픈 거 아니죠?”
“응, 괜찮아.”
“그럼 다행이고요….”
문제는 도희를 이용하는 것 같아 좀 그렇다는 거다.
그위친을 만나려고 이용하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건 오빠로서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그렇게까지 만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또 아니기도 하고.
뭐, 아직 시간 있으니까 기다려보자.
그위친은 내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쪽에서 어련히 찾아올지도 모른다.
“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희의 눈길도 따라 올라왔다.
“어디 가게요?”
“응. 생산적인 일 하러.”
“생산적인, 일…? 오라버니가요?”
“그 의문은 뭔-”
스릉!
“스릉…?”
귓가에 차가운 철 소리가 들려왔다.
강렬한 시선도 느껴졌다.
옆을 돌아보니,
“…뭐해요?”
어느새 태천이 칼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더군다나 아밍 소드 끝은 나를 향한 채였다.
이 미친놈이 왜 이래?
[어린나무는 경악스러운 시선을 느꼈습니다.]그는 나를 노려보았다.
새싹이의 말에 따르면 태천이는 경악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왜?
“이 새끼, 너 누구야.”
“…뭐?”
“생산적인 일이라니. 도운이 그런 걸 할 리 없어. 네 정체를 밝히는 게 좋을 거다.”
“…….”
“…….”
아니, 이 미친놈아…. 하….
대체 그 잘못된 믿음은 뭐냐고.
나는 따지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다.
그러려니 해야지.
안 그러면 또 태천이랑 시답잖은 말다툼이나 하게 될 거다.
한숨을 내쉬며 도희를 바라봤다.
“한 선배한테 갔다 올게.”
“한 선배…? 아, 한진환 씨요?”
“응.”
“으응? 나 무시하는 걸 보면 도운이가 맞나?”
“…그 사람은 왜요?”
도희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용케 태천이에게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냈다 싶다.
나도 도희가 질문하지 않았더라면 딴죽을 걸었을 거다.
“검기 좀 배우려고.”
“검기요?”
태천이는 우리가 무시하자 뻘쭘해졌는지 아밍 소드를 검집에 집어넣었다.
어휴….
저걸 친구라고.
그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검기를 한진환에게 배우려는 걸 이해할 수 없는 듯했다.
“그걸 왜 그 사람한테 배우냐?”
“그럼 누구한테 배워?”
“누구한테 배우긴! 나도 있고, 도희도 있는데!”
“그러게요.”
확실히, 두 사람 다 검기를 다룰 줄 알았다.
특히 태천이는 A급 헌터 중에서도 상위 티어에 있는 만큼 굉장히 잘 다룰 것이다.
하지만….
내게 검기를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잘 다루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였으니까.
뛰어난 선수가 훌륭한 코치인 건 아니듯이.
“너희가 어떻게 가르쳐줘?”
“어떻게 가르쳐주냐니….”
태천은 말끝을 흐렸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도희의 얼굴도 태천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꼭 그렇게 경험해봐야겠다면야….
“그럼 가르쳐줘봐.”
“뭐?”
“나한테 검기 가르쳐 보라고.”
“…좋아.”
태천이는 검집에서 검을 도로 뽑았다.
스르릉….
또다시 그의 팔 전체 길이 정도 되는 아밍 소드가 드러났다.
“검기는 말이야, 이렇게 검을 들고.”
태천이는 아밍 소드를 쥐지 않은 왼손을 빠르게 펼쳤다.
커다란 손이 활짝 펼쳐졌다.
“확! 손바닥을 펼치듯 마나를 뿜어내!”
그의 몸에서부터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어린나무는 너무나 안정적인 마나를 느꼈습니다.]안정적인 마나, 라….
탱커인 태천이와 아주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내가 녀석의 옆에 서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도 그래서였나.
“그런 다음, 꽉! 손바닥을 쥐듯이 뿜어낸 마나를 모아!”
꽉.
태천이는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온몸에서 뿜어져 나왔던 마나가 아밍 소드로 모여들었다.
이어서 태천이는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흡! 검 모양으로 갈무리해!”
그러자 아밍 소드에 모여들었던 마나가 깔끔한 검 모양이 되었다.
검에 검기가 둘러진 것이다.
대체 설명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끝.”
태천이 씩 웃으며 날 바라봤다.
그 얼굴에서 왠지 모르게 TV 홈쇼핑의 쇼호스트가 떠올랐다.
여러분, 확꽉흡을 기억하세요!
그럼 검기를 쓸 수 있답니다!
자, 다 같이!
확, 꽉, 흡.
확, 꽉, 흡.
이런 실없는 망상이 떠오를 정도로 기억에 남는 것이라고는 ‘확! 꽉! 흡!’뿐이었다.
“어때?”
“…….”
“…왜, 왜?”
정말이지….
초등학생도 저거보다는 설명을 잘할 거다.
뭐, 예상했던 일이었던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잘 다루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엄연히 다르므로.
“쩝….”
할 말이 없어서 쩝 소리나 내며 도희를 바라봤다.
도희는 하하 웃으며 내 어깨를 짚는다.
“그러려니 해요. 오라버니도 어차피 기대 안 했잖아요.”
“그렇긴 하지.”
“야, 사람 앞에 두고 너무한 거 아니냐? 그럼 도희 네가 가르쳐 보든가!”
“내가요?”
“그래!”
태천의 말에 도희가 날 바라봤다.
한 번 가르쳐 볼까요?
그리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런….
도희도 안 될 텐데.
태천이와는 다른 이유로.
“좋아요.”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바라보며 콧잔등을 쓱 문댄다.
마치 안경을 고쳐 쓰는 듯이 보였다.
살면서 한 번도 안경을 써본 적이 없으면서 말이다.
제 나름대로 진지하다는 걸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리라.
“검기란, 쉽게 설명하자면 심장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검이나 창 같은 물체에 불어넣는 힘이에요. 100% 완벽하게 제어할 줄 알아야만 무기에 검기를 두를 수 있죠. 그러려면 우선 심장에서부터 마나를 제어할 줄-”
“그만. 검기 교실은 이걸로 끝.”
짝.
손뼉을 쳐서 도희의 말을 끊었다.
강제로 말을 끊긴 도희는 날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명을 멈추게 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왜 그래요?”
“뭐가 왜 그래야. 너 지금 태천이 얼굴 안 보여? 조금만 더 길어졌으면 쟤 잤어.”
나도.
[어린나무는 방금 난생처음 자장가를 들은 듯하다고 밝힙니다.] [감미로웠다고 전합니다.]심지어 새싹이까지도.
대단해, 우리 도희.
“하, 하지만…. 이 설명은 꼭 해야 하는 거라고요. 검기를 깨우치려면 일단 그것을 확실히 이해해야 하니까요.”
“확실해?”
“네? 당연히 확실하죠.”
“무슨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하면 전교 1등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어….”
“될 수 있잖아요?”
“…….”
잘 못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난 태천이를 바라봤다.
태천이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하고 날 봤다.
그렇군.
제대로 들은 게 맞는구나.
“그랬나….”
“하하….”
“왜들 그래요?”
“…….”
“…….”
나와 태천이는 빙그레 웃었다.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어 보이기만 했다.
도희가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해 앞에서 전교 1등을 했을 때, 나와 태천이는 뒤에서 전교 1, 2등을 격렬하게 다퉜다.
친구끼리 뒤에서 전교 1등 자리를 다퉜다는 게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공부하고는 담쌓았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도 공부란 걸 했으면 분명히 달랐을 거다.
아, 아마도….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실망스러운 시선을 보냅니다.]…됐어.
공부 얘기는 넘어가.
“도희야.”
“네.”
“태천이를 봐.”
“네?”
“한 번 봐봐.”
“……?”
도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래도 태천이를 보기는 했다.
이유를 모르면서도 오빠의 말을 따라준 것이다.
그 모습이 고맙고 귀여웠다.
말을 꺼낸 나도 태천이를 바라봤다.
태천이는 우리 남매의 시선이 모이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도희에게 자기 자신을 보게 한 이유를 알 수 없는 듯했다.
“…아.”
반면, 도희는 금세 알아차렸다.
탄식을 흘리고는 나를 돌아본다.
“알겠어?”
“네. 제가 멍청했네요.”
도희는 자신이 이마를 콩 때렸다.
그 모습이 마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하고 자신을 탓하는 것처럼 보였다.
뭐, 둘은 정반대의 타입이었으니 금방 생각해 내지 못할 만도 했다.
“뭐야? 뭔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기는.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구만.”
“정말 별거 아니야. 그냥 두 사람 스타일이 다르다고 말한 거니까.”
“나랑 도희가?”
“그래.”
도희는 검기를 이해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태천이는 이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감각으로 검기를 쓴다.
그냥, 쓸 수 있으니까.
사람은 걸을 때 ‘어떻게 걸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걷지 않는다.
즉, 도희는 검기를 깨우치려면 그걸 확실히 이해해야 한다던 자신의 말이 모순된다는 걸 알아차렸다.
바로 앞에 그 증거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도 너희랑은 다르지.”
“아….”
“흠?”
나는… 굳이 비교하자면 태천이 쪽에 가깝다.
설명을 보고 듣는 식으로는 터득하지 못하는 타입.
무언가를 습득하려면 직접 부딪혀 보는 게 더 빠른 타입.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난 안타깝게도 태천이처럼 천재가 아니란 점이다.
“그럼 한진환도 마찬가지 아니에요?”
“어?”
“그 사람 찾아간다고 해서 뾰족한 수가 있겠어요?”
“그러게.”
“있을걸?”
“있을 거라고요?”
“응. 아마도.”
“또 그 감이에요…?”
감이 아니다.
뾰족한 수가 있을 거로 생각한 건, 한진환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날 바 텐더에서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게 검기를 쓸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뭐랄까….
대치동 1타 강사와 같이 믿음직스러웠달까?
“그럼 다녀올게.”
“…다녀오세요.”
“잘 다녀와.”
두 사람은 힘없이 나를 배웅했다.
내게 검기를 깨우치게 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게 싫은 듯했다.
하지만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거다.
한진환은 할 수 있을 것이고.
그걸 알기에 두 사람은 내가 한진환에게 가는 것을 더는 막지 않고 배웅했다.
좋아….
그럼 검기를 배우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