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73
제274화
톡톡 톡톡톡….
빌딩 앞에 앉아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나를 돌아본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화면을 바라봤다.
[세계수 키우기]가 실행된 화면 속 엘프들은 바빠 보였다.평소라면 성역 밖으로 나갔을 레지나 일행도 다른 엘프들과 함께였다.
엘릭서 두세 방울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만들 수 있긴 하려나?
현재 시각이 11시 10분….
출발까진 50분밖에 남지 않았다.
“…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목소리였다면 한진환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여자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막대사탕을 입에 문 분홍 머리 소녀가 보였다.
천재 마법소녀….
“이연지? 네가 여긴 웬일이냐? 학교는?”
“그러게요.”
“응?”
“왠지 모르겠는데요. 오늘따라 무지하게 학교를 조퇴하고 싶더라고요.”
“뭔 소리야?”
“그런 게 있어요. 사탕 먹을래요?”
“좋지.”
연지는 바로 가방을 열었다.
가방에는 막대사탕이 가득 차 있었다.
학생의 가방이라면 있어야 할 것이 아예 없었다.
마치 학창시절 태천이가 매고 다녔던 가방을 보는 듯하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관리인의 가방도 비슷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그럴 리가 없잖아.
내 가방은 텅텅 비어있지 않았어.
갖고 다니질 않았었거든.
[…….]연지는 가방에서 막대사탕을 집어 들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듯 보였다.
막대사탕으로 자기 이마를 톡톡 치며 말했다.
“뭐지…?”
“왜 그래?”
“방금 진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들었어요….”
“어디 아픈 거야?”
“그런 건 아닌데요….”
슥….
연지는 손에 쥔 막대사탕을 건넸다.
건네받은 그것의 껍질을 벗기고 바로 입에 물었다.
어라?
“어쩐지 익숙한 맛이 나는걸?”
“그렇겠죠. 그거 위드 밤이에요.”
“엥? 이게?”
“수정 언니한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야, 야. 그런 부탁을 하면 어떡해. 위드 밤이 먹고 싶으면 사서 마셔야지.”
“걱정하지 마요. 정식으로 의뢰한 거니까.”
“아, 그래? 그럼 됐고.”
정식으로 의뢰했고 그걸 받아들였다면 얘긴 달라지지.
공정한 거래였으니 끼어들 여지가 없다.
포션 메이커한테 사탕을 만들어 달라는 게 적절한지는 차치해두고서라도.
연지는 새로운 막대사탕을 꺼내 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리 위드 밤이라지만 저렇게 많이 먹어도 되나?
“아저씨.”
“응?”
“그런데 왜 여기 앉아 있어요? 사람들 다 쳐다보는데.”
“손님 기다려.”
“손님? 누가 오길래 아저씨가 건물 밖까지 마중을 나와요?”
“한 선배.”
“한, 선배…?”
따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딱!
그러다가 이내 깨달았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내가 한 선배라고 부를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한진환! 그 아저씨가 오늘 우리 길드에 와요?”
“응. 그렇대.”
“왜요?”
“몰라?”
“모른다고요?”
“응.”
“모르면서 왜 기다려요?”
“그러게. 나 왜 기다리는 걸까.”
“…….”
“…….”
연지는 입을 다물고는 나를 빤히 응시했다.
나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봐주었다.
여기에서 시선을 피하거나 어색한 모습을 보이면 거짓말하는 걸 들키게 된다.
[어린나무는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사실대로 말해도 되지 않느냐고 질문합니다.]안되지.
사실을 알게 되면 자기도 참가하겠다고 바락바락 우겨댈 테니까.
자기만 제외했다는 사실에 섭섭하다고 토라지기도 할 거고.
우리는 걱정해서 그런 거지만, 섭섭해서 토라진 사람이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않겠지.
“…모른다고요?”
“응. 곧 한 선배가 올 거니까 배웅하란 말만 들었어.”
“그으래요….”
연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한 것과는 별개로 의심스러움이 아직 남았는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왜 쳐다보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마주 봤다.
이내 막대 사탕 때문에 부풀었던 연지의 오른뺨이 작아지고 대신 왼뺨이 커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좋아, 속아 넘겼다!
머릿속에서 쾌재를 울리며,
“……?”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린다.
속인 것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다.
[어린나무는 당황스러운 눈으로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쓸데없이 너무나도 훌륭한 연기라고 전합니다.]새싹이가 보낸 메시지 뒤에 선 연지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진환을 찾는 게 분명하다.
“아저씨, 한진환 언제 온댔어요?”
“11시 20분쯤에.”
“에계, 벌써 11시 23분인데요?”
“그러게. 늦네.”
“푸흐흐….”
“갑자기 왜 웃어?”
“웃기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가 지각이라니.”
“그것도 그렇네….”
그 말대로다.
한진환은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도착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런 인간이 4분이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았다, 라….
“…응?”
“왜요?”
“전화 왔어.”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시선을 내렸다.
한진환이 전화를 걸었나 싶었지만, 화면에 적힌 것은 그의 이름이 아니었다.
아니, 아예 이름이 아니었다.
화면에는 ‘받지 마! 받지 말라고, 미친 새끼야!’라고 쓰여 있었다.
“한진환이에요?”
“아니. 도희.”
“앗….”
연지가 당황스러운 소릴 내뱉었다.
당연한 일이다.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도희한테 들키면 그대로 학교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잠깐, 아-”
“여보세요?”
나를 향해 다급하게 뻗어지는 손을 무시하고 전화를 받는다.
받자마자 스마트폰에서 도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오라버니? 한진환은요?
“아직 안 왔어.”
– 안 왔다고요? 5분이나 지났는데?
“응.”
– …이 인간이 약속을 안 지켜?
“곧 도착하지 않겠어?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간인데.”
– 글쎄요. 그런 인간이니 오지 않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 같은데요.
“흠….”
그렇게까지 무책임한 인간은 아닐 텐데.
문제는 또 마음 한편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5분만 더 기다려 보고 오지 않으면 전화를 해봐야겠다.
그 전화도 받지 않으면 최희석한테도 전화해야겠지.
내 전화를 피하는 경우일 수도 있으니까.
“그보다.”
– 네?
“…….”
히죽, 웃으며 연지를 바라본다.
휙, 휙!
연지는 두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자신이 지금 백운천 앞에 와있다는 사실을 도희에게 알리지 말란 뜻이었다.
물론 나 백도운은,
“지금 연지가 내 눈앞에 있는데.”
그런 부탁을 들어줄 정도로 착하고 너그러운 아저씨가 아니다.
그렇다.
아저씨가 아니다.
이제 겨우 26살밖에 안 먹었는데 내가 어떻게 아저씨야?
– …헤에.
“내가 부른 거 아니다?”
– 알아요.
“어, 그래.”
– 바꿔요.
“응.”
스윽.
착한 오빠를 자부하는 나는 곧바로 팔을 뻗었다.
연지는 제 앞으로 내민 스마트폰을 잠깐 보다가 날 째려봤다.
활활 타오를 것 같은 눈빛은 마치 내게 ‘배신자!’라고 소리치는 듯했다.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따라서 지을 수 있는 가장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해? 전화 받아야지, 연지야.”
“…….”
1초, 2초, 3초.
확!
연지는 딱 3초 동안 날 노려본 후에 손을 뻗어 거칠게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여보세요, 도희 언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밝게 전화를 받았다.
대단하다, 대단해.
야차 같은 얼굴로 저런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다니….
“…그게, 왠지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 아, 아뇨! 병원을 가야 할 정도는 아니에요. 조금 쉬면 낫지 않을까 싶, 네? 점심시간이니 조금 쉴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그, 그렇기는 하죠….”
연지는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통화를 이어나갔다.
대답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여댔다.
“네, 네…. 학교로 돌아갈게요. 네? 아뇨! 기분이 상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럼요! 네!”
어째서일까?
고등학생인 연지에게서 상사에게 굽실거리는 사원의 모습이 떠오르는 이유는….
사회를 너무 빨리 알게 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저런 모습을 하게 된 이유는 나 때문이었지만.
“네, 전화 다시 바꿀게요. 네! 들어가세요!”
연지는 대답처럼 공손하게 쥔 스마트폰을 내게 도로 돌려주었다.
물론, 그 공손한 태도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내가 스마트폰을 건네받자마자 바로 입술을 달싹였다.
통화하고 있는 도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린 것이다.
“…여보세요?”
– 한진환은 아직도 안 왔어요?
“응. 안 왔어.”
– …5분만 더 기다리고 오지 않으면 그냥 올라와요.
“알았어.”
그래도 괜찮겠어?
-라고 묻는 대신 “알았어”라고만 대답했다.
눈앞에 연지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괜찮겠냐는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다시 의심의 싹을 틔울 게 분명하다.
– 끊을게요. 이따 봐요.
“그래.”
뚝….
도희와의 통화를 끊었다.
스마트폰 화면에 [세계수 키우기]가 떠오른 것을 보고 연지는 볼을 부풀렸다.
꾹 누르고 싶은걸.
톡, 톡톡….
볼을 누르는 대신 화면을 눌렀다.
“너무해…! 내가 사탕도 줬는데!”
“너무하긴. 학생이 학교에 다녀야지.”
“뭐래. 아저씨는 학교 열심히 다녔어요?”
“…쯧. 한진환 이 인간은 안 오고 대체 뭐 하는 거야?”
“내로남불이 따로 없네…. 아저씨 공부 못했죠?”
[어린나무는 못했다고 대신 대답합니다.] [관리인은 학생 때 그의 친구와 함께 꼴찌를 겨뤘다고 설명합니다.]“…….”
네가 설명한다고 연지가 보냐?
뭣보다 꼴찌를 겨루지도 않았어.
어차피 꼴찌는 태천이었으니까.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그 친구가 없었다면 꼴찌는 누구였냐고 질문합니다.]새싹아.
무슨 그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하니?
무례하게시리.
그런 질문은 정중하게 철회해주길 요구할게.
[…….] [어린나무는 관리인에게 실망합니다.]겨우 이런 거로 실망하지 말아 주라.
행복은 학교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늘어뜨립니다.] [관리인에게 실망한 탓입니다.]“…흠, 흠!”
새싹이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무시하고 연지를 바라봤다.
연지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날 쳐다봤다.
아마 새싹이도 사람 같은 얼굴이 있었다면 꼭 저런 얼굴로 날 쳐다봤겠지….
“…학교 열심히 다녀. 공부도 잘하고. 안 그럼 나처럼 된다?”
“네? 무슨 말이 그래요?”
“응?”
“아저씨처럼 되면 좋은 거잖아요. A+급 헌턴데.”
“어라, 그러네?”
“푸흐흐…. A+급 헌터가 됐어도 아저씨는 여전히 바보네요.”
“뭐, 인마?”
“다행이라고요!”
“응?”
대뜸 뭐가 다행이란 거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연지는 가방에서 막대사탕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인형뽑기 기계처럼 그것들을 그대로 옮겨 내 손에 쥐여준다.
“뭐야?”
“선물이요.”
“갑자기?”
“맛있는 건 나누면 배가 되니까요!”
“그렇긴 하다만….”
탁, 탁.
연지는 내게 사탕을 주고 빈손이 된 손을 탁탁 털었다.
가방을 도로 메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도 오지 않은 한진환을 찾는 거다.
32분이라….
세상에서 가장 빠른 남자가 약속 시각에서 12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았다.
연락이라도 줬다면 모르지만, 연락도 없다는 건….
“…아무래도 안 올 생각인가 본데.”
“정말 제멋대로네요.”
“그러게.”
“아쉽네요. 얼굴 한번 보고 싶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겠지.”
“그렇겠죠. 그럼, 한진환도 안 올 것 같으니 전 이만 갈게요.”
그리 말하고는 연지는 몸을 돌렸다.
인사를 하고서 곧바로 떠나려고 한 것이다.
쿨한 것 좀 보소.
“연지야.”
몇 발자국 걸음을 옮긴 연지를 불렀다.
연지는 떠나려고 할 때처럼 빠르게 몸을 돌렸다.
“왜요?”
“예전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서 묻는 건데….”
“뭔데요?”
“나 왜 아저씨라고 불러? 태천이는 오빠라고 부르면서.”
“태천이 오빠는 잘생겼잖아요.”
“…그럼 난 못생겨서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야?”
“네?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이.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거울 안 봐요?”
“…….”
“안 봐요?”
“두 번 묻지 마. 상처받잖아….”
“……?”
연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왜 상처를 받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태도였다.
태천이가 나보다 훨씬 잘생겼다는 건 인정한다.
인정하지만, 그래도 내가 못생기진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내가 날 너무 좋게 보는 건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못생긴 게 맞을지도.
“쩝….”
“……?”
입맛을 다시는 나를 보며, 연지는 또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러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