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291
제292화
쿠구궁…!
두 동강 난 결계가 굉음을 내며 허물어진다.
아랫부분이 무너지며 윗부분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러자 도희가 전개한 빛의 성역이 드러났다.
빛의 성역은 제주도 전체를 덮고 있었다.
배수현에게 설명을 듣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아마 뭣 모르는 사람들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인터넷에 올렸을 거다.
영지도 그걸 보고서 자기만 빼놓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주도까지 찾아온 것이겠지.
“아저씨! 다들 무사해요!”
영지가 막대사탕을 타고 날아오며 소리쳤다.
토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날 쳐다보는 얼굴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전혀 풍기지 않았다.
애초에 토라지지 않은 걸까, 마음 한편에 숨긴 걸까.
어느 쪽이든 어른스러운 행동이었다.
나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내가 17살 땐 저러지 못했던 것 같은데.
아르카를 어깨에 둘러메며 영지를 돌아봤다.
마나를 주입하는 것을 멈추자 아르카는 원래 형태로 되돌아왔다.
“탐지 마법을 쓴 거야?”
“네!”
결계를 베어낸 게 바로 조금 전이다.
그런데 벌써 탐지 마법을 썼다면, 결계를 어쩌기 전에 이미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결계를 해제하리라는 걸 믿고서.
허, 참.
얘 진짜 17살 맞아?
야무진 게 꼭 도희 옛날 모습 보는 것 같네.
“다들 마나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기는 하지만 확실히 무사해요.”
“다행이네. 응? 잠깐만. 마나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고? 전부?”
“네. 아마도 싸우고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하네? 배수현은 다들 크라우드 간부와 싸워 승리했다고 말했는데?”
혹시 폭식과 싸우고 있는 건가?
아니….
그렇다면 모두의 마나가 요동치고 있다는 건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다들 제주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으니까.
아무리 폭식이 비공식 A+급이라고 해도 멀리 떨어져 있는 백운천 전원과 무기를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다.
그건 번개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는 한진환도 무리일 터였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제주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빛의 성역이 전개된 그곳은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았음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난 어디로 날아가야 할까.
***
온통 어둠이 깔렸다.
갑작스럽게 밤이 찾아온 듯했다.
“커헉…!”
백록담 위를 날던 도희가 피를 토했다.
제주도 전체에 빛의 성역을 전개한 반동(反動)이었다.
홍수정이 만들어주었던 상급 버프 포션의 효과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포션의 효과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반동을 느낀 것은 제주도 전체를 뒤덮은 검은 결계 때문이었다.
결계가 태양을 가린 탓에 빛의 힘을 얻지 못했고, 빛의 성역을 전개할 만한 능력을 잃어버린 거다.
도희는 우선 비행 마법을 그만두기로 했다.
빛의 성역을 유지하고자 마나 소모를 줄이는 선택을 한 것이다.
백록담 위를 날고 있던 그녀의 몸이 아래로 떨어졌다.
“앗…!”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재식이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떨어지는 도희를 받아내기 위해서였다.
홱…!
하지만 그보다도 더 빨리 움직인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는 목을 기준으로 위와 아래가 전혀 달랐다.
목 위는 인간의 머리였으나 목 아래는 몬스터의 몸통이었다.
“…너 뭐야?”
그것의 등에 안전하게 착지한 도희가 물었다.
인간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는 모습에 눈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한라산 게이트에서 탈출한 만티코어인가?
그런 의문을 중얼거릴 때, 그것이 해맑게 웃었다.
“안녕하십니까! 전 백도운 형님의 의동생 지상욱이라고 합니다!”
“…지상욱? 의동생?”
“모르시겠습니까? 이전 파티에도 참석했는데 말입니다.”
“기억 안 나는데….”
“하하! 그러실 수 있죠! 지금부터라도 기억해주십시오! 저는 이번에 백운천에 새로 가입한 지상욱이라고 합니다.”
“우리 길드에 가입했다고?”
“그렇습니다! 형님을 가까이에서 보필하고자 가입한 ‘첫 번째 의동생’ 지상욱입니다!”
그리 말하고는 상욱은 고개를 내렸다.
땅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재식에게 히죽 웃어 보이기도 했다.
재수가 심히 없는 얼굴을 보고 재식은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걸 본 상욱의 미소는 더욱더 커졌다.
마치 “내가 이겼어, 멍청아!”라고 말하는 듯했다.
도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바보는 또 어디에서 찾은 거람?”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아, 넵.”
“근데 넌 어떻게 여기 있는 거니? 오라버니가 보냈어?”
“아니요. ‘두 번째 의동생’인 김재식이 이곳으로 훈련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그게 이유라고?”
“네, 그렇습니다.”
“…….”
도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도운이 보낸 것도 아니었고.
오늘 벌어질 일을 알아차리고 찾아온 것도 아니었다.
첫 번째라느니 두 번째라느니….
그런 알 수 없는 이유로 제주도에 온 멍청이였다.
오라버니는 이놈을 왜 데리고 다니는 걸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리며 마법 주머니에서 상급 활력 포션을 꺼냈다.
햇빛을 받지 못하는 상태로 빛의 성역을 전개하는 탓에 그녀의 몸 상태는 빠른 속도로 안 좋아지고 있었다.
꿀꺽꿀꺽….
그녀는 포션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그 모습을 보고 상욱이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보여?”
“전혀요. 빛의 성역의 크기를 줄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럴 수 있었으면 당장 그랬겠지….”
도희는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회복된 마나를 빛의 성역으로 흘려보냈다.
그녀는 빛의 성역을 통해 크라우드와의 싸움이 끝났음을 알았다.
이어 또 다른 싸움이 시작됐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폭식이 제주도에 있었다.
정확한 장소까지는 몰랐기에 그녀는 빛의 성역을 줄이거나 그만둘 수 없었다.
어디에서 나타나든 반응해야 했으니까.
그 순간,
쿠구구구….
땅이 울렸다.
상욱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웬 지진…?”
“아니. 자연 발생한 게 아니야.”
“네? 저게요?”
“…넌 피하는 게 좋겠다.”
“그게 무슨 말씀입-….”
상욱은 말끝을 흐렸다.
백록담 주변에 검은 기둥 하나가 솟아올랐기 때문이다.
높이 솟구쳤던 기둥은 곧 방향을 바꿨다.
“어, 어? 이곳으로 오는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날 가두려는 거니까.”
“가둔다고요?”
“저거 봉인 마법이거든.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 걸 보면, 30분 정도 가둬두려는 것 같네. 그 시간이면 충분하단 거겠지. 모두를 먹어치우는데….”
“빠르게 날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요? 속도엔 자신 있습니다.”
“피한다고 해도… 어디로 피해?”
“네? 그야… 아.”
상욱은 탄식을 내뱉었다.
그녀가 한 말의 뜻을 깨달은 거다.
검은 결계에 뒤덮인 이곳엔 도망갈 곳이 없었다.
제한된 곳에서 도망쳐봐야 막다른 길에 다다르게 될 뿐이다.
“봉인에 갇히게 되면…”
“갇혀 있을 뿐이니 괜찮아. 나보다는 언니 오빠들이 더 걱정이지. 빛의 성역 없이 폭식과 싸워야 할 테니….”
“그렇군요….”
“자, 알겠으면 떨어져. 더 있다간 너까지 끌려들어-”
홱!
상욱이 몸을 돌렸다.
그의 등에 타고 있던 도희가 자연히 떨어지게 됐다.
“너, 갑자기 무슨-”
도희가 당황해 소리쳤다.
“무슨 짓이냐”고 따질 셈이었지만, 떨어지던 몸이 다시 떠올랐다.
상욱이 날갯짓을 세차게 해 바람을 일으킨 덕분이었다.
그에 따라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기둥도 방향을 바꿨다.
하지만 그녀와 기둥 사이에 상욱이 있었다.
그가 기둥으로 돌진하며 소리쳤다.
“기억해주십시오. 제 이름은 지상욱!”
쾅!
그의 몸이 기둥과 부딪치자 그것이 폭발했다.
검은 촉수들이 대량으로 뿜어져 나와 상욱을 붙들었다.
봉인 마법이 전개된 것이었다.
“도운 형님의 첫 번째 의동생이 될 남자…-”
상욱은 끝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뿜어져 나온 검은 촉수에 파묻혀 버린 탓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있던 허공엔 검은 구체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하!”
도희가 그것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알 것도 같네.
이 멍청이를 데리고 다니는 이유.
***
“어딜 감히…!”
태천은 오른발로 바닥을 거칠게 짓밟았다.
그의 눈앞에 검은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자마자 움직인 거다.
곧바로 행동에 나설 수 있었던 건 그가 예전에도 그 기둥 같은 것을 본 적이 있어서였다.
예전엔 방도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당했어야 했지만,
“또 당할 줄 알고?”
지금의 그에겐 막아낼 방도가 있었다.
그의 어깨 위에 뜬 검은 구체가 나타났다.
가장 친한 친구인 도운에게조차 숨긴 그 힘이 휘몰아치자 검은 기둥이 솟아오르는 것을 멈췄다.
그것은 땅을 울려대는 소릴 내며 솟아오르고 싶은 듯했지만, 태천이 억누르는 힘이 더욱 큰 탓에 솟아오르지 못했다.
삐, 삐, 삐, 삐….
그때, 태천의 귓가에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엔 발사장치에서 난 소리인 줄 알고 깜짝 놀라 그것을 바라봤다.
“…아.”
발사장치는 처음 봤을 때와 같다.
아무 작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제야 그는 발사장치가 아니라 워프 게이트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다른 곳에서 제주도로 오기 위해 연결을 시도하는 것이 분명했다.
결계 때문에 안을 파악할 수 없게 된 정부와 협회가 소속 헌터들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리라.
그리 판단한 태천은 워프 게이트를 작동하기 위해 발을 옮겼다.
쿠구구…!
그러자마자 기둥이 다시 솟아올랐다.
태천의 정신이 다른 데로 팔리자 억누르던 힘이 약해진 탓이었다.
“앗….”
그는 발을 멈추고 다급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솟아오르던 기둥이 멈췄다.
다시 힘에 억눌린 것이다.
“…어라. 혹시, 나 계속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
안타깝게도 그의 추측은 답지 않게 정확했다.
***
“……!”
오소소.
이현욱은 소름이 돋았다.
제주도 전체를 뒤덮은 결계 때문은 아니었다.
뒤쪽에서부터 기척이 느껴지는 탓이었다.
숨은 적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탐지 마법을 쓴 게 불과 5분 전이었다.
그사이 다른 적이 찾아왔을 가능성도 물론 있었다.
크라우드의 나비에게 폭식이 제주도에 있다는 경고를 받았으니 그놈이 찾아온 걸지도 몰랐다.
하지만 왜일까.
그는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이 폭식의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미, 친…!”
그가 본 것은 역시 폭식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도 아니었다.
바로 조금 전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분명 서인철에게 관자놀이가 꿰뚫려 죽었던 칼이 일어서 있었다.
심지어 그것은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그가 내뱉은 욕설에 다른 이들도 뒤를 돌아봤다.
“헉! 뭐야?”
“살아 있었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난 분명 관자놀이를 꿰뚫었다고!”
서인철이 억울하다는 듯 단검을 들었다.
하지만 동료들의 시선은 그에게로 향하지 않고 일어서 있는 칼에게만 향했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걸까.
마족의 권속이라더니.
머리 하나 뚫리는 것쯤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건가?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떠올랐을 때,
“어떻게 된 거냐…?”
칼이 구멍이 난 머리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구멍에선 피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내가… 왜 살아 있는 거냐? 분명 죽었었는데…. 어째서 살아 있을 수 있지…?”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그 행동을 보고 이현욱은 깨달았다.
칼이 일어난 건 그 본인조차 생각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되살아난 것이 그의 능력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히익…!”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최희주의 겁먹은 소리가 들려왔다.
이현욱은 그녀가 그런 소리를 내는 이유를 단박에 생각해냈다.
그녀가 싸웠던 또 다른 크라우드의 간부도 다시 일어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닭 또한 칼처럼 의문과 혼란을 느끼고 있을 터였다.
그 순간,
“설마….”
이현욱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 불안하고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