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4
제34화
스마트폰에서 튀어나온 그것을 보고 있으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뭇잎은 막연하게 활엽수가 나올 줄 알았다.
침엽수가 나오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전대 세계수는 극지방에서 살았던 걸까?
아니, 모든 나무의 정점인 세계수니까 사는 지역과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어느 때는 침엽수 버전, 또 어느 때는 활엽수 버전 등 마음대로 지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선인장 형태가 되지는 않겠지만.
…안 그러겠지?
“나뭇잎? 저 거대한 나뭇잎이 대체 어디에서?”
“그보다 머리 위의 새싹은 뭐예요? 지금 저 새싹이 독연을 전부 없애 버린 거예요?”
“네, 아마 그럴 겁니다. 도운 씨 스킬이라더군요.”
“저게 스킬이라고요?”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우연후와 유재이의 대화가 아득해진 정신을 다시 붙잡아 주었다.
마냥 여유롭게 나뭇잎을 살펴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아직 리더 가면 놈이 하늘 위에 있었으니까.
왼손을 뻗어 스마트폰 위에 뜬 나뭇잎을 집어 든다.
세계수의 기운이 내 몸을 따스하게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예상한 대로다.
이걸 가지고 있으면 마치 부적처럼 저놈의 독을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그들에게 전해 주기 위해 바로 뒤를 돌았다.
우연후는 나와 손의 나뭇잎을, 유재이는 나와 머리의 새싹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
머리에 새싹을 단 채 거대한 나뭇잎을 들고 있는 남자.
제삼자의 시점에서 내 모습을 상상했더니, 도저히 정상인이라고 할 수 있는 꼴이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나 자신도 자꾸만 눈이 나뭇잎에 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고슴도치 가시처럼 무수히 많이 달린 잎들은 한 가닥씩 뽑아서 창처럼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우연후의 손에 쥐어져 있는 창이랑 길이랑 두께도 비슷했고.
“도운 씨, 왜 그러십니까?”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라서요.”
“네?”
되묻는 그를 무시한 채 하늘을 올려다봤다.
놈은 머리 위에 새싹이가 소환돼 있어선지 여전히 상태가 영 좋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붕붕 휘저었는데, 그럴 때마다 몸이 허공에서 왔다 갔다 했다.
어떻게 봐도 가정용 살충제에 맞은 모기 같은 모습이었다.
지네는 무슨. 모기 맞잖아.
“으아! 이 빌어먹을 놈!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이, 이 역겨운 냄새는 대체 뭐란 말이냐!”
꼬락서니를 보니 맞힐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자신감이 차오르자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뭇잎에서 잎 하나를 떼었다.
손에 쥐어진 기다란 이파리는 단단하면서도 탄력감이 느껴져 정말 창을 손에 쥔 듯했다.
통나무 형태의 나뭇가지가 그 자체로 완벽한 무기였으니, 이 나뭇잎도 그 자체로 완벽한 무기가 되지 않을까.
“가만히 좀, 있어라!”
몸을 오른쪽으로 당기고 이파리를 투창했다.
투웅!
이파리가 내 손을 떠나 하늘 위로 솟아올랐다.
그때 마침 모기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정수리 위의 새싹이가 사라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거다.
“이건 또 무슨 장난질…!”
녀석은 소리를 지르면서 이파리를 쳐내려 팔을 휘둘렀다.
퍼억!
“…뭣?”
쳐내진 건 이파리가 아니라 녀석의 팔이었다.
이파리는 녀석의 팔을 아주 손쉽게 꿰뚫었다.
팔을 꿰뚫는 나뭇잎이라….
공격이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앞으로 할 일은 간단했다.
이파리 따위에 팔이 꿰뚫려 당황하는 녀석에게 이파리들을 열심히 던지는 것이었다.
“잠, 이게 무슨, 그만…!”
한 발, 두 발.
이파리가 몸에 꽂힐 때마다 녀석은 내게 멈추라고 소리쳤다.
사정해도 모자랄 판에 윽박지르면 내가 퍽도 멈춰 주겠다.
녀석은 연달아 던진 이파리들을 피하지 못했다.
“끄아악…!”
몸에 이파리들이 꽂힌 녀석이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꼴을 보니 한 여름밤 잠들지 못하게 한 모기들을 전부 잡은 듯한 성취감이 느껴졌다.
속이 다 시원하다.
녀석은 나뭇잎이 몸에 다섯 발이나 꽂혔는데도 아직 죽지 않았다.
몸부림을 치면서 내게 소리쳤다.
“으으…. 크라우드가, 우리가 네놈을 쫓을 것이다!”
“그래, 그래. 기대하고 있을게.”
대충 중얼거리면서 놈에게로 걸어갔다.
놈을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연신 “곱게 죽지 못할 것”이라느니 “내 동료가 꼭 복수해 줄 것”이라느니 지껄여 댔다.
검은 피를 콸콸 흘리고 있어 곧 죽을 것은 자기였는데도 입은 살았다.
“그분의 뜻을 받드는 우리는 영원한…!”
그렇게 말을 끝까지 맺지 못하고 녀석은 두 눈에 빛을 잃었다.
무슨 원한이 그리 강한지 눈도 감지 못한 채 죽었다.
“어휴, 징글징글한 놈.”
김정철 때처럼 시체는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변태한 모습으로 죽었다면 정부나 협회를 찾아가 마족의 권속이라는 존재를 확인시켜 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다.
어딜 봐도 인간의 시체였으므로 들고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해부한다면 다른 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이 상태로는 갖고 가 봐야 살인의 증거만 될 거다.
[마족의 권속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2/10명)] [현재 완료 보상 –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이번 퀘스트는 도중에 완료할 수 있는 형태인 모양이다.
2명을 쓰러뜨려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또 전대 세계수의 나뭇잎이었다.
“또 침엽수 버전이 나오려나?”
짧게 중얼거린 후 보상을 받지 않고 메시지창을 껐다.
녀석들을 잡으면 잡을수록 보상이 좋아진다.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을 때 퀘스트를 완료해야겠다.
그리 생각을 정리하면서 놈의 몸에 꽂힌 이파리를 뽑아냈다.
“당신 진짜 정체가 뭐야?”
이파리를 뽑아낸 후 놈의 시체를 뒤지는 내게 유재이가 다가오며 물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들리지 않는 척 주머니를 뒤졌다.
그녀는 내 어깨를 툭 치고는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안 들리는 척하지 말지?”
그러면서 그녀는 나를 쳐다봤다.
살짝 기운 목선을 따라 머리칼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아하하….”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하지도 말고.”
유재이는 그리 말하면서도 더는 꼬치꼬치 캐묻지 않았다.
내 의도를 파악하고 넘어가 주기로 한 거다.
그녀는 나처럼 시체를 뒤졌다.
내가 아직 뒤지지 않았던 반대쪽 주머니에서 지갑을 하나 찾아 꺼냈다.
“테러 단체라면서 지갑을 갖고 다니네? 어, 신분증도 있다.”
“위조 신분증이겠지.”
“그래도 한 번 살펴볼까요.”
우리 맞은편에 털썩 앉은 우연후가 손을 내민다.
그녀는 바로 신분증과 지갑을 건넸고, 그는 건네받은 신분증을 들여다봤다.
신분증을 살피던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진짠데요?”
“엥, 그게 왜 진짭니까?”
그는 지갑에서 헌터 자격증을 꺼내 확인했다.
“이것도 진짜네요.”
“무슨 테러 조직 간부가 진짜 신분증을 갖고 다녀?”
“자만. 혹은 오만이겠죠.”
“얘네 정말 바보 아니야?”
“그쪽은 그걸 어떻게 알아봤어요?”
“아…. 얼마 전 어떤 분의 부탁으로 위조 자격증을 만들었거든요. 그때 진짜와 가짜의 차이를 배웠죠.”
그리 말하면서 우연후는 나를 쳐다봤다.
시선을 보고 어떤 분이 누굴 지칭하는지 알아차린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위조 자격증을 만든 이유와 사용 용도를 물어보지는 않았다.
아마 어디에 썼는지 알기 때문인 듯했다.
D급 헌터가 A등급 게이트에서 몬스터를 사냥해 재료를 구해 왔으니 어떻게 썼을지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우연후가 내게 신분증과 자격증을 내밀며 말했다.
“이름은 용두식. B등급 헌터군요.”
“B급?”
B급 헌터가 A급 헌터를 제압할 정도의 강력한 독을 뿜어냈다고?
쉽게 믿을 수가 없는 말이어서 건네받은 헌터 자격증을 살폈다.
자격증에는 정말 ‘B등급 헌터’라고 쓰여 있었다.
투툭….
손가락에 힘이 빠져 쥐고 있던 신분증과 자격증을 떨어뜨렸다.
놈의 독이 그제야 내게 통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직감적으로 떠오른 것 때문이었다.
“설마, 말도 안 돼…?”
C급 헌터인 김정철은 A급 헌터의 전유물인 검기를 썼다.
흉내를 내는 정도였으니 사실 B급 헌터 수준이었을 테지.
변태하고 나서는 A급 헌터 수준이었을 거고.
용두식도 마찬가지다.
B급 헌터가 변태하고 난 후에는 A급 헌터를 웃도는 힘을 보였다.
그렇다는 건, 하나의 사실로 귀결된다.
최소한 한 단계 위의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도운 씨?”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그럼, A급 헌터 수준의 권속이 변태하면 어떻게 될까.
A+급이나 S급에 해당하는 힘을 지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지만, 내 직감은 그것이 옳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쳐댔다.
S등급 헌터는 전 세계에 4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도 미국에 2명, 중국에 1명, 러시아에 1명.
그야말로 천외천의 존재인 것이다.
우리나라 헌터 랭킹 1위이자 S등급에 가장 근접한다는 평을 받는 ‘한진환’도 A+등급 헌터에 불과했다.
“…크라우드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습니다.”
“왜요?”
“이놈들, 무슨 변신 로봇처럼 변신하면 강해지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A급 헌터 수준의 실력자가 변신하면 어떻게 될까요.”
“아…!”
“S급에… 해당하는 힘을 얻게 되는 건 아닐까요?”
직감한 것을 전하자 둘은 황당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믿을 수가 없는 것일 테지.
이해한다.
나도 내가 말해 놓고선 믿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내 직감은 부정적일수록 대체로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됩니다!”
“그래, 그건 크라우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야!”
“S급에 해당하는 힘? 허무맹랑해도 너무 허무맹랑한 말입니다.”
“좋아, 그놈들이 정말 그렇게 대단한 놈들이라고 쳐. 그럼 왜 나를 바로 끌고 가지 않고 설득하려고 한 건데?”
그 말도 맞다.
그렇게 대단한 조직이 왜 그녀를 납치하지 않고 몇 번이고 찾아와서 설득하려고 했을까.
애초에 유재이여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이 녀석이 당신을 왜 데려왔는지 말한 거 있어?”
“있어. 무슨 열쇠를 만들라고 하던데.”
“열쇠?”
“응. 그걸 만들면 아빠 얘기를 해 주겠다고 했어.”
“무슨 열쇠인지는 들었습니까?”
“아뇨. 너흴 어떻게 믿냐고 따지니까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며 바로 지하 방에 처박았거든요.”
이건 좀 뜬금없는걸?
마족의 권속이 속해 있는 테러 단체였으니 무기 같은 걸 만들라고 할 줄 알았다.
살상력이 높고 쉽게 방어할 방법이 없는 아주 강력한 무기.
이를테면, 마나 폭탄 같은.
그런데 그런 무기가 아니라 겨우 열쇠를 제작해 주길 원했다?
대체 그 열쇠가 뭐기에?
“혹시 열쇠 제작도 같은 걸 보여 주진 않았습니까?”
열쇠에 관해 생각하고 있는데 우연후가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제작해 달라는 것이 있으니 제작도를 갖고 있을 수도 있었다.
처음부터 만들어 달라는 거면 그마저도 없겠지만.
유재이가 눈을 찌푸리며 생각에 빠졌다.
“제작도…. 아! 말할 때 뭔가를 흔들어 보이긴 했어요. 혹시 그건가?”
“그러면, 제작도가 있는데도 유재이 씨여야 하는 거군요.”
“확인하지 않아서 그게 제작도가 맞는지는 모르겠어요.”
“시체엔 없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봤지만, 제작도 같은 건 없었다.
용두식의 시체에서 나온 거라곤 지갑뿐이다.
“그렇다면….”
우연후가 고개를 돌려 아지트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아지트는 온데간데없고 1층 벽만 드문드문 남아 을씨년스럽게 서 있다.
제작도가 저곳에 있었다면, 분명 세계수 휘두르기에 휩쓸려 버렸을 터였다.
“…….”
“…….”
“음, 미안합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 순수한 마음으로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