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03
제404화
“어서 오십시오.”
도착하자마자 아는 얼굴이 우릴 맞이했다.
앨릭스의 부하로 나와 함께 트란실바니아 던전에 갔었던 초록 머리 남자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온 우리를 마중 나온 모양이다.
그런데 이 인간 이름이 뭐였더라?
[세계수는 ‘일리스’라고 가르쳐줍니다.]아, 맞다.
그런 이름이었지.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시죠.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인사를 짧게 나눌 법도 한데, 일리스는 바로 뒤돌아서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자기 할 일만 하는 모습을 프로페셔널하다고 해야 할지 무뚝뚝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긴.
자기가 일하고 있는 건물에 뭐가 어디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조우민 협회장보다는 나으려나?
슬쩍 뒤따라 걷는 조우민을 흘겨본다.
그는 세상만사 다 귀찮은 얼굴로 하품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협회장이 저런 사람인 줄은 몰랐네.
저러니까 지금껏 얼굴 한 번 못 봤지.
“저기….”
“네, 이태천 헌터 님.”
“다들 기다리고 있다는 건, 저희가 마지막이라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으응? 지각…은 아닌데?”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른 분들께서 일찍 도착하신 것뿐입니다.”
태천이 걱정하자 일리스가 안심시켜주었다.
그 말마따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원래 소집 시간은 5시였고, 지금은 4시 34분이었으니까.
“그런데 다른 분들이라면…?”
“밀러 님. 리롄제 님과 리우이호 님. 스미르노프 님께서 모여 계십니다.”
“그위친은요?”
“밀러 님께서 말씀하시길, 연락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마음을 쓸어내린 태천이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일리스는 무표정한 얼굴로 정중하게 대답해주었는데, 그 모습이 퍽 웃겼다.
무표정한 얼굴로 정중한 태도라니.
재주도 좋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아니요. 그위친 님께서는 원래 연락이 잘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스마트폰이 없으시거든요.”
“네? 요즘 세상에요?”
슥….
걱정스러운 얼굴을 짓던 태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고는 내 오른손을 돌아봤다.
스마트폰을 놓칠세라 꼭 쥐고 있는 오른손을.
“뭐 인마.”
“아무것도 아냐.”
태천은 웃는 낯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얼굴로 말하는데 누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까.
아무튼, 신기하긴 하네.
요즘 세상에 어떻게 스마트폰이 없을 수가 있담?
“대신 밀러님께서 마법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아, 그래요?”
“명상 중이시면 그것도 확인하지 못하시겠지만…. 그래도 확인하시면 금방 답변을 보내오실 겁니다. 사안이 사안이니, 직접 오실 수도 있겠죠.”
“편지 보시고 꼭 오셨으면 좋겠네요. 저번 일에 대해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했거든요.”
“그렇군요….”
일리스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말끝을 흐리는 걸 보니, 아마도 태천이가 말한 “저번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같았다.
리롄제와 맨몸으로 겨루고, 밀러와 비등하게 마법을 쓰고, 스미르노프보다 거인화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모습을….
“저기, 질문이 있는데,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라는 말을 일리스는 무표정하게 했다.
태도는 정중했으나 표정 때문에 정말로 얼마든지 질문해도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물론, 태천이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질문했다.
우리 태천이는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남자다.
“S급 헌터 세 사람은 왜 온 겁니까? 리롄제 님은 제자 때문에 왔다고 치고. 다른 두 사람은 올 필요 없잖아요?”
“죄송합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리스의 “말씀드릴 수 없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거다.
“그 세 사람이 그냥 손님으로 참석한 거면, 말해줬을 거야.”
“…음?”
“하지만 일리스 씨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했잖아. 즉. 그들이 이번 테스트에서 어떤 역할을 할 거라는 거지.”
“아! 심사위원 같은 거로?”
“그럴 가능성이 크지. 혹은….”
태천이에게서 고개를 돌려 일리스를 바라봤다.
그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말씀드릴 수 없는 것과는 별개로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고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
“우리와 대결을 한다거나?”
“대결?”
“누가 그러던데? 앨릭스 협회장 별명이 ‘악취미 앨릭스’라고. 그런 별명이 붙은 사람이 할만한 짓이잖아.”
“…….”
일리스를 빤히 바라봤다.
내 시선이 계속 그에게만 향하자, 태천이도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태천이의 시선이 향한 후에야 일리스는 대답했다.
“글쎄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느긋한 태도에 단조로운 목소리다.
흠….
대결은 아닌가?
“…아무튼. 뭔가 하려고 온 걸 거야.”
“그렇구나. 아, 맞다. 일리스 씨. 궁금한 게 또 있는데요.”
“네. 질문하십시오.”
“오늘 저녁 메뉴는 뭔가요? 야식은요? 혹시 나온다면 어떤 것들이 있죠? 아. 술 마셔도 됩니까?”
참 하찮은 질문들이 이어졌다.
아마 옆에 도희나 한재임이 있었다면 태천이와 살짝 거리를 벌렸을 거다.
그러나 태천이의 가장 친한 친구인 나는 그러지 않았다.
톡톡톡 톡톡!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을 뿐.
우리 새싹이는 커다래져도 귀엽구나.
음, 음.
“…저녁은 뷔페식으로 동서양의 대표적인 음식들로 준비돼 있습니다.”
일리스는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태천이가 감탄을 내뱉으며 눈을 빛냈다.
“야식은 나오지 않고요.”
“앗, 아….”
“술은 준비돼 있으니 알아서 드시면 됩니다. 그러나 내일 테스트를 치러야 하니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거야 당연하죠! 적당히 조절해서 마시겠습니다.”
태천이는 일리스의 답변에 일일이 반응했다.
그 이후로도 태천이는 “침실은 커요?”라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질문들을 이어나갔다.
시답잖은 질문과 친절한 답변이 이어지는 동안, 우린 곧 문이 양쪽으로 달린 회의실 앞에 도착했다.
저 안에 앨릭스 협회장과 테스트 진행 요원들 그리고 S급 헌터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똑똑.
일리스는 노크를 한 후 곧바로 문을 열었다.
문을 활짝 열자,
회의실에 있는 S급 헌터는 세 명.
그런데 새싹이는 네 개를 느꼈다.
S급 헌터가 아닌 사람 중에서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의 소유자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누구인지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리롄제의 제자, 리우이호.
바로 그였다.
“끌끌끌…!”
리롄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얼굴엔 만족감이 완연하게 담겼다.
내가 알아차렸다는 걸 알아차린 거다.
“놈…! 역시 알아보는구나.”
그 말에 바로 옆에 앉은 리우이호가 씩 웃어 보인다.
자신만만한 미소는 벌써 S급 헌터가 된 듯하다.
현 S급 헌터인 리롄제가 보증해줬을 테니 그럴 수밖에.
“그런데….”
리롄제는 태천이를 바라봤다.
날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내 마나가 순수하고 완전하다는 걸 알아차렸었다.
태천이의 마나가 어떤 상태인지 파악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넨 여기 왜 왔나?”
“네…?”
“그 상태로는 큰 창피만 당할 텐데.”
“아…. 하하, 그런가요?”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그럴 수는 없죠. 이미 테스트를 치르겠다고 밝혔는데요.”
“저런…. 안타깝게 됐군. 그래도 크게 걱정하지는 말게. 큰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협회장이 신경 써줄 테니.”
“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태천이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떨어질 거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고맙다는 말을 하다니….
혹자들이 ‘미터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런 일에 우리 도희와 한재임이 대신 나서는 것도.
뭐….
“영감님도 낄 데 못 낄 데 구분 못 하고 눈치 없이 따라왔는데 뭐 어떻습니까?”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두 사람처럼, 나도 우리 태천이를 건드린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게 한재임과 나와의 몇 없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물론, 차이는 있었다.
난 한재임과 달리 타인의 눈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거.
리롄제가 회의실 빈자리에 앉는 내게 고저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저런…. 나이가 안타깝긴 하군요. 이젠 귀도 잘 안 들리시는 겁니까?”
“…….”
“언제 한국에 한 번 들르시죠. 우리나라 보청기 잘하니까.”
“…그래. 아무래도 들러야겠구나.”
그리 대답하는 리롄제의 눈은 매서웠다.
내 말에 동의하듯 한국에 들르겠다고 했지만, 저건 절대로 보청기 구매하러 오려는 게 아니다.
날 죽이러 오려는 거지.
쉽게 죽어줄 생각은 없지만.
그 생각을 담아 해맑게 웃어주었다.
“…….”
리롄제가 불쾌한 듯 눈을 찌푸린다.
저럴 줄 알았다.
잘 모르겠지만, 내가 웃는 얼굴을 본 이들은 불쾌함을 느끼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일부러 해맑게 웃은 거였다.
[세계수가 관리인을 안쓰럽게 바라봅니다.] [관리인을 위로해주고자 아침 이슬을 보냅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우편함으로 전송하겠다고 전합니다.]그 이슬 참 마시고 싶네.
아무리 일부러 그랬다지만, 웃었는데 불쾌해하는 건 절대 즐겁지 않았다.
“…흠, 흠!”
앨릭스 협회장이 시선을 모으고자 헛기침했다.
그 바람대로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다들 모였으니, 이제 내일 있을 테스트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러는 게 좋겠어요!”
밀러가 앨릭스의 말에 밝은 목소리로 긍정을 보냈다.
험상궂게 된 회의실 분위기를 풀고 싶은 거다.
안타깝게도 리롄제와 스미르노프 때문에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두 사람 다 나와 태천이를 쳐다보느라 앨릭스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한 것이다.
하여간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데 도가 튼 인간들이라니까.
[세계수는 관리인을 빤히 바라봅니다.] [그 도가 튼 인간 중 최고가 바로 관리인 본인 아니냐고 지적합니다.]내가 뭘?
저 두 사람과 달리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얌전히 잠자코 있었다고.
[세계수는 바로 그게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얌전히 잠자코 있느라 앨릭스의 설명을 하나도 안 듣지 않았냐고 따집니다.] [지금까지 앨리스가 한 설명 중 기억나는 게 있냐고 질문합니다.]다 알면서 뭘 묻니.
당연히 기억 못 하지.
괜찮아.
태천이…도 당연히 기억 못 할 거고.
조우민 협회장은 들었을 거야.
“후아암….”
때마침 조우민 협회장이 하품했다.
입이 찢어질 듯이 큰 하품을 보고 조금 불안해졌다.
이 인간, 들었겠지…?
[세계수는 조우민이 미덥지 못하다고 전합니다.]…그냥 도희를 데리고 올 걸 그랬나?
추운데 뭐 하러 가냐고 안 데리고 왔었는데….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전합니다.] [관리인이 그럴 줄 알고 자신이 기억해뒀다고 흐뭇해합니다.]오.
역시 우리 새싹이!
칭찬하자마자 새싹이는 설명을 시작했다.
[세계수는 S급 헌터 테스트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테스트는 총 세 번에 걸쳐 진행된다고 전합니다.] [첫째, 신체 테스트.] [둘째, 스킬 테스트.] [셋째, 전투 테스트.]이름만 봐도 뭘 검사하려는 건지 알겠네.
신체 테스트는 말 그대로 육체와 마나의 성질을 알아보려는 걸 거고, 스킬 테스트는 검기나 검강을 쓸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걸 거다.
마지막 전투 테스트는 말 그대로 싸우는 모습을 보려는 거겠지.
흐음….
“왜?”
“…궁금해서.”
“뭐가?”
“세 번째 테스트.”
“세 번째? 뭐였지?”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역시 안 듣고 있었군.
태천이를 한심하게 바라봐준 후 전투 테스트에 대해 생각했다.
싸우는 모습을 보려는 건 좋다.
좋은데, 그 모습을 어떻게 관찰하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