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06
406화 진혼곡(鎭魂曲)(3)
‘어째서 나는 조금 전에 티르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일까.’
나는 의식의 격류와 전투의 고양감 속에서 계속해 사고를 거듭해나갔다.
검으로 사지가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적의 몸을 베고, 또 베어내면서. 나는 어째서일까. 나를 되찾는 것을 느꼈다.
그저 감각은 아니었다. 나는 실제로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금 나는 거대한 상실감에서 저항하고 있다.
돌이키고 있다. 과거의 과오를…….
촤아아앗! 촤앗!
허공에 피가 튄다.
몸이 부유한다. 붕 뜨는 듯한 감각 속 공격은 더욱 예리해진다.
살을 베어내는 감각. 적을 오연히 내려다보는 느낌까지.
생경해야 할 모든 행동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들과 지금 떠오른 몇몇 기억들.
이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부터.
또 어떤 것으로부터 기인하는가.
알 수 없다.
무엇하나 선명하지 않은 와중에 나는 그저 계속 반추할 뿐이다.
지금 앞에 있는 자는 나의 적이며, 티르를 죽이는 것만이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임을.
이미 두 개의 팔이 날아가 버린 티르. 그의 몸은 허물어지기 직전이다.
양 무릎이 굽혀지고, 상체가 앞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균형을 채 유지하지 못한 녀석의 나약한 몸이 이제는 그만하라 비명을 질러대고 있다.
아마 티르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조금 전의 공방. 그것만으로도 승부가 나 버렸다는 것을.
내가 도달한 경지에, 결코 자신은 고개를 들이밀 수 없을 거라는 것 역시도.
그래서 그는 제안했다. 내게 함께 하자고.
오딘을 죽이자고.
하지만… 내 선택은.
“역겹구나. 티르.”
거절이었다.
몸 깊은 곳으로부터 역겨움. 그리고 경멸과 모멸감이 피어올랐다. 적을 향한 맹렬한 적의(敵意). 이렇게 될 줄은 그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티르라는 자. 전쟁의 신의 말로가 이런 비참한 식으로 끝나게 될 줄이야.
허나 자초한 것이 그라면, 나는 그를 용서할 이유가 없다. 결국, 이것이 그의 죄로부터 기인한다면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때문에 그를 똑바로 마주한 나는 그렇게 말했다.
“너는 끝까지 너의 안위만 챙기는구나. 어디에도 너를 위한 선택만이 있을 뿐. 절대 네 동료나 다른 종족들은 챙기지 않지.”
티르의 죄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시그룬의 육체를 탐하려 했던 자가 티르다.
매일같이 향락과 여자에 빠져 살던 것이 바로 티르다.
또한, 알프헤임을 무너뜨리고 비극을 만들어 자신을 절망시켰던 것 역시. 저 눈앞의 티르였다. 나는 더는 망설이지 않는다.
검을 쥘 손이 없는 티르가 무릎을 꿇은 채 나를 올려다볼 때, 나는 여기서 그와의 질긴 악연을 청산해야 함을 느꼈다.
“…대적자. 너를 인정하겠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네가 어떻게든 너의 도움이 될 터이니, 여기서 그만 나를 살려주는 것은 어떤가?”
“너를 살려달라 말했나?”
나의 입에 저도 모르게 조소가 피어오른다. 그것은 명백히 한 대상을 향한 것이다.
왜, 과거의 나는 저들을 처치할 수 없었을까.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했을까. 그런 아쉬운 마음이 물감처럼 번진다.
하지만 이제 의미 없는 일이다.
그저… 허무함과 공허만이 내 가슴 속을 가득 메울 뿐이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말과 함께, 신화의 장검이 빛을 발하며 가볍게 선을 그린다. 검로(劍路)는 마치 투명한 실처럼 마력을 한껏 머금은 채, 제 구역을 조각내며 적을 베어간다.
가슴께와 다리를, 이어 심장을 타고 올라와 횡격막과 명치를. 다시 그 위로 목과 어깨, 그리고 마침내 얼굴까지.
신체의 모든 부위를 난도질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무형검 2식. 환검.
그것이 발동함과 동시에, 적의 몸이 허물어진다.
허무하리만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것이 공허일까.
무려 신격해방 4단계에 있는 적을 베었음에도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았다. 고양감도,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성장했다는 것에 대한 기쁨도.
지금은 그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채 적을 베어낼 뿐이다.
그저 과거의 한 소년이 생각날 뿐이다.
라스, 엘프들의 친위 대장이었던. 무거웠던 어깨를 가진 소년의 이름이.
나는 자꾸만 눈에 밟혔다.
―에시르 신좌의 《전쟁과 정의의 신 티르》를 처치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필드 마법의 발동을 종료합니다.
곧 나를 둘러싼 붉은 달의 고원이 완전히 그 힘을 잃었다.
강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자주 다룬 힘이 아닌 터라, 미숙한 부분이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적은 처치했고, 이제 다음은 아득한 심연의 별. 그것을 찾아내 손에 넣어 오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뿐이니까.
하나 그 전에.
―액티브 스킬 《신성 찬탈》을 발동합니다.
―온전한 격을 지닌 대상을 죽였습니다.
―막대한 신격이 사용자의 신체에 깃듭니다.
얻어야 할 것은 확실히 얻어야 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 * *
아득한 심연의 별의 수색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선 권소율의 존재가 어마어마하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탐색 스킬은 반 에시르도 쉽게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력을 깊게 감지하며, 더 나아가 인근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자리하고 있는지 파악해낸다는 것. 이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주변의 정보를 빠르게 읽어낼 수 있는 명석한 두뇌와 특별한 마력을 다룰 힘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기민한 순발력, 가장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는 안정성까지 확보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아득한 심연의 별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헬라가 고개를 주억이며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제 목숨의 안위(?)를 잘 챙기는 것으로는 최고인 권소율에게 이런 힘이 주어진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죽을 일이 그다지 없게 된다는 의미나 다름없으니까.
“이쪽에서 시추(試錐)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아요. 아래에서 뭔가 마력이 느껴지고 있으니까… 아마 틀림없을 거예요.”
시추 작업이란, 기본적으로 땅을 파 그 내부에 존재하는 자원을 캐내는 것을 말한다.
이곳 니플헤임에서 아득한 심연의 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이는 바로 지하 깊은 곳이었다.
권소율의 말에 다른 일행이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들에게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추 작업이라는 게 그렇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인근에는 다른 세계가 인접해 있고, 여기서 지나치게 소란을 떨었다가는 오딘의 눈에 띌 수도 있으니.
최대한 소음을 적게 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최선의 효율로 조각을 캐내야 해요.”
안호연의 말에 김유정 역시 동의했다. 그녀가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시추 작업을 위해서는 정확한 위치도 중요하지만, 바닥 구조부터 파악해야 해. 무턱대고 바닥을 팠다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아무래도 위험할 수밖에 없으니까.”
“내 생각도 그래.”
“그건 나한테 생각이 있어.”
권소율이 말을 받는데, 별안간 이재상이 끼어들었다. 그가 인벤토리에서 한 포션을 꺼내 일행의 앞에 내밀었다.
그것은 아주 뜨거운 액체를 담고 있는 약이었는데, 아무래도 이곳의 차가운 냉기를 일부 희석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아마 길을 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이재상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헬라가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럼 저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겠습니다. 최대한 조심해주세요.”
“물론이죠!”
김유정이 활기차게 대답했다. 이재상은 이어 일행을 잠시 둘러본 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그는 포션의 마개를 따 서서히 권소율이 가리킨 X자 부분에 포션을 쏟기 시작했다.
주르륵….
뜨뜻한 액체가 울컥 토해지며 그곳으로부터 둥근 자국이 생겨난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곳으로부터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
지이이잉!
이어 얼음이 깔린 내부로부터 무형의 막대한 마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틀림없다. 이곳에 뭔가 있다.
그곳의 모두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곳에 아득한 심연의 별 조각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얼음은 이재상의 포션에도 모두 녹아내리지 않았다.
정찰을 다녀온 헬라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요. 이재상 군의 포션으로도 녹지 않는 얼음이 있다니. 역시 이곳에 숨겨져 있는 걸까요? 아득한 심연의 별 조각이…….”
“확실합니다. 이 마력… 이건 별 조각에서만 느껴지는 마력이거든요.”
그때였다.
뒤편에서 어느새 티르를 처치하고 돌아온 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일행은 무사히 돌아온 재현을 보며 입가에 잔뜩 미소를 머금었다.
재현은 동료들에게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준 뒤, 서서히 권소율이 표시한 X표가 그려진 장소로 다가왔다. 포션의 위력으로도 완전히 녹지 않은 빙벽의 내부.
‘쉽게 깨지지 않는 얼음이다. 예전에 다른 신들이 말했었지. 어떤 고열로도 절대 깨지지 않는 얼음이 있다고. 아마 이게 그건 것 같네.’
문득 반 에시르 세력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쉽게 깰 수 없는 얼음. 결코, 열기로는 부서지지 않는 빙판이 어딘가 존재하며, 그것은 니플헤임의 태동과 함께 존재해 왔다고.
그것을 깰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라고.
‘여기가 확실해.’
다시 느껴도 확실히 별 조각의 마력이 내부로부터 느껴졌다.
웬만큼 뜨거운 액체가 먹히지 않는다.
이 말은, 다시 정리하자면 압도적으로 뜨거운 액체가 작용한다면 쉽게 녹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으니까.
재현은 즉시 액티브 스킬을 발동했다.
마도구의 형상화. 제작한 무구는 당연하게도 신화의 장검이었다.
“모두 뒤로 물러서.”
재현의 말에 동료들이 순순히 뒤로 물러섰다.
뭐냐고 물었다가 공격의 여파에 휩쓸린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서는 재현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어 재현은 검을 역수로 쥐고 힘을 실은 뒤, 마력을 담아 그대로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것은 처음 이재상의 포션으로 녹이지 못했던 부분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성공인가?”
“이상한 주문 하지 마.”
이재상의 말에 권소율이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이변은 다행스럽게도 없었다. 재현의 마력에 반응한 검이 서서히 뜨거운 열기를 쏟아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숨에 모든 것을 녹여낼 정도로 압도적인 고온을 자랑했다.
재현이 미소지었다.
‘역시 이게 정답이었나.’
재현이 사용한 것은 바로 수르트의 티끌. 세계에서 가장 강한 거인 중 하나이자, 가장 뜨거운 불을 갖고 있다 불리는 자의 불길이 검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수르트의 불꽃. 그걸 제련에 사용한 검이라면 어떤 냉기라도 뚫어낼 수 있는 게 당연하다.’
재현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데는 단 몇 초의 시간 밖에는 소요되지 않았다. 서서히 얼음 막이 깨어지며 그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 그로부터 떠오른 검은 파편이 재현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걸로 두 개.”
재현이 미소를 지으며 검은 조각을 손에 쥐었다.
이제 두 개째 아득한 심연의 별을 획득한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