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19
19화
폐허가 된 도시의 하늘은 비가 오려는 듯 무척이나 흐렸다.
남대문 시장 간판은 아직도 땅에 처박혀 있었고,도마뱀 몬스터 시체는 이제 뼈조각 몇 개만 남아 있었다.
경훈은 사라져버린 도마뱀 몬스터를 확인하고는 걸음을 재촉했다.
시체가 사라졌다는 건, 이 건물 안에 도마뱀 몬스터를 뼈까지 먹어치우는 괴물들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각성자 센터가 매몰되는 바람에 남대문 시장 차원 문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이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하기야 이 도시에서 안전한 곳을 찾기는 무리였다.
경훈은 네비게이션을 확인한 뒤에 북동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청계천 방향이었다.
그는 청계천 3가에 있다는 [아이템 제조단지 ]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는 각성자 센터에서 각성자 시설들의 위치를 알게 된 뒤에 [각성자 훈련소]와 [아이템 제조단지] 중 어디로 갈지 고민했다.
[각성자 훈련소]가 상당히 끌리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훈련소는 한강 이남에 있었다. 너무 멀고,한강과 한강 다리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없었다.
경훈은 우선 가까운 [아이템 제조단지]로 가기로 했다.
시청 근방인 각성자 센터에서 출발했다면 금방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이곳 남대문 시장에서는 1km는 가야 했다.
그래도 저녁이 되기 전에 층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물론,별다른 방해가 없다면.
후두둑.
하지만, 남대문 시장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추적추적 비가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긴 하네.”
경훈은 신기한 표정으로 비를 맞았다. 비는 저쪽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맞을 수는 없었다.
경훈은 우의를 꺼내 옷 위에 껴입었다.
역시 사제는 좋았다. 눅눅한 것은 그리 다르지 않았지만,판초 우의보다 훨씬 움직이기 좋았다.
우의를 입고 다시 걸음을 재촉하려고 할 때였다.
푸두두두둑.
하늘에서 수많은 날갯짓이 들리고, 어두운 하늘이 더욱 어두워졌다. 놀란 경훈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떼인가?”
수많은 날짐승이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경훈은 강화된 눈으로 날아오는 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안에 있던 놈들이잖아?’
남대문 건물 안에서 드문드문 보였던 날다람쥐를 닮은 놈들이었다. 놈들이 수만 마리 이상 떼를 지어 날아오고 있었다.
‘설마 날 수도 있는 거였어?’
저 정도 숫자라면 도마뱀이 아니라 공룡도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경훈은 빗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남대문 시장 건물 근처에 있다가는 뼈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원래 놈들이 돌아올 때가 아니었지만, 비가 오는 바람에 집으로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때, 날아오는 놈들이 갑자기 사방으로 흩어졌다.
번쩍!
그와 동시에 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은 신기하게도 지상으로 떨어지지 않고,날다람쥐 떼를 강타했다.
삐이이익!
하늘 가득 비명이 울리고,수백 마리의 날다람 쥐 괴물이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때, 구름을 가르고 거대한 괴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타지 영화에서 보던 용같이 생긴 괴물이었다.
날개까지 포함하면 수십 미터가 넘어 보이는 괴물이었다. 괴수가 아래로 내리꽃히는 모습은 대형 여객기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것처럼 보였다.
괴물의 이마에서는 아직도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괴물의 입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괴물은 떨어지는 작은 놈들을 낚아채서 다시 구름으로 들어갔다.
마치,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 같았다.
경훈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속에는 언뜻언뜻 거대한 검은 그림자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역시 말도 안 되는 세상이야.”
강해지면서 조금 커졌던 자신감이 다시 쪼그라들었다. 이곳에서 그는 약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뒤, 흩어졌던 작은 괴물들이 다시 건물로 몰려들었고,경훈은 조심스럽게 건물에서 멀어졌다.
빗소리가 그가 움직이는 소리를 가려주었지만, 그는 최대한 조심했다.
그날 오후,
“여기가 청계천이 맞아?”
경훈은 남은 도로 옆에 서서 네비게이션과 길을 번갈아 보았다.
분명, 여기에 청계천이 있어야 했다. 시멘트로 만들어졌긴 했지만, 하천이 있어야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냥 도로일 뿐이었다.
거기다 이리저리 부서진 고가도로까지 . 어딜 봐도 그냥 도심의 대로였다.
경훈은 머리를 긁적였다.
‘설마,청계천이 하천으로 복원되기 전에 망한 건가?’
정확한 복원 시점을 알지 못하는 경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일 뿐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은 우선 뒤로 미루는 것이 정답이었다. 경훈은 네비게이션의 지번과 실제 위치를 비교했다.
인상을 쓰며 주변을 살피던 그는 돌무더기가 가득한 땅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청계천 3가에 있는 아이템 제작 단지 자리에는 무너진 건물 잔해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더욱 우울해 보이는 건물 잔해였다.
“어째 여태 운이 좋더라니.”
처음 도착한 건물도,그다음 도착한 각성자 센터도 건물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다. 덕분에 쓸만한 것도 구할 수 있었고……
더구나,비 덕분인지,조심해서 움직인 덕분인지,이곳까지 오는 동안 괴물들과 한 번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행운이 계속될 리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한강으로 향하는 건데.’
한숨을 푹푹 내쉬며 경훈이 건물더미를 향해 걸어갔다. 이왕 왔으니 뭐라도 건져야 했다.
시간이 흘렀다. 다행히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지만,쓸만한 물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포기하려던 경훈은 마지막 순간, 반쯤 무너진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보게 되었다. 아직 행운은 끝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경훈은 바로 계단을 내려가지 못했다.
‘설마, 함정 같은 건 아니겠지?’
각성자 센터에서 한번 당한 것 때문에 이런 통로는 의심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 계단을 노려봤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던 그는 어느 순간 헛웃음을 지었다.
“이 병신아. 쫄았냐.”
그는 주먹으로 머리를 두들겼다.
오전에 본 광경 탓에 담이 작아진 모양이었다.
이런 일로 고민하려면 이쪽 세상에 올 필요도 없었다. 공장도 살 필요 없었고,금괴를 판 돈으로 평범하게 살면 그만이었다.
경훈은 우비를 벗고, 무기를 점검했다.
탄창을 다 채우지 못한 권총과 문양이 새겨진 장검을 양손에 잡고. 허리춤에 있는 단도를 확인했다.
배낭 안에는 지난번에 사놓은 엽총이 들어있었고,사제 폭탄도 여러 묶음으로 포장해서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추가로 준비한 몇 가지 장비.
준비는 층분했다.
경훈은 권총 앞에 달린 소음기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에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똑. 똑. 똑.
계단은 춥고 눅눅했다. 반쯤 무너진 계단의 벽과 천장으로 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비 때문일까?’
마치,깊은 동굴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경훈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연히 살아남은 계단이 아닌가?’
반쯤 계단을 막은 건물 더미에 손댄 흔적이 보였다.
힘으로 부순 흔적과 도구로 잘라낸 흔적. 거친 흔적이었지만, 자연적으로 생긴 흔적이 아니었다.
‘설마, 무너진 뒤에 누가 여길 뚫은 건가?’
아쉽게도 최근에 만들어진 흔적은 아니었지만, 건물이 무너지고 난 뒤에 생긴 흔적은 조금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경훈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길어 보이던 계단이 끝났다. 계단은 반쯤 열린 작은 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당연히 이곳도 빛은 없었다. 경훈은 조심스럽게 문 안쪽을 확인했다.
[청계천 아이템 상가]
[지하 2층]
문 옆에 붙어 있는 팻말 덕분에 경훈은 자신이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복도는 꽤 위태로워 보였다. 벽에 금이 가고, 크고 작은 구멍들이 바닥과 벽에 숭숭 뚫려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복도 양쪽에 널찍한 문들은 멀쩡히 늘어서 있었다. 공장형 건물에서 많이 보던 큰 문들이었다.
[동형 대장간]
[SS급 대박 아이템 제작. 유신]
[(주)성일 하이택]
[신라 대장간]
[…]
문들 위에는 유치한 이름부터 오래된 이름까지 다양한 상호가 적혀있었다.
다행히 잘 찾아온 것 같았다. 이곳은 문양을 새겨놓은 물건들. 아이템을 만드는 곳이 분명했다.
‘설마, 여기도 꽝은 아니겠지?’
등에 메고 있는 가방을 구하긴 했지만, 각성자 센터는 텅 빈 상점들만 남아 있었다. 그는 눈 앞에 펼쳐진 상호들을 보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경훈은 조심스럽게 복도를 나아갔다. 복도는 계단과 달리 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눅눅한 것은 그대로였다.
문들도 모두 녹슬어 있었고,바닥은 녹슨 철문이 흘러내려 만들어진 것 같은 점막이 찐득거렸다.
경훈은 구멍들을 피해 첫 번째 문으로 다가갔다.
[동형 대장간]
반쯤 닫혀 있던 문은 다행히 쉽게 열렸다.
곳곳이 무너지고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안의 모습은 정말 그가 알고 있던 대장간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한쪽에 불을 빼낼 수 있게 굵은 연통을 단 화덕과 각종 공구가 가득 걸려있었다.
경훈은 바로 대장간을 수색했다.
“오,있다!”
경훈은 금방 문양이 새겨진 물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장간 한쪽에 문양이 새겨진 물건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기쁜 마음에 물건들을 살펴 본 경훈은 곧 실망하고 말았다.
아쉽게도 이곳에 있는 물건들은 정상적인 물건들이 아니었다.
방패에 새겨진 문양은 채 다 새겨지지 않고 멈춰 있었고, 문양이 새겨진 창은 크게 휘어져 있었다.
“망가지거나 만들다 만 물건들인가.”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첫 소득치고는 나쁜 편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문양이 새겨진 자체로 쓸모가 있었다. 문양을 연구하거나,문양을 긁어내서 재활용할 수도 있었다.
경훈은 문양이 새겨진 물건들을 배낭에 차례로 집어넣었다.
신기하게도 이 배낭은 원하는 물건을 바로 꺼낼 수 있어,아무렇게나 넣어도 상관이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로 경훈은 차례로 다음 상가로 움직였다.
열리지 않는 문도 있었고, 완전히 묻힌 상가도 있었다. 하지만, 많은 상가가 원래의 모습을 유지했다. 상가는 현대적인 공작기계가 있는 곳도 있었고, 남은 대장간도 있었다.
경훈은 상가를 차례로 수색하다 결국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고물밖에 안 남은 건데!”
상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온전하지 못한 것들뿐이었다.
주인이 떠날 때 모두 가져갔을 수도 있지만, 분명, 중요해 보이는 공구들도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경훈의 머릿속에 계단에서 보았던 흔적이 떠올랐다. 누군가 막힌 벽을 뚫고 지나간 흔적.
“설마, 그 사람이 가져 갔나?”
흔적을 발견했다고 좋아했는데, 오히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한숨을 내쉰 그는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안쪽 상가로 들어갔다.
그 상가도 여러 곳이 숭숭 구멍이 뚫려 있는 위험해 보이는 상가였지만, 물건들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공구들과, 망가진 문양들이 새겨진 물건들과 도면들.
경훈은 환호했다. 도면이 있었다.
“역시 있었어. 물건을 만드는 데 도면이 없을 리가 없지.”
도면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그는 도면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실망할 필요가 없었다.
모두 제대로 된 도면들이었다. 각종 아이템의 치수와 문양의 형태가 그려진 도면들이었다.
신이 나서 도면들을 살피던 그는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꾸억! 꾸어억!
낮선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 한 곳이 아니었다. 경훈의 눈이 옆으로 돌아갔다.
벽에 뚫린 구멍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이곳까지 오는 동안 구멍이 뚫린 곳은 이곳 한곳이 아니었다. “설마, 어디로 통하는 구멍이었나?’’
어둠 속. 옛날 뚜껑이 덮여서 이제는 땅속에 묻힌 청계천. 그곳에서 잠들어 있던 수많은 두꺼비 괴물들이 주인들의 지시에 눈을 떴다.
꾸억! 꾸억!
-침입자가 들어왔다.
주인의 지시에 두꺼비들 일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쉬고 있던 정찰병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굵고 긴꼬리. 길쭉한 입. 굵은 두 다리와 강한 양팔을 가진 비늘에 뒤덮인 괴물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쿵.
2m가 넘는 괴물이 검을 들고 움직이자 두꺼비 괴물들이 옆으로 비켜섰다.
-침입자를 확인하고,죽여라!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